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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3.1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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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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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3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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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미팅 (1)

DUMMY

토요일 저녁.

한남동의 고급 한정식집에서 종방연이 있었다.

제작진과 출연진은 물론이고 제작사의 임원까지 참석하는 자리였다.


주위는 몇 시간 전부터 기자와 팬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강준호 씨, 여기 좀 봐주세요!”

“오빠, 사랑해요.”


가장 인기는 역시 준호였다.

회사에서 경호원을 여섯 명이나 붙여 줬는데도 지나가기 힘들었다.


사인해 주랴.

팬들과 사진 찍어 주랴.

기자들을 향해 웃으며 손도 흔들어 주랴.

종방연장에 들어가는 데만 1시간이 걸렸지만, 들어갔다고 끝이 아니었다.


대박을 기념하며 다 같이 건배.

제작사 사장이 한 잔, 상무와 임원들이 각 한 잔씩.

겨우 한숨을 돌리나 싶었더니 이번엔 선배들이 차례로 한 잔씩.

김희성과 성태철 등 그를 안 좋은 눈으로 보던 몇몇 선배들도 오늘만큼은 호탕하게 웃었다.


신인이라 잔을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눈치껏 꺾어 마셨는데도 금세 취기가 올라왔다.


두어 시간쯤 버틴 뒤.

화장실을 핑계로 옥상으로 도망쳤다.


“강 배우는 너무 착해서 탈이야. 그걸 다 받아 마셨어?”


난간 옆 벤치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쩐지 아까부터 안 보이더라니. 황 작가가 먼저 와 있었다.


“촬영 중에는 몸 관리하느라 술을 입에도 안 댔거든요. 오랜만에 마셨더니 좀 힘드네요.”


준호는 비틀거리며 황 작가 옆에 앉았다.


밤바람이 시원했다.

몇 번 심호흡하니 살 것 같았다.


“데뷔작 하나로 괴물 신인이라 불리시는데요. 요즘 기분이 어떻습니까?”


황 작가가 리포터를 흉내 내 물었다.


“조금 무섭습니다. 모든 게 너무 술술 풀려서요. 가끔은 이게 꿈인가 싶기도 하고, 깨어나는 게 두렵기도 합니다.”


준호는 어제 한 인터뷰대로 대답했다.

회사에서 써 준 답안이었지만,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참, 작가님도 최종 씬 촬영장에 오셨다고요? 사인해 드릴까요?”

“됐어! 그리고 그런 건 몰래 해줘야지. 꼭 내가 먼저 티를 내야겠어?”


짐짓 화난 척하는 황 작가.

그녀는 피식 웃은 뒤 모처럼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준호 씨도 곧 선택해야 할 거야.”

“선택이요? 차기작 말씀입니까?”

“응. 스타로 남을 것이냐, 진짜 배우가 될 것이냐. 첫 작품이야 뭣 모르고 했고, 다음 작품이 준호 씨 필모의 갈림길이야. 스타와 배우의 갈림길.”


배우가 곧 스타 아닌가?

이렇게 간단히 생각할 게 아니었다.


“작가님.”


누군가가 아래에서 찾았다.

자리를 너무 오래 비운 모양이었다.


“준호 씨라면 올바른 선택을 할 거라고 믿어.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기가 막히거든.”


황 작가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일어났다.

회식에 참여해 관계자들과 친목을 다지는 것도 일이었다.


“참, 사인은 나중에 내 작업실로 보내. 하트 뿅 그려서.”


계단을 내려가기 직전, 그녀가 장난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앞에 사랑하는 순애 씨도 쓰겠습니다.”


준호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남은 옥상.

홀로 무대에 오른 배우 같았다.

술에 취해 웃고 떠드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스타와 배우의 갈림길이라.”


준호는 그녀의 말을 나직이 되뇌었다.


***


스산한 아파트 공사 현장.

칼자국이 있는 40대 남성이 의자에 앉아 있다.

좌우에는 험상궂은 조폭들이 병풍처럼 둘러서고, 그 앞에 신이슬과 비슷한 미녀가 재갈을 물린 채 묶여 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준호가 등장한다.

조폭들이 슬그머니 회칼과 야구 배트를 꺼내 든다.


“왜? 해보자고?”


준호도 점퍼 안주머니에서 뭔가 꺼낸다.


움찔하는 깡패들.

하지만 그가 꺼낸 건 싸구려 일회용 라이터다.


다짜고짜 조폭과 격투가 펼쳐진다.

제일 가까이 있던 놈이 배트를 수평으로 휘두른다.


고개를 숙여 가볍게 피하고.

퍼퍼퍽, 준호는 라이터로 상대의 인중, 관자놀이, 목젖을 거의 동시에 가격했다.


다른 놈이 왼쪽에서 회칼로 찔러 왔다.

의식을 잃은 조폭을 그쪽으로 밀었다. 칼이 동료의 어깨를 찌른 순간, 준호는 오른쪽에 있는 다른 놈을 향해 몸을 돌렸다.


