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록시(錄始)의 서재

아날빛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연재수 :
176 회
조회수 :
13,154
추천수 :
431
글자수 :
916,352

작성
23.09.15 08:45
조회
58
추천
3
글자
10쪽

그다음_각자의 목표

DUMMY

점심때가 지나 카페 미루안은 한산했다.


사빈은 유리문을 기웃거리다가 들어갔다.

소품샵은 문만 활짝 열려있고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예상대로 가온은 카페에 와 있었다.


나토두도 조용히 따라 들어갔다. 바나는 벌써 옥상으로 사라진 뒤였다.


“달숲은 열어놓고 주인은 여기 와 있어?”

사빈이 들어가자 카운터 앞에 앉아있던 가온이 펄쩍 뛰어올랐다.


“사빈! 살아있었구나! 응?”

가온은 사빈을 끌어안았다.


“다행이다. 중천으로 안 들어가서.”

“나 중천에 사는걸?”

“뭐? 응?”

가온이 한걸음 떨어져서 사빈을 살펴보았다. 얼굴이며 팔다리며, 중간자 그대로였다.


“사빈님은 중천의 임천사령 고마가 되셨습니다.”

나토두가 정중하게 소개했다.


“마고를 뒤집었어? 웬 고마? 고구마?”

“중천을 가꾸는 일꾼이야. 가온, 나 배고파.”


사빈은 배를 붙잡고 허리를 숙였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다. 오랜만에 인간세에 내려온 데다 정신없이 마물까지 상대하니 너무나 지쳤다.


사빈은 비틀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하륜이 우유를 두 잔 따라주었다.

“이거 마시며 기다려요. 샌드위치 만들게요.”


사빈과 나토두는 단숨에 우유를 비웠다. 조금 기다리니 눈빛이 돌아왔다.


가온은 사빈 옆에 붙어 앉았다.

“황금들 소식은 들었어. 중앙황천이 승리했다고. 네 소식을 못 들어서 걱정했단 말이야.”


가온은 사빈의 팔을 들어보고 어깨를 쿡쿡 찔렀다.

“기운이 좋아졌네? 더 강하고 세졌어. 무슨 일 있었어?”


“그걸 다 이야기하려면 하루로는 어림없을걸?”

“오호? 그 말은 며칠 머문다는 뜻이지?”

가온이 요란하게 손뼉 쳤다.


“맞다! 그믐 아닌 날은 처음이지? 인간세의 보름달을 볼 절호의 기회야. 우리 달구경 하자.”

가온이 들떠서 사빈의 소매를 잡고 흔들었다.


사빈도 보름달을 보고 싶었지만, 도우미들을 생각하니 불안했다.

찻집은 에밀레가 맡았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사빈님, 이제부터는 마음대로 외출하세요. 아름누리는 제가! 잘 지킬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에밀레는 사부랑차와 단비차도 구별할 줄 모른다. 다섯 성천의 운행은 잘 알면서 사소하고 자잘한 것은 못 보다니.


“어리화가 그대로 남았네요?”

하륜이 샌드위치를 건네며 사빈의 손목을 가리켰다.


어리화 무늬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어리화가 아닌 검은 꽃이 남았다.

잎과 줄기는 지워졌고, 꽃잎도 한 장이 사라졌다. 다섯 장의 검은 꽃이 그 자리에 남았다.


“예. 황제님은 이 꽃이 사라지지 않을 거래요.”

“응? 왜?”

가온도 꽃무늬를 들여다보았다.


“아직 예언이 완성되지 않아서.”

사빈은 검은 꽃을 보며 어깨로 스며든 나비를 떠올렸다.


백록색 날개 끝에 녹청색 점이 박힌 마눙의 나비.

’나비가 있어서 꽃이 남은 걸까? 아니면, 꽃이 남을 걸 알고 나비를 주셨을까?‘


“이런 말씀도 하셨어. 앞으로 선홍색이 짙어질 때까지 후계자를 못 찾는 마고는 없을 거라고.”

“호오, 벌써 앞날을 내다보신 거야?”


가온은 사빈이 샌드위치를 다 먹기를 기다렸다가 속삭였다.

“얼음대감은 어때? 중천에 자주 와?”


“지금은 부사님이십니다. 중천에 정혜부를 만들었거든요. 열린마을을 지키려고.”

나토두는 말을 마치고 샌드위치를 하나 더 베어 물었다.


가온과 하륜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며 사빈을 바라보았다.


“아름누리를 지키는 부대야. 백하님은 부사가 되어 중천으로 왔고.”

“어쩜! 낭만적이다. 둘이 매일 붙어있겠네?”


