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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연기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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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3.14 16:51
최근연재일 :
2024.04.2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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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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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자 (2)

DUMMY

SN 엔터테인먼트 소회의실.

정민재는 연기 부문 김 이사와 대화 중이었다.


“이번 KBC 연기 대상에서 신인상은 너하고 강준호가 공동 수상이야.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이대로 확정이라고 봐도 될 거야.”

“공동 수상이라. 또 나눠 먹기인가요?”


정민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쓰게 웃었다.


이놈의 공동 수상.

가요계에서는 공동 수상을 아닌 것을 찾는 게 더 힘들었다.

대상만 해도 최고 앨범상, 최고 아티스트 상, 최고 음원상 등으로 쪼개 대상을 사실상 여럿으로 만들었다.

뭐가 제일 중요한지 가수도 헷갈릴 지경이었다.


“공동 수상은 시작이야. 동갑, 여성 팬의 압도적인 지지, 게다가 또래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연기력까지. 너와 강준호는 여러모로 비슷해. 비교하기 좋아하는 언론에서도 연일 너와 강준호를 다루고 있고. 너희 둘은 앞으로도 계속 영화와 드라마에서 부딪칠 거야.”


둘의 이미지는 사뭇 달랐다.

정민재는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섬세한 스타일.

반면 강준호는 선이 굵고 다소 반항아적인 인상을 풍겼다.


“사람들이 하도 저와 강준호를 비교하기에 저도 그의 드라마를 봤습니다. 솔직히 제 취향은 아니더라고요.”

“아침 드라마가 다 그렇지. 그래도 강준호의 연기는 단연 돋보였어. 처음엔 김희성과 성태철에 이은 조연이었지만, 중반 이후엔 선배들을 밀어내고 로맨스의 중심으로 나섰으니까. 엔딩도 녀석의 차지였고.”

“저도 그의 연기는 인정합니다. 자칫 불륜으로 손가락질받을 수 있는 걸 금지된 사랑으로 바꿨더라고요. 카메라 페이스와 피지컬도 훌륭하고요. 기회가 되면 한번 만나 보고 싶어요.”


정민재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연습생 생활만 5년이었다.

그리고 강준호도 오랜 단역 생활을 거쳤다.

나이도 같으니 분명 통하는 것도 많을 것 같았다.


“잘됐네. 안 그래도 강준호가 소속사를 통해서 KBC에 재미있는 제안을 했거든.”

“재미있는 제안이요?”

“응. KBC 드라마국의 고위층이 녀석을 좋게 보고 있거든. 그래서 신인상을 빌미로 전속 계약처럼 녀석을 묶으려고 했는데, 녀석이 그걸 승낙하면서 몇 가지를 역제안한 모양이야. 그런데 그중 하나가 너와 관련이 있어. 오늘 널 갑자기 부른 것도 그 때문이고.”


김 이사는 괜히 좌우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명색이 공중파 거대 방송국인데.

KBC의 양아치 짓은 이 바닥에서 유명했다.


“저도 관련이 있다고요? 무슨 제안인데요?”

“평범한 공동 수상은 너무 식상하잖아. 수상 소감을 말하면서 너하고 합을 맞춰보고 싶대.”

“아, 드라마 엔딩 씬처럼요?”


정민재는 ‘내 여자의 남자’의 엔딩을 떠올렸다.


유성우가 쏟아지는 늦은 밤.

강준호는 일반 팬을 모아놓고 연극처럼 감동을 선사했다.

다만 이번엔 선, 후배 연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국에 생중계되는 것으로 판이 커졌다.


“그렇지. 네가 출연한 이상한 나라의 요리사, 강준호가 출연한 내 여자의 남자. 둘을 적절히 섞은 내용으로 스토리를 짤 거야. 가요 대상에서도 콜라보를 많이 하잖아? 남, 녀 아이돌이 곡을 바꿔 부르기도 하고, 옛날 곡을 리믹스해서 같이 공연하기도 하고. 그걸 생각하면 돼.”

“흥미롭네요. 그럼 자연스럽게 우리 둘이 비교될 텐데. 그만큼 연기력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죠?”

“그것도 있겠지. 실제로 강준호는 드라마가 회차를 거듭할수록 연기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으니까. 요즘 액션 영화를 찍으면서 연기력이 레벨업했다는 소문도 무성하고.”

“KBC에서는요? 원래 계획했던 시상식에서는 그런 게 없었을 텐데요.”

“흔쾌히 승낙했어. 떠오르는 신인 배우들의 즉석 연기 대결. 방송국 입장에서는 누가 이기든 대박이잖아. 다른 시상을 조금씩 줄여서라도 너와 강준호의 연기를 메인에 배치하겠대.”


