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안녕하세요

레벨업하는 연기 천재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글향
작품등록일 :
2024.03.14 16:51
최근연재일 :
2024.04.26 08:40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39,692
추천수 :
1,191
글자수 :
258,011

작성
24.04.02 08:40
조회
891
추천
23
글자
12쪽

끝이 아닌 시작 (2)

DUMMY

드라마가 한창 방영될 때는 인기를 실감 못 했다.

준호는 종방이 가까워지고 인터뷰 스케줄이 늘어난 다음에야 인기를 실감했다.


시작은 주부들이 즐겨 본다는 잡지였다.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는데, 혼자가 아니라 한은서와 더블 인터뷰였다.


“서로 어깨에 팔을 올려 다정한 포즈를 취해 주시고. 오케이. 다음엔 준호 씨가 은서 씨 허리를 감싸면서······.”


사진도 수천 장은 찍었다.

콘셉트와 복장, 포즈도 다양했다.

하도 미소를 지었더니 나중엔 경련이 날 정도였다.


“혜성처럼 등장해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셨는데요. 준호 씨에게 연기란 어떤 의미입니까?”

“글쎄요. 어려운 질문인데요. 연기란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언뜻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언행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소속사에서 모범답안을 준비해 줬다.

몇 번 하다 보니 여유가 생기고 대답이 술술 나왔다.


“은서 씨가 본 준호 씨는 어떤 배우입니까?”

“글쎄요. 연기밖에 모르는 바보? 하지만 그 순수한 열정이 매력이죠.”


한은서도 프로였다.

사석에서는 눈도 안 마주쳤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연인처럼 다정했다.


제작사에서도 막판 홍보에 열을 올렸다.

우선 짠돌이 사장이 추가 제작비를 지원해 줬고, 주요 언론에서 드라마를 언급하는 것도 대폭 늘었다.


- 내 여자의 남자, 시청자 이벤트 실시.

-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에 단역으로 나온다?

- 시청자 출연 접수 마감. 경쟁률 200 대 1.

- 결말은 당일까지 비공개. 과연 신이슬의 최종 선택은?


실체를 보일 듯 말 듯 언론 플레이도 잘했다.


신이슬이 파격적인 선택을 한다더라.

팬들을 게스트로 초청해 특별한 씬을 찍는다더라.

이렇게 연기를 피웠지만, 구체적인 건 철저하게 비밀로 붙여졌다.


77화가 14.272%를 찍은 날 저녁.

마침내 대망의 최종씬 대본이 이메일로 왔다.

암호가 걸린 PDF 파일이었는데, 회의에서 말한 대로 준호와 한은서, 감독에게만 전달됐다.


‘드디어 왔네. 얼마나 대단한 씬이기에 큰소리친 거지?’


준호는 오피스텔에서 쉬다가 대본을 열어봤다.


급하긴 급했나 보다.

쪽대본만 겨우 면한 수준이었다.


“이건 좀 위험한데?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하면 끝장 아닌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준호.


작가와 감독의 의도는 이해했다.

높은 시청률과 상업적 성공은 이미 확보한 터.

멋진 그림으로 마무리해 커리어 최고의 작품을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그때 소파에 던져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


황 작가는 그와 한은서를 온라인 회의에 초대했다.


“다들 대본 봤죠?”


작업실에서 밤샌 모양이었다.

황 작가는 갑자기 몇 년은 늙어 보였다.


몇 년에 한 번 있다는 유성우 쇼.

그 쏟아지는 별들 아래 이현이 마지막으로 진심을 담아 고백한다.


최종 씬의 콘셉트는 비교적 간단했다.

자칫 상투적일 수도 있는 장면에 감동을 불어넣는 게 감독과 작가, 배우의 일이었지만.


“다만 이걸로는 부족해요. 다른 드라마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써먹었거든요. 우리가 내세울 건 시청자들의 실제 참여, 그리고 현장감이에요.”


황 작가는 자신만만하게 현장감을 강조했다.


