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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그코크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입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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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그코크
작품등록일 :
2023.05.11 21:42
최근연재일 :
2024.05.28 08:00
연재수 :
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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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04,358

작성
23.07.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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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심상 세계

DUMMY

2-15.


설녀는 계속해서 책을 읽었다. 기억을 얻기 위해.

그리고 깨달은 건 확실히 책의 내용은 있었던 사실이었다는 점이다.


2-27.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상황에 직면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다 해결이 되는 게 신기했다.


2-61.


여러 존재를 만났다.

그중에서 자신보다 더한 존재감을 가진 자들도 있었고 과거의 나를 아는듯한 말투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모른다.


2-134.

읽으면 읽을수록 모르는 것 투성이가 되어버렸다.

이 기억의 이전에는 과연 나는 무엇을 했는가, 나는 누구인가.

다행이라고 하면 다행일지 아니면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은 많았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자신의 고민을 해결했다.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2-371.


여전히 나는 나에 대해 알 수가 없었다.

나를 알고 있는 것 같은 이들도 자신이 설녀라는 것 외에는 대답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껏 설녀를 본 적이 없다. 설녀란 도대체 뭘까?


2-797.


설녀를 만났다.

그들 모두 나를 경계한다.

의아하기도 했으며 정말 설녀인지 의문을 품고 대하기도 한다.

한가지 알 수 있던 건 설녀와 ‘나’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것이 조금 나를 공허하게 만들었다.


2-1,721.


꽤 오랜 시간 정처 없이 떠돌았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를 생각할 틈은 없어졌다. 지금 당장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다른 곳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으니까.

지나가면서 다른 이들이 자신 있게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게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까지 했다.


2-4,783.


호빗이라는 종족을 만났다.

호빗은 자기 자신을 인간이라 칭했기에 그들에게 맞춰서 인간이라 불렀다.

인간은 참 신기했다. 고민이 없었다.

다른 이들보다 짧은 시간을 살아가는 종족이라 그런지 앞날에 대해 생각할 뿐 과거와 자기 자신에 대해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2-9,998.


생각한 것보다 인간의 옆에 오래 있었다.

그들은 재미있었다.

작은 일에 기뻐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했으니까.

인간을 계속해서 보면서 처음 봤었을 때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에 예외가 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도 있었고 과거에 집착하는 이들이 있었다.

죽을 때까지 고민하는 이들 또한 있었으며 그저 그냥 자기 자신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과거에 집착해 미래를 잃어버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과거로부터 시작된 역사로 미래를 찾아낸 이들 또한 존재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희망적인 결말에 도달하지 못했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될까.


2-27,654.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그러고 보니 설녀들은 북극에서 잘 벗어나지 않는다고 들었다. 냉기가 없다는 게 이유라고 들었다.

나도 지금 냉기가 부족해서 숨쉬기 힘들어진 걸까?

나도 설녀인걸까?

잘 모르겠다.


2-66,781.


점점 숨쉬기 괴로워졌다.

그럼에도 아직도 북극으로 가야 할까? 라는 생각에 망설임이 있었다. 북극은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북극과 정반대이면서 같은 추운 지방이 있다고 들었다.

그곳은 어떨까?


2-183,214.


남극에도 설녀가 있었다.

그들도 자신에 대해 의문을 품고 배척하려 했으나 자신의 상황에 대해 눈치채고 내쫓지는 못했다.


2-183,220.


남극에서 생활한 지 6년.

설녀들은 왜 그동안 자신을 배척해 온 것인지에 대해 이유를 말해줬다.

그 이유는 터무니없었다.

바로 내가 죽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죽은 설녀가 삶에 미련이 아주 많으면 극악의 확률로 되살아난다고 했다.

다만 태생적으로 부족한 한기 때문에 주변에서 냉기를 보충하려고 하며 같은 동족인 설녀의 냉기까지 잡아먹는 경우 또한 존재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그런 적이 없다고 설명하자 대부분이 그 점에서 의문을 느꼈다고 한다.

아무리 강한 정신력도 부족한 냉기를 채우려는 갈증은 참을만한게 못 된다고 했다.


