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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연기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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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향
작품등록일 :
2024.03.14 16:51
최근연재일 :
2024.04.26 08:40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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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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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4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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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단역입니다

DUMMY

정오의 한가한 카페.


“어서 오세요. 뭘 드릴까요?”


천사처럼 예쁜 아르바이트생이 생긋 웃으며 묻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그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낸다.


너무 긴장했다.

지갑이 손가락 사이에서 빠진다.

아르바이트생이 카드를 받으려다가 움찔한다.


그가 겨우 카드를 내민 찰나.


“컷! 쟤 뭐야?”


오 감독은 신경질적으로 헤드셋을 벗었다.


인제 보니 카페처럼 꾸민 세트였다.

수십 명의 스태프도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죄송합니다.”


그는 좌우 스태프들에게 연신 굽실거렸다.


“로봇도 이것보단 연기를 잘하겠네.”


아르바이트 역의 여자가 들으라는 듯 핀잔을 줬다.


“그래도 마스크는 좋잖아요. 키도 크고.”

“마스크로 연기해? 마스크도 최소한의 연기력은 뒷받침이 돼야 쓸모 있지.”


조감독과 감독의 대화가 그의 마음을 후벼 팠다.


“쟤 바꿔.”


결국 감독이 그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죄송합니다.”


그는 거듭 사과하고 물러났다.


세트에서 한참 떨어진 구석.

그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벽에 기대앉았다.

배우들을 위한 임시 휴게실도 엑스트라 단역에겐 허용되지 않았다.


“또야?”


누군가가 불쑥 캔 커피를 내밀었다.


친구 지웅이 녀석이었다.

같은 단역이지만 녀석은 오늘 대사가 제법 길었다.


“딸기 프라푸치노 주세요. 시럽 두 번 추가에 생크림은 빼고요.”


밤새 대사를 연습한 덕분에 한 번에 통과.

편집에서 잘리지만 않는다면 무려 5초 동안 얼굴을 보일 수 있었다.


“고맙다.”


그는 억지로 웃으며 커피를 받아들었다.


“연습 때는 기가 막히면서. 카메라만 들어가면 왜 그래? 얼굴하고 피지컬이 아깝다. 차라리 모델 쪽으로 진로를 바꿔 보는 건 어때?”


녀석은 피식 웃으며 그의 옆에 앉았다.

농담처럼 내뱉었지만 말에 뼈가 있었다.


“안 돼. 연기는 내 운명이야. 다른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그 운명이 널 거부하고 있어.”

“다른 길이라. 벌써 10년인가?”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연기를 시작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의 권유로 연극반에 가입하면서였다.


솔직히 처음엔 연기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공부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고, 연극반에 들어간 것도 의무적으로 클럽에 하나씩 가입하라는 압박 때문이었다.


“이야, 키가 크고 멋지시네요. 아이돌 해볼 생각 없으세요?”

“모델을 해도 괜찮을 거 같은데.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거리에서 받은 명함들도 다 쓰레기통 행.

하지만 축제 때 연극에서 무대에 선 후 연기는 그의 운명이 됐다.


‘연습 때만 잘하면 뭐해? 실전만 되면 바보가 되는데.’


연습 때는 자신 있었다.

지금 충무로에서 인정받는 젊은 배우들도 연기 학원에서는 그보다 한 수 아래였다.


문제는 실전.

잠깐 연극으로 진로를 바꿔 봤지만, 긴장 때문에 몸이 굳어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소설이나 게임처럼 연기 레벨을 올리는 건 없을까?’


문득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연기 레벨을 올린다니.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터무니없었다.


그사이 촬영이 재개됐다.

그는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카페 손님 5로 예정돼 있던 단역 배우가 대타로 투입됐다.


“어서 오세요. 뭘 드릴까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별것도 아닌 대사를 능숙하게 소화했다.


‘고등학교 때도 포함하면 연기 외길 10년인데. 발연기로 유명한 아이돌보다 연기를 못한다니.’


문득 자괴감이 들었다.


촬영장에 흔하디흔한 단역.

강준호라는 어엿한 이름이 있었지만, ‘쟤’ 또는 ‘카페 손님 5번’같은 호칭이 더 익숙했다.


***


다음 씬까지 잠깐 여유가 생겼다.

