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안녕하세요

레벨업하는 연기 천재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글향
작품등록일 :
2024.03.14 16:51
최근연재일 :
2024.04.26 08:40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39,708
추천수 :
1,191
글자수 :
258,011

작성
24.04.26 08:40
조회
259
추천
15
글자
12쪽

홍보도 배우의 의무다 (2)

DUMMY

금요일 오후.

영화 전문 케이블 TV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백여 명의 방청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시간가량 진행되는 토크쇼였다.


“그레이트 시네마 쇼. 오늘은 예고한 대로 아주 특별한 게스트를 모셨습니다.”


조명이 조금 어두워진 뒤.

사회자는 돌연 정색하고 정면을 노려봤다.


“원래 복수 자체가 구닥다리 스토리잖아.”


철컥, 입에서 나는 소리다.

권총을 분해했다가 조립하는 척하며 말을 잇는다.


“난 이것들이 좋아. 아무 위화감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거든.”


어설픈 연기였다.

세트 옆 스크린에 숫자 1이 뜨고, 방청객들이 과장되게 웃었다.


“진정한 남자는 언제나 자신의 가치를 지키며 그 가치에 충실한 삶을 산다. 복수라는 가치를 위해 모든 걸 내던진 남자. 강, 준, 호!”


사회자가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대사를 인용해 외쳤다.


큰 박수와 환호.

굳이 스태프의 신호가 아니라도 다들 기립했다.


“안녕하십니까, 강준호입니다.”


준호가 사회자와 방청객들에게 인사하며 등장했다.

첩보원처럼 슬림한 정장으로 멋을 내고, 시계 등 작은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줬다.


VIP 시사회가 있고 나서 영화 촬영 때보다 더 바빴다.

어지간한 TV 쇼 프로그램은 다 거쳤다. 가장 최근에 출연한 싱글 라이프 관찰 프로그램도 시청률이 18%까지 나온 터.

그는 방송을 즐기듯 여유로운 모습으로 사회자와 나란히 앉았다.


“요즘 극장가의 초 화제작이죠. 순제작비만 120억 원이 투입된 대작. 첫날 오전 7시 기준으로 예매율 65%, 사전 티켓 판매량 44만 장에 육박. 개봉 3일 차에 백만 관객 돌파. 시네뷰 평점, 액션 영화 역대 최고 9.9······.”


사회자가 빠른 어조로 설명했다.

개봉과 동시에 극장가를 집어삼킨 괴물, 영화 ‘형사’의 초반 흥행 성적이었다.


“겉은 차가워도 속은 따뜻한 로맨티스트 이현, 복수의 화신 최진우. 짧은 필모에도 과감한 연기 변신을 선보이셨는데, 그 비결이 뭡니까?”

“글쎄요. 좋은 연기에는 많은 요소가 있습니다. 캐릭터에 대한 분석과 일체화도 그중 하나인데요. 다른 배우님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전 캐릭터를 연구하며······.”


수십 번은 들은 질문들이 나왔다.

준호는 방청객들과 시선을 마주치며 능숙하게 대답했다.


“강 배우님은 긴 무명을 견딘 스토리로 유명하시죠. 내가 성공했구나. 이걸 느낀 때가 언제입니까? 보람이나 성취 같은 교과서적인 대답 말고 진심으로.”


사회자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엄지와 검지를 비비며 돈 세는 시늉을 덧붙였다.


“음, 팬들의 선물을 받을 때요?”


준호도 실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스크린에 사인이 뜨고 관객들도 따라 웃었다.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전에도 소속사로 택배가 많이 왔는데, 영화 개봉 이후 그 양이 두 배로 늘었다.


“강 배우님은 전부터 여성 팬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만, 최근엔 2040 남성 팬의 비율도 증가했더라고요. 역시 시원시원한 액션 때문인가요?”


사회자는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연예인 선호도 자료를 스크린에 띄웠다.


여성 팬 사이에서는 정민재를 제치고 1위.

남성 팬 사이에서도 3위에 랭크돼 있었는데, 그의 위와 아래로는 죄다 걸그룹 멤버와 여배우였다.


그도 무대인사를 다닐 때마다 실감하고 있었다.


“형님, 멋집니다!”

“사나이의 눈물! 복수!”