“드라마 연기에 연극을 접목하라는 겁니까? 그것도 7분 분량을 롱 테이크로.”


준호도 바로 이해했다.


수많은 팬이 운집한 야외 촬영장.

연극처럼 생생한 연기로 감동을 전한다. NG 없이 단 한 번에.


이게 그녀가 큰소리친 비밀 병기였다.

팬들을 촬영에 동원한 건 영화에서 종종 있는 일이었다.

최근에는 밴드를 다룬 모 영화에서 실제 콘서트로 엔딩을 장식하기도 했다.


‘위험 부담이 너무 큰데. 팬을 동원하는 건 촬영에 여유가 있는 영화에서나 가능한 거 아닌가?’


드라마, 특히 일일 드라마는 일정이 빠듯했다.

촬영은 79화가 방송되는 날 저녁. 그걸 밤새 편집한 후 80화에 방송하는 스케줄이었다.


만약 NG가 나온다?

실수로 편집이 지체된다?

그럼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결과가 초래됐다. 최종화 펑크.


“드라마와 영화, 연극 무대의 연기는 다르잖아요.”


한은서도 대번 앓는 소리를 냈다.


그녀도 연극 무대는 경험이 없었다.

게다가 준호의 말대로 한 번의 NG도 허용되지 않는 롱 테이크였다.


“일정을 바꿀 수 없어. 유성우가 쏟아지는 게 딱 그날이거든. 기상청 말로는 날씨도 제일 좋고. 감독님도 좀 부담되지만 멋진 그림을 만들어 보자는 의견이야.”


황 작가도 나름대로 고충이 많았다.


처음엔 CG로 유성우를 표현하는 것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한정된 제작비와 열악한 촬영 현장으로는 조악한 그림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현장에 동원되는 팬은 일반인들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배경에서 유성우를 떠올리는 게 쉽지 않았다.


“준호 씨는 괜찮겠어? 처음보다 연기력이 많이 올라왔지만, 그래도 쉽지 않을 거야.”


작가의 걱정은 준호에게 향했다.


‘연습도 없이 당일에 라이브로 연기하라는 건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해보자. 막장과 불륜의 아침 드라마라도 내 실질적인 데뷔작인데. 황 작가 말대로 최고의 그림을 남겨야지.’


작품성.

지금까지 포인트를 못 얻은 유일한 평가 요소였다.


그리고 황 작가는 위험을 알면서도 대본을 강행했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녀가 그만큼 준호를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작품에 대한 욕심은 감독과 작가, 모든 배우의 본능이지.’


우리도 사랑일까.

조금 오래된 영화를 떠올렸다.


정숙한 부인이 낯선 남자에게 끌린다.

이건 막장 아침 드라마에서만 다루는 게 아니었다.

고전 문학과 예술에서도 반복적으로 사용된 일종의 클리셰였다.


‘우리도 사랑일까를 단순한 불륜 영화로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일반 관객보다 평론가가 더 인정하는 걸작으로 남았으니까.’


결심을 굳혔다.

작품성에 대한 욕심.

게다가 그에겐 연기 시스템이라는 믿는 구석도 있었다.


‘우리도 사랑일까’같은 명작까진 바라지 않았다.

그래도 아침 드라마 중에서는 손에 꼽히는 로맨스물을 남기고 싶었다.


“여기까지 어렵게 왔잖아요. 좋습니다. 이왕 시작한 거, 끝장을 봅시다.”


준호는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


“걱정하지 마십시오. 밤을 새서라도 준비하겠습니다.”


준호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회의를 마쳤다.


큰소리는 쳤지만 솔직히 부담됐다.

최종 씬을 리드하는 건 작 중 이현이었다. 한은서보다 그의 부담이 몇 배는 컸다.


“감동적인 피날레를 위해 최종장 스킬만 올리면 될 줄 알았는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즉흥 연기를 가미한다니. 황 작가도 대단하네.”


불륜으로 혹평받느냐.

아니면 금지된 사랑으로 호평받느냐.