2-184,000


남극을 떠나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이곳에 올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내가 가능한 건 그저 그들이 잘 지내기를 비는 수밖에 없다.


...

..

.

..

...


책은 이 이야기를 끝으로 더는 없었다.

리드가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더 없나요?”

“있긴 하지만 당신을 지켜보는 독자로써 이 이상은 책을 권해드리기는 힘들 것 같네요.”

“어째서인가요?”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책을 읽으셨습니다. 당신에게 휴식이 필요해요.”

“그건 상관없으니까 다음 책을...!”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쓰러진 설녀를 지켜보면서 리드가 말했다.


“지금 당장 제 몸도 못 가누시면서 잘도 말씀하시는군요.”

“당.. 장...!”

“에휴.. 지식욕은 인간이나 다른 존재나 별다를 게 없는 건가?”


리드가 설녀의 이마를 툭 치자 설녀는 기절하듯 쓰러졌다.

리드는 쓰러진 설녀를 공중에 띄우고 주변을 살폈다.

설녀가 속독으로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는 바람에 정리하는 것도 잊고 책을 권해줘서 그런지 여기저기 책이 쌓여있었다.


“간단하게 취미생활이나 하면서 책이나 읽으며 지내려고 했는데 손님 한 명으로 그 꿈이 깨졌네. 당분간 고생 좀 해야겠군.”


리드는 도서관 구석에 박혀있는 침대로 설녀를 데려가 눕혔으며 설녀가 본 수많은 책들을 공중에 띄워 한 번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깨어나면 뭘 먹여야 하지? 죽? 아니면 차가운 걸 먹여야 하나?”


아직 책을 다 읽지 않았지만, 설녀가 무언가를 먹는 건 손에 꼽아서 그런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럴 때는 다 준비하면 되던데. 다 만들어볼까?”


리드는 책을 정리하면서 설녀가 깨어날 때 먹일 음식에 대해 생각했다.





“여기는..”


정신을 잃은 설녀가 눈을 떴다.

아까와 다른 푸른 천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얼음으로 된 궁전의 내부 같아 보였다.

다른 무언가일 수도 있지만 얼음이라 확신한 이유는 별거 아니었다. 그냥 공기의 온도가 차가웠다.


“드디어 일어나셨군요. 꽤 오래 잠들어 계셔서 깨워야 하나 싶었습니다.”

“얼마나 오래 잠들었는데요?”

“체감 시간으로 8백 년은 잠들어 계셨습니다.”

“8.. 8백년?”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는 현실 세계가 아니라서 이쪽의 몇백 년이라는 시간은 바깥과 비교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바깥?”

“아.. 거기부터 설명했어야 했나?”


리드는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우선 이곳의 정체는 당신의 심상 세계입니다. 다만, 통제권 저한테 있다는 게 좀 아이러니 하지만요.”

“내.. 심상세계?”

“일종의 정신세계? 라고 보시면 되는데 그냥 꿈이라고 생각하는 게 편할 겁니다.”


장소에 대해 설명했지만 이제 막 깊은 잠에서 깬 설녀는 리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직도 혼란스러워했다.


“... 젠장 되지도 않는 컨셉은 그냥 갖다 버려야지.”


딱!


풍경이 바뀌고 누워있던 설녀는 어느새 여러 음식이 올려져 있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대부분 아이스크림으로 이루어져 있는 디저트류와 얼린 과일류.

처음 보는 것들에 대해 설녀는 의문만이 쌓여갔다.


“이건..?”

“먹어봐 배고픔을 느낄지 안 느낄지는 몰라도 먹을 줄은 알잖아? 맛있을 거야. 아마...”


리드는 설녀에게 숟가락을 건넸다.


“.. 떠서 먹으면 돼요?”

“어. 그리고 말 편하게 해. 나보다 한참 연상이면서.”

“그래..”


설녀는 눈앞의 아이스크림을 한입 떠서 먹었다.


“..! 맛있어! 뭐야 이거?”

“아이스크림. 바깥에서도 먹어볼 수 있겠지만 흔하지는 않지. 만들 수 있는 이들이 적거든.”

