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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연기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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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3.1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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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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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2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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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작발표회

DUMMY

“그레이트 시네마 쇼. 오늘은 액션 거장 민대준 감독과 안방극장의 신성 강준호의 만남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형사의 제작발표회에 왔습니다.”


리포터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능숙하게 멘트를 날렸다.


토요일 오후.

S 호텔은 아침부터 영화 관계자로 북새통이었다.


사전에 초대장을 받은 인원만 이백여 명.

밖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팬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작사 스태프 이십여 명이 상황을 통제하려 동분서주했지만 잘 될 리가 없었다.


- 형사, 리얼 액션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호텔 여기저기에 걸린 큰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꺄야.”

“떴다!”


정문 쪽에서 자지러지는 듯한 함성이 들렸다.

모두의 시선과 카메라의 플래시가 그쪽에 집중됐다.


카메라도 소리 난 방향으로 카메라를 돌렸다.


“드디어 민대준 감독과······.”


리포터가 상기된 표정으로 뭐라 말했지만 함성에 묻혀 안 들렸다.


짙게 선팅한 대형 밴에서 민 감독과 배우들이 차례대로 내렸다.

후배 역할의 여배우와 악역을 맡은 중견 남자 배우, 태국의 액션 스타도 참석했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온통 준호에게 집중됐다.


마침내 새미 정장을 입은 준호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어?”


함성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몇몇 여성 팬은 양손으로 입을 막고 눈을 부릅떴다.


“저게 강준호라고?”


경험이 풍부한 리포터도 당황해 눈만 끔뻑거렸다.


여심을 홀리는 로맨티스트 이현이 아니었다.

잘 벼린 칼처럼 날카로운 남자가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다.

조각 같은 이목구비와 뚜렷한 얼굴선은 여전했지만, 눈 밑에 드리운 짙은 그늘 탓에 우수에 차 보였다.


“와,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

“저게 강준호라고? 정말 독하게 몸을 만들었나 보네.”

“연기 변신을 제대로 하려는 모양이네.”


침묵은 잠시.

그 어느 때보다 큰 함성이 울려 퍼졌다.


***


제작발표회 현장.

기자들의 관심은 주연인 준호에게 집중됐다.

영화는 드라마와 달리 제작발표회를 생략하기도 했지만 이번엔 예외였다.


- 아침 드라마 조연 출신이 벌써 단독 주연이라고?

- 싸움은 잘하지만 너무 빠른 거 아니야?

- 솔직히 강준호의 전체적인 연기력은 딱 평균치잖아. 대작을 잘 끌어갈 수 있을까?


일부에서 제기하던 의문과 불안은 씻은 듯 사라졌다.


복수심에 불타는 고독한 형사.

준호의 이미지는 영화의 캐릭터, 그 자체였다.

그저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영화의 시놉시스, 주인공의 성격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건 무엇입니까?”

“단기간에 5kg이나 감량하셨는데, 비결이 뭡니까?”

“흥행이 보장된 멜로 대신 액션에 도전하신 이유가 뭡니까? 소감이 어떻습니까?”


기자들의 질문과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연기에 대한 욕심입니다. 팬들께도 하나의 이미지가 아니라 다양한 연기를 보여드리고······.”


준호는 소속사에서 준비해 준 모범 답안을 읊어 댔다.

간혹 예상에 없던 질문도 나왔지만, 농담까지 곁들이며 능숙하게 받아쳤다.


“그레이트 시네마 쇼, 이찬혁입니다. 이번 촬영을 앞두고 다양한 훈련을 받은 걸로 알려졌는데, 구체적으로······.”


리포터가 손을 들고 일어나 질문하는 도중이었다.


쾅, 무대의 옆에 있는 문이 거칠게 열렸다.

모두는 반사적으로 문을 돌아봤다가 멈칫했다.


야구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내.

왼손에 든 칼이 조명을 받아 섬뜩하게 빛났다.

그는 장내를 쓰윽 훑어본 후 무대를 향해 돌진했다.


혼비백산.


“꺄아아!”


다시 비명이 길게 울렸다.

감독과 배우들이 등장할 때와 다른, 진짜 경악에 찬 비명이었다.


***


‘전에 그 깡패인가?’


리포터는 도망치려다가 멈칫했다.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감독과 배우들은 황급히 무대 구석으로 물러났다.


“멈춰.”


준호가 놈을 막아섰다.


놈의 목표도 준호인 모양이었다.

놈은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며 몸을 풀었다.


‘이건 대박이다. 놓칠 수 없어!’


리포터는 카메라맨에게 눈짓했다.


