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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연기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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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3.1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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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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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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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업그레이드 (2)

DUMMY

뭐든 처음이 제일 어려운 법이었다.

처음 드리프트에 성공하자 그 다음은 순조로웠다.

사이드 브레이크, 클러치 킥, 쉬프트 락 드래프트에 점점 익숙해졌다.


‘사람들이 모터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를 알겠네. 하긴, 유럽에서 카 레이싱은 남자의 스포츠라고 한다지?’


탁 트인 서킷.

굉음을 뿜으며 미친 듯이 질주한다.

카아앙, 거친 엔진음만 들어도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자동차 액션이 생각보다 재미있네요. 스릴도 있고. 드리프트 중에서 뭐가 제일 어렵습니까?”


언젠가 잠깐 쉬는 동안 준호가 물었다.


‘스턴트 맨에게 맡기지 말고 내가 직접 해볼까? 성룡은 스턴트맨을 안 쓰고 직접 연기하는 걸로 유명하잖아. 그럼 보너스 포인트도 많이 받을 테고.’


운전에 자신이 붙어 진지하게 고민하던 참이었다.

실제로 고속 후진 등 콘티에 나오는 운전은 무리없이 해냈다.


“음. 조금 어려운 질문이네요. 같은 드리프트라도 도로와 자동차의 상태, 속도에 따라 천차만별이거든요. 그런데 보통 리버스 엔트리를 제일 어렵다고 칩니다. 그 이름처럼 스핀을 먹여 180도 돌리고 빠져나오는 스킬이거든요.”

“아. 그 리버스 엔트리까지 배우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글쎄요. 그건 숙련된 스턴트맨도 종종 실패하는 거라. 강 배우님은 전문 스턴트맨으로 나설 게 아니잖아요. 지금처럼 기본 드리프트만 해도 충분할 겁니다. 아니, 이미 충분하세요.”


송대홍도 기본을 강조하며 빙그레 웃었다.


스턴트에 우연은 없다.

그가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말이었다.

스턴트맨이 피나는 연습을 반복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는데, 준호의 독종 같은 면은 스턴트맨에게 딱 맞는 자질이었다.


운전 훈련 일주일째 오전.

민 감독과 정이훈이 서킷을 방문했다.

콘티에 나오는 운전과 드리프트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자동차 추격 씬은 추적 쇼트(Following Shot)와 패닝(Panning) 등을 이용할 겁니다. 준호 씨는 악당을 쫓는 상황인데, 드리프트해서 샛길로 따라잡는 거죠.”


민 감독이 콘티 북을 펼쳐 놓고 재차 설명했다.

참고로 추적 쇼트는 카메라가 고속으로 움직이는 피사체를 따라 움직이는 것, 패닝은 카메라를 상하좌우로 움직이는 촬영 기법이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이에요. 특히 정교한 핸들링이 요구되죠.”


민 감독이 심각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설명은 간단했지만, 대충 봐도 고난도의 운전 실력이 필요했다.


“장소는 결정됐습니까?”

“아니요. 관할 관공서의 협조가 필요한데, 그게 쉽지 않네요. 솔직히 좀 위험한 씬이잖아요. 일단 상가가 밀집한 골목을 구상하고 있어요. 정 안 되면 세트를 만드는 방법도 있고요.”

“그럼 이쯤에다 슈퍼마켓의 물건들을 진열해 놓는 건 어떨까요? 드리프트하다가 후미로 치는 거죠. 상품들이 박살나서 흩어지면 박진감이 한층 배가 될 겁니다.”


준호도 콘티 북을 짚으며 의견을 곁들였다.


카메라와 관련된 스킬을 레벨업한 뒤.

관객 입장의 씬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카메오로 슈퍼 주인을 등장해 욕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고요.”


민 감독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10분 정도 더 얘기한 뒤.

준호는 헬멧을 쓰고 다시 차에 올랐다.

감독과 두 무술 감독, 안전 요원들은 멀리 떨어져서 지켜봤다.


도전 과제 : 연습은 실전처럼

- 드리프트 기술의 연계를 보여주세요.

- 성공 시 ‘기술 연기 - 운전 레벨 6’

- 실패 시 준비성 - 50포인트


촬영 개시가 며칠 안 남은 상황.

감독 앞에서 갖는 일종의 중간 평가였다.


***


준호가 서킷으로 차를 몰아 나간 뒤.

감독과 두 무술 감독은 모니터로 상황을 지켜봤다.


“준호 씨가 잘해낼까요? 몸을 쓰는 액션이랑 운전은 분야가 다른데. 그냥 적당히 폼만 잡으라고 하는 게 낫지 않아요?”


정이훈은 불안한 듯 혼잣말처럼 물었다.


