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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연기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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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3.1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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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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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2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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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끝이 아닌 시작 (3)

DUMMY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작가가 자기 배우 촬영에 몰래 오다니. 정 감독이 보면 엄청 놀리겠지?’


그녀는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오늘은 황 작가가 아니었다.

드라마에 엑스트라로 참여한 팬, 황순애 씨였다.

정확히는 동생인 황순희의 명의로 최종 씬의 촬영에 왔다.

팬들 사이에 섞여 유성우 축제를 즐기러 온 것처럼 천문대 옆 잔디밭에 앉았다.


슬슬 시간이 가까워졌다.

준호와 한은서가 천문대 옆 언덕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십니까, 신인 배우 강준호입니다.”


준호가 먼저 마이크를 잡고 씩씩하게 인사했다.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졌다.


“역시 신이슬은 이현하고 맺어지나 보네.”

“솔직히 그림은 둘이 더 잘 어울리지. 김희성은 키가 좀 작잖아.”

“실물이 훨씬 멋있네. 저 가슴하고 어깨 근육 좀 봐.”


팬의 80%는 여성이었다.

다들 눈에서 하트를 쏘아 대느라 정신없었다.


황 작가도 그중 하나였다.


‘확실히 팬들 사이에서 보니까 느낌이 다르네. 준호 씨가 저렇게 멋있었나?’


드라마의 메인 작가였다.

원하면 얼마든지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녀가 비밀리에 촬영장을 찾은 이유는 단 하나.

일반 팬들 사이에서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준호의 인기가 생각보다 대단했다.


“안녕하세요, 한은서입니다. 오늘 이 자리를 찾아주신······.”


한은서의 말이 팬들의 수군거림에 묻힐 정도였다.


감독의 인사는 시간 관계상 생략.


“사진 촬영은 안 됩니다. 촬영이 시작되면······.”


조연출이 마이크를 잡고 몇 가지 주의를 줬다.


다들 건성으로 흘려들었다. 

황 작가를 포함한 모두의 시선은 준호에게만 고정됐다.


유성우가 떨어지기 3분 전.

천문대 옆에 설치된 대형 디지털시계가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팬들의 수군거림이 멎었다.


‘시작한다!’


그녀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정면을 응시했다.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준호와 한은서는 언덕 위의 벤치에 나란히 앉아 감정을 잡았다.


***


별이 쏟아지는 밤.

신이슬과 이현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다.

천문대 옆 디지털시계는 유성우가 쏟아지기 1분 전을 가리키고 있다.


“제가 언젠가 말했죠? 한낮의 별이 예쁘다고.”


준호. 아니, 이현이 하늘을 올려본 채 말한다.


그녀를 향한 그의 마음은 짝사랑.

한낮의 별처럼 은은히 그녀를 지켜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네. 실장님도 별이 좋다고 하셨죠.”


신이슬는 아련한 추억들을 떠올린다.


천문대에서 나눈 별자리 이야기.

강릉 바다에서 유성우를 보며 빌었던 소원.

다른 남자들과도 엮였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이현과 함께였다. 마치 운명처럼.


“사실 전 별에 관심이 없었어요. 제게 별은 그냥 천체의 일부에요.”

“전 실장님 저처럼 별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는데요. 왜 지금까지 계속 별 이야기를 하셨던 거예요?”

“당신과의 얘기를 이어가려고. 난 단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이현의 담담한 고백.

머리 위로 별 하나가 떨어진다.


그도 알고 있다.

그녀는 처음부터 가질 수 없는 여자였다는 걸.


“당신 덕분에 처음으로 멜로 드라마를 봤어요. 당신 덕분에 연애 소설도 읽었고, 당신 덕분에 집에서 화분도 길렀죠. 비 오는 날 같이 듣던 음악도 좋은 기억이었어요.”

“······.”

“그동안 고마웠어요. 당신과 헤어진다는 것은 내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지만, 지금 겪는 고통도 그동안 누렸던 행복의 일부분일 거예요.”


사랑이 끝을 향해 달려간다.

그는 조금 홀가분한 표정으로 일어나려 한다.


“왜 그렇게까지 절 원하시나요? 전 다른 남자의 아내인데. 후회하지 않으세요?”


신이슬의 물음이 그를 도로 벤치에 앉힌다.


이현은 그녀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본다.

감정을 숨길 수 없다. 그윽한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린다.