이건 전적으로 그가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 그래, 저런 남자라면 가정을 버리고 갈 만하지.

- 사랑 앞에서 현실이 무슨 상관이지? 나라도 이현을 선택한다.


팬들이 이렇게 생각하며 울게 만들어야 했다.


‘연기는 하면 할수록 참 오묘해. 같은 대사라도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되니까.’


재미없으면 재미없을 줄 알아.

이 말을 낮은 톤으로 읊조리며 노려보면 협박이 됐다.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면 재미있는 농담이 되고, 무뚝뚝하게 연기하면 재미없는 아재 개그가 되기도 했다.


“레디, 액션.”


낮게 중얼거려 시스템 창을 열었다.


······

신체 : 187cm, 78kg.

직업 : D급 연기자

획득 포인트 : 1,110

잔존 포인트 : 315

······


그새 또 포인트가 늘었다. 

포인트는 드라마나 영화로만 쌓는 게 아니었다.

인터뷰나 화보 촬영에 응할 때마다 대중적 인지도가 쌓였다.


‘포인트를 어느 항목에, 어떻게 쓸지는 진즉 생각해 뒀지.’


먼저 ‘기타 - 최종장’으로 들어갔다.

그 이름처럼 관객에게 긴 여운을 남기는 스킬이었다.

남기는 감정도 다양했는데 그중 감동, 사랑, 아련, 대리만족을 각각 레벨 5로 올렸다.


다음은 무대 연기.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무대에서 쓸 수 있는 스킬이었다.

그중 최종 씬에 필요한 무대 퍼포먼스, 무대 장악력을 각각 레벨 5로 만들었다.


“보통 연극 무대를 거친 배우들이 연기력이 안정됐다고 하지. 연극 무대에서는 단 한 번의 NG도 용납되지 않으니까. 이번엔 그걸 응용하는 거다.”


순식간에 186포인트가 사라졌다.

여기에 레벨3에 머물던 12개의 감정에도 하나당 8포인트씩, 총 96포인트를 투입해 전부 레벨4로 올렸다.

레벨 3의 상호 연기 4개 항목도 레벨 4로 올렸다.


남은 포인트는 1.

끝으로 세부 스탯을 열어 지금까지 얻은 스킬들을 확인했다.


# 감정 연기

- 레벨 4 : 슬픔 외 13종 (자세히 보기)

# 표현 연기

- 레벨 4 : 언어 외 6종 (자세히 보기)

# 기술 연기

충돌 5 / 낙법 5 / 수영 7

# 무대 연기

무대 퍼포먼스 5 / 무대 장악력 5

# 상호 연기

대화 4 / 리액션 4 / 감정 공유 4 / 임기응변 4

# 기타 : 상황 연기

교통사고 5 / 수상 구조 7

# 기타 : 최종장

감동 5 / 사랑 5 / 아련 5 / 대리만족5


하위 요소가 많은 스킬은 ‘자세히 보기’가 추가되고 간략해졌다.


“이젠 포인트도 거의 없다. 죽이 되든 해보는 거야.”


준호는 대본이 저장된 태블릿을 들며 눈을 빛냈다.


***


촬영장 구석의 전용 밴.

준호는 태블릿으로 기사를 소리 내어 읽어내려갔다.


“별들의 축제, 늦가을을 수놓을 화려한 우주 쇼. 별의 향연을 즐기는 사자자리 유성우 대축제가 오는······.”


종종 볼 수 있는 유성우 축제에 관한 기사였다.

최근 백 년 내 최고라고 여느 때보다 기대가 컸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유성우가 아니라 다른 곳에 쏠렸다.


유성우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사랑.

내 여자의 남자가 강원도 모처에서 최종 씬 촬영에 돌입했다.


“강 배우님 준비 되셨습니까?”


김 매니저가 문을 슬쩍 열고 물었다.


“밖의 상황은 어때요?”


준호는 태블릿을 내려놓고 되물었다.


“보시다 시피 많이들 오셨습니다. 주부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인기잖아요.”


