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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연기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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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3.14 16:51
최근연재일 :
2024.04.2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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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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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4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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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미팅 (2)

DUMMY

토요일 저녁 대학로 소극장.

가뜩이나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었지만, 오늘은 특히 여성으로 북적였다.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도 다양했다.


- 한낮의 별처럼, 당신과 영원히 함께하겠습니다.


출입구 위에 대형 현수막이 펄럭였다.


“지금 이곳은 배우 강준호의 팬 미팅 현장인데요. 보시는 것처럼 많은 팬이······.”


연예 전문 너튜버가 소형 카메라를 들고 주위를 비췄다.


입장할 수 있는 건 사전에 추첨이 된 200명뿐.

그보다 훨씬 많은 기자와 팬이 극장 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MW 액터스의 스태프 십여 명이 상황을 통제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윽고 소극장의 출입문이 열렸다.

사람들은 차례대로 티켓과 신분증을 보여주고 들어갔다.


“들었어? 강준호가 특별 이벤트도 준비했대.”

“목소리도 성우 뺨치게 멋있던데. 이번엔 또 뭘 보여줄까?”


다들 들뜬 표정이었다.

입고 있는 검은 티셔츠에는 준호의 사진이 큼지막했다.


취재도 경쟁이었다.


“실례지만 잠깐 인터뷰 좀······.”


너튜버가 줄 서 있는 팬에게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큰 모지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3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됐어요.”


그녀는 기겁하며 손으로 카메라를 가렸다.


“그러지 마시고······.”

“싫다니까요.”


매몰차게 돌아서는 그녀.


“비싸게 굴긴. 강준호 멋있어요, 같은 멘트라도 하나 해달라는 거였는데.”


너튜버는 나직이 투덜거리며 다른 팬을 찾아 나섰다.


시장바닥처럼 소란스러운 상황이었다.

흔한 너튜버와 팬의 실랑이를 눈여겨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여튼 이놈의 인기는.”


그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무사히 소극장에 들어간 뒤.


“여긴가? 여기저기 인맥을 동원한 보람이 있네.”


황 작가는 티켓을 확인하고 자리에 앉았다.


3구역 제일 앞줄.

무대가 잘 보이는 정면의 명당이었다.

10분 전이라 그런지 객석이 2/3쯤 차 있었다.


“이번엔 누가 알아보지 않겠지?”


쪽팔림은 한 번으로 충분했다.

모자와 선글라스로 완전 무장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랑해요!”


여성 팬 한 명이 입으로 손나발을 만들고 외쳤다.


“사랑해요, 강준호!”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난데없는 떼창이 울렸다.


황 작가도 그중 하나였다.

조심해야 한다고 되뇔 때는 언제고. 목소리가 제일 컸다.


마침내 7시 정각이 됐다.

누군가가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무대에 등장했다.

조명이 너무 밝은 탓에 훤칠한 남자의 실루엣만 어렴풋하게 보였다.


“꺄아~!”


터질 듯한 함성.

조명이 조금 어두워지고 댄디하게 멋을 낸 준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십니까.”


준호가 마이크를 잡고 웃으며 인사.


객석이 더 시끄러워졌다.

준호는 소란이 가라앉을 때까지 잠깐 기다렸다가 행사를 이어갔다.


팬 미팅은 비교적 무난했다.

준호의 가슴 떨리는 소감, 드라마 하이라이트 감상, 기념 케이크 커팅, 개그우먼의 사회로 진행된 토크쇼 등이 차례로 이어졌다.

시작에 앞서 동료들의 축하 영상도 빠지지 않았다.


“······결혼이요? 글쎄요, 전 이미 결혼한 기분입니다. 팬들 덕분에 전혀 외로운 줄 모르겠거든요.”


소속사에서 써준 모범 답안.

준호의 별거 아닌 농담에도 객석이 빵빵 터졌다.


‘긴장 안 하고 잘하네. 아무렴, 누가 픽한 신인인데.’


자식을 보는 것처럼 뿌듯했다.


무대 아래의 스태프가 신호를 보내 팬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사랑해요!”


순애 씨와 팬들은 손을 모으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50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개그우먼도 들어가고 마지막으로 깜짝 이벤트만 남았다.


‘마무리는 노래겠지? 그러고 보니 준호 씨 노래를 한 번도 못 들어봤네. 드라마 주제가라도 부르려나?’


그녀가 아쉬워하려는 찰나였다.


무대의 조명이 꺼졌다.

분주한 발걸음 소리. 스태프들이 바쁘게 뭔가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뭐지? 노래가 아닌가?’


다시 무대에 불이 들어왔다.


“어? 저건?”


그녀는 새로운 무대를 보고 비명처럼 소리쳤다.


