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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3.1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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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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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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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끝이 아닌 시작 (1)

DUMMY

강릉에서 돌아온 날.

준호는 오피스텔에도 들르지 않고 바로 사무실로 향했다.


회의실에서 두 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은 최 대표. 다른 한 명은 처음 그에게 계약을 제안했던 임 이사였다.


“피곤하실 텐데 오시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매니저님이 운전하느라 피곤했죠. 전 차에서 푹 쉬었습니다.”


오랜만에 반갑게 악수한 뒤.

최 대표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드라마가 슬슬 종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강 배우님께서는 촬영 강행군으로 힘드실 테지만,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슬슬 차기작을 생각하실 때죠. 벼락스타로 끝날 것이냐, 새로운 대세 배우로 자리를 굳히느냐. 차기작은 데뷔작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준호도 잘 알고 있었다.

데뷔작이 최고작인 스타도 많았다.


“우리 MW에서는 배우 매니지먼트 외에 드라마와 영화 제작, 투자에도 관여하고 있습니다. 차기작은 당연히 배우님의 의견과 이미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할 거고요.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택해 이미지 변신을 꾀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임 이사가 태블릿을 꺼내 설명했다.


드라마와 영화의 시놉시스가 수십 편이었다.

회사에서 직접 투자하는 것도 있었지만, 무관한 것도 많았다.


“이렇게 많습니까?”


준호는 로그 라인(Log line, 한 문장으로 요약된 줄거리)만 휙휙 읽고 넘겼다.


“회사에서 사전 스크리닝한 게 이 정도입니다. 배우님께서는 촬영장만 오가느라 실감 못 하시겠지만, 지금 업계에서는 오랜만에 새 인물이 나타났다고 난리입니다. 대기 중인 CF와 방송도 수십 개고요. 저희도 배우님 이미지에 맞는 것만 골라서 이견을 조율하느라 바쁘답니다. 물론 행복한 비명이지만.”


예상 리쿱율이 어쩌고, 텐트폴이 저쩌고.

임 이사는 낯선 전문 용어를 빠른 어조로 내뱉었다.


출연작은 시나리오만 보고 결정하는 게 아니었다.

배우의 이미지와 작품성은 기본. 스케줄, 시기, 제작 규모, 출연진, 흥행 가능성 등 모든 걸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했다.

감독의 그간 흥행 성적, 스타일, 역량 등도 중요한 요소의 하나였다.


“당장 결정하시라는 건 아닙니다. 저희도 내부적으로 다양한 시나리오를 놓고 계속 검토 중입니다. 배우님도 시간 있을 때마다 읽어 주세요.”


그녀는 보안 파일로 자료를 전송하고 말을 맺었다.


“그리고 하나 더. 지금 커뮤니티마다 강 배우님 팬클럽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도 드라마를 챙겨 보는 팬이 많다더군요. 뭐, 해외판은 대부분 불법 다운로드입니다.”


최 대표가 말을 받았다.


저작권은 애매하고 민감한 상황이었다.

엄격하게 적용하자니 팬들의 반발을 살 수 있고, 모른 척하자니 수익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실제로 모 기획사가 소속 아이돌의 저작권과 초상권 관련으로 대규모 소송을 준비했다가 팬들의 반발로 슬그머니 취소했다고 한다.


“사소한 저작권 위반은 알면서도 묵인하는 실정입니다. 현실적으로 위반을 전부 체크하는 게 불가능하고, 역설적으로 해적판이 배우님의 홍보에 도움이 되기도 하니까요. 다만 팬클럽은 얘기가 다릅니다. 팬클럽이 난립하면 문제도 많아지거든요.”


준호도 다른 연기자한테서 지나가는 말처럼 들었다.


조잡한 굿즈를 한정판이랍시고 비싸게 팔더라.

팬 미팅 티켓을 정가의 몇 배로 부풀려 되팔더라.


심지어 당사자나 매니저를 사칭해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연예인 당사자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결국엔 이미지 타격으로 직결됐다.


“기획사마다 공식 팬클럽을 관리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좀 이른 감이 있지만 저희도 배우님 공식 팬클럽을 추진 중입니다. 언젠가 팬 미팅도 할 테니까 배우님도 시간 날 때마다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주십시오.”


최 대표는 좋은 아이디어를 강조하며 말을 맺었다.


‘내가 팬 미팅이라. 단역이 출세했네.’


기분 좋은 소식.

한편으론 조금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


날씨가 가을과 초겨울의 경계에 접어들 무렵.

