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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연기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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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3.14 16:51
최근연재일 :
2024.04.2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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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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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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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완벽한 놈 (2)

DUMMY

스케줄이 없는 날.

준호의 일상은 비교적 단조로웠다.

연기 연습,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 혹은 소속사에서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일만 반복했다.

가끔 지웅이나 다른 친구를 만날 때도 있었지만, 몸 관리 때문에 술 대신 커피와 수다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수요일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주도 많이 왔네요.”


김 매니저가 회의실에 작은 수레를 끌고 들어왔다.


전국의 팬들이 보낸 꽃과 선물, 팬레터 등이었다.

주부 팬이 많은 덕분에 냉동 박스에 담긴 보양식과 식자재도 산더미였다.


“선물은 제가 받는데, 몸은 매니저님이 좋아지네요.”


준호는 매니저의 두툼한 허리를 보고 피식 웃었다.


음식 선물은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부모님과 친척,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한계가 있는 터.

결국 그가 못 먹거나 유통기한이 임박한 것들은 매니저나 소속사 직원들의 몫이었다.


준호와 매니저 외에 직원 둘이 달라붙어 선물들을 개봉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 팬들의 정성을 확인하고 SNS에 인증샷을 올리는 것도 일이었다.


물론 SNS 계정은 별도의 전담 직원이 관리했다.


‘말은 아낄수록 좋다고 했어. 괜히 말실수해서 구설에 오를 필요는 없지.’


팬과 직접 소통하는 걸 좋아하는 배우도 있었지만, 그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편이 편했다.


“와, 이번엔 선글라스가 왔네요. 비싼 거 아닌가?”


김 매니저가 호들갑을 떨며 명품 선글라스를 꺼냈다.


행여 기스라도 날까.

준호는 조심스럽게 쓰고 사진을 찍은 뒤 상자에 넣었다.


“이런 건 괜찮다고 말했는데. 감사 편지하고 같이 돌려보내세요.”


고가의 선물은 받아도 부담이었다.

공식 계정에도 마음만 감사히 받겠다고 공지했다.


다음은 제주에서 보내온 은갈치 한 박스.

오피스텔에 있는 대형 냉장고에도 같은 게 두 박스나 있었다.


“매니저님 예비 장인어른이 갈치 좋아하신다고 했죠? 이번 기회에 점수 좀 따세요.”


준호는 박스를 김 매니저에게 내밀었다.


“그걸 또 어떻게 기억하시고. 감사합니다.”


매니저는 입이 귀에 걸려 꾸벅 인사했다.


“커피가 많네.”

“강 배우님이 커피 좋아하시는 건 유명하잖아.”


그 사이에도 직원들은 열심히 선물을 개봉했다.


“어라? 이건 설마?”

“왜요?”

“이건 좀 센데요?”


직원 한 명이 대답 대신 상자를 건넸다.


“······!”


준호도 대번 얼굴이 굳어졌다.


자동차 키.

앞발을 든 말을 상징으로 했다.


“아까 처음 보는 스포츠카가 요란하게 지하 주차장에 들어오던데. 혹시 그건가요?”

“아, 저도 봤어요. 국내에 몇 대 없다는 차종이라 눈에 띄었어요.”


매니저와 다른 직원도 열쇠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누가 보냈어요?”

“보낸 사람 이름은 없습니다. 주소도 안 적혀 있고요.”


직원은 우편 목록을 훑어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름이 없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준호는 직감했다.


‘끈질기네. 이철호는 심부름꾼일 테고. 이철호가 말한 그분인가?’


섬뜩했다.

서늘한 땀방울이 등줄기를 훑고 흘러내렸다.


‘이건 독이 든 미끼다. 비싼 선물이라고 혹했다간 한 방에 나락으로 간다.’


부잣집 사모님 같은데.

적당히 만나 주면 되는 거 아닌가?

어차피 상대도 높은 신분이라 문제도 없을 테고.


솔직히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난 배우다. 싸구려 호스트가 아니야.’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돈이 목적이었다면 무명 때 진즉 화류계로 빠졌을 것이다.

긴 무명을 버티고 이 자리에 오른 게 아까워서라도 다른 길로 샐 수 없었다.


‘게다가 평가 항목 중에 동료 평가와 자기 관리가 있지. 전에 술 좀 마셨다고 마이너스 1점이었는데, 스폰서한테 잘못 엮이면 마이너스가 얼마나 될까? 지금까지 모은 포인트를 전부 토해내도 부족하겠지?’