카메라맨도 같은 생각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뒤, 카메라를 들고 무대를 클로즈업했다.


“그레이트 시네마 쇼. 지금부터 저 이찬혁이 목숨을 걸고 상황을 중계해 드리겠습니다.”


이 와중에도 본분을 잊지 않았다.

리포터가 화면 구석에 서서 낮고 빠른 어조로 멘트를 날렸다.


무대 위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도망치려던 사람들도 돌아서서 무대를 주목했다.


킬러는 단검을 가슴 높이로 든다.

칼은 수직에서 15도쯤 기울여서 상대를 향한다.

리포터는 모르겠지만 인도네시아의 전통 무예인 펜캇 실랏과 비슷하다.


준호는 무기가 없다.

가죽 벨트를 풀어서 양손으로 끝을 쥔다.

손에 잡히는 건 뭐든 무기로 사용하는 게 크라브 마가의 특기다.


‘3, 2, 1.’


속으로 약속된 타이밍을 잰 뒤.

킬러가 돌진하는 것과 동시에 준호가 오른손의 벨트를 채찍처럼 뻗는다.


단검보다 벨트의 리치가 길다.

짜악, 놈이 벨트에 뺨을 맞고 당황하는 순간, 준호는 물러나 거리를 둔다.


놈이 좌우로 페이크를 주며 접근한다.

속지 않는다. 준호는 놈이 스텝을 뻗을 때마다 벨트를 휘둘러 차단한다.


영화 같은 멋진 대사는 없다.

둘의 숨소리만 낮고 짧게 들린다.

놈의 뺨이 대번 벌겋게 부어오른다.


‘와, 이거 장난이 아니네.’


리포터는 멘트를 잊고 입을 쩍 벌렸다.


2분 정도 탐색전을 벌인 뒤.

놈이 상체를 바싹 숙이고 달려든다.

쫘악, 준호의 벨트가 목덜미를 후려치지만 개의치 않는다.


마침내 놈이 준호의 품을 파고든다.

지금부터는 단검을 쥔 쪽이 훨씬 유리하다.

준호는 양손으로 벨트 끝을 쥐고 놈의 단검과 오른손을 휘감으려 한다.


상대는 단검을 왼손으로 바꿔 쥐고 그의 얼굴을 찌른다.

준호는 물러나는 한편, 벨트를 수직으로 당겨 놈의 왼손을 친다.


뒷걸음질하는 준호와 따라오는 킬러.

파파팍, 단검과 벨트의 공방전이 빠르고 현란하다.


하지만 역시 벨트로는 한계다.

겨우 베기를 피한 순간, 단검은 역방향으로 준호의 옆구리를 베어 온다.


준호는 너덜너덜해진 벨트를 당겨 옆구리를 보호한다.

젠장, 완벽히 못 막았다. 셔츠가 찢어지고 금세 핏물이 흘러나온다.


“꺄아!”


다시 비명이 터졌다.

준호가 아니라 구경하던 사람들의 것이었다.


“큭.”


준호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신음을 참는다.

안색이 하얗게 질리고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힌다.


벨트를 쥔 양손을 교차시켜 단검을 휘감는다.

놈이 팔을 빼려 하지만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칼을 든 상대의 오른손을 잡고, 동시에 왼발로 상대의 발목을 후려친다.


퍼억, 공격이 제대로 들어간다.

놈이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넘어진다.


준호는 상대의 머리 쪽으로 롤링, 등 쪽을 이동한다.

그다음 그립을 당겨서 상대의 백마운트 자세를 잡는다.


“아바테 롤?”


누군가가 기술의 연계를 알아보고 경악해 외쳤다.


그가 킬러를 뒤에서 안고 누운 자세가 된다.

상대의 거친 호흡과 열기가 느껴진다. 암바로 팔을 부러뜨리려 했지만, 킬러도 용케 팔을 빼낸다.


암바는 속임수다.

준호는 양발 사이에 상대의 목과 어깨를 삼각형 모양으로 잠그는 트라이앵글 초크로 전환한다.

킬러는 몸부림치며 반항하지만, 준호도 이를 악물고 더욱 조인다.


잠시 후, 킬러는 입에 거품을 물고 사지를 축 늘어뜨린다.

동시에 준호도 안색이 하얗게 돼 고개를 옆으로 떨군다. 그 와중에도 조이기 자세는 완벽하게 유지한다.


“어떻게 된 거지?”

“죽었나? 강준호는?”

“119! 빨리 119 좀 불러 봐.”


모두가 당황해 웅성거렸다.


혈투를 보느라 잠시 넋이 나갔다.

