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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연기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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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3.14 16:51
최근연재일 :
2024.04.2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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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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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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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죽는 것도 예술이다 (1)

DUMMY

용인시 인근의 야산.

회색 야구 점퍼를 입은 사내가 검은 정장을 입은 조폭들과 한창 싸우고 있다.


조폭들은 사내의 빠르고 현란한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진다.

수많은 스태프가 지켜보는 가운데, 카메라 여섯 대가 다양한 각도에서 그 모습을 담는다.


“큭.”


마지막 조폭이 사내의 돌려차기에 쓰러진 순간.


“컷. 좋았어!”


민 감독이 손뼉 치며 기분 좋게 외쳤다.


그제야 현실로 돌아왔다.

조폭들은 언제 싸웠냐는 듯 손과 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수고하셨습니다.”


김일중 씨도 그중 하나였다.


작품에서 그의 이름은 조폭 14.

주인공에게 맞고 쓰러지는 단역 스턴트맨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야외 촬영장에 도착했는데.

액션 씬 하나를 찍고 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매일 먹는 밥차가 슬슬 지겨워지려는 찰나, 강준호의 팬클럽이 고급 초밥 도시락을 보내 줬다.


스태프 둘이 도시락을 나눠줬다.

배우들은 길게 줄을 서서 하나씩 받아 갔다.


- 한낮의 별처럼, 당신과 영원히 함께하겠습니다.


얇은 플라스틱 뚜껑에 준호의 팬클럽 구호와 상징이 큼지막했다.


“어디서 먹지?”


김일중은 도시락을 들고 두리번거렸다.


야외 촬영장에 함바집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주요 스태프와 배우는 각자의 차나 평평한 곳에 둘러앉았지만, 단역들은 아무 데나 앉으면 거기가 식당이었다.


“이야, 몸보신하라고 장어도 있네. 이게 얼마 만이야?”


그가 반색하며 도시락을 연 순간이었다.


“못 보던 얼굴인데 오늘 처음 오셨나 봐요?”


누군가가 불쑥 아이스 커피를 내밀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준호가 앞에 서서 웃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김일중은 어색하게 웃으며 커피를 두 손으로 받았다.


그에게만 준 게 아니었다.

다른 단역 배우들도 커피를 홀짝이며 삼삼오오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피곤하시죠? 저도 단역을 오래 해서 압니다. 맞는 연기도 보통 힘든 게 아니잖아요. 남은 촬영도 잘 부탁드립니다.”


준호는 꾸벅 인사하고 다른 단역에게 향했다.

매니저가 양손에 아이스 커피를 가득 들고 따라갔다.


‘오늘 처음 온 걸 어떻게 알았지?’


김일중은 멍한 표정으로 준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단역을 오래 해서 안다.

다른 배우가 이 말을 했으면 속으로 가식이라고 욕했을 것이다.

하지만 준호가 10년 가까이 무명의 단역 배우로 버틴 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참 대단한 친구죠? 연기만 잘하는 게 아니에요. 다른 배우들과도 잘 어울리고, 우리 같은 단역도 다 챙겨줘요.”


오른쪽에 앉은 중년 배우가 준호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맞아. 주연급으로 올라선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촬영장 분위기를 주도하잖아요. 자존심 강한 베테랑 선배들도 강 배우한테는 자연스럽게 양보하더라고요.”


왼쪽에 앉은 배우도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어린 매니저한테도 존댓말을 쓴다더라.

매니저와 전담 스태프의 생일까지 다 챙긴다더라.

팬들한테 받은 고가의 선물은 돌려주거나 자선경매로 불우한 이웃을 돕는다더라.


준호의 미담은 촬영장에서 유명했다.

벼락스타가 된 배우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들먹거림도 없었다.


- ······제가 초심을 잃은 것 같으면 언제든 말해 주세요.


그가 언젠가 매니저에게 했다는 말도 이젠 거의 전설이었다.


“잘생기고 연기도 잘하는 배우가 인성까지 좋네.”


김일중도 새삼스러운 눈으로 준호를 바라봤다.


커피 배달과 인사를 모두 마친 뒤.

준호는 구경 온 아역 배우들과 식사를 시작했다.

격이 없이 웃고 떠드는 모습이 진짜 아빠나 삼촌 같았다.


‘아, 저러니까 성공하는구나.’