드라마는 75화가 방송됐다. 남은 건 추가로 연장된 5화뿐.


- 내 여자의 남자. 신이슬의 최종 선택은?

- 75화까지 14.123%. 과연 마의 15%를 돌파할 것인가?

······


주요 언론과 커뮤니티는 드라마 관련 글로 도배됐다.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아침 드라마치곤 이례적인 반응이었다.


제작사가 손익 계산으로 바쁠 무렵.

현장은 막판 초치기 촬영으로 죽을 맛이었다.


감독과 작가도 고생이 많았지만, 두 주연배우가 특히 힘들었다.

씬이 많은 준호와 한은서는 귀가도 포기. 밴에서 쪽잠으로 버티며 촬영에 임했다.


다행히 한은서는 프로였다.


‘감정은 감정, 연기는 연기라는 건가? 하긴, 그러니까 사생활 논란에도 주연 자리를 유지하는 거겠지.’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했던가?

사석에서는 눈도 안 마주치고 냉랭했지만, 막상 카메라만 돌아가면 신이슬이 돼 그의 품에 안겼다.


마침내 종방을 일주일 앞둔 시점.

제작사 회의실에서 마지막 회의가 열렸다.

감독과 작가, 주연급 배우는 물론이고 주요 스태프도 참석했다.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일일 드라마라 스케줄이 빠듯했을 텐데, 여기까지 무사히 왔어요. 우선 한은서는 주연으로······.”


정 감독이 먼저 배우들의 공을 장황하게 치하했다.


‘감독도 여간 힘든 직업이 아니지. 특히 일일 드라마는 매일 전쟁이니까.’


준호는 감독의 얼굴을 걱정스럽게 살폈다.


방송이 시작한 후, 감독은 촬영장과 편집실만 오갔다.

움푹 들어간 뺨과 진한 다크 서클, 덥수룩한 수염 때문에 폐인이 따로 없었다.


“이제 마지막 화의 촬영만 남았네요. 쪽대본이 많아 힘드셨죠? 그래도 모두가 힘내 준 덕분에 시청률도 잘 나오고······.”


황 작가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그녀도 눈 밑에 기미가 많아졌다.

예쁘게 꾸미거나 화장하는 건 진즉 포기했다.

언제부턴가 민낯에 머리를 질끈 동여맨 게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배우를 대표해서는 준호는 마이크를 잡았다.

배우 중에서는 막내였어도 이번 드라마가 발굴한 최고 스타였다.


“첫 화가 방송되고 어느덧 4개월이 지났네요. 우선 감독님과 작가님,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써주신 모든 제작진께 감사드립니다. 삼류 단역 배우였던 강준호의 실질적인 데뷔작. 이번 작품은 제게 특히 기억에 남을 것 같······.”


그는 좌우를 찬찬히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전날 멘트를 준비했다.

원래는 가벼운 농담을 곁들일 생각이었는데.

순간적으로 감정이 왈칵했다. 목이 메어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얼떨결에 본 오디션.

긴장 속에서 치렀던 대본 리딩.

기초 감정들을 레벨업한 뒤 멋모르고 임했던 촬영.

중요한 순간마다 튀어나온 도전 과제들과 그걸 해결하기 위한 고군분투.


지난 몇 달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강릉에서 한은서가 접근했을 땐 조금 당황했지만, 며칠 지나고 보니 그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상투적인 말입니다만, 모든 분께 감사하고······.”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연기하는 것도 아닌데 손이 부르르 떨렸다.


“누구 죽었어요? 자, 지금까지 신인 배우 강준호의 소감이었습니다.”


황 작가가 눈치 빠르게 농담하며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나이스 타이밍.

준호는 꾸벅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마지막 회의라는 게 실감이 안 났다.

당장이라도 감독이 20화가 연장됐다며 쪽대본을 내밀 것 같았다.


테이블에 아이스 커피가 있었다.

준호는 단숨에 반을 비우고 감정을 삭였다.


그사이 감독이 엔딩에 관해 설명했다.


“초기 시놉시스와 바뀌었습니다. 신이슬이 선택은 사랑. 가정과 남편을 버리고 이현과 함께합니다.”


막장 결말.

사랑으로 잘 포장했어도 결국 불륜이었다.


‘뭐? 아무리 막장에 자극적인 아침 드라마라고 해도 그렇지. 애 딸린 유부녀가 가정을 버리고 연하의 직장 상사를 따라간다?’


