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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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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연재수 :
176 회
조회수 :
13,147
추천수 :
431
글자수 :
916,352

작성
23.09.09 07:05
조회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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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천계_마고가 돌아오다

DUMMY

사빈은 중천을 통해 대명천을 거쳐 마음숲까지 들어왔다.


대명천까지 오는 내내 사빈은 말을 하지 않았다. 나토두와 바나 역시 조용히 그녀 뒤를 따랐다.


두루천을 건너 마중교 앞에 섰을 때 마음숲의 하늘은 청록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맑고 투명한 청록빛 하늘은 옥을 깎아놓은 듯 영롱했다.


사빈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결계가 달라졌어. 더 강하고, 더 온화해. 무슨 일이지?’


안내소 나도마중에 이르렀으나 아리영도 삼을라도 보이지 않았다.


“아리영! 삼을라!”

도우미 혼은 보이지 않았다.


바나가 안내소 뒤편에서 컹컹 짖었다.

“주인님, 여기여라. 자고 있어라.”


안내소의 두 도우미는 의자에 앉은 채 깊이 잠들어있었다.


“주문에 걸렸어. 혼알방만 재울 줄 알았는데, 도우미들까지 재웠구나.”

사빈은 그들이 안전한 것을 확인하고 안내소를 나왔다.


마음숲은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고요하고 적막했다.

혼알방은 모두 잠들었다. 샛강과 개울은 유유히 흘렀지만, 휘나래는 깨지 않았다.


다른 곳은 죽은 듯 조용한데, 놀뫼마당과 한요재 근처는 시끌벅적했다. 모든 상산대원이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사빈은 놀뫼마당으로 날아올랐다.


*


수십 명의 부상자와 그들을 치료하는 대원들이 웅성거렸다.

이미 무결의 고리에 든 대원들도 여럿 있지만, 그들은 여기 없으니 사빈이 알 수 없었다.


부상자들은 천력을 쓸 수 없으니, 건장한 대원들이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천력으로 상처가 아물면 이틀도 되지 않아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 것이다.


사빈이 다가가자 대원 하나가 그녀를 알아보았다.

“마고님, 오셨군요! 완전한 승리입니다.”


어깨에 상처가 깊었지만, 그는 해맑게 웃었다. 그의 옆에 앉아있던 대원도 주먹을 불끈 쥐었다.

“숨어있던 놈들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황금들에서도 승리했고요.”


“고맙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대감은 어디 계세요?”

사빈은 놀뫼마당을 훑어보았다.


“아직 안 오셨습니다. 곧 오시겠지요.”

“해담 대차사님은 한요재 집무실에 계십니다.”


그들은 한요재 훈련장 너머 집무실을 가리켰다.


*


한요재 훈련장으로 들어서자, 사빈은 우뚝 멈춰 섰다.


한얼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바닥에 누워있었다. 믿을 수 없어 눈꺼풀을 깜빡거렸다.


가슴에는 부러진 화살이 박혀있고, 찢어진 옷은 피로 얼룩졌다. 숨이 멈추었으나, 혼은 아직 몸 안에 머물러 있었다.


사빈은 한동안 발을 떼지 못했다.

‘한얼? 한얼이··· 죽어?’


뒤따라오던 바나가 한얼을 알아보고 컹컹 짖었다. 바나는 하얀 털을 휘날리며 뛰어갔다.

“왕왕, 아니 되어라. 죽는 건 아니어라.”


훈련장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던 다훤이 고개를 들었다. 상심에 젖어 낯빛이 흐렸다. 이마와 눈 밑도 거뭇거뭇했다.


제자의 마지막을 이미 알았어도 눈으로 보니 아픔이 깊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사빈이냐. 한얼은 결국 갔구나.”

제자의 손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예언이 빗나가기를 바랐는데···. 결국 이렇게 갔구나.”

그는 한숨을 쉬며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금방이라도 일어나 말을 걸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탐탁지 않았으나, 이제는 훌륭히 제 몫을 다하는 믿음직한 제자였다.


