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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연기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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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3.14 16:51
최근연재일 :
2024.04.2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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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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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8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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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완벽한 놈 (4)

DUMMY

근처 옥상에서 촬영한 모양이었다.

왼쪽 상공에서 비스듬히 내려보는 각도였다.

좋은 카메라를 썼는지 줌으로 당겼는데도 화질이 선명했다.


준호가 야구 모자를 눌러 쓰고 밴에서 내렸다.

말로 좋게 풀려는 모양이었다. 억지 미소를 머금고 손을 내밀었다.


너무 멀어서 대화가 안 들렸다.

한 놈이 가래침을 뱉고 준호의 앞을 막아섰다.

건들거리는 폼을 보니 욕을 섞어 가며 위협하는 것 같았다.


준호는 인상을 찌푸리고 좌우를 곁눈질했다.

매니저 둘이 얼굴을 감싸고 쓰러진 상태였다. 그의 얼굴에서 억지 미소가 사라졌다.


경호원은 다른 놈에게 팔이 붙들린 상태였다.

발목을 후려쳐 상대를 쓰러뜨린 뒤 준호의 왼쪽에 섰다.


퍼억, 갑자기 허물어지는 경호원.

다른 놈이 뒤에서 주먹으로 뒤통수를 후려쳤다.

죽지는 않겠지만 충격이 꽤 커 보였다.


“안 돼!”


준호가 아니라 황 작가의 비명이었다.

그녀는 자기 일처럼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준호는 움켜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아직은 참는 모양이었다.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의 맞은편.

대가리로 보이는 놈이 준호의 뺨을 치려고 손을 올렸다.


준호의 인내심은 여기까지.

고개를 살짝 젖혀 피한 뒤, 놈의 두툼한 목을 가격했다.


산탄총 같은 타격.

퍼퍼퍽, 주먹이 너무 빨라 잘 보이지도 않았다.


놈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 뒤로 넘어갔다.

호흡도 어려운 모양이었다. 입에 게거품을 물고 헐떡거렸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 한 전개.

깡패들도 당황한 듯 서로 눈치만 살폈다.


이내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놈들은 뭐라고 욕하며 그를 넓게 둘러쌌다.


준호는 놈들을 둘러보며 재킷 안주머니에서 뭔가 꺼냈다.


무기인 줄 알고 움찔하는 깡패들.

하지만 인제 보니 얼마 전에 팬에게 선물 받은 고가의 펜이었다. 검은색 금속 끄트머리가 제법 묵직해 보였다.


크라브 마가는 실전형 현대 무술.

실생활의 다양한 상황 속에서 생존에 중점을 뒀다.

평범한 펜도 그의 손에 들리면 가공할 살인 병기가 됐다. 날이 시퍼런 칼보다 펜이 더 무서웠다.


한 놈이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준호는 상체를 숙이고 놈의 품을 파고들었다.

왼쪽 턱 아래, 신체에서 가장 약한 부위 중 하나에 펜을 찔러 넣었다.


펜 뚜껑을 안 연 게 다행이었다.

펜촉으로 찔렀으면 출혈이 심했을 터.

놈은 시간이 정지된 듯 주먹을 뻗은 자세로 멈췄다.

퍼퍼퍽, 다시 준호의 고급 펜이 놈의 급소를 소나기처럼 찔렀다.


놈들은 숫자가 많은 게 오히려 독이 됐다.

영상을 몇 배속으로 재생한 듯 빠르고 현란한 움직임.

발차기나 훅 같은 큰 동작은 없었다. 준호는 상대의 급소만 깔끔하게 치고 빠졌다.


카메라가 최대한 줌을 당겨 그 모습을 담았다.


“그래, 다 죽여! 죽여 버려!”


황 작가는 허공에 주먹질하며 응원했다.


도도한 드라마 작가?

지금은 준호의 액션에 빠진 열혈 팬 중 하나였다.


***


2분가량의 짧은 액션이 끝난 뒤.


“와, 이거 뭐야? 펜은 칼보다 강하다더니. 그 펜을 이렇게 쓰는 거였나?”


황 작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손바닥을 내려보니 어느새 땀으로 흥건했다.


처음엔 영화처럼 짜고 치는 줄 알았다.

놈들이 모두 쓰러지고 곧 구급차가 온 다음에야 실제 상황임을 깨달았다.


액션이 끝난 뒤.

다시 정장을 입은 준호가 나왔다.


“······가족처럼 친한 매니저와 경호원이 쓰러진 상황이었습니다. 몇 번이나 참으려 했습니다만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려서······.”


