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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그코크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입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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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그코크
작품등록일 :
2023.05.1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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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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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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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의미

DUMMY

에이는 두 동강 난 시체를 보며 생각했다.


‘이게 끝이지는 않겠지.’


6000년 전.

그때 제국이라 명명되기 전 에러의 힘에 대해 잘 안다.

죽여도 죽지 않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인간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힘을 가진 이들이 있다.

그리고 최근 에러에 대해 네인에게 들은 것이 있다.


‘신체의 변형은 확실하고 그 외에는 잘 모르겠는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과연 그 힘을 가진 녀석들이 보통의 방법으로 죽을까? 라는 의문이 있다 정도?’

‘재생인가?’

‘그건 아니야. 재생이라기보다는 뭐랄까... 도마뱀?’

‘도마뱀?’

‘꼬리 자르고 도망치는 도마뱀.’


그리고 지금, 에이는 네인의 말은 일부 공감했다.


움찔.


두 동강 난 시체가 움직이고 있다. 아니.. 죽지 않았으니, 시체는 아닌가?


‘재생력 자체는 별 볼 일 없다고 느껴지는데 안 죽을 것 같아 보이긴 했지. 나는 그냥 힘을 뜯어내 무력화시켰지만, 그런 방법이 없으면 죽이는 데 반나절 정도 걸릴 것 같아.’

‘흠.. 이러면 바퀴벌레라는 말이 더 어울리려냐?’

‘바퀴벌레?’

‘있어. 목이 잘려도 아사하는 생명력만큼은 엄청난 벌레.’

‘언데드인가?’

‘아니? 말 그대로 벌레인데? 애초에 언데드도 목이 잘리면 죽잖아?’

‘그럼 어떻게 죽이지?’

‘죽이는 방법? 보통은 두 가지지. 불이나 독. 근데 너는 그걸 못하니 조금 잔인한 걸 감안하면 한 가지 더 있어.’

‘그게 뭐지?’

‘뭐긴 뭐야.’


콰득. 콰드득..


그냥 잘게 조각내거나 뭉개버려. 바퀴벌레는 알 때문에 그러질 못하지만, 에러를 가지고 있는 인간은 그걸로 무력화는 가능하니까.


에이는 그렇게 두 동강 난 신체의 반쪽을 뭉개버렸다.


‘근데 진심으로 놀랍군. 이런 상황에서 저게 죽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니.’


에이는 그렇게 등을 돌려 설인에게 향하려고 하던 그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 이건. 그렇군.”


저벅.


등 뒤의 발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아까 전과 동일한 모습의 적이 있었다.


“놀라울 따름이야. 오러가 담긴 검으로도 목을 베지 못하다니. 정말로 인간인지 의심이 들정도군.”

“...”

“무시인가. 그리 좋은 판단은 아니라고 보는데.”

“그런가, 최면이군. 혹은 정신과 관련된 무언가의 현상인가?”

“..!”

“조건은.. 지금 당장으로 생각나는 건 검밖에 없군.”


시체를 뭉갠 시점에서 확신은 의문으로 변했으며 등 뒤의 적이 다시 나타나 의문은 다시 확신이 되었다.


“후각은 아니겠군. 이 상황에서 다른 특별한 냄새는 나지 않았으니까. 미각도 제외한다면 결국에 남는 건 촉각, 시각, 청각이 되는군.”

“정말로 인간인 건가?”

“인간이기에 가능한 판단이지.”


네인은 늘 지나가면서 에에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했었다.

에이가 말주변이 없어서 네인이 주제를 제시하고 자신이 아는 걸 말해줬었다.


‘최면은 보통 오감을 통해 이루어지지.’

‘오감?’

‘촉각, 시각, 청각, 미각, 후각. 근데 사실상 미각과 후각으로 최면은 거의 불가능해. 가능하더라도 약을 사용한 최면이 대부분이겠지.’

‘최면술사를 상대할 때 촉각, 시각, 청각만 주의하면 되나?’

‘또 모르지.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은 가능성이 0%가 아니라는 거거든. 어디서나 예외는 찾아오는 법이야.’


그리고 지금. 에이가 생각하기에는 네인이 말했던 예외는 지금이 아닌 것 같았다.