준호는 커피를 내려놓다가 움찔했다.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중간에 다른 남자에게 흔들리는 것과 끝내 가정을 버리는 건 전혀 다른 얘기였다.


“이거 너무 파격적인 결말인데?”

“시청자는 젊은 주부만 있는 게 아니잖아. 보수적인 시청자도 이걸 받아들일까?”

“맞아. 차라리 지금까지 모든 일이 신이슬의 상상이었다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다른 이들도 놀라 웅성거렸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여성 시청자들이 신이슬에게 완전히 몰입했어요. 사회적 통념에 어긋나더라도 진실한 사랑을 찾아 떠나야 한다는 게 대세라고요.”


황 작가가 정면의 스크린에 자료를 띄웠다.


시청자 게시판.

각종 드라마 커뮤니티.

심지어 제작사에 쏟아지는 팬레터들까지.


모든 지표가 하나의 결말을 원하고 있었다.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하기 마련이거든요. 무조건 가정으로 돌아가는 결말은 옛날 스타일이죠. 요즘은 일과 가정 못지않게 개인의 행복을 중요시해요.”


그녀가 자신 있는 어조로 덧붙였다.


‘시대의 흐름? 아무리 그래도 일반적인 상식과 사회적 통념이라는 게 있는데. 황 작가는 이걸 어떻게 해결하려는 걸까?’


불안과 의문이 머리를 맴돌았다.

다행히 다른 배우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는데요. 그래도 너무 급진적인 전개 같습니다. 먼저 빌드업으로 개연성과 당위성을 만드는 게 순서 아닐까요?”


김희성이 손을 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파격과 막장은 한 끗 차이.

너무 파격적으로 나갔다가 용두사미로 끝난 드라마가 한둘이 아니었다.


“당연하죠. 그래서 역대 아침 드라마에서 한 번도 선보인 적이 없는 독특한 씬을 준비했습니다. 지금까지 그 어떤 씬보다 연기가 어려울 테지만, 이게 성공하면 팬들은 모두 이해할 거예요. 신이슬이 이현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독특한 씬?

다시 웅성거림이 커졌다.


“대본은 아직 집필 중이에요. 완성되면 감독님하고 해당 배우들께만 보내 드리겠습니다.”


황 작가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즉흥적으로 나온 말이 아니었다.

감독, 제작사 고위층과 사전에 입을 맞춘 후였다.

감독이 아무 말 안 하고 고개만 끄덕거리는 게 그 증거였다.


혼란이 조금 잦아들었다.

황 작가와 정 감독의 콤비 플레이.

불륜 논란을 이겨내고 드라마가 승승장구한 비결이었다.


‘황 작가가 이렇게까지 나오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겠지. 좋아. 그럼 나도 피날레에 어울리는 최고의 연기를 준비하지.’


준호는 황 작가를 바라보며 결연히 눈을 빛냈다.


***


오피스텔에 돌아온 뒤.

준호는 재킷을 벗어 던지고 소파에 앉았다.


“시청자의 뇌리에 남을 결말이라.”


결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뭘까?

박진감? 긴장감? 스릴? 아니면 사랑 같은 훈훈함?

아니, 그런 건 중반 이후의 하이라이트에서 쓰는 것이었다.


“결말의 핵심은 오래도록 팬의 뇌리에 남을 여운이지.”


영화 어벤져스에서 아이언 맨이 손가락을 튕기는 씬이 대표적이었다.


조금 전까지도 긴박한 전투를 벌이던 상황.

상식적으로는 타노스가 반격하기 전에 빨리 손가락을 튕겨야 했다.


하지만 아이언 맨은 서두르지 않았다.

미소를 머금고 흐름을 한번 끊은 뒤, 대사를 읊조리고 손가락을 튕겼다.

“아임 아이언맨.”이라는 자칫 평범할 수도 있는 대사가 희대의 명대사로 남은 것도 그 순간적인 여백이 만든 긴 여운 덕분이었다.


‘중간 씬과 엔딩 씬은 호흡이 달라. 자막이 올라간 다음에도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게 만들어야 해.’


대본은 아직 안 나왔다.

하지만 결말의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는 수준은 아닐 터.


“레디, 액션.”


준호는 심호흡하고 시스템 창을 열었다.


데뷔작이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남은 포인트를 적재적소에 배분하는 것도 전략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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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끝이 아닌 시작 (2) +1 24.04.02 892 23 12쪽
» 끝이 아닌 시작 (1) +2 24.04.01 958 29 12쪽
20 한눈팔지 않겠다 (2) +2 24.03.31 956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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