연기 시스템도 문제였다.

공식적인 회식 자리 외에 술을 입에도 안 대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일단 경비실에 연락해서 그 차 잘 관리하라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대표님이랑 변호사님한테 연락해서······.”


준호는 차 키를 상자에 넣고 빠른 어조로 말했다.


강릉에서 있었던 한은서의 유혹은 약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더 큰 유혹이 치고 들어왔다.


***


늦은 밤, 이철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준호는 샤워를 마치고 막 커피를 마시려던 참이었다.


- 선물 잘 받았지? 그분이 워낙 통이 크시거든. 서류는 내가 알아서 해 놨으니까 잘 타고 다녀.


소파에 앉아 문자를 썼다가 지우길 몇 차례.


- 제 의사는 분명히 전했습니다.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차는 주차장에 있으니까 가져가시고요.


준호는 화를 참고 최대한 예를 갖췄다.

메시지에 붙은 숫자 ‘1’이 사라졌지만 답장이 없었다.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나 보네. 만나지도 않았는데 수억 원짜리를 선물로 쏜다. 대체 어떤 사람이지?’


커피를 홀짝이며 곰곰이 생각해 봤다.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터.

한편으론 누군지 궁금하기도 했다.


‘꽂아주는 광고만 받아먹어도 빌딩을 살 수 있다고 했지? 그룹 사모님? 아니면 재벌 2세나 3세?’


문득 지웅이와 심심풀이로 보던 연예인 찌라시가 떠올랐다.


A양이 B 회장에게 회당 수천만 원을 받고 같이 잤다.

C군이 여자친구를 버리고 D그룹 사모님에게 갔다. C군이 D그룹의 광고에 자주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E군과 F양은 쇼윈도 부부다. F양은 G그룹 회장의 아이를 뱄고, 이걸 덮기 위해 E와 결혼했다. 물론 E도 G그룹에서 한몫 챙겼다.


찌라시는 마냥 헛소문이 아니었다.

실제로 스폰서를 잘 만나 인기 스타가 된 경우도 많았다.


‘찌라시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정말 나한테 닥칠 줄이야.’


고민이 깊어졌다.

결국 잠을 못 이루고 새벽까지 뒤척였다.


선물 공세는 계속됐다.

세계에 딱 12개만 있다는 시계.

이탈리아의 장인이 수제작 했다는 정장과 구두.

하이라이트는 강남에 위치한 오피스텔의 카드키였다.


소속사 대표실.


“심한데요. 이렇게 노골적으로 스폰을 제안하는 분은 처음 봅니다.”


최 대표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사적으로 만나 술 한두 잔 하는 건 모른 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물의 규모가 십억 원을 훌쩍 넘어가니 법적으로도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이건 제가 변호사하고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이철호라고 했나요? 그분 연락처는 차단하시고,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매니저나 저한테 말씀해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연기 학원 선배라고 한 번 만나 줬더니 일이 이렇게 커지네요.”

“죄송하긴요. 그만큼 강 배우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는 뜻인데. 그리고 연기 학원은 핑계입니다. 저도 연예인하고 스폰서를 전문적으로 연결해 주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연기 학원이 아니더라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 배우님하고 연줄을 만들었을 겁니다.”


역시 MW 액터스와 계약하길 잘했다.

당분간 매니저와 경호원도 한 명씩 추가해 준다고 했다.


“부탁 하나만 더 드려도 될까요?”

“뭡니까? 말씀하십시오.”

“제가 이철호를 좀 알거든요. 선물 공세로 끝날 놈이 아닙니다. 처음에야 선물로 잘 구슬리겠지만, 그게 안 통하면 물리적인 방법도 동원할 겁니다. 그러니······.”


낮은 목소리로 뭔가 길게 설명하는 준호.


“아, 거참 좋은 방법이네요. 정체를 함부로 밝힐 수 없는 상대의 상황을 이용하는 거군요.”


최 대표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직업은 배우. 그러니 이 문제도 배우답게 해결한다. 최고의 연기로.’


준호는 히죽 웃으며 대표실을 나왔다.


***


‘이철호가 방식을 바꿨네.’


준호가 이걸 느낀 건 오피스텔을 거절하고 사흘쯤 지나서였다.


처음엔 악의적인 장난을 치는 정도였다.