회칼이 그의 목을 노리고 수평으로 날아왔다.

상체를 살짝 뒤로 젖히면서 오른발로 놈의 발목을 걷어찼다.

놈이 휘청거리는 찰나, 준호는 두 주먹으로 놈의 목젖과 가슴, 명치, 미간을 짧고 빠르게 끊어쳤다.

3번 카메라가 수평의 15도 아래에서 그 모습을 클로즈업했다.


발차기나 훅 같은 큰 액션은 없었다.

퍼퍼퍽,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타격이 다섯 차례 이상 작렬했다.


마지막으로 두목을 쓰러뜨린 뒤.

준호는 미녀의 재갈을 풀고 웃으며 말한다.


“사랑하는 그녀를 지켜 주세요. 보험은 AUI.”


그의 듬직한 얼굴을 클로즈업.

파랑새를 상징으로 하는 보험사 로고가 올라온다.


“컷, 좋습니다!”


짝짝짝, 감독은 헤드셋을 벗어 던지고 요란하게 손뼉 쳤다.


보험사 CF 촬영 현장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준호는 스태프와 스턴트맨들에게 꾸벅 인사했다.


‘으아, 오글거려. 80년대 느와르도 아니고. 이런 콘셉트는 뭐야?’


내심 헛웃음이 나왔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겨우 30초 남짓한 CF.

새벽부터 시작된 촬영은 저녁 무렵에야 끝났다.


숨 돌릴 틈이 없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은 청담에서 여성지하고 인터뷰가 있습니다. 사진은 어제 찍었으니까 오늘은······.”


김 매니저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다음 일정을 알려줬다.


CF, 인터뷰, 화보, 다시 CF.

드라마가 끝났는데도 더 바빴다.

고향에 가서 며칠 쉴까 했지만 꿈도 못 꿨다.

제작사에 보내준 동남아 포상 휴가도 스케줄이 안 맞아 못 갔다.


“준호 씨의 팬은 2049 여성이 많아요. 특히 최종 씬이 여성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죠. 그리고 2049 여성은 구매력이 가장 왕성한 소비층이고요. 광고주들이 선호하는 게 당연합니다.”


최 대표가 CF 계획서 10여 장을 내밀며 한 말이었다.


모델료는 당연히 A급 기준.

보험, 여성 음료, 아파트, 자동차, 의류 등 종류도 다양했다.

치킨과 아이스크림 광고도 들어왔지만 이미지에 맞지 않아 사양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했지. 힘들어도 바싹 당기자.’


물론 초심을 잃지 않았다.

목표는 진짜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고, 이건 준호도 마찬가지였다.


[5포인트 획득]

대중적 인지도가 상승했습니다.


촬영에 따른 보너스 포인트는 덤이었다.


***


화보 촬영을 마친 뒤.

준호는 소속사 회의실로 향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최 대표와 임 이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화보 촬영이 지연돼서요.”

“괜찮습니다. 매니저한테 들었어요. 촬영이 항상 스케줄대로 되나요?”


최 대표와 반갑게 악수.


“저희야 야근이 일상인데요, 뭐. 배우님이 고생이시죠.”


임 이사도 웃으며 덧붙였다.


다들 피곤했다.

커피를 마시며 바로 일 얘기로 들어갔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팬 미팅 관련입니다. 다음 주에 20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팬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임 이사가 화이트보드에 간단히 쓰며 설명했다.


정식 팬 미팅은 아니었다.

팬클럽 출범에 앞서 열성 팬들과 인사하는 자리였다.


‘경쟁률이 100 대 1이 넘었다지? 소속사 직원들한테 청탁도 많이 들어오고. 이러다가 나중엔 돔 같은 데서 팬 미팅하는 거 아니야?’


의식을 안 하려고 했는데 자꾸 웃음이 나왔다.


선착순 사인회.

추첨이 된 팬과의 포토 타임.

드라마 메이킹 필름과 동료의 축전 공개.

개그맨과 간단한 토크쇼 후 노래도 한두 곡 해야 한다고 했다.


“노래요? 전 음치를 겨우 면한 수준인데요.”


준호는 노래라는 대목에서 난감해졌다.


신성리 강씨 집안의 유전자는 음악과 예술에 취약했다.

학창 시절 때도 음악과 미술 시간이 제일 싫었고, 친구들과 그 흔한 노래방도 안 갔다.


“부담 갖지 마세요. 가수가 아니라 배우의 팬 미팅이잖아요. 팬들도 가벼운 음 이탈 정도는 애교로 넘어갈 거예요. 분위기 봐서 적당히 떼창을 유도하는 방법도 있고요.”


임 이사가 웃음기를 머금고 안심시켰다.


“아무튼 역사적인 첫 팬 미팅입니다. 좋은 아이디어 있으십니까?”


최 대표도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팬 미팅이라. 노래 말고 다른 게 없을까?’


준호는 팔짱을 끼고 곰곰이 생각했다.