남성 팬들의 굵은 목소리가 상영관을 쩌렁쩌렁 울렸다.

철없는 중, 고딩 사이에서는 크라브 마가나 나이프 파이팅을 배우는 게 유행이었다.


“과분한 인기는 제가 잘나서 그런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감독님과 스태프 여러분이 좋은 영화를 만들어주신 덕분이죠.”


준호는 소속사에서 준비해 준 모범 답안으로 대답했다.

영화뿐만 아니라 신변잡기에 관한 질문도 나왔지만, 프로답게 막힘이 없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인데요. 강 배우님에게 좋은 연기란?”

“글쎄요. 무척 어려운 질문이네요. 단 한 명의 관객이라도 좋습니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게 훌륭한 연기라고 생각합니다.”


준호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다시 방청객들의 우렁찬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3, 2, 1.

연출자가 속으로 카운트한 뒤, 진정시키는 사인을 보냈다.


“강 배우님은 평소 팬 서비스가 좋은 걸로 유명하죠. 팬 미팅에서 팬을 무대 위로 모시고 즉석 연기를 펼친 적도 있으시고요. 이번엔 뭔가 특별한 서비스 없습니까?”


사회자가 모르는 척 물었다.


“물론 있지요. 이번에도 팬 여러분께 좋은 추억을 선사해 드리고 싶습니다.”


회심의 미소를 머금은 준호.

와, 방청객들은 스태프의 사인에 맞춰 환호했다.

다.


“잠시 후, 영화 ‘형사’의 쿠키 연극을 공개하겠습니다.”


그는 정면의 카메라를 응시하며 덧붙였다.


“응? 쿠키 연극? 분명 연극이라고 했지?”

“쿠키 영상은 들어봤는데, 쿠키 연극은 뭐야?”

“근데 ‘형사’가 시리즈물이었나? 쿠키가 왜 나와?”


방청객들은 호기심과 기대에 차 웅성거렸다.


***


조명이 꺼지고 커튼이 내려온 뒤.

스태프들이 새로운 무대를 꾸미는 듯 바쁘게 움직였다.


10분 뒤, 조명이 들어오고 커튼이 올라갔다.


꽃이 화려하게 장식된 결혼식장.

신랑 복을 입은 남자가 어색하게 서 있었다.

주례 역할을 맡은 토크쇼 사회자도 덩달아 긴장한 모습이었다.


빠빠빠밤, 익숙한 웨딩 음악이 울려 퍼졌다.


오른쪽의 큰 문이 열렸다.

의장대의 호위를 받으며 신부와 신부의 아버지가 입장했다.

신부는 면사포를 쓰고 고개를 푹 숙인 채였는데, 언뜻 보이는 옆모습을 보니 연예인이 아닌 것 같았다.


“어?”


방청객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당연히 준호가 신랑일 줄 알았다.

하지만 준호는 신부의 손을 잡고 함께 입장했다.

영화 속 최진우의 검은 정장을 입었었데, 이십 년은 늙은 듯 새치가 많았다.


“아.”


방청객들은 탄성을 내뱉었다.


이제야 알았다.

준호가 쿠키 연극이라고 말했던 이유를.


조직의 두목을 죽이고 복수를 마친 뒤.

영화는 최진우가 딸을 위한 자장가를 흥얼거리면서 끝났다.

지금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연극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노회한 최진우가 딸의 결혼식을 상상하는 장면이었다.


준호가 장년의 최진우로 변장한 게 그 증거였다.

자세히 보니 신부도 면사포 위에 영화 속 토끼 머리핀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신랑이 다가와 꾸벅 인사했다.

준호는 신부의 손을 넘기려다가 멈칫했다.

악당을 때려잡던 당당한 어깨가 지금은 너무 왜소해 보였다.


‘어? 뭐지?’


모두가 당황한 순간.


준호는 결국 구두 위로 눈물을 떨궜다.

면사포 쓴 신부도 흐느끼듯 온몸을 떨었다.


“아빠?”


신부가 울며 그를 돌아봤다.

준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딸을 시집보내는 아빠처럼.


“이건 연극이야, 실제 결혼식이야?”

“뭐, 저런 연기력이 다 있어? 진짜 아버지 같잖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결혼식인데, 왜 내가 더 슬프지?”