소속사로 상한 음식이나 말라비틀어진 꽃이 배달됐다.

밴에 살짝 기스가 났고, 누군가가 후미를 들이받고 도망치기도 했다.


“강 배우님께서 참으세요. 이럴 때는 연예인이 을이라니까요. 여배우는 스토커나 성추행 같은 더 심한 문제에 시달린대요. 그것 때문에 정신과 치료도 받고요.”


김 매니저도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애들이 떼쓰는 것도 아니고. 유치한 새X.’


기분 나빴지만 최 대표의 말대로 무시했다.


금요일 늦은 밤.

광고 포스터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큰길에서 꺾어져 골목으로 접어드는데 갑자기 밴이 멈췄다.


“무슨 일입니까?”


맞은편에 앉은 경호원이 운전석 쪽으로 몸을 돌리며 물었다.


“사고가 난 모양인데요?”


조수석의 임시 매니저가 대답했다.

큰 승합차 두 대가 비상 깜빡이를 켠 채 서 있었다.


“이상하네. 사고가 났으면 빨리 차를 뺄 것이지. 길은 왜 막은 거야?”


운전석의 김 매니저도 인상을 찌푸리고 투덜거렸다.


빠앙, 신경질적으로 한 번 경적을 울렸다.

요지부동. 승합차에서 사람이 나와 보지도 않았다.


“제가 가 볼게요.”


결국 경호원이 안전밸트를 풀고 내렸다.


유도 선수 출신이라고 했나?

나이는 준호와 동갑인데, 몇 살은 많은 것처럼 크고 우락부락했다.


“같이 가시죠.”


조수석의 매니저도 핸드폰을 챙겨 들고 따라 내렸다.


“별일 아니겠죠. 경찰에 전화해서······.”


김 매니저가 핸드폰을 들려는 찰나였다.


승합차에서 건장한 사내들이 우르르 내렸다.

우리는 조폭입니다, 라고 얼굴에 쓰여 있는 듯한 놈들이었다.


“잠깐만요. 무슨 일인지 지켜봅시다.”


준호는 손을 들어 매니저를 말렸다.

창문을 살짝 내리고 밖의 상황을 살폈다.


“아저씨, 왜 빵빵거리고 지X이야?”

“안에서 놀랐잖아. 누구야? 연예인이라도 타고 있어?”


놈들이 경호원과 매니저를 에워쌌다.


건들거리는 폼, 거친 욕설, 험악한 분위기.

놈들은 삼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시비를 걸었다.

경호원과 매니저도 힘 좀 쓰는 사람들이었지만 숫자가 너무 많았다.


‘이철호도 몸이 달아올랐나 보네. 이런 유치한 짓까지 하는 걸 보니. 거물 스폰서한테 많이 시달리나?’


준호는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당근은 고가의 선물.

하지만 말을 안 들으면 깡패들이라는 채찍으로 위협한다.


“어쩌죠?”


김 매니저가 난감한 표정으로 물었다.


“전에 제가 말한 계획 있죠? 그대로 합시다.”


준호는 안전밸트를 풀며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김 매니저도 따라 웃으며 밸트를 풀었다.


매니저가 먼저 내린 뒤.


“레디, 액션.”


준호는 입술을 달싹거려 시스템 창을 열었다.


······

직업 : C급 연기자

획득 포인트 : 1,715

잔존 포인트 : 417

······


그동안 등급이 C급 연기자로 올랐다.

오디션을 거쳐 주연에 도전할 수 있는 수준이라나?


“포인트를 많이 모았네. 이 정도면 충분하지.”


포인트 사용에서 기술 연기를 열었다.


액션 배우는 폼만 잡는 게 아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게 90년대 액션 스타 이연걸. 그가 무술대회에서 5년 연속 우승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였다.


“이소룡은 한술 더 떠서 절권도를 창안했지. 말이 좋아 액션 배우지, 연기가 되는 무술가라는 표현이 적당해.”


이번엔 그의 차례.

기술 연기 중 액션 항목으로 들어갔다.


수영과 수상 구조를 올려 한은서를 구한 적이 있었다.

시스템의 스킬을 빌린다면 액션 배우나 전문 스턴트맨 못지않은 격투기도 가능했다.


“감독 강준호, 각본 강준호, 주연 강준호. 이번 장르는 액션이다.”


준호는 자신의 이름을 강조하며 씨익 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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