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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연기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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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3.14 16:51
최근연재일 :
2024.04.2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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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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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4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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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주연의 의미 (1)

DUMMY

씬 - 009.

준호가 컴퓨터 앞에 앉아 직접 두목을 취조한다.


“이름.”


두목은 대답이 없다.

다리를 꼬고 앉아 물끄러미 준호를 바라본다.

놈의 옆에는 뺀질거리게 생긴 변호사가 앉아 있다.


“이름이 뭐냐고.”

“최진우. 실력은 비범한데 이름은 평범하네. 애들 처리하는 거 보니까 보통 형사는 아닌 거 같고. 여기 오기 전에 뭐 했어? 결혼은 했고?”


놈이 준호의 목에 걸린 신분증을 보며 빙그레 웃는다.


후줄근한 차림의 형사와 정장을 입은 피의자.

겉모습만 보면 형사와 피의자가 자리를 바꿔 앉은 것 같다.


“이 새끼, 혀 참 기네. 내가 네 친구로 보여?”


최진우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린다.

그가 책상에서 서류철을 집어 던지려는 찰나.


“아이고, 참으세요. 요즘은 형사가 을인 거 모르세요? 시끄러워져서 좋은 거 없다고요.”


옆자리의 막내가 구석의 CCTV를 눈짓하며 막는다.


모 영화에서는 CCTV를 가리고 피의자를 위협하던데.

그것도 피라미한테나 통하는 수법이다. 변호사까지 대동한 거물에게 그런 짓을 하면 형사가 더 골치 아프다.


“알만한 분이 왜 이렇게 흥분하세요? 법대로 하자고요, 법대로.”


뺀질이 변호사가 법을 강조하며 비웃는다.


“이놈들이.”


최진우는 놈을 노려보며 주먹을 든다.

제길, 한숨을 쉬며 마지못해 주먹을 내린다.


벌써 이틀째 같은 짓을 반복 중이다.

놈만 잡으면 집에 돌아가서 좀 쉴 줄 알았는데. 오늘도 퇴근은 요원하다.


씬 - 012.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구속영장이 기각된다.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 무슨 말이야? 우리가 저놈 잡으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최진우는 의자를 발로 차며 광분한다.


“······피의자 주거가 일정하고 현 단계에서 피의자가 향후 수사 과정에서 단순히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막내 형사가 판결문을 착잡하게 읽어준다. 개소리가 참 현란하다.


“알만한 사람끼리 왜 이러시나? 순진하게 법의 정의를 믿었어? 수고하시고. 조만간 다시 봅시다.”


두목은 그의 어깨를 툭툭 치고 경찰서를 나간다.

뺀질이 변호사가 그를 슬쩍 노려보고 종종걸음으로 뒤따른다.


“젠장! 언제까지 이래야 해?”


쾅, 주먹으로 벽을 치는 최진우.


시선은 두목의 등에 고정돼 있다.

조만간 다시 보자는 말이 묘하게 마음에 걸린다.


***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상대인 두목 역은 김수철이란 중견의 베테랑이었다.

선배가 능숙하게 연기를 이끌어준 덕분에 NG 없이 단번에 무사히 끝냈다.


촬영 2주일째.

낡은 공무원임대아파트로 장소를 옮겼다.

아파트의 외관과 복도 등은 실제 임대아파트를 촬영하고, 내부는 세트에서 촬영해 이어 붙였다.


“최진우의 가정적인 면을 나타내는 씬입니다. 와이프와 티격태격하며 재미있게 사는 딸바보 아빠. 이걸 잘해야 나중에 가족이 죽고 최진우가 분노하는 게 돋보입니다.”


몇 차례 리허설 후, 감독의 큐 사인이 떨어졌다.


늦은 밤, 최진우가 초췌한 몰골로 들어온다.

며칠 만에 돌아온 탓에 머리가 부스스하게 엉겨 붙어 있다.


“안 죽고 살아있었구나. 오랜만이네. 식사는?”


와이프가 점퍼를 받아 주며 묻는다.

형사 부인답게 말투부터 거칠고 고생한 티가 난다.


“막내하고 대충 먹었어. 지연이는?”

“누가 딸 바보 아니랄까 봐 딸 먼저 찾네. 아빠 기다리다가 방금 침대에 들어갔어.”

“우리 공주님, 얼굴이라도 잠깐 봐야지.”


최진우는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딸의 방으로 향한다.


밖에서는 조폭을 때려잡는 에이스 형사.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더없이 상냥한 아빠이자 남편이다.