야트막한 언덕 위의 벤치.

천장에는 작은 조명들이 별처럼 반짝거린다.

그리고 준호는 수수하게 생긴 여자와 나란히 앉아 있다.


드라마의 엔딩 씬이었다.


‘팬과 하는 즉흥 연기. 이게 깜짝 이벤트였어?’


순애 씨는 주인공이 된 것처럼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


드라마처럼 분위기를 잡은 뒤.

준호가 객석을 응시하며 담담하게 말문을 열었다.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있어요. 사랑하는 건 죄가 아니에요. 당신이 죄책감을 느끼는 건 사랑하는 것을 그만둔 순간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드라마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드라마를 수십 번 다시 본 팬들이었다.

첫 대사만 들어도 뭔가 다르게 전개됨을 알아챘다.


“당신은 그녀와 왜 헤어졌나요?”


여자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무대는 처음인 모양이었다.


“이별의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아니, 사실은 하나였어요. 제가 도망친 거예요. 현실을 넘을 자신이 없었거든요.”


다시 준호의 덤덤한 대답.

감정을 억누르는 듯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헤어져도 친구로 남는 여자도 있지만, 그녀는 아니에요. 그녀를 만날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전 이렇게 생각했어요. 바보같이.”


준호는 흐느낌을 참듯 목소리를 떨며 덧붙였다.


‘아, 팬의 사연을 각색했네. 저 여자는 최근 남자친구와 싸웠거나 헤어졌을 테고, 준호가 그 남자친구의 마음을 대신 전해주는구나.’


그제야 황 작가는 준호의 의도를 눈치챘다.


드라마의 엔딩 씬과 비슷한 무대.

당신의 마음을 사랑하는 이에게 대신 전해 드립니다.


“다만 그냥 마음을 전하는 건 좀 시시하잖아요. 팬을 무대 위로 모시고, 잠깐이라도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만들어 드리는 건 어떨까요?”


이게 준호가 소속사에 부탁한 특별 서비스였다.


그사이에도 준호의 연기는 계속됐다.

사랑하지만 마음에도 없는 말로 그녀에게 상처를 줬다.

상처는 또 다른 상처를 낳았고, 결국 이별이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면목 없는 걸 알지만 지금이라도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어요.”


준호의 독백이 슬슬 끝나고 있었다.


‘사랑의 메신저인가? 좋은 생각이네. 팬들에게는 멋진 즉석 연기를 보여주고, 무대의 팬에겐 평생 못 잊을 추억을 남겨 주고.’


황 작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웃었다.


훈훈한 결말.

이제 곧 사연 남이 꽃이라도 들고 등장할 테지.

오글거리지만 반지를 내밀며 청혼하는 것도 좋은 전개였다.


그때였다.


“거짓말. 내게 그렇게 모진 말과 행동을 할 때는 언제고. 가라고 해서 갔더니 인제 와서 뭐가 어째?”


그녀가 울먹이며 벌떡 일어났다.


연기에 너무 몰입했다.

혹은 남자친구의 모진 말이 떠오른 것 같았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소리칠 듯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 이건 아닌데.”

“강준호한테 왜 화를 내는 거야? 준호는 남자친구가 아닌데.”

“연기에 너무 몰입했나? 뭐지?”


객석의 팬들은 당황해 웅성거렸다.


준호도 잠깐 멈칫.

그녀가 돌아서려는 찰나였다.


“그래, 가! 가란 말이야! ······ 정말 가는 거야? 그래 가 버려! 가라고 해서 정말 갈 거면 가 버리란 말이야! ······ 아니야, 가지 마. ······ 제발 가지 마······ 영원히 여기 있어 줘.”


준호의 신들린 연기가 폭발했다.

그는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고 오열했다.


그녀를 보내고 돌아서려는 자존심.

하지만 그녀를 다시 붙잡고 싶은 진심.

이 이율배반적인 심정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바보. 미안하다면 말 한마디면 됐을 텐데.”


여자도 감정에 북받쳐 울음을 터뜨렸다.


서서히 어두워지는 조명.

잠시 후, 두꺼운 커튼이 내려왔다.


‘기가 막히네. 진짜 남자친구처럼 속마음을 표현했어. 이런 연기라면 떠난 여자도 돌아올 수밖에 없지.’


황 작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일어났다.


팬들은 열광의 도과니.

눈물을 흘리며 준호의 이름을 외쳤다.


“이런 남자 처음이야. 날 가져요, 준호 씨!”


황 작가가 제일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


팬들이 돌아간 뒤.

준호는 무대 뒤에서 사연 남녀를 다시 만났다.


김영철 씨와 이순영 씨.

이름만큼 평범한 커플이었다.

