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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연기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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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3.14 16:51
최근연재일 :
2024.04.2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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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5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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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주연의 의미 (2)

DUMMY

연기 시스템에는 재미있는 게 많았다.

가령 감정의 소용돌이는 일시적으로 기존의 감정 요소를 혼합하는 스킬이었다.

캐릭터 연기 중 외형 일체화는 크리스찬 베일처럼 캐릭터에 맡게 몸을 조절하는 것인데, 해당 촬영이 종료되면 사라지는 일시적인 스킬이었다.


‘외형 일체화가 제일 힘들었지. 레벨을 올린다고 몸이 바로 변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효율이 올라갔을 뿐. 캐릭터에 어울리는 외형을 만들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어.’


근육질을 위한 피나는 운동.

반대로 감량을 위한 극한의 다이어트.


두 작품을 오가며 체중을 고무줄처럼 늘렸다가 줄였다.

작품을 위해서라고 되뇌었지만, 솔직히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얼마 전에 얻은 운전 스킬도 특이했어. 연습과 도전 과제 수행을 통해 레벨을 올렸지.’


시간 날 때마다 시스템을 연구했다.

하지만 시스템은 여전히 종잡을 수 없었다.

완전히 이해한 것 같으면서도 종종 새로운 게 튀어나왔다.


‘하긴, 연기도 끝이 없다고 하니까. 원로 배우도 촬영장에 오면 늘 새롭다고하잖아?’


상호 연기도 그중 하나.

후반부로 가면 흥미로운 스킬이 많았는데, 대표적인 게 ‘감정 전이’였다.

일전에 올렸던 감정 공유와는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감정 전이.

레벨 1. 자신의 감정을 상대 배우에게 전달합니다.

레벨 9. 상대 배우를 자신의 감정에 감응하게 하고, 적절한 감정 표현을 끌어냅니다.


감정 공유는 내가 상대의 감정을 느끼는 스킬.

반대로 감정 전이는 내 감정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스킬이었다.


흥미로운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스킬의 설명 아래 별도의 알림 창이 있었다.


[선결 조건 미해결]

선결 조건에 도전하시겠습니까? Y / N


“선결 조건은 뭐야? 그냥 포인트로 올리는 거 아니었어?”


준호는 선결 조건이란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조건이 뭘까? 힌트도 없었다.

상황과 상대 배우에 따라 달라지는 모양이었다.


“뭔지 몰라도 도전해 보자. 아역의 연기력을 올리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


잠깐 망설이다가 ‘Y'를 눌렀다.

창이 바뀌고 세부 조건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순간,


“어? 나더러 이걸 하라고? 이게 연기하고 무슨 상관이야?”


준호는 당황해 비명처럼 소리쳤다.


***


나흘 후, 촬영 세트 옥상.


“오늘이 재촬영인데. 준호 씨는 어때? 아역하고 준비 잘한 거 같아?”


민 감독이 담배 연기를 길게 뿜으며 물었다.


스태프들은 진즉 준비를 끝낸 상태.

아역 배우가 늦어지는 바람에 잠깐 쉬고 있었다.

배우 하나 때문에 수많은 스태프가 시간을 허비하는 건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그걸 왜 저한테 묻습니까? 준호 씨한테 직접 안 물어보시고.”


촬영 감독이 킥킥거리며 되물었다.


“자네도 알잖아. 젊은 배우들이 날 뒤에서 꼰대 호랑이라고 부르는 거. 나이도 있고. 나도 옛날처럼 배우에게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게 껄끄러워.”


민 감독의 머리는 담배 연기만큼 하얗게 세 있었다.


세상이 변했다.

젊었을 때는 배우에게 호통쳤는데.

지금은 배우가 감독의 눈치를 보듯 감독도 배우의 눈치를 봤다.

어지간한 일은 직접 개입하지 않고 조감독이나 촬영 감독을 통해 해결하는 게 편했다.


“준호 씨는 틈날 때마다 아역하고 붙어 있더라고요. 그런데 좀 걱정됩니다.”

“왜?”

“연기 지도는 안 하고 같이 놀기만 해요. 어제도 촬영장 구석에 나란히 앉아서 웃고 있더라고요. 뭐하나 뒤에서 슬쩍 봤더니, 태블릿으로 게임하고 있었습니다. 그저께는 같이 공주가 나오는 만화를 봤고요.”


신성한 촬영장에서 애하고 시시덕거리며 놀다니.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이 바닥에선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아이를 귀여워하는 건 좋지만 연기자의 본분은 역시 연기 아닌가요? 애 엄마도 한마디 하려다가 참는 눈치더라고요. 뭐, 조만간 제작사 간부한테 일러바칠 테지만.”


