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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연기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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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3.14 16:51
최근연재일 :
2024.04.2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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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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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그레이드 (1)

DUMMY

24시간 불가마 사우나.

치이익, 안개처럼 짙고 뜨거운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숨을 쉬는 것도 힘들었다.

준호는 작은 수건에 찬물을 적셔 코와 입을 가렸다.

그리곤 엄지와 검지, 중지 세 손가락만 이용해 푸쉬업했다.


‘······98, 99, 100.’


땀방울이 육수처럼 흘러내렸다.

눈이 따끔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앗, 뜨거워!”


트레이너가 들어오다가 경악했다.

벽에 걸린 온도계가 58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미쳤어요? 이렇게 무리하면 오히려 근육이 상한다고요.”


트레이는 문을 활짝 열고 타월을 부채처럼 휘저었다.


외부의 찬 공기가 들어오니 좀 살 것 같았다.


“시간이 없어요. 앞으로 2주일 안에 5kg을 감량해야 합니다. 말이 좋아 5kg이지, 근육은 유지하면서 지방만 빼야 한다고요.”


준호는 푸쉬업을 멈추고 나무 의자에 앉았다.


역시 오버 워크였다.

입술이 갈라지고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부모님과 팬들이 보내 준 각종 영양제도 소용없었다.


영화 ‘형사’의 출연 계약서에 사인한 뒤.


“주인공 최진우는 복수심과 형사로서의 사명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입니다. 그럼 이런 내적 갈등을 관객에게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그야 당연히 몸이죠. 몸도 연기의 일부이니까요.”

“맞습니다. 근데 준호 씨는 몸이 너무 좋아서 문제예요. 5kg. 딱 5kg만 뺍시다.”


민 감독이 감량을 신신당부했다.


수척한 얼굴. 하지만 옷을 벗으면 성난 근육이 드러난다.

시나리오를 소설처럼 쓴 트리트먼트에도 이렇게 설명돼 있었다.


“힘들지 않으세요?”


트레이너가 그의 옆에 앉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당연히 힘들죠. 하지만 이게 배우의 일이잖아요. 관객에게 좋은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한 짓도 할 수 있습니다.”


준호는 억지 미소를 머금었다.

감량의 후유증으로 눈가에 잔주름이 많아졌다.


물론 무작정 감량에 나선 게 아니었다.

‘캐릭터 연기 - 외형 일체화’에 63포인트를 투입, 레벨 6으로 만들었다.

드라마 촬영 중 급하게 근육을 만들었던 것과 같은 레벨이었다.


“배우는 마냥 멋있고 편한 직업이 아니네요. 전 죽었다 깨어나도 강 배우님처럼 못할 거예요.”


준호는 독종 중의 독종.

트레이너는 새삼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오케이. 휴식 끝.”


준호는 심호흡하고 푸쉬업 자세를 취했다.

트레이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대기했다.


도전 과제 : 연기는 시작됐다.

- 제작발표회 전까지 캐릭터의 몸을 완성하세요.

- 성공 시 화제성 + 10포인트. 준비성 + 10포인트. 동료 평가 + 10포인트.

- 실패 시 준비성 - 50포인트. 동료 평가 - 100포인트.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첫 오디션 때는 보너스가 겨우 3포인트였는데.

영화의 스케일이 커지자 도전 과제에 걸린 포인트도 많아졌다.


‘맞아. 작품 준비성도 포인트 획득 항목 중 하나지.’


준호는 이를 악물고 푸쉬업을 재개했다.


제작발표회는 다음 주.

그러나 촬영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


준비는 몸을 만드는 것만이 아니었다.

액션물은 시대극과 더불어 준비할 게 가장 많은 장르였다.


“영화 중반에 총격 씬과 자동차 추격 씬이 있어요. 스턴트맨이 대신하겠지만 배우도 그럴싸하게 시늉은 해야죠.”


콘티 회의 때 무술 감독이 한 말이었다.


“군필이라 총격 씬은 자신 있습니다. 조금만 연습하면 자세가 나올 거예요.”

“잘됐네요. 운전 경력은요?”

“그게 문제예요. 솔직히 장롱 면허거든요. 서울에서는 운전할 일이 거의 없잖아요. 촬영장 출, 퇴근도 매니저랑 하고.”


준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그럼 곤란한데요. 스턴트나 CG를 이용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민 감독이 난감한 표정으로 콘티를 보여줬다.


칼치기 레이스.

심야의 고속도로 역주행.

아슬아슬한 골목길 고속 주행 등.

민 감독은 액션 거장답게 자동차 씬도 공들여 준비했다.


‘앞으로 가는 거야 조금만 연습하면 될 테고. 드리프트하고 후진이 특히 부담되네.’


그냥 포인트로 스킬을 사면 되는 거 아닌가?