방청객들도 젖은 표정으로 눈물을 훔쳤다.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딸을 생각하는 아빠의 마음을 엿본 기분이었다.


“모든 아빠는 딸이 결혼하면 슬픔과 행복을 함께 느낍니다. 그녀를 보내는 것은 마치 내가 하늘에서 별을 내려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미리 녹음한 준호의 내레이션이 나왔다.

영화 ‘신부의 아버지’에 나오는 명대사였다.


마침내 신랑이 신부를 넘겨받았다.

둘은 음악에 맞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저분도 어렴풋이 느꼈을 거야. 자신을 배웅한 건 배우 강준호가 아니라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아버지였다는 걸.’


준호는 진짜 아버지처럼 둘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신랑 이진영 군과 신부 김연수 양은······.”


사회자가 낮은 목소리로 주례사를 읽었다.


‘배우는 연기만 잘한다고 다가 아니지. 작품이 흥행에 성공할 수 있게 열심히 홍보하는 것도 배우의 의무야.’


그는 신랑과 신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퇴장했다.


팬을 위한 최고의 이벤트.

영화 ‘형사’의 숨겨진 결말. 팬들은 울음바다.


다음 날, 팬 서비스를 겸한 즉석 결혼식이 모든 언론사의 톱을 장식했다.

그리고 이걸 계기로 예매율과 관객 평점, 관련 커뮤니티의 리뷰 횟수가 수직 상승했다.


***


무명 시절부터 꿈꿨던 것이었다.


‘언젠가 내가 잘 나가는 영화배우가 된다면, 팬을 무대에 모시고 특별한 감동을 선사하는 건 어떨까? 팬에게는 감동을, 나는 훈훈한 미담을 얻는 거지. 그림 좋잖아?’


시사회 VIP 선정 회의.

준호가 제안한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얼마 전에 뉴스에서 봤는데요. 젊은 나이에 순직하는 공무원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경찰, 소방 공무원의 비중이 가장 높고요. 그리고 그중에는 영화 속 최진우처럼 딸바보 아빠도 있을 겁니다. 그러니 순직한 형사의 자제분 중에서 결혼을 앞둔 분을 무대에 모시고 즉석 결혼식을 꾸며 드리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해서 선정된 게 홍보 프로그램에 나온 이진영, 김연수 부부였다.


팬으로서는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결혼식. 게다가 신혼여행 비용도 전액 제작사에서 부담한다고 했다.


“신혼여행 비용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홍보 효과에 비하면 훨씬 싸게 먹힐 겁니다. 기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떡밥이 감동이잖아요, 감동.”


제작사 홍보팀장이 환하게 웃으며 제일 반색했다.


[200포인트 획득]

‘도전 과제 : 홍보도 배우의 의무다’를 달성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

전에 무대 연기와 관련해서 레벨업한 게 큰 도움이 됐다.

현장의 관객들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조금 뻔한 전개라고? 하지만 영화는 그 뻔한 전개가 매력 아니겠어?’


준호는 결혼식 무대에서 퇴장하며 빙그레 웃었다.


***


시간이 참 빨랐다.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새 영화가 개봉하고 한 달이 지났다.


그사이 영화는 500만을 돌파해 600만을 목전에 뒀다.

개봉일보다 상영관이 많이 줄었지만, 남성 팬 중심으로 N차 관람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중요한 일정을 마친 뒤.


“배우는 잘 쉬는 것도 일입니다. 국내에는 보는 눈이 많으니 잠깐 외국에 다녀오시는 게 어떻습니까?”


최 대표가 동남아의 그림 같은 리조트를 예약해 줬다.

비용은 그가 내고 싶었지만, 이미 회사 경비로 지불한 뒤였다.


“감사합니다. 선물 많이 사 오겠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일주일간 푹 쉬었다.


김 매니저와 전담 스태프들, 경호원 셋도 동행했다.

외국에도 팬이 많아 사인 공세에 시달렸지만,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는 국내에 비하면 한결 여유로웠다.


어머니는 당연히 좋아하셨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응은 조금 의외였다.


“준수냐? 나야 나, 만수. 웬일은. 오랜만에 목소리라도 들으려고 전화했지? 뭐? 잘 안 들린다고? 국제 전화라 그런가? 자네 세부라고 아나? 세부. 천국이 따로 없구먼. 으허허허!”