촬영 감독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치맛바람은 아역 배우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극성 엄마가 촬영장에서 난리 칠 모습이 벌써 훤했다.


“내가 꼰대인 줄 알았는데. 인제 보니 꼰대는 자네였네.”


돌연 빙그레 웃는 민 감독.


“네?”

“아역 배우의 연기력을 끌어내려면 선결 조건이 있거든. 준호 씨가 제대로 짚었어.”

“선결 조건은 또 뭡니까? 그런 말은 금시초문인데요.”


촬영 감독은 의문이 커졌다.


그때 하얀 승용차가 주차장에 들어왔다.

아역 배우와 엄마가 탄 차였다. 워낙 비싼 차인 탓에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빨리 가자고. 오늘은 준호 씨가 아역하고 제대로 된 합을 보여줄 테니까. 기대해.”


한껏 들뜬 표정.

민 감독은 난간에 담배를 비벼 끄고 몸을 돌렸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연기 연습을 안 했는데 어떻게 좋은 연기가 나옵니까?”


촬영 감독은 질문을 쏟아내며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


씬 - 023.

준호와 아역 배우의 촬영이 재개됐다.


부인과 티격태격하는 건 패스.

최진우가 조심스럽게 딸의 방문을 여는 것부터 시작했다.


“아빠?”


딸이 졸음을 참고 반갑게 묻는다.


“미안. 아빠 때문에 깼어?”

“아니. 무서운 꿈을 꿨어.”


최진우는 침대맡에 앉아 딸을 안는다.


“무섭긴. 아빠가 있는데. 아빠 직업이 뭐야?”

“경찰.”

“그래. 아빠가 나쁜 놈 때려잡는데, 뭐가 무서워? 언젠가 우리 수연이 결혼할 때까지 아빠가 같이 있을게. 아니, 수연이가 결혼해도 항상 아빠가 지켜줄게.”


그는 딸의 이불을 정리하고 토닥거린다.


“참, 아빠 선물. 생일 축하해.”


딸이 이불 속에 숨겼던 작은 주먹을 내민다.

손바닥을 펴서 받아 보니 10cm쯤 되는 머리핀이다. 학교 앞에서 파는 1,000원짜리.


“고마워.”


최진우는 헝클어진 앞머리에 머리핀을 꽂고 웃는다.


“예쁘네.”


딸은 그를 응시하다가 스르르 눈을 감는다.

아빠 얼굴을 보고 선물을 줬으니 할 일을 다 했다는 표정이다.


“잘 자라, 우리 공······.”


그의 어깨가 흔들린다.

굵은 눈물방울이 딸의 뺨에 떨어진다.


“앞뜰과 뒷동산에······.”


결국 자장가가 흐느낌으로 변한다.


최진우는 딸을 끌어안고 오열한다.

카메라가 그 모습을 클로즈업하려는 찰나.


“컷.”


민 감독이 촬영을 중단하고 일어났다.


“아저씨, 왜 울어요? 괜찮아요?”


아역 배우가 작은 손으로 준호의 눈물을 훔쳤다.


데면데면하던 며칠 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이는 진짜 아빠를 대하듯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아, 그제야 준호는 현실로 돌아왔다.

원래는 자장가를 일절까지 부르고 페이드 아웃이었다. 울음은 대본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다시 가겠습니다.”

“아니에요. 잠깐 쉬었다가 합시다.”


민 감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또 NG였지만 화내는 기색이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준호는 꾸벅 인사하고 구석의 의자로 향했다.

김 매니저와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따라가려다가 감독의 눈짓을 받고 물러났다.


“별일이네요. 준호 씨가 NG를 내다니. 아역의 연기는 눈에 띄게 좋아졌는데 말이에요.”


촬영 감독이 다가와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NG는 몇 번이든 환영이야. 다른 배우들도 준호 씨를 보고 배우라고 해.”

“네? NG를 배워요?”

“연기에 너무 몰입해서 그런 거잖아. 목숨보다 소중한 딸. 하지만 딸은 곧 죽을 운명이지. 그걸 생각하니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진 거야.”

“아, 연기 몰입이 과했던 거군요.”

“그렇지. 이건 준호 씨 혼자만의 연기로 되는 게 아니야. 준호 씨의 감정이 아역에게 제대로 전해졌고, 그 덕분에 준호 씨도 전보다 더 몰입하게 된 거지. 일종의 시너지 효과라고 할까?”


민 감독은 방금 촬영한 걸 재생했다.

딸 바보 아빠와 귀여운 아이가 모니터에 나타났다.