그의 직업은 배우.

가장 자신 있는 것도 연기였다.


‘간단한 마술이라도 연습할까? 아니면 춤?’


역시 어려웠다.

이것저것 고민하던 도중이었다.


- ······스타와 배우의 갈림길.


종방연에서 황 작가가 한 말이 문득 떠올랐다. 


“혹시 팬을 무대 위로 부를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보통 추첨으로 팬을 모십니다만, 배우님께서 원하시는 분을 지목할 수도 있습니다.”

“잘됐네요. 제 연기의 지분에는 여성 팬의 지분이 크지 않습니까? 그러니 여성 팬이 좋아할 많나 로맨틱한 이벤트를 하는 건 어떨까요?”

“오, 좋은 생각이네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입니까?”


최 대표는 흥미를 보이며 그에게 상체를 가까이했다.


“이벤트의 제목은 극 중 나왔던 이슬의 대사, ‘한낮의 별’로 하겠습니다. 팬을 무대에 모시고 드라마의 최종 씬을 재현하는 거죠. 물론 최종 씬과 똑같이 가면 재미가 없습니다.”


준호는 대표와 이사를 돌아보며 설명했다.


팬과 함께하는 공연은 다른 가수나 배우의 팬 미팅에서도 곧잘 있었다.

그는 여기에 독특한 팬 서비스를 추가했다.


“아주 특별한 팬 미팅이 되겠군요. 이런 건 처음입니다.”

“저도 참석하고 싶네요. 다들 강 배우님의 매력에서 헤어나지 못할 거예요.”


대표와 이사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입니다. 가능할까요?”

“물론입니다. 차질 없이 준비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생각하신 겁니까?”


최 대표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전 배우가 천직이니까요. CF에 자주 나오는 인기 스타도 좋습니다만, 전 연기로 감동을 주는 배우로 남고 싶습니다.”


준호는 배우를 강조하며 빙그레 웃었다.


***


오피스텔에 돌아오니 자정을 훌쩍 넘겼다.


“레디, 액션.”


준호는 재킷을 벗어 소파 위에 던지고 시스템 창을 열었다.


······

직업 : D급 연기자

획득 포인트 : 1,510

잔존 포인트 : 401

······


최종 씬의 도전 과제에서 300포인트.

광고와 화보, 인터뷰 등으로 100포인트를 벌었다.


“소극장은 관객이 얼마 안 되니까 편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천만에, 소극장에서 연기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어렵지. 관객이 배우의 표정, 호흡, 땀방울 하나까지 생생하게 볼 수 있거든.”


포인트 사용에서 ‘무대 연기’로 들어갔다.


“핵심은 관객과의 연결이야.”


레벨 1. 관객과의 상호 작용을 표현합니다.

레벨 9. 관객과의 감정적인 연결을 깊게 형성하고 감정을 공유합니다.


“포인트를 아끼지 말자. 화끈한 팬 서비스를 보여주면 인지도 평가로 돌아올 테니까.”


63포인트를 투입, 관객과의 연결을 레벨 6으로 만들었다.


다음은 관객의 몰입.


레벨 1. 관객이 극 중 인물을 이해합니다.

레벨 9. 관객이 극 중 인물과 완전히 동일시됩니다.


이것도 레벨 6으로 만들었다.


“아직 안 끝났어. 팬을 무대로 모시는 건 장점만큼 위험 부담도 크지. 아마추어라 어디로 튈지 모르거든.”


임기응변.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스킬도 중요했다. 마찬가지로 63포인트를 투입했다.


마지막으로 세부 스탯.

레벨이 제대로 올라간 걸 확인했다.


······

무대 연기

무대 퍼포먼스 5 / 무대 장악력 5 / 관객과의 연결 6 / 관객의 몰입 6 / 임기응변 6

······


“전문 연극 무대가 아니니까 딱 필요한 것만 올리자. 나중에 퍼포먼스와 장악력을 추가로 올려도 되고.”


남은 포인트는 212.

준호는 흡족하게 웃으며 시스템 창을 닫았다.

관객과 하나가 되는 소극장 특유의 열기가 벌써 느껴지는 듯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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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업그레이드 (1) +2 24.04.10 675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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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액션의 기본 (1) +2 24.04.09 716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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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완벽한 놈 (3) +4 24.04.07 768 26 12쪽
27 완벽한 놈 (2) +3 24.04.06 762 22 12쪽
26 완벽한 놈 (1) +2 24.04.05 805 24 12쪽
25 팬 미팅 (2) +2 24.04.04 829 26 12쪽
» 팬 미팅 (1) +2 24.04.03 864 26 12쪽
23 끝이 아닌 시작 (3) +3 24.04.02 871 29 11쪽
22 끝이 아닌 시작 (2) +1 24.04.02 892 23 12쪽
21 끝이 아닌 시작 (1) +2 24.04.01 957 29 12쪽
20 한눈팔지 않겠다 (2) +2 24.03.31 956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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