수영과 크라브 마가도 즉석에서 사서 잘 썼으니까.


이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우선 시스템의 포인트 획득은 짠 내 나는 자린고비였다.

전보다 포인트를 얻는 게 많아졌지만 그만큼 나갈 데도 많아졌다.


‘레벨 4에 머물고 있는 감정 요소들도 하나씩 레벨업해야 해. 무슨 돌발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여유도 필요하고.’


게다가 시스템은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도 중요시했다.

포인트 획득 중에는 작품 준비성과 동료 평가 항목도 있었다.


“액션 스쿨에서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액션 배우만 액션 스쿨에 다니는 게 아니었다.

요즘은 장르를 불문하고 액션 스쿨이 배우의 필수 코스로 여겨졌다.


‘언제까지 시스템에 의지할 수 없지. 나도 명색이 배우인데. 힘닿는 데까지 해 보고 그다음에 시스템을 이용하자. 그럼 최소한 준비성 포인트라도 받을 테니까.’


준호는 콘티 북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


최 대표의 소개로 액션 스쿨에 등록했다.

격투기 외에 사격, 운전, 클라이밍, 와이어 액션 등 배워야 할 게 산더미였다.


“어서 오십시오. 최 대표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강민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강 배우님 격투 영상은 저도 봤습니다. 아주 예술이시더군요. 군필에 피지컬과 운동신경도 좋으시고. 강1, 2주일만 연습해도 금방 성과가 나타날 겁니다.”


송대홍이란 무술 감독이 악수를 청하며 반갑게 맞아줬다.

정이훈과 더불어 대한민국 1세대 무술 감독의 투톱이었는데, 자동차나 낙하 등 각종 스턴트에 일가견이 있다고 했다.


새벽에 사우나에서 땀을 뺀 뒤.

오전에는 서울 외곽의 서킷에서 운전 훈련에 들어갔다.

승용차는 당연히 수동이었고,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내부를 개조했다.


먼저 송대홍이 준호를 옆에 태우고 서킷을 한 바퀴 돌았다.

두꺼운 안전복과 헬멧, 소형 카메라와 마이크 등 장비도 많았다.


“드리프트란 차량의 후방을 움직여 자체를 제어하는 주행법입니다. 우리끼린 뒤를 날린다는 표현을 쓰죠. 서스펜션은 보통 일체형을 쓰고, 출력은······.”


송대홍이 차의 기본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했다.

 

출력이 어쩌고, LSD(Limited Slip Differential)이 저쩌고.

낯선 용어가 많았는데 특히 유압 E브레이크(Hydro E-brake)와 듀얼 브레이크 캘리퍼(Dual brake caliper)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외계어를 듣는 기분이었다.

 

‘영화에서는 대충 기어를 바꾸고 핸들을 꺾는 것만 나오던데.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네.’


솔직히 설명의 반도 이해를 못 했다.


“한꺼번에 다 이해하려고 하지 마세요. 일반인이 운전 학원에서 배운 것과 전혀 다르니까요. 가끔 젊은 분들이 혈기로 영화를 흉내 내시는데, 그럼 바로 요단강 건넙니다.”


송대홍이 그의 생각을 읽은 듯 웃으며 덧붙였다.


실내로 자리를 옮긴 뒤.

두 시간 동안 이론을 공부했다.


“자동차 스턴트는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입니다. 전문가들도 스턴트 중에는 차가 마음대로 제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땐 당황하지 마시고 차체의 흐름에 맡기세요. 억지로 제어하려 들다간 차가 전복될 수도 있거든요.”


가속과 감속 컨트롤.

고속에서 레코드 라인을 그리며 코너에 진입하는 기술.

흐트러진 차의 자세를 재빨리 잡아주는 카운터 스티어링 조작 등.


송대홍은 화이트보드에 그림까지 그려 가며 기본적인 이론을 설명했다.


드리프트는 종류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관성, 사이드 브레이크, 클럭치 킥, 쉬프트 락, 리버스, 파워 오버 등으로 다양했다.


간단히 점심을 먹은 뒤.

다시 서킷으로 나서 연습에 나섰다.


“드리프트의 기본은 차량 후미를 미끄러뜨리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먼저 기어를 1단으로 넣고 클러치를 밟은 상태에서 핸들을 한쪽으로 끝까지 꺾어 줍니다. 그다음 가속 페달을 밟고 클러치를 떼면 뒤로 도는데, 이게 드리프트의 기본입니다. 이걸 응용해 드리프트 하면서 빙글빙글 도는 걸 원돌이, 혹은 도넛이라고 하죠.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도넛 모양으로 스키드 마크가 남거든요.”

“기어 1단, 클러치, 핸들 끝까지, 가속 페달, 클러치.”