아역을 토닥이는 준호, 준호의 눈물을 닦아주는 아이.

단순히 연기라고 치부하기엔 둘 다 감정의 선이 생생했다.


“배우도 결국 사람이거든. 그러니 연기하기 전에 서로 신뢰와 유대감을 쌓아야 하지. 심리학에서는 이걸 라포 형성이라고 한다지?”


민 감독이 모니터를 뚫어지게 응시한 채 덧붙였다.


아역 배우는 애초에 분량이 많지 않았다.

머리도 좋은 편이라서 대사를 주자 금방 외웠다.


문제는 낯선 이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심.

아역의 NG는 결국 심리적 요인이었는데, 준호가 이걸 정확히 꿰뚫어 본 것이다.


“확실히 아이의 표정이 살아있네요. 연기가 자연스러운 탓인지 외모도 비슷해 보이고요. 결혼도 안 한 젊은 친구가 아버지의 마음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제야 촬영 감독도 감탄의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준호의 연기는 기대해도 좋다.

아까 옥상에서 감독이 한 말이 이해됐다.

재촬영할 것도 없이 이걸 편집해서 써도 될 것 같았다.


“준호 씨가 한 단계 성장했군. 이제 알 테지. 단독 주연이 무슨 의미이고, 어떤 무게를 지니는지.”


민 감독은 준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


같은 시각 옥상.


“아, 쪽팔려. 애 앞에서 눈물을 보이다니.”


준호는 난간에 기대 멋쩍게 웃었다.


민 감독이 다녀간 모양이었다.

난간 옆 재떨이에 담배꽁초가 놓여 있었다.


“그래도 성공이야. 신파가 아니라 진짜 눈물이 나왔으니까.”


아역의 연기가 어색한 이유는 간단했다.


- 오늘 처음 만난 아저씨한테 아빠처럼 친근하게 굴어라.


말이 쉽지.

여섯 살짜리한테 성인 배우의 감정 이입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억지였다.


“물론 어른 뺨치게 연기를 잘하는 아역도 있어. 하지만 걔네는 수만 대 일의 경쟁을 뚫은 천재고. 보통 애들은 학예회에서 연기하는 것도 어색하지.”


해결책은 간단했다.

그는 감정 연기에서 부성애의 레벨을 올린 터.

딸을 사랑하는 아빠의 감정을 아역 배우에게 그대로 전해주면 그만이었다.


[선결 조건(감정 전이)]

아이와 라포를 형성하세요.

성공 시 감정 전이 레벨 4 달성.

실패 시 동료 평가 - 30포인트


문제는 감정 전이를 위핸 선결 조건이었다.


“한은서 같은 성인 배우였다면 탁 터놓고 술이라도 한잔해서 풀 텐데. 여섯 살짜리하고 라포 형성이라니. 같이 뽀로로라도 봐야 하나? 아니지, 뽀로로가 언제적 캐릭터인데.”


솔직히 처음엔 황당했다.

그리고 싱글이라 처음 알았다.

낯가림 심한 아이와 친해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 왜 애하고 놀기만 하지? 연기는 안 해?


스태프와 아이 엄마의 눈총도 장애물.


그래도 인내심을 갖고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놀아준 지 사흘째 되는 날, 마침내 아이가 게임하면서 말을 놨다.


‘그게 시작이었지. 역시 애는 애라니까.’


지금은 아이가 먼저 그에게 안겼다.

아저씨 대신 삼촌이라는 호칭을 썼고, 스킨십도 자연스러웠다.


‘성인 배우도 마찬가지야. 핵심은 배우 간의 유대감. 서로 커피 차를 보내고, 자주 회식하는 것도 그 때문이지.’


문득 한은서가 떠올랐다.

그녀와 사적으로 친해졌으면 더 좋은 연기가 나왔을 텐데.


“아니야. 지금도 안 늦었어. 나도 이렇게 천천히 등급이 올라가는 거지.”


[도전 과제 달성]

등급 상승 : B급 연기자.

극을 지배하는 단독 주연이 되셨습니다.

상대 배우는 물론이고 영화 전반의 레벨을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보너스로 60포인트를 받은 건 덤이었다.


“난 영화의 단독 주연. 그리고 주연은 단순히 분량이 많은 배우가 아니다. 영화 전반의 레벨을 끌어올리는 게 진짜 주연이지.”


준호는 시스템의 설명을 되뇌며 히죽 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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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끝이 아닌 시작 (2) +1 24.04.02 892 23 12쪽
21 끝이 아닌 시작 (1) +2 24.04.01 957 2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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