다훤은 소중한 존재를 잃어본 적이 없었다. 이토록 소중한 존재를 만들지도 않았다.


그의 혼이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때는 제자 한얼이 아니기에 가슴이 쓰라렸다.


다훤은 두 손으로 이마를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또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사빈은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한얼에게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한···얼님? 어떻게 된 거예요?”


한얼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녀가 손을 대자 부러진 화살이 스르르 가루가 되어 날아갔다.

“온몸에 독이 퍼졌어요. 수집가들 짓이군요.”


“차미가 불러서 갔을 때는 이미···.”

“천인은 무결의 고리에 들어도··· 한얼님은 중간자라 몸이 남았군요.”

사빈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이렇게 쉽게 갈 아이가 아닌데···.”

다훤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사빈은 한얼의 이마를 어루만졌다.

그를 바라보니 별사탕이 떠올랐다. 동녘뜰 사빈재에서 만났을 때의 모습도 또렷했다.


어릴 때는 자신을 응원해준 별사탕이었고, 혼 조각을 나눠준 사람이었다. 얼마 전에는 형감어사 문휘수와 주술사로 만나지 않았던가.


그녀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인도자의 혼은 누가 중천으로 데리고 가나요?”


사빈이 피 묻은 가슴을 쓰다듬었다.

“나를 누이로 대해주었으니. 한얼님, 중천에서 만나도 우리는 가족이죠?”


그녀의 애달픈 손길이 닿자 한얼의 몸에서 빛이 스며 나왔다.

한얼의 몸은 빛에 휩싸여 공중으로 두웅 떠올랐다. 점점 밝아지고, 점점 높이 떠올랐다.


다훤이 놀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끼깅거리던 바나도 뒤로 물러섰다.

슬퍼하는 이들과 달리 나토두는 멀찍이 떨어져 무덤덤한 얼굴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순식간에 빛이 오므라들었다. 다음 순간 빛도, 한얼도 보이지 않았다.


사빈은 어리둥절해서 흔적 없는 훈련장을 두리번거렸다.

“중천으로 간 건가요?”


“사람의 몸이라 함께 갈 리 없는데···?”

다훤도 사빈도 허공을 바라보며 망연히 서 있었다.


*


한요재 집무실에 둘러앉은 이들 모두 말을 잇지 못했다. 해담 대차사와 차미, 예사달 역시 깊은 슬픔에 빠져있었다.


훈련장에서는 바나가 끼깅거리는 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졌다.

바나는 여전히 한얼이 있던 자리를 지켰고, 나토두가 축 늘어진 바나를 쓰다듬었다.


차미가 해날품곡에서의 일을 알려주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빈은 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예? 대감···. 대감이···.”


백하가 검은 구름에 삼켜져 돌이 되다니···. 그믐 외출에서 보았던 환시가 떠올랐다.


‘정말 돌이 되다니···. 대감도, 한얼도···.’

사빈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대감, 미안해요, 대답하려 했는데···. 내가 너무 늦었어요.’


얼음칼을 건네주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위험할 때마다 가장 먼저 달려와 도와주던 모습들이 끊임없이 지나갔다.


‘검술을 알려주겠다고 했잖아요. 어디 간 거예요?’

사빈은 벌겋게 달아오른 눈을 소매로 문질렀다.


‘나도 대감이 좋다고요. 검은 장벽에는 왜···.’

눈물이 쏟아지자 콧물이 덩달아 흘러내렸다.


코를 훌쩍이던 그녀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검은··· 장벽?’


사빈이 황급히 눈물을 닦았다.

“차미님, 자세히 알려주세요. 한얼은 죽어있었고, 대감은 돌이 되었다고요?”


사빈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자 차미는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

“으, 응. 돌처럼 굳어서 검은 구름에 빨려들었어.”


“이상하잖아요? 천인이 검은 장벽에 닿으면 가루도 남지 않잖아요? 그런데, 돌이 되었다고요?”