준호의 차가 서킷을 천천히 돌고 있었다.

사람이 운동 전에 몸을 풀듯 자동차도 준비운동이 필요했다.

운전자가 도로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었다.


“잘하실 겁니다. 워낙 열심히 연습하셨으니까요. 감량 중이라 피곤할 텐데도 한번도 싫은 소리를 한 적이 없었고요. 기본적인 드리프트는 스턴트맨에 안 맡겨도 될 겁니다.”


송대홍은 흡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액션 스쿨의 홍보를 위해서라도 준호가 직접 연기하는 편이 좋았다.


“송 감독님 말에 동감이에요. 강 배우는 며칠 만에 카메라를 이용하는 액션을 터득했잖아요. 관객의 입장에서도 대역이나 CG를 쓰는 것보다 배우가 직접 연기하는 게 훨씬 실감날 테고. 강 배우는 이번에도 뭔가 보여줄 거예요.”


민 감독도 턱을 쓰다듬으며 덧붙였다.


준호의 훈련 영상은 송대홍에게 정기적으로 받았다.

시동을 꺼뜨리는 초보에서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 체크 완료. 노면이 조금 젖었지만 큰 문제는 없을 거 같습니다. 속도를 내 보겠습니다.


준호가 조금 상기된 어조로 무전을 보냈다.


이윽고 차가 출발점에 돌아왔다.

속도를 60km 안팎으로 떨어뜨린 뒤, 직진 구간에 들어서며 드리프트를 준비했다.


40, 45, 50, 55km.

모니터 구석에 나오는 속도계의 속도가 서서히 높아졌다.


“60? 연습 때보다 빠른데?”


송대홍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연습 때의 속도는 드리프트에 적합한 50km였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드리프트 난이도는 높아지는 게 당연했다.


“준호 씨. 흥분하지 말고 천천히 하세요.”


송대홍이 급히 무전을 날리는 도중이었다.


한발 늦었다.

준호는 이미 드리프트에 들어갔다.


사이드 브레이크와 클러치.

수십 번 연습한 대로 제대로 들어갔다.

끼이익, 차가 요란한 스키드 마크를 만들며 빙글 돌았다.


“좋아!”


민 감독은 흥분해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여기서 한 바퀴 반 돌고 왼쪽으로 턴.

샛길로 접어들어 급가속하는 게 콘티였다.


‘내가 괜히 걱정했나? 생각보다 잘하잖아?’


송대홍이 가슴을 쓸어내려는 찰나였다.


“어?”

“뭐야?”

“젠장!”


셋은 눈을 부릅뜨고 비명을 질렀다.


스핀이 멈추지 않았다.

차는 팽이처럼 빙빙 돌며 코너를 향해 날아갔다.

포장 도로가 끝나고 잔디밭과 펜스가 있는 지점이었다.


- 크윽.


무전기에서 준호의 당황한 목소리가 신음처럼 새어 나왔다.


***


차체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요동쳤다.

스턴트용 차는 승차감 좋은 일반 승용차와 달랐다.

엔진의 진동, 타이어의 마찰, 노면의 질감이 시트를 타고 온몸에 전해졌다.


연습 때 여러 번 성공해서 자신이 생긴 터.


‘감독님 앞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자. 그럼 내가 직접 스턴트하는 걸 허락할 지도 몰라.’


새벽에 내린 이슬비로 노면이 젖었다는 걸 간과한 게 화근이었다.

어려울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젖은 도로에서 드리프트하는 건 몇 배나 힘들었다.


“크윽.”


준호는 신음을 삼키고 핸들을 움켜잡았다.


RPM? 클러치? 토크?

연습 때는 익숙했지만, 막상 위기가 닥치자 계산할 겨를이 없었다.


세상이 빙빙 돌았다.

모든 걸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기분이었다.

가속 때문에 몸도 평소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졌다.


끼이익, 차는 순식간에 직선 주로를 지나 코너에 접근했다.

정신 없는 와중에도 도로를 벗어나 펜스에 부딪치는 광경이 떠올랐다.


‘위험하다!’


물론 안전 장치가 있어 죽지는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타박상이나 전치 2, 3주 정도로 끝날 것이다.

하지만 촬영을 얼마 안 남긴 시점에서 주연이 다치는 건 치명적인 악재였다.


‘컨트롤은 무리다. 어쩌지? 펜스를 들이받아?’


짧은 시간, 수많은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불현듯 시간의 흐름이 달라졌다.

영화에서 보통 이런 순간을 슬로우 모션으로 잡는데, 지금이 딱 그런 기분이었다.


- ······차가 마음대로 제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땐 당황하지 마시고 차체의 흐름에 맡기세요. 억지로 제어하려 들다간······.