새벽 촬영을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몸이 무겁고 나른했다.


“나 잠깐만 쉴게. 무슨 일 있으면 깨워 줘.”


그는 지웅에게 부탁하고 주차장 옆 작은 공원으로 향했다.


단역은 쉬는 것도 요령껏이었다.

낯익은 아저씨들 몇 명이 캔맥주를 마시며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준호 씨도 한잔할래요?”

“아까 NG 낸 거 보셨잖아요. 그럴 기분 아닙니다.”


그는 공원 안쪽의 그늘에 누웠다.


확실히 뭔가 이상했다.

팔베개하고 눈을 감았을 뿐인데 정신이 몽롱했다.


‘잠들면 헤어 망가지는데. 이따 촬영이······.’


다음 연기를 이미지로 떠올리길 몇 분.

잠깐 정신이 아득해졌다고 느낀 순간, 그는 낯선 공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딩동, 맑은 종소리.

반투명한 스크린이 그의 앞에 펼쳐졌다.


이름 : 강준호

생년월일 : 1996.09.25.

신체 : 187cm, 72kg.

직업 : F급 연기자

획득 포인트 : 16

잔존 포인트 : 16

레벨업 현황


증명사진까지 첨부된 그의 프로필이었다.


“이건 뭐야?”


고개를 갸웃하며 스크린에 손을 뻗으려는 찰나였다.


“당신은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뭉친 배우입니다. 연기의 신께서 당신을 가상하게 여기시어 은총을······.”


어디선가 맑고 고운 목소리가 들렸다.

다만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은 것처럼 에코가 심했다.


“개꿈이네.”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꿈인데도 이건 개꿈이라는 걸 알아챘다.


“야, 야! 뭐가 개꿈이라는 거야?”


세상이 흔들리고 지웅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그는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떴다.


“너 꿈꿨냐? 조감독이 알면 난리 칠 텐데 왜 그래?”


지웅이가 좌우를 곁눈질하며 눈치를 줬다.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주위에서는 단역들이 서로 메이크업과 복장을 손 봐주고 있었다.


“아, 미안. 좀 피곤했나 봐.”


그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지웅이가 받아 온 정장과 셔츠로 갈아입은 뒤, 급히 세트로 뛰어갔다.


장례식장 운구 씬.

피지컬이 좋은 덕분에 병풍으로 발탁됐다.

그는 아르바이트생으로 나왔던 아이돌의 뒤에 섰다.


“이번엔 진짜 실수하시면 안 됩니다. 우는 것처럼 고개만 푹 숙이고 앞사람을 따라가세요.”


조감독이 불안한 듯 신신당부했다.


‘나는 지금 슬프다. 슬프다. 슬프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 최면을 걸었다.


“긴장할 것 없어. 아예 고개를 들지 마.”


지웅이가 옆구리를 찌르고 속삭였다.


간단히 리허설한 뒤.


- 레디, 액션.


감독이 메가폰을 들고 외쳤다.


이놈의 카메라 울렁증.

긴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레디, 액션.”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감독의 외침을 작게 따라 했다.


그때였다.

딩동, 잠결에 들은 알람과 함께 스크린이 나타났다.


‘꿈이 아니었나?’


그는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중학생 때 온라인 게임에 빠진 적이 있었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스크린은 그 게임의 상태 창 같았다.

고개를 슬쩍 숙이자 상태 창도 시선을 따라 아래로 이동했다.


- 당신의 꿈을 레벨업하세요


1. 사용자 현황

2. 포인트 획득

3. 포인트 사용


타이틀 아래 두 개의 선택지가 반투명하게 떠올랐다.


망설이다가 ‘1’을 슬쩍 눌러봤다.

잠결에 본 그의 프로필로 화면이 바뀌었다.

다만 제일 밑에 [상위 메뉴로]라는 항목이 추가돼 있었다.


대충 읽고 상위 메뉴로 돌아갔다.


‘포인트가 16 있다고 했지? 무슨 포인트야?’


잠깐 망설이다가 [3. 포인트 사용]을 눌렀다.


1) 감정 연기

2) 표현 연기

3) 무대 연기

4) 기술 연기

5) 상호 연기

6) 캐릭터 연기

7) 기타


스크린이 세로로 길어졌다.

