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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연기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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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3.14 16:51
최근연재일 :
2024.04.2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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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2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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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경쟁자 (4)

DUMMY

강준호 대 정민재.

긴 무명을 견딘 잡초 대 월드 스타 아이돌.

반항아적 기질을 지닌 냉미남 대 소녀 팬을 자극하는 동화 속 왕자님.


둘은 여러모로 대조적이었다.

체형도 준호가 크고 남자다운 반면, 정민재는 조금 작고 호리호리했다.

비교하길 좋아하는 언론과 대중이 둘을 좋은 먹잇감으로 삼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같이 연습해 보니 비슷한 점이 많았다.


“네 성공 스토리는 인터넷에서 봤어. 보자마자 내 옛날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나도 연습생 생활을 오래 했거든요. 불안한 미래 때문에 고민도 많이 했고. 배우도 경쟁이 치열하지만 아이돌도 만만치 않아.”


정민재가 두 번째 만남에서 한 말이었다.


동갑. 똑같은 신인왕 후보.

자연스럽게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썼다.

나중에 술이라도 한잔하면 완전히 말을 놓겠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라이벌이 아니라 좋은 친구를 만난 기분이네.’


준호도 녀석과 대화하는 내내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끊임없는 도전 정신도 둘의 공통점이었다.

준호가 형사에 출연한 가장 큰 이유는 연기 변신에 대한 욕심.

녀석이 인기가 보장된 아이돌에서 벗어나 배우가 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네 특기는 춤과 노래, 내 특기는 다양한 연기지. 그러니 언젠가 우리 둘의 특기를 결합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


연습하다가 잠깐 쉴 때, 준호가 커피를 마시며 물었다.


녀석은 아직 배우보다 가수의 이미지가 강했다.

신인상에 거론될 만큼 훌륭히 연기했지만, 한 작품밖에 안 해 검증이 부족한 탓이었다.


반면 그는 단역이라도 외계인 연기까지 해 봤다.

연기의 폭은 그가 녀석보다 몇 배나 넓었다. 자신의 특기가 연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우리 둘의 특기를 결합한다? 어떻게?”

“음악과 연기의 결합.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뮤지컬에 도전해 보는 거야. 뮤지컬 주연으로 더블 캐스팅된다면 그림도 좋겠지.”

“그것도 재미있겠네. 우린 연기 스타일이 다르니까. 같은 대본이라도 전혀 다른 연기가 나올 테지. 팬들도 골라 보는 재미가 있을 테고.”


역시 통하는 게 많았다.

녀석은 준호의 말뜻을 이해하고 히죽 웃었다.


‘뮤지컬도 연기의 한 분야. 시스템에 당연히 스킬이 있지.’


연기 학원에서도 뮤지컬을 공부했다.

음치라서 본격적으로 해보진 않았어도 기본적인 이론은 알고 있었다.


“그럼 한번 입을 맞춰볼까?”


녀석의 제안.

물론 남자끼리 뽀뽀라도 하자는 뜻은 아니었다.

최 대표와 김 이사는 움찔했지만, 뮤지컬에서 듀엣곡을 일컫는 말이었다.


“좋지. 마침 내일 있을 시상식에 딱 맞는 게 있거든.”


준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과 뮤지컬의 씬을 맞춰 보기 전.


“레디, 액션.”


화장실에 가서 시스템 창을 열었다.


······

직업 : B급 연기자

획득 포인트 : 2,712

잔존 포인트 : 84

······


신인상을 받기 전이었다.

잔존 포인트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포인트 사용 - 무대 연기 - 뮤지컬’ 항목으로 들어갔다.


뮤지컬은 단지 춤추고 노래하는 게 아니었다.

노래에도 독창, 남성 듀엣, 혼성 듀엣, 중창, 합창 등으로 종류가 많았다.

그중 남성 듀엣에 31포인트를 투입, 레벨을 5로 만들었다. 그다음 무대 제스처 항목에도 31포인트를 투입했다.


잔존 포인트는 22.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예상대로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즉석에서 처음 합을 맞춰봤는데도 훌륭한 앙상블이 나왔다.

레벨 5라 조금 부족한 감도 있었지만, 정민재가 아이돌 센터답게 티 안 나게 커버해 줬다.