“아니. 차사들은 중천에 반나절 이상 머물 수 없어. 중천의 바깥 결계를 번갈아 지켜.”

“뭐야? 둘 사이에··· 그다음은 없어?”


사빈은 가온의 장난기 어린 눈을 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저 기운에 휘말리지 말아야 하는데.


“백하님에게 검술을 배우고 있어. 아움을 제대로 쓰려고.”

“오! 그럼 막 이렇게, 이렇게···.”

가온이 뒤에서 사빈을 끌어안고 칼 쓰는 시늉을 했다.


“뒤에서 잡아주고, 안아주고 그래?”

“검술에 그게 왜 필요해?”


사빈이 갸웃거리자 가온이 자기 이마를 탁 쳤다.

“으이고. 그럼 진도는 언제 나가?”


“열린마을 가꾸는 것도 도와줘. 찻집과 텃밭, 약초밭도 만들었거든. 나중에 온천도 만들려고 샘도 팠고. 같이 산책도 하고, 마을도 가꾸고 그래.”

백하를 생각하자 사빈의 얼굴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쯧쯧, 그래도 좋댄다.”

가온은 혀를 차다가 사빈의 허리띠에 달린 아리 인형을 발견했다. 반쪽만 남은 것을 보고 흐흐흐 음흉하게 소리 내었다.


“이거, 연인이랑 나눠 가졌어?”

“아, 꽃수 열쇠처럼 쓰려고. 이번이 첫 시도였어. 한쪽은 고아당에 있어.”


“뭬야? 연인이랑 나누랬더니···.”

가온이 에효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하륜이 손을 내밀었다.

“그 인형, 줘보세요.”


사빈은 하륜에게 반쪽짜리 병아리 인형을 내밀었다.


그는 손바닥에 인형을 올려놓고 주문을 외웠다. 입속에서 웅얼거리는 소리라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사빈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갈 거예요. 인연을 연결해 주는 거죠. 열쇠 주인이 가고 싶은 곳도 찾아갈 거예요. 예를 들면···.”


그는 인형을 돌려주며 싱긋 웃었다.

“신성한 땅 같은 곳?”


“아, 맞다. 나 신성한 땅에 가려고 나왔는데! 어디 있는지 몰라서 엉뚱한 곳에 떨어졌어.”

사빈은 아리 인형을 쓰다듬었다.


“이것만 있으면 신성한 땅으로 갈 수 있어요? 생각만 하면요?”

“예. 인간세에서 내가 아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어요.”


“우와, 하륜님이 아는 곳이면 어마어마하겠네요? 소망단을 나눠줄 때도 이것만 있으면 되겠네요?”

“소망단? 그건 뭐야?”

“그것도 얘기해야 하나···. 이러다간 끝이 없겠어.”


“뭐냐니까?”

“중천의 혼에게 사리수를 받아 만든 거야. 사리수 백팔 방울을 모아 소망단 하나를 만드는데, 겨우 하나 만들었어.”


“그걸로 뭐 하려고?”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대.”


사빈은 아리 인형을 허리띠에 잘 매달았다.

“혼들은 사리수를 내보내면 마음이 가벼워진대. 해방되는 느낌이라던가?”


“새로 시작하는 겁니다. 지난 시간은 돌아보지 않는 거죠.”

나토두가 접시를 깨끗이 비우고 하륜에게 건넸다.


사빈은 아리 인형을 만지작거렸다.

“찻집도 자리 잡을 거고, 꽃밭도 넓어질 거야. 그럼 손님이 많아지겠지? 그때 사리수를 받는 거지. 중천을 나갈 때까지 마음대로 쓰라고.”


“숨꼭지처럼?”

“응.”


가온이 쯧쯧 입맛을 다셨다.

“마고에서 고마로 글자만 뒤집었는데, 이렇게 달라지나? 사기꾼이 따로 없네. 중천에 뭐 볼 게 있다고?”


“중천도 달라질 거야. 지금도 좋아지고 있어. 그러려면 신성한 땅의 흙이 필요한데···.”

사빈은 카페 안의 화초를 향해 돌아앉았다.


선인이 키우는 데다 이 층에 정령의 후손이 살고 있으니 화초들은 늘 싱그럽고 윤기가 흘렀다.


“가온, 신성한 땅에 예님님이 사는 거 알아?”

“예님이라면···. 오래 전의 마고?”


“한얼이 만났대. 흙을 가지러 갔을 때.”

한얼을 생각하자 가슴 한쪽이 따끔거렸지만 사빈은 마음을 다독였다.