바쁘시다고 툴툴거리실 때는 언제고.

첫날 아버지는 친척들과 친구분들에게 백 통이 넘게 전화하셨다. 똑같은 레퍼토리로 ‘세부’를 크게 강조하시면서.


“내가 더 부끄럽네. 그만해, 이 양반아. 나더러 전화요금 비싸다고 빨리 끊으라고 할 때는 언제고.”

“무료 인터넷 전화라잖아. 자, 다음은 철수 자식. 지난번에 제주도 다녀왔다고 뻐겼지?”


자식 자랑은 아버지의 본능이었다.

어머니가 짐짓 퉁명스럽게 구박해도 소용없었다.


영화가 누적 관객 수 700만을 달성한 날.

준호는 전보다 조금 까무잡잡한 모습으로 인천 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와, 강준호다!”

“오빠, 여기 좀 봐주세요!”

“형님, 사랑합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울리는 함성.

어떻게 알았는지 팬과 기자 수백 명이 입국장에 진을 치고 있었다.

소속사에서 매니저와 경호원 십여 명을 준비했지만, 밀려드는 팬을 상대하기엔 힘에 부쳤다.


이럴 줄 알고 부모님은 다른 항공편으로 먼저 보내 드렸다.

준호는 싫은 내색 없이 친절하게 사인과 촬영 요청에 응했다. 두 팔을 크게 움직여 대형 하트까지 만들면서.


‘그래, 이 맛에 배우 하는 거지.’


짧은 휴식은 여기까지.

다음 작품 생각에 벌써 몸이 근질거렸다.


작가의말

죄송합니다.

[레벨업하는 연기 천재]는 여기까지입니다.

어느덧 50화가 됐습니다만 성적은 보시는 것처럼... ㅠㅠ

조만간 다른 글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레벨업하는 연기 천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매일 아침 8시 40분에 찾아뵙겠습니다. 24.03.15 874 0 -
» 홍보도 배우의 의무다 (2) +4 24.04.26 260 15 12쪽
47 홍보도 배우의 의무다 (1) +2 24.04.25 274 12 11쪽
46 새로운 기준 (2) +2 24.04.24 294 13 11쪽
45 새로운 기준 (1) +2 24.04.23 333 12 12쪽
44 경쟁자 (4) +2 24.04.22 352 15 11쪽
43 경쟁자 (3) +2 24.04.21 424 15 12쪽
42 경쟁자 (2) +1 24.04.20 452 18 12쪽
41 경쟁자 (1) +2 24.04.19 490 19 12쪽
40 죽는 것도 예술이다 (3) +2 24.04.18 493 18 12쪽
39 죽는 것도 예술이다 (2) +2 24.04.17 515 15 13쪽
38 죽는 것도 예술이다 (1) +1 24.04.16 531 16 11쪽
37 주연의 의미 (2) +2 24.04.15 562 19 12쪽
36 주연의 의미 (1) +1 24.04.14 585 17 11쪽
35 형사님이세요? +2 24.04.13 636 20 11쪽
34 제작발표회 +2 24.04.12 680 18 12쪽
33 업그레이드 (2) +2 24.04.11 665 19 12쪽
32 업그레이드 (1) +2 24.04.10 676 23 12쪽
31 액션의 기본 (2) +4 24.04.09 702 24 12쪽
30 액션의 기본 (1) +2 24.04.09 716 19 12쪽
29 완벽한 놈 (4) +3 24.04.08 752 24 12쪽
28 완벽한 놈 (3) +4 24.04.07 768 26 12쪽
27 완벽한 놈 (2) +3 24.04.06 762 22 12쪽
26 완벽한 놈 (1) +2 24.04.05 805 24 12쪽
25 팬 미팅 (2) +2 24.04.04 829 26 12쪽
24 팬 미팅 (1) +2 24.04.03 864 26 12쪽
23 끝이 아닌 시작 (3) +3 24.04.02 871 29 11쪽
22 끝이 아닌 시작 (2) +1 24.04.02 892 23 12쪽
21 끝이 아닌 시작 (1) +2 24.04.01 958 29 12쪽
20 한눈팔지 않겠다 (2) +2 24.03.31 956 3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