누군가가 뒤늦게 핸드폰을 꺼내 112에 전화했다.


“보셨습니까? 방금 강준호가······.”


리포터가 잔뜩 흥분해 침을 튀기며 말하는 도중이었다.


“컷!”


민 감독이 손뼉 치며 무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응? 컷?

다음 순간, 준호와 킬러도 일어났다.


“수고하셨습니다.”

“그새 액션이 더 늘었네요.”


둘은 서로 어깨를 토닥이며 환하게 웃었다.


어깨동무하고 카메라를 향해 엄지 척.

감독도 가운데 끼어들어 까치발을 하고 포즈를 취했다.


“아, 깜짝 이벤트였어?”

“미리 귀띔이라도 해 주지. 놀랐잖아.”


그제야 기자들은 경쟁적으로 플래시를 터뜨렸다.


킬러가 마스크와 모자를 벗었다.

다부지고 강한 인상의 사내, 무술감독 정이훈이었다.


***


제작발표회 이틀 전.

제작사 회의실에서 미팅을 가졌다.

기자들의 예상 질문에 대비한 일종의 리허설이었다.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늘 해오던 거니까 특별히 어려운 건 없을 거예요.”


민 감독이 회의를 끝낼 무렵이었다.


“보통 제작발표회는 시나리오 소개와 간단한 토크로 진행되잖아요. 멘트도 뻔하고. 하지만 이번엔 액션 영화답게 특별한 이벤트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준호가 손을 들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어떻게요?”

“오디션에 했던 액션을 변형하는 겁니다. 영화에 나올 액션을 맛보기로 조금 보여주는 거죠.”


기자들이 모인 제작 발표회.

괴한이 무대에 난입하고 주인공이 이를 격퇴한다.

어디선가 본 듯한 전개였지만, 중요한 건 연극처럼 즉석에서 펼쳐진다는 점이었다.


“아, 그림 좋네요. 팬들의 뇌리에도 강렬하게 박힐 테고.”


민 감독은 대번 의도를 파악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술 감독도 대찬성.

칼과 벨트를 이용하자고 살을 붙였다.


‘다만 이걸로는 부족해. 시스템의 힘을 빌려야겠어.’


오피스텔에 돌아온 뒤, 준호는 소파에 앉아 시스템 창을 열었다.


······

신체 : 187cm, 70kg.

직업 : C급 연기자

획득 포인트 : 2,352

잔존 포인트 : 140

······


액션 스쿨에서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대본 분석 등 준비도 착실히 한 덕분에 포인트가 제법 쌓였다.


우선 기술 연기 중 주짓수에 31포인트 투입.

무기의 하위 항목 중 ‘기타 - 벨트’에도 31포인트를 투입했다.

상황 연기 중 ‘일 대 일 무기 대결’을 레벨 5로 만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기까지 93포인트 사용.


“아참. 내가 다치는 것도 계산해야지.”


끝으로 상황 연기에서 ‘부상(칼)’을 레벨 5로 올렸다.


“좋았어. 대한민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제작발표회를 보여주는 거다.”


드라마 제작발표회는 참석도 못 했다.

준호는 주먹을 가볍게 움켜쥐고 결의를 다졌다.


결과는 대성공.

눈앞의 기자들이 야단법석을 떨며 중계하는 게 그 증거였다.


***


“실제 같은 액션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열심히 했으니 기대해 주십시오.”


제작발표회에서 으레 등장하는 상투적인 멘트였다.


하지만 영화 ‘형사’의 발표회에서는 말이 필요 없었다.

준호와 무술 감독의 액션 연기만으로 영화에 대한 모든 게 설명됐다.

발표회장의 격투는 기자들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전해졌고, 모든 뉴스와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다.


- 그래, 이런 게 진짜 액션 영화의 제작 발표회지.

- 맛보기로 보여준 게 이 정도라고? 영화에서는 대체 얼마나 대단한 액션을 보여주려는 거지?

- 최근 20대 주연급 액션 스타가 없었는데. 드디어 구세주가 나타났네.

- 강준호의 저 피지컬과 이미지가 멜로에 한정되는 건 아쉽지. 극장에서 꼭 본다.


팬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커피차나 선물을 보내겠다는 문의가 너무 많아 제작사에서 따로 공지할 정도였다.

원래 가을에 예정이었던 영화들이 준호를 피하기 위해 개봉을 서두른다는 소문도 있었다.


대세 배우와 액션 거장의 의기투합.

영화 관계자와 팬들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마침내 영화 ‘형사’의 촬영이 시작됐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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