“너는?”

“나는 사람들이 만드는 방식이랑 달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가능한 능력이다 보니 요리라는 개념이 적거든. 굳이 따지자면 조립에 가깝겠네.”


자신의 능력에 대해 설명하는 리드를 무시하고 설녀를 아이스크림을 흡입하고 있었다.


“... 그냥 먹어라. 나중에 다 설명해 줄게.”


그리고 설녀의 식사는 12시간에 걸쳐 종료되었다.


“맛있었어!”

“그건 다행인데. 그걸 다 먹었네.”


한가득 쌓여있던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얼린 과일들마저도 다 먹었다.

차가운 음식들을 주는 게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더 먹고 싶으면 말해 딱히 힘든 것도 아니니까.”

“그럼 더 먹을래!”

“... 그러고 보니 설녀에게 위장이란 게 있었나?”


그쪽은 알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아마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럼 먹은 음식물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어떤 방식으로 에너지로 치환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 의문과 별개로 리드는 설녀에게 아이스크림을 계속해서 공급했다.

정말로 잘 먹는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렇게 설녀는 한참을 더 먹은 후에 리드와 마주 보고 앉았다.


“다 먹었어?”

“아이스크림이란 거 맛있네.”

“이곳에 나가면 본체한테 부탁해. 만들어 줄 거야.”

“본체?”

“왜? 나랑 똑같은 얼굴의 남자 본적이 있을텐데.”

“... 그럼 너는 분신이야?”

“비슷하지? 목적 자체는 분신이라는 의도는 맞는데 정체를 따지면 분신이라는 개념과는 조금 다르니까.”


나눌 분(分), 몸 신(身).

나눈 몸이라는 의도는 맞지만, 리드 본인의 정체까지 생각한다면 여러 매체에서 사용되는 분신이라는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뭐.. 그것보다 궁금한거 없어? 나같으면 많을 것 같은데.”


많다. 그것도 산더미로.

설녀는 그중 필요하다고 생각할 만한 것들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어디야?”

“꽤 진부하지만 질문이지만 필요한 질문이군요. 아니 그것보다 아까 전에 설명했잖아.”


아까 전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한참이나 시간이 지나버렸지만.


“... 대답이나 해.”

“심상 세계, 그것도 제 것이 아닌 당신의 세계입니다.”

“.. 내?”

“세계 자체는 당신의 것이지만 통제권은 제가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좀 꾸며봤죠.”

“.. 그게 돼?”

“됩니다. 그런 능력이니까요.”


오독오독


질문에 대답한 리드는 네인처럼 막대사탕을 입에 물었다.


“그러고 보니 입에 물고 있는 그건 뭐야?”

“막대사탕입니다.”

“맛있어?”

“... 식욕에 뇌가 지배당하셨나.”

“맛있어?”


리드의 말을 무시하고 설녀는 계속해서 물어봤다.


“맛없으면 안 먹겠죠?”

“먹는 사람도 있던데.”

“그건 대부분 이유가 있죠. 보통은 안 먹습니다.”


보통 약이라던가 약이라던가 약이라던가... 그런거 외에는 잘 안 먹을 거다.

아마..


“흠.. 그런가? 나 하나만 주라.”

“싫어요.”

“왜?”

“이건 저만 먹을 겁니다.”

“뭐야.. 그게. 애냐?”

“애입니다? 애초에 태어난 지 며칠 안 됐는데.”

“나 8백 년 동안 잠들어있었다며?”

“바깥 기준으로 아직 1초도 안 지났으니 상관없어요.”

“... 뭐?”


당황하는 설녀에게 리드는 태연하게 말했다.


“바깥은 아직 1초도 안 지났다고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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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상 세계 23.07.26 2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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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또 다른 이야기 23.07.20 23 0 11쪽
63 마지막의 마지막 23.07.19 27 0 11쪽
62 제약 혹은 약속 23.07.18 2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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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싸움의 기준 23.07.12 27 0 11쪽
59 이야기의 방향 23.07.11 30 0 11쪽
58 세번째 권유 23.07.10 3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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