차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어떻게 된 거지?”


사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숨을 삼켰다.

“다훤 아저씨, 한얼에게 갔을 때 지팡이랑 밧줄도 있었어요?”


다훤이 눈을 깜빡거렸다. 슬픔에 빠져 다른 것은 보지 못했다.

해날품곡까지 기억을 더듬었다.

“없었는데? 솔찬도, 다술도. 수집가가 가져갔나?”


“아니에요. 그건 주인을 가리는 영물이에요. 잉걸···.”

사빈은 말하다 말고 다훤과 예사달을 바라보았다. 잉걸둥지를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예사달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할머니의 모습으로 지팡이로 바닥을 톡톡 두드렸다.

“이런···, 슬퍼하느라 앞뒤를 보지 못했구나. 이런 일이 있나.”


예사달은 주름진 손으로 다훤의 어깨를 다독였다.

“다훤아, 너도 그만 슬퍼해라. 한얼은 돌아올 게야.”


“응? 한얼이?”

“심부름꾼이잖나. 응?”

예사달이 눈을 찡긋거렸다.


그제야 다훤이 외마디 소리를 내뱉었다.

‘맞아. 잉걸둥지가 심부름꾼을 쉽게 잃을 리 없지.’


사빈은 수건으로 콧물을 닦고 태연하게 두 손을 맞잡았다.

“중간자라도 사람이니 혼이 몸을 떠나야 해요. 한얼은 혼도 몸도 함께 사라졌어요.”


사빈의 말을 들으며 예사달도 고개를 끄덕였다.


“무결의 고리는 아니에요. 천인이 아니니까. 솔찬과 다술은 있어야 할 곳으로 먼저 갔을 거예요.”

사빈이 콧물 때문에 코를 찡긋거렸다.


“한얼님은 저를 기다린 거예요. 거기가 어디인지 모르지만, 꼭 다시 올 거예요.”


사빈이 주먹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백하 대감은···.”


그녀는 벌떡 일어났다.

“제가 찾아오겠습니다.”


“뭐? 네가? 거기는 반계야.”

해담 대차사가 놀라 물었다.


“그래서 제가 가야 해요. 중간자는 검은 장벽을 건널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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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중천_소망단이라 이름하다 23.09.14 47 3 12쪽
172 중천_열린마을의 식구들 23.09.14 72 3 10쪽
171 중천_도우미 구하기 23.09.13 72 3 12쪽
170 중천_첫 번째 손님 23.09.13 55 3 12쪽
169 중천_임천사령 고마 사빈 +2 23.09.12 54 3 11쪽
168 천계_새로운 마고 23.09.12 53 3 12쪽
167 천계_암연층으로 +2 23.09.11 53 3 13쪽
166 천계_잃어버린 조각 23.09.11 77 3 12쪽
165 천계_오래된 사연 23.09.10 56 2 12쪽
164 천계_이안남존의 라온성 23.09.10 58 2 12쪽
» 천계_마고가 돌아오다 23.09.09 58 3 10쪽
162 천계_해날품곡의 함정 23.09.09 58 3 13쪽
161 천계_마음숲의 침입자 +2 23.09.08 68 3 11쪽
160 그믐_삼도천이 막히다 23.09.08 73 3 10쪽
159 그믐_다시 현재로 23.09.07 55 3 12쪽
158 그믐_도룡과의 혈투 23.09.07 54 3 12쪽
157 그믐_악마 미지의 정체 +2 23.09.06 55 3 12쪽
156 그믐_마물 도룡 23.09.06 50 3 12쪽
155 그믐_신례국 백슬곤아 +2 23.09.05 63 3 12쪽
154 그믐_백령성 지하보관실 23.09.05 54 3 11쪽
153 그믐_안개에 서린 무늬 +2 23.09.04 59 3 10쪽
152 그믐_마물의 단서 23.09.04 52 3 11쪽
151 그믐_시작된 미래 23.09.03 72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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