김일중은 순간적으로 목이 메었다.

국물 없이 초밥을 먹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같은 배우로서 존경할 수밖에 없네.’


성공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


짧은 가을이 끝나고 12월에 접어들 무렵.

촬영은 전체 씬의 1/4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날씨나 현지 사정 등에 가끔 연기될 때도 있었지만, 전체 일정에 지장을 주는 수준은 아니었다.


씬 - 015.

허름한 삼겹살집.

최진우는 동료들과 소주를 마신다.


“잊어버려. 이게 한두 번이야?”


동료가 그의 잔을 채워주며 위로한다.


분위기가 무섭다.

술도 오늘따라 쓰게 느껴진다.

그는 잔을 빙빙 돌리다가 소주를 단숨에 비운다.


“니미. X 빠지게 잡으면 뭐 해? 검X 새끼들이 다 짜고 놔주는데.”


안주 대신 윗대가리들을 씹는다.


부웅,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핸드폰을 꺼내 보니 낯선 번호의 영상 통화다.


“누구지?”


최진우는 고개를 갸웃하며 받는다.


두목을 잡았던 버려진 창고.

누군가의 비릿한 웃음이 들린다.


“아빠!”

“여보!”


아이와 와이프의 울음이 동시에 들린다.


화면의 흔들림이 심하다.

얼굴에 복면을 쓴 아이, 피투성이가 된 와이프의 모습이 빠르게 스친다.


불안한 예감이 현실이 됐다.


“이 새끼!”


최진우는 술잔을 집어던지고 바로 뛰쳐나간다.


씬 - 016.

본래 놈들은 그의 가족을 납치해 적당히 위협만 할 생각이다.

그런데 아이가 다친 순간, 누가 형사 부인 아니랄까 봐 여자가 사납게 달려든다.

그녀는 부두목의 귀를 물어뜯고, 이어서 부두목이 욕을 하며 주머니칼로 그녀를 찌른다.


“어쩌죠?”


부하들도 당황해 웅성거린다.

여자와 아이를 죽여 조금 골치 아프다.


“그래봤자 일개 형사 나부랭이의 가족이야. 경찰 윗선을 통해 찍어 내리거나 지방으로 날려 버리면 그만이지. 뭐, 돈은 많이 깨지겠지만.”


증거인멸.

부두목은 부하들에게 명령해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다.

죄책감 따윈 느껴지지 않는다. 돈이 많이 나갈 생각에 조금 짜증이 날 뿐. 


씬 - 017.

최진우가 신호를 무시하고 난폭 운전한다.

다른 차들은 급브레이크를 밟고 욕설을 퍼붓는다.


씬 - 018.

최진우와 경찰들이 현장에 도착한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불에 탄 와이프와 아이의 시체뿐.


“순진하게 법의 정의를 믿었어?”


부두목이 경찰서를 나가며 한 말이 오버랩된다.


놈들은 단순한 조폭이 아니다.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거대한 기업형 조직이다.


최진우는 움켜쥔 주먹을 부르르 떤다.

이어서 점퍼에서 뭔가를 꺼내 땅에 내던진다.


“선배님!”

“진우야!”


동료들을 뒤로하고 현장을 떠난다.

바닥에 떨어진 경찰 신분증이 클로즈업된다.


“오케이. 컷!”


민 감독은 흡족하게 웃으며 헤드셋을 벗었다.


“와, 방금 그 표정 봤지? 소름 끼치게 무섭던데?”

“정말 부인이 죽은 줄 알았어. 어떻게 그런 연기가 나오는 거지?”


다른 스태프들도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감사합니다.”


준호는 언제나처럼 스태프와 상대 배우들에게 꾸벅 인사했다.


‘좋았어. 이대로라면 별문제 없이 촬영이 끝나겠는데.’


간밤에 총 45포인트를 투입.

감정 연기 중 분노, 절망, 망연자실 등을 레벨4로 올린 덕분이었다.


‘이 기세를 몰아 다음 액션도 단번에 오케이 받자.’


준호는 입가를 씰룩거려 웃음을 참았다.


***


사실적이면서도 화려한 격투.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다양한 스턴트.

영화는 이런 볼거리 외에 스토리도 탄탄했다.


씬 - 040.

최진우의 폭주를 막기 위해 동료 경찰들도 나선다.