“신성한 땅에 살고 있대. 그때는 여우의 모습으로. 무슨 숙제를 한다는데···.”

그것이 신성한 땅에 가고 싶은 또 다른 이유였다.


예님은 이전 마고 중에서도 인간세에 머무는 혼백이었다. 신성한 땅의 흙도 필요했지만, 예님도 만나고 싶었다.


그토록 오래 인간세에 머물렀으니 사빈에게 단서를 줄 것이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사빈은 일어나 목에 건 작은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소망단을 넣은 주머니였다.

“지금 목표는 소망단을 나눠주면서 마물을 처리하는 거야. 마물 조각을 다 치울 때까지.”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나토두는 계속 싱글거렸다.

손으로 턱을 받치고 사빈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지그시 살펴보았다.


“그럼 자주 내려오겠네? 아무 때나?”

“숨은 그림자가 그믐에 일어난다고 했어. 앞으로도 그믐에 나올 것 같아.”


“우리도 그믐밤의 손님을 받으니까···. 오! 우리 동업하자.”

가온이 손을 내밀었다.


“손님 중에 소망단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수 있잖아? 그치?”

가온은 하륜을 바라보며 동의를 구했다.


하륜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고 온봄과의 계약도 잘 끝났고, 이번에는 고마 사빈과의 계약이라?”


가온이 크크크 기괴한 소리를 냈다.

“바림창고의 유물에 소망단까지! 일이 잘 풀리는데?”


“사빈님을 도와주셔서 복 받은 거 아닐까요?”

나토두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사빈을 많이 도와줘라, 이 말이지?”

가온이 나토두의 어깨를 두드렸다.


카페의 문이 열리고 손님들이 몰려왔다. 가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얘기를 들어야 하니 자리를 옮겨볼까?”

“지금까지 이야기했잖아?”


“무슨 얘기? 이건 인사였고.”

가온이 사빈의 팔에 자신의 팔을 걸쳤다.


“백슬··· 아니, 온봄을 데려간 다음부터 제대로 얘기해야지. 그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가온은 나가면서 하륜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가온과 사빈, 나토두가 ‘달숲의 작은 천사’로 들어가려는데 무언가 쌩 앞을 지나갔다.


알록달록한 앵무새 한 마리가 달숲으로 날아들었다. 천수산에서 본 그 앵무새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날빛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드디어 완결했어요~ ^^ +2 23.09.15 82 0 -
공지 차원의 문지기들이 궁금하시다면...? 23.09.02 84 0 -
공지 심지아와 지새늬에 대한 이야기는... 23.09.02 69 0 -
공지 완결까지 하루 2회씩 올릴게요 23.08.29 77 0 -
176 그다음_새로운 도전 (마지막 회) +4 23.09.15 97 3 9쪽
» 그다음_각자의 목표 +2 23.09.15 59 3 10쪽
174 그다음_싸움 구경 23.09.15 58 3 12쪽
173 중천_소망단이라 이름하다 23.09.14 47 3 12쪽
172 중천_열린마을의 식구들 23.09.14 72 3 10쪽
171 중천_도우미 구하기 23.09.13 72 3 12쪽
170 중천_첫 번째 손님 23.09.13 56 3 12쪽
169 중천_임천사령 고마 사빈 +2 23.09.12 54 3 11쪽
168 천계_새로운 마고 23.09.12 53 3 12쪽
167 천계_암연층으로 +2 23.09.11 54 3 13쪽
166 천계_잃어버린 조각 23.09.11 77 3 12쪽
165 천계_오래된 사연 23.09.10 56 2 12쪽
164 천계_이안남존의 라온성 23.09.10 58 2 12쪽
163 천계_마고가 돌아오다 23.09.09 58 3 10쪽
162 천계_해날품곡의 함정 23.09.09 58 3 13쪽
161 천계_마음숲의 침입자 +2 23.09.08 68 3 11쪽
160 그믐_삼도천이 막히다 23.09.08 73 3 10쪽
159 그믐_다시 현재로 23.09.07 55 3 12쪽
158 그믐_도룡과의 혈투 23.09.07 54 3 12쪽
157 그믐_악마 미지의 정체 +2 23.09.06 56 3 12쪽
156 그믐_마물 도룡 23.09.06 51 3 12쪽
155 그믐_신례국 백슬곤아 +2 23.09.05 63 3 12쪽
154 그믐_백령성 지하보관실 23.09.05 54 3 11쪽
153 그믐_안개에 서린 무늬 +2 23.09.04 59 3 10쪽
152 그믐_마물의 단서 23.09.04 52 3 11쪽
151 그믐_시작된 미래 23.09.03 73 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