매니저는 어깨를 으쓱하며 천문대 주위의 잔디밭을 가리켰다.

추첨된 팬들이 관광 버스 수십 대에 나눠 타고 속속들이 도착해 있었다.


“한은서가 누굴 선택할까?”

“성태철은 아닌 것 같고. 남편인 김희성 아닐까?”

“아니야. 파격적인 선택이라잖아. 강준호를 선택할 수도 있어.”


어남준, 어차피 남편은 김준이다.

차로현, 차가우면서도 로맨틱한 이현이 최고다.


팬들도 갑론을박이었다.

물론 황 작가의 말대로 이현을 지지하는 쪽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김준을 미는 쪽도 상당했고, 성태철의 골수 팬들도 여기에 합세했다.


준호는 하늘을 슬쩍 올려봤다.


‘드라마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최적의 날이네.’


맑고 아름다운 밤이었다.

수많은 별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반짝였다.


“오케이. 시작합시다.”


준호는 크게 심호흡하고 밴에서 내렸다.


도전 과제 : 끝이 아닌 시작

현장의 팬들에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추억을 선사하세요.

성공 시 대중적 인지도 +300 

실패 시 대중적 인지도 -200. 동료 평가 -200


보너스 300포인트.

이번 드라마의 마지막 도전 과제가 떠올랐다.


“최종 씬이라고 판이 커졌네. 그래, 이래야 재미있지.”


휘유, 준호는 낮게 휘파람을 불며 씨익 웃었다.


준비는 진즉 끝났다.

이제 대중 앞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일만 남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레벨업하는 연기 천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매일 아침 8시 40분에 찾아뵙겠습니다. 24.03.15 874 0 -
48 홍보도 배우의 의무다 (2) +4 24.04.26 259 15 12쪽
47 홍보도 배우의 의무다 (1) +2 24.04.25 273 12 11쪽
46 새로운 기준 (2) +2 24.04.24 293 13 11쪽
45 새로운 기준 (1) +2 24.04.23 333 12 12쪽
44 경쟁자 (4) +2 24.04.22 352 15 11쪽
43 경쟁자 (3) +2 24.04.21 423 15 12쪽
42 경쟁자 (2) +1 24.04.20 451 18 12쪽
41 경쟁자 (1) +2 24.04.19 490 19 12쪽
40 죽는 것도 예술이다 (3) +2 24.04.18 493 18 12쪽
39 죽는 것도 예술이다 (2) +2 24.04.17 514 15 13쪽
38 죽는 것도 예술이다 (1) +1 24.04.16 530 16 11쪽
37 주연의 의미 (2) +2 24.04.15 561 19 12쪽
36 주연의 의미 (1) +1 24.04.14 585 17 11쪽
35 형사님이세요? +2 24.04.13 636 20 11쪽
34 제작발표회 +2 24.04.12 679 18 12쪽
33 업그레이드 (2) +2 24.04.11 665 19 12쪽
32 업그레이드 (1) +2 24.04.10 675 23 12쪽
31 액션의 기본 (2) +4 24.04.09 702 24 12쪽
30 액션의 기본 (1) +2 24.04.09 715 19 12쪽
29 완벽한 놈 (4) +3 24.04.08 751 24 12쪽
28 완벽한 놈 (3) +4 24.04.07 768 26 12쪽
27 완벽한 놈 (2) +3 24.04.06 762 22 12쪽
26 완벽한 놈 (1) +2 24.04.05 805 24 12쪽
25 팬 미팅 (2) +2 24.04.04 829 26 12쪽
24 팬 미팅 (1) +2 24.04.03 863 26 12쪽
23 끝이 아닌 시작 (3) +3 24.04.02 871 29 11쪽
» 끝이 아닌 시작 (2) +1 24.04.02 892 23 12쪽
21 끝이 아닌 시작 (1) +2 24.04.01 957 29 12쪽
20 한눈팔지 않겠다 (2) +2 24.03.31 956 3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