“문제는 최면을 푸는 방법인가?”

“하..! 이걸 풀겠다고?”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지.”


‘최면을 푸는 방법? 글쎄.. 나도 최면은 걸려본 적이 없어서 잘.. 아닌가?’


네인은 좀 망설이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정석적인 파훼 방법은 몰라. 최면이 어떤 최면인지에 따라 파훼 방법이 다 다르니까. 다만 정석적인 사파 방식의 파훼법은 알지.’

‘사파?’

‘정석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말이야. 사파 방식 중 잘 알려진 방법은 마나의 방출이지.’

‘마나의 방출?’

‘몸의 마나를 활성화해 내부에 자신의 힘이 아닌 힘을 지워버리는 방식. 다만 최면에 따라 그런 방법 자체가 막혀있는 경우가 많지만 에이, 너 한정으로는 아마 이 방법이 최면을 파훼하는 마스터키가 될 것 같은데?’

‘왜지?’

‘그야.. 너 드래곤이잖아. 정확히는 드래곤이었지만.’


츠즈즛...


에이의 몸에서 마나가 미세하게 방출되기 시작했다.


‘아! 그러고 보니 마나의 방출은 가급적 자제해라?’

‘왜지?’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어. 하나는 네 마나가 너무 막대해서 네가 조금 방출한 게 다른 사람이 느끼기에 조금이 아니라 느낄 수 있거든.’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다면 상관없겠군. 두 번째는?’

‘내가 조금 장치를 해둬서.. 외형이 조금 바뀔 수 있다는 점?’


쿠구구구...


에이의 마나가 기세를 타 점점 크고 방대하게 방출되었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모습이 흐릿하게 번지더니 이내 씻겨나가듯 흐릿한 모습은 사라지고 여전히 눈보라가 부는 설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깡!


그리고 그 설원에서 자신의 목에 검을 찌른 눈앞의 적도 눈에 잘 들어왔다.


“괴.. 괴물!”


에이는 자신의 팔다리를 살펴봤다. 평소와 다르게 드래곤 시절의 비늘이 여기저기 돋아나 있었다.


“장치라는 게 이거였나?”

“네놈이 인간이라고?”

“인간이지.”

“웃기지 마라! 그런 흉포한.. 그런 모습을 하고 인간이라고?”

“인간이지.”


‘인간? 그거 생각보다 별거 아니야. 애초에 인간이면서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그거 다 따지면 인간들 사이에 인간이라 불릴만한 인간 몇 없다. 무엇보다 종족이 나뉘어져 있긴 하지만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사회적인 동물 전부 인간으로 부를 만해.’


사람 인(人), 틈 간 (間).

사람 사이, 인간.

딱히 인간이라는 단어가 어느 동물의 종을 지칭하는 말은 아니다. 그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단어가 인간이고 그게 절대적으로 많은 게 인간이라 불리는 종이어서 인간이 인간으로 불리는 것일 뿐.

그래서 네인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사람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너는 믿지 못하겠지만.”

“이 괴물이..!”


퍼엉!


단순히 에이가 방출한 마나에 덤벼든 대장의 검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인간이라... 그럼 묻지 너는 인간인가?”

“인간이지!”

“그래? 내가 보기에는 인간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몸 전체에 방출되는 막대한 마나가 팔로 모여들고 팔로 모여든 마나가 손으로 이윽고 검에 모여들어 검에서 마나가 방출되는 상황이 되었다.


“추하구나.”


콰앙!


막대한 마나가 응집된 검이 대장이라 불리던 적에게 직격했다.

직격당한 적은 검에 닿기 전 막대한 마나에 닿아 말 그대로 피도 남기지 못하고 증발해 버렸다.


“인간이라.”


에이는 백작가에 도착한 첫날 밤에 네인에게 물었던 말을 떠올렸다.


‘네인.’

‘왜?’

‘나는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이미 인간이잖아?’

‘신체가 아닌 정신을 말하는 거다.’

‘글쎄다? 애초에 그게 중요해?’

‘중요하지.’

‘왜?’

‘그래야 사람들 사이에 잘 녹아들 수 있을 테니까.’

