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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연기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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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향
작품등록일 :
2024.03.14 16:51
최근연재일 :
2024.04.2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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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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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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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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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경쟁자 (1)

DUMMY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머라이어 캐리의 연금 같은 캐럴이 울려퍼질 무렵.

‘형사’는 하이라이트 씬을 앞두고 촬영을 일시 중단했다.


“하이라이트 씬은 준비할 게 많아요. 태국 배우도 일정이 있다고 했고요. 강 배우님도 몇 달 동안 강행군하느라 힘들 테니까 재충전하고 오세요.”

민 감독이 모처럼 휴가를 줬다.


법정 근로 시간은 잊어버린 지 오래.

배우뿐만 아니라 감독과 스태프도 다들 지친 상태였다.


물론 쉰다고 쉬는 게 아니었다.

광고와 화보를 두 편씩 찍은 뒤, 겨우 오피스텔에서 한숨 돌렸다.

고향의 본가에 가서 부모님과 친구도 만나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짬이 안 났다.


“우린 걱정하지 마. 네 얼굴은 TV에서 매일 보니까. 추운데 몸조심하고, 인삼 액기스 보낼 테니까 꼭 챙겨 먹어.”


부모님은 자나 깨나 외아들 걱정.

명절에도 못 내려가 섭섭하실 텐데 내색하지 않으셨다.


“연말에 그냥 지나치기엔 아쉽고. 어디 여행이라도 보내 드릴까? 아니면 건강식품이라도?”


커피를 마시며 태블릿으로 이것저것 검색하던 도중이었다.


최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다.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핸드폰을 들었다.


“네, 대표님. 조금 늦었지만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잘 지내시죠?”

“지금 메리 크리스마스가 중요한 게 아닌 거 같은데요? 아직 소식 못 들으셨어요?”


최 대표가 장난스럽게 되물었다.


“네? 무슨 소식이요?”

“연말이면 으레 있는 행사. 시상식이잖아요. 아침 드라마라도 이례적으로 15%를 넘었는데. 좋은 소식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시상식은 언제나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방금 드라마 국장한테 들은 정보예요. 아직 확정된 건 아닌데, ‘내 여자의 남자’도 기대할 만하다네요. 일일 드라마치곤 시청률이 대박이었으니까요. 강 배우님도 미리 준비하세요. 소감 한두 마디는 멋지게 해야 남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 대표의 호탕한 웃음.

괜히 허튼소리나 할 사람은 아니었다.


‘시상식? 내가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상을 받는다고?’


준호는 머리를 맞은 듯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통화를 마친 뒤.

준호는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의 출연작은 ‘내 여자의 남자’ 한 편뿐.

하지만 최 대표 말대로 그 한 편이 대박이었다.

프라임 시간대의 드라마들과 견줘 봐도 그보다 나은 성적을 거둔 건 몇 편 없었다.


‘나도 상을 받을 수 있을까? 아니야.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15%가 넘었으니까 인기상이라도 줄 수 있는 거 아니겠어?’


기대가 안 됐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 2024년, 신인상. 내 여자의 남자, 강준호!


그날 밤, 준호는 TV로만 보던 광경을 꿈꿨다.

모든 배우가 일어나 손뼉 치는 가운데, 그가 턱시도를 멋지게 차려입고 무대에 오르는 광경이었다.


“절 지지해주신 팬 여러분, 언제나 뒤에서 묵묵히 절 지켜봐 주신 아버지,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상은······.”


손발이 조금 오그라들지만 수상 소감도 제법 멋졌다.


***


연기 대상, 연예 대상, 가요 대상 등.

방송국별로 각종 시상식이 경쟁적으로 열렸다.

케이블 TV와 OTT도 시상식이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공중파 방송국의 시상식이 메이저였다.


- 올해 KBC는 누가 대상을 받을까?

- 대상은 당연히 고민주지. ‘두바이의 꿈’으로 25%를 찍었는데.

- 아니야. ‘대야망’의 송시훈도 무시 못 해. 시청률은 20%가 안 됐어도 지금 한창 방송되고 있잖아. 연말에 방송 중인 드라마는 프리미엄이 붙는 거 알지?


언론과 팬은 시상식 며칠 전부터 갑론을박이었다.

몇몇 유력한 후보가 있었지만, 시상식은 뚜껑을 열 때까지 모르는 법이었다.


준호도 자주 언급됐다.


- 신인상도 궁금해. 시청률과 화제성만 보면 ‘내 여자의 남자’도 좋았잖아. 특히 여성한테 인기였고.