“미쳤다. 이게 오늘 처음 만난 배우들의 합이라고요?”

“우리 민재야 원래 가수니까 그렇다고 쳐도. 강 배우님은 언제 그렇게 노래를 연습한 겁니까? 당장 가수로 나서도 되겠는데요?”


최 대표와 김 이사도 눈이 휘둥그레져 감탄했다.


다만 그때는 뮤지컬이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스템에서 뮤지컬의 요소를 레벨업했지만, 녀석과 재미 삼아 잠깐 합을 맞춰 보기 위함이었다.


여기까지가 어젯밤에 있었던 일.

준호의 시간은 연기 대상 시상식 무대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이걸 써먹을 시간이 빨리 왔네.’


그가 눈짓한 건 바로 이것.

정민재와 한번 해본 뮤지컬의 일부였다.


***


불 꺼진 무대.

빛의 기둥이 내려와 준호와 정민재를 감쌌다.

둘은 감정을 잡기 위해 눈을 지그시 감고 심호흡했다.


“뭘 보여 주려는 거지?”

“연습할 시간도 별로 없었을 텐데. 언제 준비한 거야?”


객석의 모든 이는 작게 웅성거리며 둘을 주목했다.


“준호 씨가 뭘 준비했대요?”

“글쎄요. 저한테도 말을 안 했는데.”


감독과 황 작가마저 의아해 고개를 갸웃했다.


‘3, 2, 1.’


왼발을 가볍게 굴러 리듬을 맞춘 뒤.


“Tonight, tonight. The world is full of light with suns and moons all over the place.”


먼저 준호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포문을 열었다.


반주는 없었다.

하지만 뮤지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곧 알아차렸다.


‘이야, 선곡이 좋네.’

‘이런 시상식에 딱 맞는 노래지.’


일부는 대번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Tonight.

주인공 토니와 마리아가 듀엣으로 부르는 곡으로, 사랑에 빠진 남녀가 서로에게 진심을 고백하는 내용이었다.


준호도 사랑을 고백했다.

대상은 공연을 보고 있는 모든 관계자와 팬.

표정, 눈빛, 작은 제스처에서 순수한 사랑이 느껴졌다.


‘지금 나한테 고백하는 건가?’

‘이런 남자라면 당연히 오케이지.’


완벽한 몰입도.

방청석의 소음이 사라졌다.

다들 기도하듯 양손을 모으고 둘의 앙상블을 경청했다.


“Today, the world was just an address······.”


정민재가 앞으로 한 걸음 나오며 달콤한 미소를 머금고 받았다.


본래 여성 파트였다.

남자에겐 상당히 부담되는 키였지만, 녀석은 가수답게 안정된 음정을 자랑했다.


“Tonight, tonight, It all began tonight.”


다시 준호의 차례.

흔들림 없는 고음은 기본이었다.

뮤지컬 전문 배우처럼 표정과 제스처가 생생했다.


“Today, all day I had the feeling a miracle would happen.”


정민재가 이에 질세라 받아친 뒤.


“······For here you are, And what was just a world is a star Tonight!”


둘은 손잡고 나란히 서서 마무리했다.


수상식 최초로 선보인 즉흥 뮤지컬.

둘은 상기된 표정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잠시 정적.

긴 여운이 홀을 맴돌았다.


“이, 이건······.”


깐족거리던 이희수마저 당황해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뭐 해? 큐! 큐!”


무대 정면의 PD가 입을 크게 뻥긋거리며 재촉했다.


“강준호 씨와 정민재 씨의 아름다운 화음이었습니다. ‘세상이 별이 되었다’는 가사처럼 수상의 기쁨을 아름답게 표현했군요. 정말 감동적인 무대였습니다.”


김희연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수습했다.


시상식을 진행해야 할 스태프들도 둘의 무대에 홀려 있었다.

그녀의 멘트가 있은 다음에야 조명이 들어오고 시상식장에 활기가 돌았다.


- 강준호! 강준호!

- 정민재! 정민재!


무대 아래의 모든 이가 기립해 둘의 이름을 외쳤다.

감독, 작가, 동료 배우들도 이 순간만큼은 한 사람의 팬으로 돌아가 열광했다.


