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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그코크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입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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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그코크
작품등록일 :
2023.05.11 21:42
최근연재일 :
2024.04.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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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94,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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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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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권유

DUMMY

사냥꾼에게 필요한 건 뭘까?

시야?

신체 능력?

사냥 도구?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럼, 이것들이 갖춰진 후에는 필요한 게 없는 건가? 그건 또 아니다.

사냥꾼에게 필요한 건 자신이 사냥할 사냥감에 대한 정보다.

사냥감의 특징, 서식지. 습성, 먹이 등등.. 사냥감에 대해 알아야 비로소 사냥꾼이 될 수 있다.

그럼, 지금 마수의 산맥에서 설인을 쫓고 있는 저 둘은 사냥꾼인가?

정답은 YES.

그들은 지금 쫓고 있는 설인에 대해 모르지만, 설인이라는 종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설인은 잡식성이며 가죽이 튼튼하고 질기다. 털은 보온성이 뛰어나고 그것과 별개로 뛰어난 신체 능력마저 지니고 있었다.

무엇보다 설인은 마수의 산맥 저편에 서식하는 마수라는 것조차 알고 있었다.

설인이 꾸준히 위를 향해간다는 건 즉 산맥을 넘을 생각을 하고 있을 거란 소리이며 그와 동시에 산맥을 넘기 위해 최단루트로 이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추적자들은 당장은 속도가 안 나더라도 ‘힘’을 천천히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것은 이번 임무를 위해 특별하게 부여받은 힘이며 그와 동시에 그동안의 임무를 충실하고 완벽하게 수행해 온 신뢰의 표식.

그들은 자신들의 상관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사냥꾼.

사냥꾼은 조급해하지 않고 확실한 때를 노린다.


‘확실하게 사냥할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것이 사냥꾼의 덕목.’


상처 입은 사냥감일수록 사냥꾼은 더욱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하며 더욱 냉정하게 움직여야 한다.

사냥감을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고 자신의 상황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마치 지금처럼.


“어떻게..!”


눈보라가 몰아치더라도 흔적은, 발자국은 남는다.

설인이 발을 딛은 그곳이 푹 파여있을 테니까.

지금은 상처가 얼어 피가 나오지 않지만, 그 이전까지 피는 설인의 이동 경로를 보여주었고 설인의 상황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천천히 힘을 끌어올려 최고조가 된 지금. 인간을 벗어난 인외의 모습을 하고있는 추격자 둘은 설인을 진심을 다해 쫓기 시작했다.


“젠장!”


설인은 추격자의 모습을 확인하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더 설인에 가까워진 모습에 소름이 돋았지만 그건 지금 상황에서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 거의 다 왔어!’


체력은 아직 괜찮다. 상처 또한 뼈까지 드러난 왼팔을 제외하고 이미 아물고 있으며 왼팔도 얼어서 더 이상의 출혈은 없었다.

여기까지가 설인의 생각이었다.


후웅..!


설인의 시야가 하늘로 변했다. 그리고 몸이 묘하게 붕 뜬 느낌. 무엇보다 그 이전에 어깨의 감촉.

설인은 그것을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따라잡혔다고?’


철푸덕


설인은 날려지기 전보다 꽤 밑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다. 문제라 하면 설인의 앞을 막을 추격자들.

그들의 모습은 이전과 사뭇 달라졌다.


“.. 어떻게?”


설인은 어떻게라는 말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추격자들의 모습은 설인의 모습이었으니까.

키는 자신의 또래쯤으로 보였지만 설인은 그것만으로 말을 잃었다.


‘너는 할 수 없어.’


트라우마가 재현된다.

과거는 아직도 현재의 발목을 잡고 결국 그것은 정해진 운명으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저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입을 움직이는 것을 보아도 귀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오른팔의 허전함이 느껴졌다.


‘없.. 어?’


그 순간 그들의 손에 들린 검 외의 것이 생각났다.


“설마!”


설녀가 그들의 손에 들렸다.

설인은 반사적으로 달려들었지만 간단하게 제압되었다.


“귀찮게 구는군.”

“이거 때문인 것 같은데 죽일까? 그럼, 좀 조용해질 것 같은데. 늘 그랬잖아?”