- 문제는 일찍 종방했다는 거야. 아무래도 최신작에 비해 임팩트가 떨어질 수밖에 없거든.

- 그럼 ‘이상한 나라의 요리사’, 정민재는 어때? 드라마가 끝난지 얼마 안 됐잖아. 소속사에서도 화끈하게 밀어주고 있고.

- 에이, 정민재는 오바지. 최고 시청률이 12%를 겨우 넘었는데.

- 그건 모르는 거야. 정민재에겐 수많은 소녀 팬이 있잖아.


시청률과 실적은 준호.

하지만 정민재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상한 나라의 요리사는 뭐지? 재미있나?”


촬영, 광고나 화보 촬영, 시나리오 검토.

시스템을 얻은 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전처럼 다른 영화나 드라마를 챙겨볼 여유는 없었다.


정민재에 대해서도 거의 아는 게 없었다.

유명한 아이돌 그룹의 센터 출신고 언뜻 들었을 뿐.

원래 남자는 같은 남자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법이었다. 걸 그룹이라면 모를까.


일단 녀석에 대해 검색해 봤다.


“와, 진짜 예쁘다. 무슨 남자가 이렇게 예뻐?”


녀석의 사진을 보자마자 감탄이 먼저 나왔다.


눈부신 피부.

우수에 찬 눈빛과 약간 긴 머리.

순정만화에 나오는 왕자님이 따로 없었다.

키가 좀 작은 게 흠이었지만, 비율이 좋은 탓에 카메라 빨도 잘 받았다.


이상한 나라의 요리사.

녀석이 나온 드라마도 다시 봤다.

자폐 스펙트럼을 지닌 여자 요리사가 주인공이고, 녀석은 로맨스 라인을 형성하는 변호사 역할이었다.


“아이돌 센터 출신이라 발연기를 할 줄 알았는데. 경력에 비하면 연기도 제법이네.”


녀석의 왕자님 이미지에 딱 맞는 역할이었다.

데뷔작부터 주연을 꿰찬 건 소속사의 힘이었지만, 훌륭히 연기한 건 오로지 녀석의 능력이었다.


“누구는 연상의 유부녀와 불륜이었는데. 누구는 소녀 팬의 마음을 울리는 로맨스였네. 부럽다.”


솔직히 질투도 났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소녀들.

혹은 동화 같은 로맨스를 꿈꾸는 젊은 여성들.

기혼의 중장년 여성들에게 인기인 준호와는 팬층도 확연히 달랐다.


1, 2화만 보려고 했는데.

두문불출하고 단숨에 12화까지 다 봤다.

그리고 마지막 화의 엔딩이 올라갈 때, 준호는 직감했다. 자신의 라이벌이 나타났음을.


‘나이도 동갑. 연령대는 다르지만 여성 팬의 지지를 받는다는 공통점도 있어. 대중과 언론도 우릴 자주 비교하겠지?’


두렵지는 않았다.

선동열 대 최동원. 나훈아 대 남진.

세기의 스타에겐 언제나 좋은 경쟁자가 있었지.


그의 경쟁자는 정민재.

다른 배우에게 연기로 밀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


연기 대상 사흘 전 자정 무렵.

최 대표가 오피스텔에 불쑥 찾아왔다.


‘무슨 일이지?’


계약하고 반년이 지났지만, 매니저도 없이 찾아온 건 처음이었다.


커피를 들고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이걸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저도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대표가 커피를 홀짝이며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무슨 일인데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뭘 먼저 듣고 싶습니까?”

“이왕이면 좋은 소식으로 듣죠.”


준호도 커피를 마시며 대표의 눈치를 살폈다.

대표의 굳은 표정을 보니 그도 덩달아 긴장됐다.


잠시 뜸을 들인 뒤.


“축하드립니다. 강 배우님은 신인상과 베스트 커플 상, 2관왕을 차지할 예정입니다. 다만 단독 수상은 아닙니다. SN 엔터의 정민재 아시죠? 아이돌 출신 배우. 그 녀석하고 공동 수상입니다.”


최 대표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었다.


공동 수상.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다.

연기뿐만 아니라 다른 상도 나눠 먹기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나쁜 소식은 뭡니까?”


준호는 좋아할 틈도 없이 재촉했다.


“방송국에서 상을 주는 대신 조건을 걸었습니다.”

“조건이요?”