“당신과 함께한 시간은 늘 특별했으니까요.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내 마음에는 당신이라는 이름이 생겼죠.”


별에 취한 걸까, 그녀에 취한 걸까?

이현의 목소리는 몽롱하면서도 달콤하다.


“이제 진짜 때가 됐네요.”


이현은 말없이 일어선다.


언덕 아래에는 그가 탈 공항행 리무진이 서 있다.

누군가는 떨어지는 별을 보고 소원을 빌겠지만, 누군가에는 가슴 아픈 이별의 순간이다.


“그거 알아요? 제가 드라마, 책, 꽃을 자주 말했던 이유.”


다시 신이슬의 말이 그를 붙잡는다.


이번엔 이현이 말없이 듣는다.

어깨가 살짝 떨리지만 애써 감정을 삭인다.


“난 단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할 것 같은 것을 좋아하는 척했을 뿐이라고요.”


서서히 어두워지는 조명.

드라마의 주제가가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그랬나?’


그제야 이현도 알 것 같다.


직장 상사라는 현실의 굴레에 갇힌 남자.

가정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갇히긴 여자도 마찬가지다.


“저, 참 나쁘고 이기적인 여자죠? 다른 남자가 있으면서 실장님을 사랑하다니.”


결국 그녀의 긴 속눈썹에 맑은 눈물이 맺힌다.


“아니. 사랑하는 건 죄가 아니에요. 당신이 죄책감을 느끼는 건 사랑하는 것을 그만둔 순간입니다.”


마침내 이현은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춘다.


축제가 절정에 이른다.

별들이 둘의 머리 위로 쏟아진다.


***


로맨스와 불륜은 한 끗 차이였다.

방금 준호의 연기에서 불륜을 떠올린 사람은 없었다.


특히 키스 직전에 준호가 한 마지막 대사.


“······당신이 죄책감을 느끼는 건 사랑하는 것을 그만둔 순간입니다.”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감동이 가슴 속을 맴돌았다.

조연출이 촬영 종료를 알렸지만, 팬들은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단한 즉흥 연기였어. 보통 드라마하고 다르지만 신선한데?”

“한은서도 대단하지만, 연기를 주도한 강준호가 더 대단했어.”


여기저기서 뒤늦게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크윽, 준호 이 자식. 원작자를 감동시키면 어쩌자는 거야?”


패앵, 황 작가도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코를 풀었다.


감동에 젖긴 언덕 위의 준호도 마찬가지였다.


“오케이! 바로 그거야. 마지막까지 호흡이 완벽했어. 감정선을 섬세하게 건드리는 여운도 끝내줬고.”


감독은 그를 덥석 끌어안고 토닥였다.


현장에 있던 팬들을 확실히 휘어잡았다.

팬들의 생생한 감동은 방송을 통해서 전달될 터.

일반 시청자들도 신이슬의 불륜을 ‘로맨스’로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만세! 드디어 끝났다!”


스태프들도 손뼉 치며 둘의 주위로 다가왔다.


홀가분하게 웃는 사람.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못 잇는 사람.

아무것도 안 하고 며칠 푹 쉬고 싶다는 사람 등.

반응은 다양해도 다들 함박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한은서도 눈물을 훔치며 스태프와 차례로 인사했다.

평소 콧대 높던 그녀도 지금은 제작진의 한 사람이었다.


‘해냈다.’


준호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우여곡절 끝에 첫 드라마를 완주했다.

기쁨, 보람, 성취욕, 그리고 약간의 허무감 등 만감이 교차했다.


[300포인트 획득]

‘도전 과제 : 끝이 아닌 시작’을 달성했습니다.


시스템 창이 그 어느 때도 밝고 선명하게 반짝거렸다.


***


일요일 오전, RM 스튜디오 회의실.

정 감독과 황 작가를 포함해 주요 제작진이 한자리에 모였다.


시청률 정밀 분석.

시청자 반응과 리뷰 검토.

촬영 중 미진한 점과 개선사항 피드백 등.

제작진은 드라마가 종영된 후에도 할 일이 많았다.


“준호 씨 말이야, 정말 대단해. 몇 달 동안 꿈을 꾼 기분이야. 준호 씨가 아닌 다른 배우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신드롬 같은 인기는 없었겠지?”