“그렇군.”


철컥


추격자들의 검이 설녀를 향해 겨눠졌다.


“이제는 좀 조용해지겠지.”

“안돼!”


철컥


그 순간 설녀를 향해 찌르던 추격자들의 검이 멈춰졌다.

기만인가 싶었지만, 검만 멈춘 것이 아니었기에 설인은 자신의 눈부터 의심했다.


“이게.. 무슨?”


휘몰아치는 눈이 허공에 멈췄다.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세상이 멈췄다.

설인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은 이렇게 되어버리나?”


멈춘 세계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그것도 익숙한 목소리가.


“뭐..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하지만. 너는 어때?”

“너.. 는?”


인간, 네인이 멈춘 세계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움직이지는 않지? 내가 그렇게 해놨거든. 멈춘 세계 속에서 움직이는 건 좀 사기잖아?”

“인간! 설녀! 설녀를,..!”

“나는 너를 돕지 않을 거야.”


네인의 비정한 말에 설인은 말을 잃었다.


“그야.. 그동안 계속 도망치라고 했는데 도망 안 치고 결국 이렇게 됐는데 이번마저 이렇게 도와주는 건 좀 아니지 않을까?”

“아직 시간은 남았지 않았나!”

“시간은 남았지. 근데, 솔직히 시간은 상관없었어. 어디까지나 나의 제안은 너에게만 국한된 얘기였을뿐더러 설녀는 포함되지 않은 얘기였거든. 무엇보다 내가 제안한 시간은 어디까지나 네가 산맥을 넘었을 때 설녀를 살릴 수 있는 시간이 20분이었을 뿐. 그 외의 변수로 설녀 또한 죽는 건 운명이지.”


네인은 설인과 설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있다. 오히려 돕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가 없었다.


네인은 추격자들에게 들려있는 설녀를 보면서 말했다.


“설녀는 포기해. 그러면 너는 살려 보내줄게.”

“그게.. 세 번째 제안인가?”

“그건 아니야. 다만 설녀가 없었더라면 이번 일에서 도망칠 때 과연 살아남을 확률을 좀 계산해봤었거든.”


100%.

생존율을 따지는 것이 아닌 확정이다.

다만 이 확률에 설녀라는 변수가 생겨버리는 절반으로 떨어지는 게 네인으로써는 아이러니했다.


“안타까웠지. 너 혼자라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 텐데.”

“.. 이봐 인간. 그거 아나?”

“뭐가?”

“설녀가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 여기에 없었을 거라는거.”

“...”

“나는... 설녀를 절대 버리지 않아.. 절대.. 절대로...!”


멈춘 눈보라 속에서 새하얀 안광을 내비치고 있는 설인은 어떻게든 움직이려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 결국은 거절인가? 뭐. 거절당할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의지를 내비치면 나도 더는 권유를 못 하지. 좋아. 그럼, 결국 세 번째 제안인 건가?”


네인은 막대사탕을 입에 물면서 말했다.


“소원을 한가지 들어주지.”


소원. 지금의 설인에게 가장 간절한 단어. 네인은 그것을 제안했다.


“그럼..!”

“단. 조건이 많아. 그중 하나가 소원이 클수록 나는 너에게 소원에 비례하는 만큼의 무언가를 뺏어갈 거야. 예를 들어... 수명?”


그것도 수명을 인질로 잡은 제안.


“참고로 이 상황을 타파하는 걸 조건이라면 네 수명으로는 지불할 수 없어. 애초부터 확률이 0이었으니까. 그 이전이었다면 모르지만 지금 기준으로는 불가능하지.”

“설녀를.. 살리는건? 그건 가능한 건가?”

“흠.. 전제가 어떠냐에 따라 다르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이것도 불가능해. 어차피 지금 설녀는 죽은 게 아니니까 살린다라는 행위가 불가능하거든. 참고로 죽은 뒤에는 대가가 좀 더 비싸지긴 하겠지만.. 내 생각에는 굳이? 라는 생각밖에 안 드네.”

“왜지? 도대체 왜!”