“오빠, 날 가져요!”


잘생기면 오빠도 아니고.

황 작가가 무대로 달려 나오려다가 옆에 있던 감독에게 제지당했다.


메인 카메라카 그녀를 클로즈업했다.

올해의 작가상을 받은 도도한 작가의 실체라는 밈과 함께.


‘됐다!’


준호는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500포인트 획득]

일생에 단 한 번인 영광, ‘신인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100포인트 획득]

최고의 수상 소감으로 모든 이에게 감동을 줬습니다.


시스템 창 두 개가 동시에 나타났다.

단숨에 600포인트 획득. 누군가가 말했듯 정말 아름다운 밤이었다.


영광의 대상은 ‘대야망’의 송시훈에게.

최고 연기자상은 ‘두바이의 꿈’의고민주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그날 언론과 팬의 관심은 대상 수상자가 아니라 신인상을 탄 괴물 듀엣에게 집중됐다.


***


시상식이 끝난 뒤.

청담동으로 자리를 옮겨 소속사 식구들끼리 뒤풀이를 가졌다.


“신인상 축하해요. 다음엔 영화로 신인상을 받아 봅시다.”

“아까 공연 감동이었어요. 이참에 OST도 직접 불러 보시는 건 어때요?”


대표와 이사, 선배들이 차례로 술을 따라줬다.

워낙 많은 사람이 몰려와 누가 누군지도 헷갈렸다.


‘과음은 자기 관리에서 마이너스인데.’


오늘만 600포인트를 받았다.

동료와 친해지는 것도 크게 보면 연기에 도움이 됐다.


‘에라, 모르겠다. 마이너스 받아도 기껏해야 몇십 포인트겠지.’


기분 좋은 날이었다.

주는 술을 정신없이 마시다 보니 이내 취기가 올랐다.


“주인공이 소감이 빠지면 섭섭하지.”

“맞아요. 뭐라고 멋있게 한마디 해보세요.”


선배 둘이 좌우에서 그를 일으키며 부추겼다.


- 강준호. 강준호.


최 대표와 임 이사, 김 매니저도 맞은편에서 과장되게 그를 연호했다.


“소감은 아까 말했는데.”


준호는 못이기는 척 잔을 들고 일어났다.


그냥 해본 말이었다.

안 시켜주면 섭섭할 뻔했다.

이럴 줄 알고 인터넷에서 유명한 명언까지 검색해 가며 준비했다.


“대구 사자들의 레전드, 양준혁 선수를 아십니까? 누군가가 양준혁 선수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선수로 기억되기를 바랍니까? 2천 안타의 사나이? 만세 타법의 타신? 사자들의 프랜차이즈 스타? 그러자 양준혁 선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잠깐 뜸 들이기.

준호는 좌우의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저 1루까지 열심히 뛰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전 지금까지 야구를 하면서 한 번도 걸어서 1루까지 간 적이 없습니다. 실제로 양준혁 선수는 은퇴 경기에서도 1루로 전력 질주하는 모습을 보여 팬들에게 감동을 줬습니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

그는 엷은 미소를 머금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직 모든 게 낯선 신인. 초심을 잃지 않고 양준혁 선수처럼 언제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모님, 고향 어르신들과 친구들, 절 도와주시는 모든 분, 그리고 언제나 절 응원해 주시는 팬 여러분께 감사를 전합니다.”


좌우에 꾸벅 인사하고 단숨에 원샷. 

그가 마신 건 술이 아니라 수상의 달콤한 기쁨이었다.


‘연기 시스템은 아무 이유 없이 날 찾아온 게 아니야. 그동안의 묵묵히 노력한 것에 대한 보람과 보상이지.’


하마터면 눈물을 보일 뻔했다.

순간적으로 속에서 뭔가 울컥했다.


‘이 정도로 만족하지 말자. 이제 겨우 신인상을 탔을 뿐이야. 우수상, 최우수상, 대상까지. 갈 길이 멀어.’


그는 눈을 크게 깜빡여 눈물을 삭였다.


“초심을 지키며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진짜 배우, 강준호를 위하여.”


강준호를 위하여.

최 대표의 선창과 함께 다른 이들도 일제히 잔을 비웠다.


오늘 밤.

준호는 세상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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