다시 [1) 감정 연기]를 클릭, 하위 메뉴가 줄줄이 나타났다.


(1) 슬픔

(2) 기쁨

(3) 분노

(4) 사랑

(5) 좌절

······.


감정도 다양했다.


‘운구 상황이니까 1번이 좋겠지?’


이번엔 거침없이 1번을 눌렀다.


레벨 0

잔존 포인트 16

레벨 1: 간단한 슬픈 장면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습니다.

레벨 9: 복잡한 감정 상황에서도 진한 슬픔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감정 연기도 레벨이 많네. 근데 레벨 0이라. 하긴, 틀린 말은 아니지. 연습 땐 잘해도 카메라 앞에만 서면 머릿속이 하얘지니까.’


씁쓸하지만 정확한 지적이었다.


‘포인트가 있었지. 이렇게 쓰는 건가?’


숫자 ‘0’을 눌러봤다.


예상대로였다.

레벨 1, 잔존 포인트 15로 바뀌었다.

다시 숫자 ‘1’을 누르자 레벨이 2가 됐고, 잔존 포인트는 13가 됐다.

포인트 4를 써서 레벨3으로, 하는 김에 포인트 8을 다 써서 레벨4까지 올렸다. 남은 건 1포인트.


‘포인트 1로 레벨 1을 올리는 게 아닌가 보네. 2배수로 증가하는 건가? 하긴, 연기도 상위 레벨로 갈수록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지.’


대충 감을 잡았다.


이게 왜 나타난 건가?

꿈결에서 들은 대로 정말 신의 선물인가?

나 말고 다른 배우에게도 보일까?


의문이 많았지만, 자세한 걸 따질 틈은 없었다.


“컷! 다시!”


감독이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자기 때문인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는데, 이번엔 아이돌 배우가 들어갈 타이밍을 놓쳐 NG를 냈다.


‘뭔지 몰라도 한번 해 보자. 이래도 NG, 저래도 NG. 어차피 잃을 것도 없잖아?’


그는 심호흡하고 카메라를 응시했다.


레벨업이 정말 효과가 있는 걸까?

카메라 울렁증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


“니미, 못 해 먹겠네. 오늘 NG가 몇 번 나오는 거야?”


오 감독은 가래침을 뱉고 투덜거렸다.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얼굴만 예쁜 아이돌이 움찔했다.

마스크만 좋은 단역에게도 눈총을 줬다.


“자, 이번엔 실수 없이 한 번에 갑시다.”


조감독이 눈치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촬영 재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울며 화장장으로 향한다.

관을 중심으로 영정을 든 아역이 선두에 서고, 걸그룹 멤버 등 가족이 뒤따른다.


‘연기 더럽게 못 하네.’


감독은 스크린 속 걸그룹 멤버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고래고래 우는 소리만 낼 뿐.

웃는 건지 우는 건지 표정이 불분명했다.


‘할 수 없지. 팬덤 때문에 시청률은 잘 나올 테니까.’


촬영 감독이 그녀를 클로즈업했다.

뒤에 선 병풍 엑스트라도 한 화면에 들어왔다.


‘어? 쟤는 또 뭐야? 아까 그놈이잖아?’


감독은 뒤에 선 단역을 보고 멈칫했다.


손으로 눈가를 가린다.

떡 벌어진 어깨가 파르르 떨린다.

소리는 없지만 흐느끼는 게 환청처럼 들린다.

맑은 눈물이 손을 타고 흘러내려 소매 끝을 적신다.


배우의 감정선이 보인느 듯했다.


‘뭐야? 왜 엑스트라가 주연보다 잘 우는 건데?’


감독의 시선은 단역에게 고정됐다.


다른 스태프들도 홀린 듯 같은 곳을 쳐다봤다.

간단한 대사도 못 뱉던 녀석이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오히려 녀석이 평균 이상의 연기력을 선보인 덕분에 아이돌의 발연기가 묻혔다.


아차, 단역의 연기에 너무 빠졌다.

카메라가 멈춘 다음에야 정해진 연기가 끝난 걸 알아챘다.


“오케이, 컷!”


오 감독은 헤드셋을 벗고 벌떡 일어났다.

오늘 외친 “컷!” 중에서 가장 크고 활기찬 소리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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