준호는 송대홍의 말을 나직이 되뇌었다.

손과 발로는 클러치와 사이드 브레이크를 움직이는 시늉을 했다.


오케이, 준비 완료.


도전 과제 : 두려움에 맞서라

- 연습에서 멋진 드리프트에 성공하세요.

- 성공 시 ‘기술 연기 - 운전 레벨 4’

- 실패 시 준비성 - 30포인트


시스템 창이 반짝거리며 재촉했다.


‘어? 성공 시 보너스가 아니라 레벨업이라고? 이런 것도 있었나?’


잠깐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시스템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가자.”


크게 심호흡한 뒤.

마음속으로 시뮬레이션한 대로 기어를 넣고 출발했다.


아니, 출발하려고 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굉음을 울리려 폼나게.


피시식, 시동이 꺼졌다.


“젠장.”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


1종 보통으로 면허를 딴 게 8년 전.

가끔 렌터카를 빌려 운전할 때도 항상 오토매틱이었다.


“드리프트든 뭐든 일단 출발하셔야죠.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면허 어떻게 따셨습니까?”


조수석의 송대홍이 웃음을 참고 점잖게 물었다.


***


서킷에서 연습 사흘째.

이제야 수동 변속과 핸들링에 익숙해졌다.


“먼저 사이드 브레이크 드리프트를 해보시죠. 이게 드리프트 기술 중에서는 제일 쉽거든요.”


송대홍의 시범.

준호는 조수석에 앉아 유심히 지켜봤다.


“핸드 브레이크를 올리고 클러치를 밟은 상태에서 뒷바퀴가 못 움직이게 록을 겁니다. 보통 후륜구동 차량에서 사이드 브레이크만 올리는 걸로 알고 있는데, 중요한 건 클러치예요. 일시적으로 동력을 차단해야 하거든요.”


이게 제일 쉽다고?

드리프트 기술 중에서 그나마 쉽다는 뜻이었다.

컨트롤이 안 되면 스핀을 잔뜩 먹어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첫 번째 도전은 실패.

핸드 브레이크 올리는 걸 주저하다가 직전 주로를 지나쳤다.


두 번째 도전도 실패.

핸드 브레이크는 올렸지만 클러치를 놓쳤다.

갑작스러운 감속에 당황해서 발을 헛디딘 탓이었다.


세 번째 도전도 실패.

이번엔 클러치에만 신경 썼다.

핸드 브레이크가 어설프게 걸리는 바람에 아찔한 상황이 연출됐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일반 주행에서는 변속과 브레이크를 잘하시잖아요.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에 주저하는 게 문제일 뿐. 한 번만 성공하면 그다음엔 쉬울 거예요.”


옆에 앉은 송대홍이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잠깐 차에서 내렸다.

찬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고 심기일전한 뒤 재도전에 나섰다.


‘송대홍 말이 맞아. 겁먹지 말자.’


직선 주로에 들어서자 과감하게 사이드 브레이크를 올렸다.

동시에 클러치를 힘껏 밟았고, 핸들은 양손으로 굳게 잡아 컨트롤에 집중했다.


뒤에서 누가 잡아채는 느낌이었다.

스핀을 먹은 자체가 전진하며 빙빙 돌았다.

끼이이익, 타이어가 높고 길게 비명을 질러댔다.


“큭.”


준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토할 것 같았다.

목구멍에서 점심때 먹은 참치 샌드위치 맛이 느껴졌다.


한 바퀴, 두 바퀴.

시선이 빙빙 돌다가 직선 주로와 일치한 순간이었다.


‘지금이다!’


번개처럼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렸다.

동시에 클러치를 떼고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다.


콰아앙. 

차가 굉음을 내며 서킷을 미끄러져 나갔다.


- 오케이. 그겁니다!


환호하는 스태프들.

옆에 앉은 송대홍이 헬멧을 치며 뭐라 외쳤다.


하나도 안 들렸다.

준호의 시선은 정면의 서킷에 고정됐다.

노면을 따라 오른쪽으로 부드럽게 핸들을 꺾었다.


‘도전 과제 : 두려움에 맞서라’를 달성했습니다.

‘기술 연기 - 운전’이 레벨4가 됐습니다.


머리 위에 시스템 창이 작게 떠올랐다.

포인트를 안 썼는데도 레벨이 오른 건 처음이었다.


‘어? 시스템이 바뀌었나?’


알림을 곁눈질하고 당황하는 준호.

하지만 이내 엷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시스템은 보조일 뿐. 중요한 건 나 자신이야! 내 노력으로도 레벨을 올릴 수 있어!’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시스템의 도움을 받지 않고 처음으로 해낸 순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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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완벽한 놈 (3) +4 24.04.07 768 26 12쪽
27 완벽한 놈 (2) +3 24.04.06 762 2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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