김 이사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베테랑 연기자가 총출동하는 자리였다.

성공하면 역대 최고의 공동 수상으로 남겠지만, 자그마한 실수라도 나오면 창피를 감수해야 했다.


“아무튼 네 대답은?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어. KBC 국장은 내가 알아서 커버할 테니까.”

“제 스타일 아시잖아요? 도전을 무서워했다면 이 자리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정민재는 씨익, 엷은 미소를 머금고 덧붙였다.


“시상식 무대까진 이틀밖에 안 남았네요. 당장 강준호와 자리를 마련해 주세요. 합을 맞추기 전에 우선 어떤 배우인지 알아봐야죠.”


연극 같은 공동 수상 소감 발표.

벌써 머릿속에서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졌다.


***


30분 뒤, MW 액터스 소회의실.


“정민재한테 대답이 왔어요. 보기보다 성격이 급한 모양이더라고요.”


최 대표가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뭐라고 하던가요?”


준호는 깍지 낀 손으로 턱을 괴며 물었다.


“탑 아이돌다운 정석적인 대답이었어요. 팬을 위한 특별 이벤트는 언제든 환영이라더군요.”

“하긴, 제가 그를 의식했듯 그도 저를 의식하고 있었을 겁니다. 언론과 커뮤니티에서 그렇게 떠들어댔는데, 당사자가 모르면 그게 더 이상하죠. 작가님들은요?”

“작가들도 승낙했습니다. 자기들도 기회가 되면 가수들처럼 콜라보를 해보고 싶었대요. 3~5분 분량이니까 대본은 금방 나올 거예요.”


내 여자의 남자, 황순애 작가.

이상한 나라의 요리사, 김정은 작가.

둘 다 베테랑이지만 작가 서열로는 김정은이 앞섰다.

황 작가도 주부 사이에선 유명했지만 김정은은 프라임 시간대를 맡은 슈퍼스타였다.


‘사실 황순애도 대단하지. 드라마 메인 작가 중에는 어린 축이니까. 남들은 보조 작가를 전전할 나이에 메인을 꿰찼고.’


김정은도 시작은 단막극과 아침 드라마였다.

이후 평일 저녁의 일일 드라마에서 대박을 쳤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은 끝에 프라임 시간대까지 진출했다.

어떻게 보면 황순애는 김정은의 뒤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후배인 셈이었다.


“연습 장소는요? 저야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그 부분에서 우리하고 SN하고 조금 이견이 있었습니다. 일종의 자존심 싸움이랄까요? 결국 KBC 별관의 소회의실에서 만나는 걸로 합의했습니다.”


누구의 소속사에서 만날 것인가?

회사의 자존심 싸움도 배우 못지않게 치열했다.

규모는 아이돌 위주의 SN 엔터가 훨씬 컸지만, 배우로 한정하면 MW 액터스가 위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정민재를 만나 볼까요?”


준호는 히죽 웃으며 일어났다.


“긴장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정민재도 아이돌 팬의 성화 덕분에 신인상을 받은 게 아니니까요. 뭐, 강 배우님도 연기력은 꿀리지 않습니다만.”


최 대표도 미소를 머금고 따라나섰다.


***


방송국으로 가는 밴 안.


“톱 아이돌인데 인성도 좋다는 편입이다. 연습생 생활을 오래 해서 성실하고요. 여러모로 강 배우님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최 대표가 동행하며 업계 소문을 전해줬다.


인지도와 인기는 정민재가 훨씬 위였다.

녀석은 해외에서도 유명한 톱 아이돌이었다. 가수로서 월드 투어도 두 차례.

준호도 몇 달 사이에 인지도를 제법 끌어올렸지만, 아이돌에 비할 수는 없었다. 팬클럽의 규모만 해도 녀석이 10배 이상 앞섰다.


“강 배우님이 숙이고 들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배우 커리어만 보면 단역부터 올라온 강 배우님이 대선배니까요. 드라마 성적도 강 배우님이 더 좋았고요.”


이윽고 방송국 주차장에 도착했다.


“2시 미팅이니까 여유 있게 도착했네요. 먼저 가서 기다릴까요?”


준호가 코트를 챙겨 들고 내리려는 찰나였다.


“잠깐만요.”


최 대표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잡았다.


“왜 그러세요?”

“강 배우님이 선배 아닙니까? 5분만 늦게 가시죠. 초면에 10분 이상 늦으면 예의가 아니고, 그렇다고 일찍 가서 기다리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죠. 5분이 딱 좋습니다. 차가 조금 막혔다고 둘러대기도 좋고.”