‘그거까지 생각하는 거야? 근데.. 그럴 필요 없어.’

‘왜지?’

‘인간은 참 다양하거든 착한 인간, 나쁜 인간, 약한 인간, 강한 인간. 뭐 한결같은 종족이 어디 있겠느냐만 인간은 다른 종족에 비해 한결같지 않지. 아니.. 한결같지 않은 한결같음이라고 해야 하나?’

‘그게 무슨 말이지?’

‘그냥 하던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아무도 신경 안 써. 대부분은 그냥 애초에 그런 인간인가 보다 싶을걸?’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이상해도 상관없어 애초에 인간들 사이에서 이상한 인간은 늘 나오거든.’

‘상관없는 건가?’

‘상관없어. 중요한 건 마음이거든.’

‘마음?’

‘자신이 인간이라는 마음.’

‘마음이라..’

‘나중에 알게 될 거야. 그 마음이라는 거.’


에이는 검에서 방출되는 마나의 양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적게, 더 적게.. 이윽고 폭포같이 방출되던 마나가 강의 흐름과 비슷한 느낌의 흐름으로 조절되더니 고요한 호수와 같이 검날에 모이기 시작했다.


오러.


서방에서 익스퍼트급에 도달한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

네인은 자신의 ‘인간’으로 그 영역에 도달했다.


‘... 네인.’


에이가 바라본 네인은 정말 다양한 ‘인간’이었다.

다양하다는 의미가 알 수 없다는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다면 에이는 네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물론 네인에 대해서는 네인 본인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점을 알고 있다고 무방하다.

느긋하고 귀찮은 게 많은 인간.

목적과 방향만 정해지면 돌진하는 인간.

그리고..

멀리보면서도 멀리 보지 않는 인간.

네인은 계획적이며 계획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A가 C로 가기 위해 B라는 길을 가야 한다면 네인은 B로 가지 않는다.

하지만 B라는 길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가끔은 억지라고 할 법한 행동이지만 그것은 정석적인 길과 비슷했다.

때로는 빠르기도 했고 때로는 더 느리기도 했다.

도박이라고 하기에는 그 편차가 심하지 않았으며 빨라서 얻는 이득도 없었고 느려서 얻은 손해도 없었다.

순수한 개척정신이라고 하기에는 네인이 걷는 길은 개척이 아니었다. 그저 남들이 지나간 길을 보고 그걸 엮어 개선하는 정도의 일이었으니까.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네인의 의견. 다른 사람들은 네인이 걷는 길을 보고 천재라고 한다.

에이도 일부 공감하고 있었다.

네인의 진심이 담긴 말을 듣기 전까지.


‘천재? 내가?’

‘아닌가?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말하던데.’

‘왜 그렇게 천재 천재 그러는 거야 사람들은..’


네인은 천재라는 말을 싫어했다. 좀 더 정확히 구분 짓자면 네인은 자신에게 천재라 칭찬하는 걸 싫어했다.

타인이 잘하는 걸 보여주면 천재라고 가볍게 말하면서 자신에게 엄격했다.

처음에는 그저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계속..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5년을 지켜보면서 그 생각은 점점 바뀌어만 갔다.

1년이 지나 에이는 네인을 노력가라 생각했다.

2년이 지나 에이는 네인을 범재라 생각했다.

3년이 지나 에이는 네인을 둔재라 생각했다.

4년이 지나 에이는 네인을 괴물이라 생각했다.

3년과 4년 사이.

네인은 잘 감췄다고 생각했지만 아마 레비탄 백작을 포함한 가족들 그리고 몇 안 되는 고용인들은 눈치챘을 것이다.

네인이 망가졌다고.

자신도 그걸 눈치채 필사적으로 망가진 부분을 감싸고 고치려고 했던 것도 눈에 보였다.

그래서 망가졌다는 걸 눈치채도 한동안 망가진 부분의 편린을 보지 못했다.

그 한동안이 지난 후에는 목격하고 말았지만.

에이는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었다.


밤의 레비탄 백작가.

네인의 방.

그때의 광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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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싸움의 기준 23.07.12 27 0 11쪽
59 이야기의 방향 23.07.11 29 0 11쪽
58 세번째 권유 23.07.10 2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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