준호는 재차 고개를 숙이고 사죄문을 읽어 내려갔다.


소속사에서 써 준 모범 답변이었다.

격정을 삭이려는 듯 입술을 살짝 깨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하마터면 모니터를 끌어안고 토닥거릴 뻔했다.

다른 보조 작가들이 없이 오피스텔에 혼자 있는 게 다행이었다.


- 정당방위네. 배우는 얼굴이 생명인데.

- 이게 폭행죄라면 그건 법이 잘못된 거지.

- 맞아. 이 상황에서 어쩌라고? 경찰 올 때까지 맞고 기다리라고? 옜다, X 먹어라.

- 병XXX들. 하나한테 열 명이 두들겨 맞고 언론플레이 한 거야? 한강이나 가라.

- 한강의 물고기들은 무슨 죄라고. 우리가 마실 물인데. 공기가 아까운 놈들입니다.

······


영상 아래에 있는 실시간 댓글 창도 난리였다.

잠시나마 준호를 의심하던 사람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섰다.


- 내가 드라마 촬영장에서 직접 본 썰 푼다. 난 강준호가 폭행이라고 했을 때부터 안 믿었음. 강준호 인성은······.


황 작가도 신이 나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 언니야, 형부 소식 들었어? 우리 형부가 글쎄······.


동생 황순희도 기다렸다는 듯이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형부? 이것이 또 지랄이네.”


움찔하는 황 작가.

피식 실소가 나왔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


같은 시각, MW 액터스 회의실.


“오케이. 이제 끝난 거나 다름없습니다. 여론이 완전히 강 배우님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최 대표는 흡족하게 웃으며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며칠 전, 준호가 부탁한 건 바로 이것이었다.


“······이철호는 물리적 방법도 동원할 겁니다. 그러니 제 동선 주위에 카메라를 배치해 주세요.”

“강 배우님이 스스로 미끼가 되겠다는 겁니까?”

“그렇죠. 분위기를 보니까 그 스폰서는 신분을 함부로 노출할 수 없는 사람 같더라고요. 그러니 여차해서 영상을 터뜨려 버리면, 그 스폰서도 물러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의 동선은 오피스텔, 회사, 아니면 촬영장뿐이었다.

24시간 붙어 있는 게 힘들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강 배우님이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냥 법대로 하는 건 어떨까요?”

“대표님도 아시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법 위에 있다는 거. 게다가 스폰서는 절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제가 겁을 먹도록 위협하는 정도일 거예요.”


준호는 자신만만하게 덧붙였다.


결과는 모두가 본 대로.

놈들도 근처 CCTV를 부수는 등 잔머리를 제법 굴렸지만, 멀리서 MW의 직원이 촬영하는 것까진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진짜 조폭도 아니었다지? 동네 양아치들이었다는데. 문신도 그린 거 아니야?’


피식 실소가 나왔다.


다만 매니저와 경호원이 깡패한테 맞은 건 미안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정당방위를 강조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전 괜찮습니다. 덕분에 병실에서 푹 쉬고, 합의금도 두둑하게 받을 테니까요. 요즘은 맞은 놈이 갑이잖아요.”


김 매니저가 사람 좋게 웃어서 더 미안했다.

나중에 따로 보상해야 할 것 같았다. 보너스라도 두둑하게 주든가.


“전에 다스 패치의 카더라에 대응하신 것도 그렇고. 강 배우님은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하신 거예요?”


앞에 앉은 임 이사가 웃으며 물었다.


“전 밑바닥에 오래 있었잖아요. 눈물 젖은 빵도 많이 먹었고. 계속 위에만 있었던 사람들은 잘 모르더라고요.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단역으로 촬영장을 전전하며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나 봤다.

그리고 그중에는 세상 무서울 것 없이 잘 나가다가 한순간에 추락한 사람도 여럿이었다.


언론 대응을 잘못해 망한 케이스도 그중 하나.


‘학교에서 책으로 배우는 것만 공부는 아니지. 실패한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도 좋은 인생 공부였어.’


준호는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경찰은 일이 커질 때까지 뭘 했나?

깡패들은 왜 처음 보는 연예인에게 시비를 걸었나?

깡패들은 어떻게 준호의 퇴근길을 알았을까? 혹시 사전에 계획된 일인가?


논리적으로 따지면 작위적인 면이 많았다.

하지만 액션의 임팩트가 워낙 컸다. 다른 의문들은 소리 없이 묻혔다.