“저보다 대표님이 더 라이벌 의식을 느끼시는 것 같네요.”


준호는 피식 웃으며 도로 앉았다.


생각해 보니 대표가 여기까지 따라온 것도 드문 일이었다.

SN에서는 무슨 이사가 온다고 한 터. 최 대표가 직접 나서 기선을 제압하려는 모양이었다.


‘날 챙겨주는 건 고마운데, 오버하시는 거 아닌가?’


조금 부담됐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손목시계를 보니 10분 이상 여유가 있었다.

준호는 백팩에서 태블릿을 꺼내 PDF 파일을 열었다.

최 대표에게 부탁해 구한 ‘이상한 나라의 요리사’ 대본이었다.


“김정은 작가도 잘 썼네. 정민재에 캐릭터를 맞춘 건지, 캐릭터를 정민재에게 맞춘 건지 모르겠지만, 배우하고 캐릭터의 싱크로율이 100%야.”


자타공인 얼굴 천재.

대본과 드라마를 볼수록 정민재에 대한 흥미가 커졌다.


***


2시 3분.

김 매니저가 먼저 내려 차 문을 열어 줬다.

평소에는 준호가 직접 문을 열고 내렸지만, 오늘은 최 대표도 타고 있었다.


정확히 2시 6분.

약속한 소회의실 앞에 도착했다.

매니저가 문을 열고, 최 대표와 준호가 차례로 들어갔다.


‘자존심 싸움은 나만 한 게 아니었구나.’


준호는 들어가다가 멈칫했다.


정민재도 방금 도착한 모양이었다.

그의 바로 앞에 서서 소회의실을 둘러보고 있었다.


녀석과 시선이 마주쳤다.

TV로 보던 것보다 훨씬 예뻤다.


‘녀석이 콘서트에서 여장해서 난리가 났었다지?’


그가 봐도 반할 미모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준호입니다.”

“정민재입니다. 배우님 작품 재미있게 봤습니다.”


가볍게 웃으며 악수.

정민재도 비슷한 생각인 모양이었다.

눈알을 열심히 움직이며 그를 위, 아래로 탐색했다.


“SN 엔터 김달수입니다.”


뚱뚱한 이사와도 인사한 직후였다.


준호는 돌연 엷은 미소를 머금고 정민재를 돌아봤다.


“사랑은 어떤 것이라고 묻는다면, 당신을 찾았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이라고 대답하겠어요. 난 당신을 만나고 비로소 사람이 된 기분이에요.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될 거예요.”


낮지만 감미로운 목소리.

준호의 눈은 진짜 사랑하는 이를 대하듯 반짝였다.


‘강 배우가 그런 취향이었나?’

‘이 새끼 뭐야? 지금 우리 민재한테 고백하는 거야?’


최 대표와 김 이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김 이사는 정민재를 보호하려는 듯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왔다.


실제가 아니었다.

‘이상한 나라의 요리사’에 나온 정민재의 연기였다.

극 중 정민재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 변호사에서 여주인공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달았다.


다만 같은 대사, 같은 연기라도 느낌은 전혀 달랐다.

극 중 정민재의 연기는 첫사랑처럼 아기자기했지만, 방금 준호의 연기는 성숙한 남자의 향기를 물씬 풍겼다.


“사람은 언제나 안녕이라는 마지막을 준비해야 하죠. 고독은 배신할 일이 없는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습니다.”

“······.”

“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먼 훗날 누군가 내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전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이 행복해하는 걸 보는 순간이 제겐 가장 큰 행복이었다고.”


정민재는 독백처럼 담담하게 읊조렸다.


‘내 여자의 남자’의 엔딩 씬이었다.

그의 긴 속눈썹에 눈물이 떨어질락 말락 맺혔다.


‘이 녀석 뭐야? 내 연기와 결은 달라도 멋있잖아?’


같은 남자지만 순간적으로 심쿵했다.

방금 민재의 연기는 동화 속 왕자님이 고백하는 것처럼 달달했다.


“기가 막히네요. 우리 강 배우님 연기를 이렇게 달달하게 재해석하다니.”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 설마 우리 민재의 연기를 완벽하게 분석했을 줄이야.”


최 대표와 김 이사는 뒤늦게 상황을 깨닫고 쓰게 웃었다.


짧은 침묵.


‘이 녀석은 진짜다. 겉멋 든 아이돌과 달라.’

‘방심할 수 없어. 자칫하면 내가 먹힌다.’


준호와 정민재는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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