헤어진 것도 평범한 다툼 때문이었고, 화해하고 웃는 것도 여느 평범한 커플과 다를 게 없었다.


사연을 보낸 건 남자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순영이가 강 배우님 드라마 팬이었거든요.”


영철 씨가 상기된 표정으로 꾸벅 인사했다.

그 와중에도 그녀의 꼭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


“아깐 죄송했어요. 연기라는 걸 알았지만 순간적으로 감정에 북받쳤어요.”


순영 씨는 민망한 듯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푹 숙였다.


“괜찮습니다. 지나친 감정 몰입으로 NG를 내는 건 베테랑 연기자도 종종 있는 일이에요.”


준호는 둘의 손을 내려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앞서 무대 퍼포먼스와 무대 장악력 스킬을 레벨 5까지 올렸다.

그의 연기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 상대역이 과몰입되는 게 당연했다.


‘연기 경력이 풍부한 베테랑 연기자라면 모를까. 아마추어가 내 연기에 정신을 못 차리는 건 당연하지. 차라리 잘됐어. 그냥 끝났으면 조금 밋밋했을 텐데, 덕분에 하이라이트가 제대로 터졌어.’


무대 연기 중 임기응변 레벨 6으로 올렸다.

처음엔 상대의 과몰입에 내심 당황했지만, 이내 같은 과몰입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전 단역 시절에 코피가 날 정도로 진짜 세게 얻어맞은 적도 있어요. 상대 배우가 과몰입해서요. 그리고 자존심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말이 종종 나오는 법이잖아요. 그걸 극복하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하세요.”


준호는 가볍게 웃으며 덧붙였다.


[30포인트 획득]

‘도전 과제 : 감동의 팬 서비스’를 달성했습니다.


보너스 포인트는 덤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 소극장을 달군 신들린 연기.

- 꿈은 이뤄진다. 팬들의 꿈을 대신 전하는 연기자.

- 우리가 본 것은 연기인가, 한 남자의 진심인가?


준호의 팬 미팅 소식이 뉴스와 커뮤니티 게시판을 뜨겁게 달궜다.


***


집에 돌아가는 승용차 안.


“강준호, 이 자식. 또 사람을 울게 만들다니. 외모에 연기에 인성까지. 대체 부족한 게 뭐야?”


황 작가는 콧잔등을 어루만지며 투덜거렸다.


무대의 흥분이 남아있었다.

너무 소리를 지른 탓에 목도 칼칼했다.


부웅, 센터패시아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명은 못난이, 동생 황순희의 전화였다.


핸즈프리를 켠 뒤.


“어, 왜?”


목소리를 가다듬고 차갑게 물었다.

잘 지내느냐 같은 낯간지러운 인사말은 형제, 자매 사이에 쓰는 게 아니었다.


“지금 어디야?”


동생이 웃음을 참는 듯한 어조로 되물었다.


“어디긴, 감독하고 다음 작품 회의하고 돌아가는 길이지.”

“지랄. 이미 다 퍼졌는데 무슨 소리야.”

“응? 무슨 소문?”

“모른 척하긴. 아직 못 봤어?””


부웅, 다시 진동.

동생이 보낸 메시지였다.


마침 신호 대기 중이었다.


“보긴 뭘 봐?””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메시지를 열었다. 동영상 URL이었다.


‘이야, 세상 참 빠르네. 그새 올렸어?’


객석의 누군가가 편집해서 올린 팬 미팅 영상이었다.

대충 찍은 듯 흔들림과 잡음이 심했지만, 화질은 비교적 선명했다.


“크크크. 3분 55초부터 봐.”

“뭐가 있는데?”


황 작가는 시큰둥하게 영상을 넘기다가 움찔했다.


- 날 가져요, 준호 씨!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객석을 박차고 일어나 광분하고 있었다.


미친 여자인가?

옆 사람에 얼굴이 반쯤 가려졌지만 누가 봐도 그녀였다.

차갑고 도도한 인기 작가, 스타 배우도 꼼짝 못 하는 방송계의 마녀 황순애 씨.


“아무튼 꿈을 이뤘네.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이상형을 찾았으니. 날 가져요? 하긴, 강준호 정도라면 나도 형부로······.”


동생이 기다렸다는 듯이 놀려댔다.


나쁜 지지배.

부모님과 친구들한테도 영상을 뿌렸겠지.

이게 인기 드라마 작가의 실체라고 떠들어대며.


“젠장, 출연료를 받아야 하나?”


황 작가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꿈을 이뤘다고?

그녀에게 꿈은 쪽팔림이었다.


작가의말

참고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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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 미팅 (2) +2 24.04.04 830 26 12쪽
24 팬 미팅 (1) +2 24.04.03 864 2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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