문득 첫날 송대홍이 한 말이 떠올랐다.


‘차체의 흐름에 맡겨라!’


그거다.

준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덜컹, 기어를 저단으로 변경했다.

브레이크 대신 휠스핀으로 자연스럽게 감속했다.

그 다음 자체가 코너 쪽을 등지는 순간 지체없이 가속 페달을 밟았다.


카메라 스킬 중 이미지화가 자동으로 발동됐다.

차에 몇 바퀴 스핀을 준 뒤, 180도로 턴하고 관성으로 코너를 빠져나오는 멋진 그림이 떠올랐다.


- 저거 뭐야?


무전기에서 민 감독의 경악에 찬 외침이 들렸다.


귀청이 터지는 줄 알았다.

보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모양이었다.


- 제일 기본인 사이드 브레이크 드리프트를 보여준다고 하지 않았어?

- 그랬죠. 그런데 왜 리버스 엔트리 드리프트를 하지? 그건 드리프트 중에서 제일 어려운 기술인데.


정이훈과 송대홍의 황당한 목소리도 들렸다.


위험천만한 순간.

배운 적도 없는 최상급 드리프트를 펼쳐 스스로 위기를 벗어난 것이다.


***


서킷을 질주하는 자동차 안.


“리버스 엔트리? 내가 그걸 해냈다고?”


모두가 놀랐지만, 제일 크게 놀란 건 당사자인 준호였다.


드리프트의 꽃.

연습 때도 엄두를 못 낸 최고 스킬이었다.

대략적인 방법과 요령은 알고 있었지만, 의식하고 펼친 게 아니었다.


‘어떻게 한 거지? 차의 흐름에 본능적으로 대응한 느낌이었어.’


장갑 낀 오른손을 내려봤다.

어느새 땀으로 흥건해 미끌거렸다.

차의 진동 때문이 아니라 흥분으로 부들부들 떨렸다.


‘아니야. 스턴트에 우연은 없다고 했어. 난 누구보다 열심히 했어.’


얼떨떨한 감정은 잠시.

준호는 주먹을 움켜쥐고 씨익 웃었다.

그사이에도 차는 굉음을 내며 서킷을 질풍처럼 내달렸다.


‘방금 이걸 추격 씬에 추가하는 건 어떨까? 꽤 멋진 그림이 나올 텐데. 이따 감독님하고 얘기해 봐야지.’


문득 실소가 나왔다.

그렇게 진땀을 빼고도 또 영화를 생각하다니. 그새 영화인이 다 됐다.


‘도전 과제 : 연습은 실천처럼’을 달성했습니다.

‘기술 연기 - 운전’이 레벨6이 됐습니다.


시스템 창이 머리 위에 나타나 반짝거렸다.


‘이번에도 보너스 포인트 대신 레벨이 올라갔네.’


이걸로 확실해졌다.

레벨업하는 방식이 추가됐다.


- 전처럼 포인트를 사용해 레벨업, 혹은 자신의 노력으로 도전 과제를 달성해 레벨업한다.


두 방식은 비슷하면서도 결이 달랐다.


우선 포인트를 사용하는 방식은 직관적이고 편리했다.

반면 도전 과제를 달성해 관련 항목을 레벨업하는 건 소모되는 포인트가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도전 과제마다 보너스가 달라 정확히 측정할 수 없지만, 지난번의 레벨업까지 고려하면 대략 20~30%쯤 절약되는 것 같았다.


‘아마 모든 연기 요소에 적용되는 건 아닐 거야. 기술 연기 같은 특정 요소에만 적용되는 거겠지. 하긴,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이렇게 노력했는데. 아무런 보상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이내 감을 잡았다.

다만 왜 업그레이드가 된 건지는 그도 몰랐다.

그가 연기를 위해 특정 기술의 연습에 몰입하자 시스템이 이에 반응했다고 막연히 짐작할 뿐이었다.


[30포인트 획득]

‘도전 과제 : 연기는 시작됐다’를 달성했습니다.


물론 이전처럼 보너스 포인트도 빠지지 않았다.


‘시스템만 업그레이드된 게 아니지.’


시스템에만 의지하지 않는 진짜 배우.

준호도 새 영화 촬영을 앞두고 업그레이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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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액션의 기본 (1) +2 24.04.09 716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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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완벽한 놈 (2) +3 24.04.06 762 2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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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끝이 아닌 시작 (3) +3 24.04.02 872 29 11쪽
22 끝이 아닌 시작 (2) +1 24.04.02 893 23 12쪽
21 끝이 아닌 시작 (1) +2 24.04.01 959 29 12쪽
20 한눈팔지 않겠다 (2) +2 24.03.31 957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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