“이 녀석들이 다시 살아난 설녀를 내버려 둔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오히려 되살아난 설녀를 어떻게 해보려고 할 가능성이 높지.”


오히려 다시 되살아난 설녀에 호기심을 보이고 자신들이 말하는 ‘그분들’에게 데려가려고 할 것이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악수(惡手)다.


“그게뭐야..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건?”

“글쎄다.. 그걸 내 입으로 얘기해야 해?”

“나는.. 실패작이야. 계속해서 실패해 왔다고 지금까지. 그런 내가 선택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확실히. 지금까지의 설인의 인생은 실패뿐이었다.

태어난 이후 설인의 사회에서도, 가출하고 인간의 세계에 넘어온 이후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는 실패를 거듭해 왔고 성공이란 경험을 해 오지 못한 존재였다.

자신에 대해서도 설녀에 대해서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


“그 말은 나에게 선택권을 넘기겠다는 거야?”

“그래..”

“왜? 네가 생각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는데.”

“너..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했지.”

“그렇지.”

“내 삶이 실패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나?”

“판단에 따라 실패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


설인은 빳빳하게 들던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선택하고 싶지 않아.”

“지쳤어?”

“지쳤어. 내 선택은 늘 실패뿐이었으니까.”“이번에는 성공할 수도 있잖아?”

“그걸 리가 없잖아!”

주변이 흔들릴정도의 외침에 네인은 조금 놀랐다.


“인간. 네가 결정해줘. 내가 뭘 해야 하는지.”

“괜찮아? 죽고 싶어질 정도로 괴로울 텐데.”

“괜찮아.”

“선택권을 버린 너 자신을 원망할 수 있어.”

“상관없어. 분명 내가 한 선택보다 더 낫겠지.”


‘이젠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말하는군.’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 잘 버티던 멘탈이 이 상황에서 터진 것일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설인의 인생은 늘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간 일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제안을 하나 할까 해.”

“제안?”


네인은 추격자들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면서 말했다.


“이 녀석들을 죽일 힘을 줄게.”

“대가는?”“대가는 네 수명의 대부분과 설인이라는 종족.. 이라고 해야 하나?”

“설인..?”

“더는 설인으로 살 수 없게 되는 거지.”

“그건 상관없다!”

“그래? 그럼 수명은?”

“.. 바치면. 그녀를 구할 수 있나?”

“서비스로 잠깐 틈을 만들어 줄게. 힘을 받은 이후의 너라면 그거면 충분할 거야.”

“그래.”


네인은 설인의 앞에 앉아 이마에 손가락을 댔다.


“준비는 됐어?”

“그래.”

“나는 잘 모르겠지만 한가지 말할게. 환불은 안 된다? 후회해도 지금 이후로는 되돌릴 수 없어.”

“어차피 지금보다 더 최악은 없을 테니까 상관없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아냐고.. 뭐.. 그래. 지금, 이 선택은 네가 한 거니까. 내가 빌건 지금의 네가 이 선택에 후회하지 않길 비는 수밖에.”


번쩍!


정지된 세계 속 설인의 몸이 빛이 나기 시작했다.


“부디 네가 생각한 최악은 아니길 빌게. 설인.”


설인은 빛이 나는 시점에서 정지된 세계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더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네인은 그런 설인을 뒤로하고 설녀를 챙겨서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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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이변 23.09.01 1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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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문답 23.08.24 14 0 12쪽
75 깨어남 23.08.21 16 0 11쪽
74 네인(8) 23.08.18 15 0 11쪽
73 네인(7) 23.08.15 15 0 12쪽
72 네인(6) 23.08.10 15 0 12쪽
71 네인(5) 23.08.08 13 0 13쪽
70 네인(4) 23.08.04 1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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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네인(2) 23.08.01 17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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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심상 세계 23.07.26 1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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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제약 혹은 약속 23.07.18 22 0 12쪽
61 인간의 의미 23.07.17 25 0 11쪽
60 싸움의 기준 23.07.12 25 0 11쪽
59 이야기의 방향 23.07.11 27 0 11쪽
» 세번째 권유 23.07.10 28 0 11쪽
57 운명의 증명 23.07.07 30 0 11쪽
56 D-Day 23.07.06 2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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