“네. 앞으로 3년간 KBC의 드라마에 최소한 세 편 이상 출연해야 합니다. 연 2회 이상 KBC 예능에도 나와야 하고요.”

“무슨 작품인데요?”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몸값도 지금 기준으로 후려칠 테고요. 뭐, 방송국 사정도 이해는 합니다. 강 배우님이 더 뜨기 전에 입도선매하겠다는 거죠.”


최 대표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 공중파 방송국에 자주 나오면 좋은 거 아닌가?


이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게 아니었다.


출연료는 둘째 문제.

배우의 이미지에 안 맞는 작품에 출연할 수도 있었다.

혹은 준호를 내세우는 척하고, 방송국에서 밀고 있는 신인급을 끼워넣기로 출연시킬 수도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출연을 계약하는 건 리스크가 커. 이미지에 안 맞는 작품에 출연했다가 나락으로 간 배우가 어디 한둘이야? 게다가 말이 좋아 3년간 세 편이지. 호흡이 긴 대하드라마라도 걸리면, 그냥 KBC의 노예가 되라는 거잖아?’


준호도 대번 인상을 찌푸렸다.


연예인과 방송국의 파워 싸움, 혹은 길들이기.

풍문으로만 듣던 일을 직접 당하니 당혹스러웠다.


“만약 거절한다면요?”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연히 상은 물 건너 가는 거죠. 그리고 몇 년 동안은 KBC 드라마나 예능에 나올 수 없을 겁니다. 아니, 강 배우님만이 아니라 MW 소속 배우 전체에도 불이익이 있을걸요?”

“이상하네요. 전 가능성 있는 신인급일 뿐인데요. 지금 방송국 행동은 선을 넘은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래서 저도 황당한 거고요.”

“······.”

“그렇다고 상을 포기하기도 애매합니다. 강 배우님도 아시겠지만, 정민재가 비슷한 이미지로 치고 올라왔거든요.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는 상을 받고 누구는 들러리가 된다? 그럼 비교하기 좋아하는 언론과 팬의 반응은 뻔할 겁니다.”


최 대표의 말은 여기까지.

대중이 둘을 어떻게 비교할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KBC에서 머리 잘 썼네. 정민재의 SN 엔터가 친 KBC라는 건 유명하고. 이걸 빌미로 날 잡고, MW도 길들이겠다는 건가?’


준호는 팔짱을 끼고 곰곰이 생각했다.


회사만 생각하면 최 대표도 화를 낼 필요가 없었다.

회사에는 준호 외에도 배우가 많았고, 이번 기회에 친 KBC로 노선을 정해서 다른 배우들을 꽂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준호.

최 대표로서는 귀여운 막내를 노예로 팔아넘기는 심정이었다.

MW 액터스도 업계에서 제법 큰 편이었지만, 공중파 방송국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전 강 배우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막말로 방송국이 KBC만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신인상은 형사로 대박을 쳐서 영화제에서 받으면 그만이고요. 게다가 연기하는 것도 드라마보단 영화가 편합니다.”


최 대표는 준호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덧붙였다.


‘신인상은 의미가 크지. 대상은 다음을 노려도 되지만, 신인상은 일생에 딱 한번 받을 수 있으니까.’


솔직히 상 욕심이 났다.

수상 소감을 전하며 부모님과 친구들을 언급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 거래에 응하고 신인상을 받을까? 공중파 드라마로 안정적인 필모도 쌓을 수 있잖아.

- 방송국은 자선사업가가 아니야. 상을 빌미로 날 옭아맬 거야. 드라마 스케줄 때문에 마음에 드는 영화를 놓칠 수도 있고.

- 그래서 신인상을 포기하자? 정민재한테 지는 건데 괜찮아?

- 아직 영화가 있잖아.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받으면 되지.

- 그건 내년이야. ‘형사’가 대박 난다는 보장도 없고. 게다가 상을 받는 건 연기 시스템에도 큰 도움이 돼. 평가 항목에는 ‘수상’ 실적도 있었고, 신인상은 특별 가산점까지 붙는다고 했으니까.


마음속에서 두 명의 준호가 옥신각신했다.


둘 다 일리가 있었다.

심판인 제3의 준호도 선뜻 판단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정민재? 내가 왜 녀석을 이길 생각만 하지?’


문득 뭔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가 신인상을 의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민재.

따라서 이번 일도 정민재를 실마리로 풀면 간단했다. 그가 자신있어하는 연기로.


“좋습니다. KBC의 제안을 받아들이죠. 대신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정민재라는 친구가 궁금했거든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준호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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