“최 형사는 우리가 막아야 해. 우리가 먼저 잡아서 자수 시키자고.”

“맞아요. 최 형사님 마음이야 십분 이해합니다만, 그래도 우린 경찰이잖아요.”


최진우를 아끼던 반장과 막내가 특히 열성적이다.


그들이 회의를 마치고 나가려는 찰나.

검은 정장을 입은 낯선 사내들이 우르르 들이닥친다.


“여러분은 손 떼십시오. 오늘부턴 저희가 사건을 맡겠습니다.”


팀장이라는 놈이 국정원 신분증을 보여주고 거만하게 말한다.


이미 윗선과 얘기가 끝난 모양이다.

서장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반장과 막내를 끌고 나온다.


씬 - 043.

국정원의 뜬금없는 개입이 아무래도 수상하다.

팀장의 태도도 최진우를 막으려는 게 아니라 사건을 은폐하려는 것 같다.


반장은 사이버수사국에서 근무 중인 동기를 통해 최진우의 과거를 캐낸다.


“어? 이상한데. 특채라는 기록은 있는데, 과거가 많이 누락됐어. 누군가 고의로 삭제한 거 같아.”


동기가 여기저기 뒤진 끝에 최진우의 과거를 일부 밝혀낸다.


예상대로 그는 평범한 형사가 아니다.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특수 부대의 교관 출신이다.

해외, 특히 중동 지역에서도 파견돼 암약했는데 크라브 마가도 그때 배운 것이다.


‘시나리오도 민 감독이 썼다고 했지? 액션 거장이라 그런지 스토리가 좋네.’


준호도 연기하는 내내 스토리에 빠져들었다.


최진우 대 기업형 범죄 조직.

그를 막으려는 동료들과 사건을 은폐하려는 윗선.

그리고 복수심과 사명감 사이에서 방황하는 내적 갈등까지.

민 감독은 자칫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 스토리를 멋지게 변주했다.


씬 - 048.

인천 부둣가를 배경으로 촬영이 있었다.

언제나처럼 민 감독이 준호와 배우들을 불러 모아 브리핑했다.


최진우의 복수는 집요했다.

적의 조직을 뿌리부터 하나씩 밟아 갔다.


“······주인공이 조직의 마약 거래 정보를 입수하고 현장을 급습합니다. 하지만 범죄 조직도 바보가 아니죠. 거래는 가짜. 함정을 파고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른 액션 영화에도 유사한 전개가 많았다.

주인공의 위기와 부활, 그리고 각성으로 이어지는 클리셰였다.

이후 주인공은 형사로서 가졌던 망설임을 버리고 악귀가 돼 복수에 나선다.


“다만 같은 짜장면이라도 누가 요리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잖아요.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같은 씬이라도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씬이 되거든요. 주인공이 일시적으로 코마 상태에 빠진다는 설정이니까 준호 씨가 잘 해줘야 합니다.”


민 감독은 준호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코마라. 그럼 아예 죽는 연기를 올리면 되겠네. 여기에 분노와 고통 등의 감정을 섞으면 꽤 멋진 연기가 나올 거야.’


준호는 시스템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 연기 중 사고와 죽음에 관한 항목도 있었다.


촬영 개시까지 여유가 있었다.

스태프들이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준호는 밴에 올라 시스템을 열었다.


······

직업 : B급 연기자

획득 포인트 : 2,582

잔존 포인트 : 78

······


B급 연기자라는 항목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슬슬 A급에 대한 욕심도 났지만, 그건 국내 탑텐에 드는 레벨이었다.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겨우 두 번째 작품이야, 조바심 내지 말자.”


눈앞의 촬영이 우선이었다.

상황 연기에서 죽음 항목을 열었다. 현재 레벨 0.


“레벨 6까지만 올려서······.”


준호는 레벨을 눌렀다가 멈칫했다.


레벨이 올라가지 않았다.

대신 다른 안내 문구가 나타났다.


- 당신은 아직 레벨을 올릴 자격이 없습니다.


빨간색의 궁서체 경고문이었다.


“어? 레벨을 올릴 자격? 이런 것도 있었나?”


혹시나 해서 다시 눌러봤다.

마찬가지. 경고문이 반복해서 나타났다.


“포인트는 충분한데 자격이 없다니. 이거 뭐야?”


준호는 처음 겪는 사태에 당황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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