“우리가 며칠만인지 알아? 내가 보고 싶어서 온 거야, 연수가 보고 싶어서 온 거야?”


이게 미쳤나?

부인이 눈웃음을 치며 팔짱을 낀다.

방금 샤워한 모양이다. 머리카락이 젖어 있다.


“가족끼리 이러지 말자. 당연히 연수 때문에 왔지. 부부는 의리로 사는 거 몰라?”


최진우는 팔짱을 빼고 천연덕스럽게 되묻는다.


“으이구, 내가 말을 말아야지.”


와이프가 뒤에서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는다.


혹시라도 아이가 깰까.

최진우는 도둑고양이처럼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딸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며칠 안 됐다.

책상에 캐릭터가 그려진 책가방과 책들이 놓여 있다.


다행히 딸은 아직 안 자고 있다.


“왜? 아빠 때문에 깼어?”


최진우는 헤벌쭉 웃으며 침대맡에 앉는다.


“아니. 무서운 꿈을 꿨어.”


딸은 눈물을 글썽이며 그의 품에 안긴다.


아이 특유의 혀 짧은 소리.

표정도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불분명하다.


“무섭긴. 아빠가······.”


그가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는 도중이었다.


“컷!”


민 감독이 인상을 찌푸리며 촬영을 끊었다.


***


촬영장이 분주해졌다.

스태프들은 각자의 역할에 따라 세트를 정리했다.

부인 역의 여배우도 헤어와 메이크업을 점검했고, 아역도 스태프 뒤에 있던 엄마에게 달려갔다.


“준호 씨, 잠깐 얘기 좀 할까요?”


민 감독이 심각한 표정으로 불렀다.


뭔가 뜻대로 안 풀리는 눈치였다.

그러고 보니 옆에 있는 촬영 감독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상하네. 난 딱히 실수한 게 없었는데. 감정 연기에서 부성애도 레벨 4로 올렸고.’


괜히 긴장한 준호.

셋은 촬영장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 배우님은 담배 피우세요?”


감독이 재킷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다가 물었다.


“아니요. 끊은 지 몇 년 됐습니다.”

“잘했어요. 이놈의 담배. 담뱃값도 올랐는데 빨리 끊어야지 하면서도 막상 촬영만 들어가면 못 끊는다니까요.”


실내 금연.

감독은 담배를 손가락에 끼고 말을 이었다.


“쟤 연기 어때요?”


감독은 엄마에게 안겨 칭얼거리는 아역을 곁눈질했다.


여섯 살 된 여자아이였다.

눈이 초롱초롱해서 귀여웠는데, 촬영은 처음인지 자꾸 엄마의 치마 폭에 숨었다.


“제작사에서 꽂은 애라 쓰긴 써야겠는데. 이게 쉽지 않네요. 애한테 나쁜 말을 할 수도 없고.”


촬영 감독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덧붙였다.

언뜻 들으니 부모가 제작사 고위층과 잘 아는 사이라고 했다.


‘하긴, 쟤 연기는 좀 심했지. 걸그룹 출신의 연기 로봇을 다시 보는 줄 알았으니까.’


준호는 내심 혀를 차며 쓰게 웃었다.


아역 배우라고 다 연기를 잘하는 건 아니었다.

성인 못지않게 능글맞은 애도 있는 반면, 예쁘장한 외모만 믿고 부모 손에 끌려온 애도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촬영장에 있는 아이는 후자.


“아니. 무서운 꿈을 꿨어.”


표정이 어색한 건 둘째 문제였다.

책을 읽는 듯 발성이 너무 딱딱했다.


‘액션 영화에서 감정 씬이 NG를 내다니.’


헛웃음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물론 아이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준호도 시스템을 얻기 전엔 카메라만 돌아가면 몸이 굳었다.


“뭐,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에요. 성인 배우도 촬영장에서는 긴장하니까. 근데 쟤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해요. 카메라 페이스는 좋은데 끼가 없다고 해야 할까?”


다시 민 감독이 담배를 입에 물고 말했다.


불은 안 붙였다.

습관적으로 끝만 질겅질겅 씹었다.


‘인제 와서 아역을 바꿀 수는 없어. 시간도 없고, 제작사의 압박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이대로 촬영을 강행하자니 지금까지 잘 찍은 게 갑자기 이상해지고.’


감독도 고충이 많은 직업이었다.