이건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영화는 곰곰이 생각해 보면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일종의 영화적 한계야. 이걸 어떻게 교묘하게 감추느냐에 따라 명작이 되기도 하고, 졸작이 되기도 하지.’


준호는 소리 죽여 웃었다.


후속 대응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홍보팀을 풀 가동하겠습니다. 댓글부대까진 아니더라도 주요 커뮤니티에 강 배우님께 호의적인 글을 계속 올려야죠. 친분이 있는 기자들도 섭외해 뒀으니까 기자회견을 열어서······.”

“법무팀도 준비됐습니다. 정당방위는 당연하죠. 오히려 이쪽이 손해배상을 받아내야 할 판입니다. 강 배우님 일정에 차질을 빚은 것까지 전부 계산해서······.”


임 이사와 변호사가 다음 절차를 간단히 설명했다.


법과 여론.

양쪽에서 정신없이 몰아치는 작전이었다.


“일을 너무 크게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특히 법무 쪽이요. 배우 입장에서도 이런 일은 오래 끌고 가 봐야 좋을 게 없거든요. 다시는 이런 짓을 못 하게 적당히 엄포만 놓는 선에서 마무리합시다. 그리고 깡패들도 만나서······.”


최 대표는 둘의 보고를 메모하며 추가 대응을 지시했다.


‘역시 듬직하다니까.’


준호는 그걸 보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철호는 어떻게 됐을까? 스폰서 브로커들은 조폭들하고 연결돼 있다던데. 어딘가에 산 채로 파묻히는 거 아니야?’


문득 놈이 걱정됐다.

하지만 자기와 상관없는 일.


‘자업자득이야. 깡패까지 동원한 건 선을 넘었지.’


사적인 감정에 치기엔 연예계가 너무 살벌했다.


***


그날 밤, 강남의 비밀 주점.


“죄송합니다. 원래 적당히 위협만 할 생각이었는데, 강준호가 싸움까지 잘할 줄은 몰랐습니다.”


이철호는 멋쩍게 웃으며 말끝을 흐렸다.


평소와 달리 너무 긴장했다.

양주를 따르는 두 손이 벌벌 떨렸다.


“병X.”


잔의 주인이 붉은 입술을 달싹거렸다.

누구에게 하는 욕인지 주어가 불분명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녀석에게 보낸 선물들은 다 증거로 확보해 놨거든요. 강준호가 팬들에게 고가의 선물을 요청했다. 곧 이런 내용으로 기사를 터뜨리겠습니다. 녀석은 고급 스포츠카라고 좋아했겠지만 그게 다 미끼였죠.”


이철호는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덧붙였다.


조명이 어두웠다.

젊은 여자의 실루엣만 어렴풋이 보였다.


“머리가 나쁘면 부지런하기라도 해야지. 뉴스 안 봤어?”

“네?”

“고가의 선물은 부담돼서 다 돌려준다잖아. 돌려줄 수 없는 건 전부 자선 경매에 부쳐서 결식아동을 돕겠다고 하고. 이미 네가 건드릴 레벨이 아니야.”


그녀는 쏘아붙이고 술을 비웠다.


이로써 준호는 천상계 이미지를 구축했다.

대중은 그에게 숨겨진 아이가 있었다고 해도 용납해줄 분위기였다.


“제가 다시 녀석을 만나 보겠습니다.”

“됐어. 그분께서 강준호를 더 마음에 들어 하셨어. 그동안 숱한 놈들이 발밑에서 기었지만, 그런 완벽한 놈은 처음이라나? 흠집이라도 나면 곤란하니까 당분간은 그대로 두라는 게 그분 말씀이야.”


그녀는 잔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아, 차랑 오피스텔 키는 놓고 가. 그건 법인 명의였으니까. 선불 받아 간 건 일주일 안에 입금하고.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워야 하는 거 알지?”


그녀가 입가에 엷은 조소를 머금고 덧붙였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병X. 꼭 말로 해야 알겠어? 그동안 즐거웠다고.”

“누님. 갑자기 그건 좀······.”


이철호가 따라가려는 찰나, 경호원 둘이 들어와 그를 가로막았다.


“선수끼리 찌질하게 왜 이래? 너도 그동안 재미 봤잖아? 나 몰래 삥땅도 많이 쳤고.”


그녀는 차갑게 그를 쏘아보고 방을 나섰다.


쾅, 매몰차게 닫히는 문.


“그래도 일주일 안에 선불을 갚으라는 건······.”


이철호의 말은 두꺼운 방음벽에 묻혔다.

잠시 후, 흐느끼는 듯한 신음과 비명이 엷게 새어 나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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