정 감독은 의자에 등을 묻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랜만에 대형 신인이 나왔어요. 마스크 좋고 연기도 잘하는데, 인성도 좋고요. 벌써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니까요.”


황 작가도 젖은 표정으로 거들었다.


“참, 준호 씨의 연기하니까 생각났네. 이거 봤어?”


감독이 핸드폰을 꺼내 내밀었다.


“뭔데요? 또 준호 씨 기사?”

“응. 최종 씬에 참여한 팬들을 인터뷰한 건데, 재미있는 게 나와서.”

“재미있는 거요?”


황 작가는 짐짓 심드렁하게 되물었다.


“시치미 떼지 마. 다 아는데.”

“무슨 말이에요? 전 촬영 있던 날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대본 쓰느라 밤샌 거 아시잖아요.”

“거짓말하긴. 그럼 이건 뭐데?”


감독은 히죽 웃으며 기사를 열었다.


준호의 연기는 감동, 그 이상이었다.

마지막에는 내가 신이슬이 된 것 같았다.

신이슬은 정말 복 받은 여자다. 이현 같은 로맨티스트라면 모든 게 용서된다.


이런 증언과 팬들의 사진이 첨부됐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 같지 않아?”

“자꾸 뭔데요?”


황 작가는 무심한 척 흘겨보다가 멈칫했다.


“천하의 황 작가가 촬영장에서 자기 배우한테 반했네. 스타 배우도 꼼짝 못 하게 하는 카리스마가 황 작가 매력 아니었어?”


감독은 엄지와 검지를 벌려 사진을 확대했다.


팬들의 왼쪽 중간.

울고 있는 그녀가 선명하게 찍혔다.

특유의 사과머리 헤어스타일까지 해서 빼박이었다.


“어? 진짜네. 카리스마 황 작가님.”

“설마 강 배우한테 사인까지 받은 건 아니겠지?”

“황 작가님이 강 배우님 좋아한다고 소문이 쫙 퍼졌는데. 인제 보니 사생팬이었네.”


다른 스태프들도 핸드폰을 돌려 보며 놀렸다.


“작가님이 보기보다 귀여운 면이 있으셨네.”


심지어 막내 작가도 입을 가리고 킥킥거렸다.


“젠장, 이럴까 봐 동생 이름으로 신청했는데. 이건 또 언제 찍힌 거야? 기레기 놈들. 이거 초상권 침해 아닌가?”


황 작가는 얼굴이 홍당무가 돼 투덜거렸다.


“기사 좀 공유할게요. 박제해서 두고두고 놀려야지. 크크크.”


누군가가 화면 끝의 공유하기를 눌렀다.


- 내 여자의 남자는 강준호.

- 팬들을 울린 감동의 연기. 우리가 본 건 드라마인가, 연극인가?


다른 언론들에서도 독특한 시도를 앞다퉈 보도했다.


최종 시청률 15.123%.

내 여자의 남자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평균 5~6%, 10%만 넘어도 대박으로 취급받는 아침드라마에서는 경이로운 기록이었다.


하지만 끝이 아닌 시작.

배우 강준호의 연기 인생은 이제부터였다.


***


촬영을 마친 뒤.

준호는 오피스텔에서 죽은 듯 지냈다.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생각보다 컸다.

잠깐 눈만 붙인다고 누웠는데, 눈을 떠보니 다음 날 아침이었다.


핸드폰을 보니 김 매니저의 부재중 통화가 수십 건이었다.


“배우님, 피곤하실 텐데 죄송합니다. 내일부터 인터뷰가 다섯에, 잡지 화보 촬영이 셋······.”


전날 김 매니저가 한 말이 떠올랐다.


배우는 연기만 잘해서 성공하는 게 아니었다.

요즘은 팬과의 소통, 언론 대응 등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도 연기보다는 부담이 덜했다.

질문을 사전에 받았고, 소속사에서 모범 답안을 준비했다.


‘5분만 더 잘까?’


고민하다가 일어나서 욕실로 향했다.


식사는 커피와 과일 조금.

시간이 촉박할뿐더러 식욕도 별로 없었다.


‘다음 주에 종방연이 있다고 했지? 그 다음엔 밀린 CF 촬영이고.’


준비하는 동안 속으로 일정을 되새겼다.


고생 끝.

지금부턴 달콤한 수확의 시간이었다.


작가의말

오늘은 연참입니다.

그나저나 반응이 또... ㅠ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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