줄담배를 못 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할 수 없죠. 제가 아이를 토닥여 보겠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연기를 끌고 가야죠.”


준호는 아이를 슬쩍 바라봤다.

그만 연기를 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좋은 배우는 상대의 연기력까지 끌어올린다고 하지. 나도 수철 선배의 덕을 봤고.’


연기는 기본적으로는 상대 배우와의 상호작용이었다.

독백 같은 것도 있었지만, 그것도 엄밀히 따지면 배우와 관객의 상호작용이었다.


그리고 시스템은 모든 연기를 아우르는 터.

당연히 이런 상황에 맞는 연기 스킬이 있었다.


‘이 능력을 올리는 건 나중이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그럴 때가 됐나?’


준호는 상황 연기 중 하위 요소를 떠올렸다.


***


10분 후, 옥상.

민 감독은 담배를 꺼내며 난간에 기대섰다.

촬영 감독이 불을 붙여준 뒤 자기도 담배를 물었다.


“준호 씨 말이야, 준비를 제대로 했더라고. 액션 스쿨에서 스턴트만 익힌 게 아니야. 내가 전직 형사한테 자문을 받으면서 준호 씨 연기를 조금 보여줬는데, 깜짝 놀라더라고. 진짜 형사가 하는 것처럼 디테일이 살아있다나?”


민 감독은 제일 처음에 찍은 오프닝을 예로 들었다.

두목을 제압하고 수갑을 채우는 간단한 씬이었지만, 준호의 액션은 그간 형사를 연기했던 여느 배우들과 결이 달랐다.


“그래도 아역의 연기까지 맡기는 건 너무 무리한 요구가 아닐까요? 솔직히 준호 씨는 아직 신인급이잖아요. 자기 연기만 하기도 정신없을 텐데, 상대 배우의 연기력까지 끌어올리라는 건 무리죠.”


촬영 감독은 여전히 불안한 표정이었다.


분명 준호의 연기는 평균 이상이었다.

특히 액션은 비슷한 또래에서 적수를 찾을 수 없었다.


“나도 알아. 객관적으로 말해서 준호 씨가 아직 단독 주연을 맡을 레벨은 아니지. 연기력이 자신에게만 국한되거든. 아까 준호 씨를 따로 부르기까지 망설인 것도 그 때문이었고.”

“그런데 왜 준호 씨에게 아역을 맡긴 겁니까? 다른 베테랑 연기자도 많은데요.”

“준호 씨는 좀 독특한 면이 있잖아. 뭐랄까? 이성적으로 따져 보면 분명 불가능한데, 어떻게든 해낼 것 같은 기대감이랄까? 실제로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걸 종종 보여줬고.”


민 감독은 액션 스쿨에서 본 준호의 호쾌한 드리프트를 떠올렸다.


전문 스턴트맨도 종종 실패하는 드리프트의 꽃.

하지만 준호는 사전 연습도 없이 단번에 해냈다. 그것도 감독과 무술 감독이 지켜보는 중요한 자리에서.


“이번에도 마찬가지야. 준호 씨에게 맡기면 어떻게든 해낼 것 같은 예감이 들었거든.”

“······.”

“상대 배우의 연기에 영향을 미치고 극의 흐름을 지배하는 단독 주연급이 될 것인가, 다른 주연급 배우들에 묻어가는 그런 저런 스타 배우가 될 것인가. 아역의 연기를 끌어올리는 건 강준호라는 배우에게 중요한 시험대야.”


감독은 담배 연기를 길게 뿜으며 덧붙였다.


신인급에게는 어려운 과제.

성공하면 배우로서의 등급을 한 단계 올릴 수 있었다.


같은 시각.

밴에서 시스템 창을 보고 있는 준호에게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도전 과제 : 주연 배우의 의미

아역 배우와 안정된 연기 호흡을 보여주세요.

성공 시 : 배우 등급 상향. 동료 평가 + 30포인트. 역할 비중 + 30포인트.

실패 시 : 배우 등급 하향. 동료 평가 - 50포인트. 역할 비중 - 10포인트.


“배우 등급 향상?”


준호는 보상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보너스도 짭짤했지만 배우 등급이 중요했다.


현재 그는 C급 연기자.

공동 주연은 가능해도 단독 주연은 맡을 수 없는 레벨이었다.

아무도 몰라주던 F급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였지만, 진짜 연기자가 되기 위해선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다.


“좋았어.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B급 연기자로 올라간다.”


준호는 눈을 빛내며 포인트 사용 중 상호 연기를 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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