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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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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연재수 :
1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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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
글자수 :
916,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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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8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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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천계_마음숲의 침입자

DUMMY

마음숲의 모든 혼이 잠들었다. 도우미 혼까지도 자리에 앉은 채 잠들었다.


해담 대차사가 싸움을 끝내고 봉인을 풀 때까지 혼들은 계속 단꿈을 꿀 것이다.


만일 그에게 변고에 생기면 상산대감 백하나 마고 사빈이 열쇠가 될 것이고, 그 모두가 오지 못한다면 중앙황제 현원이 봉인을 풀 것이다.


키움차사 목예는 죽은 듯 고요한 혼알판 사이를 날 듯이 걸었다.


셀 수 없이 까마득한 나날 동안 소소공방을 지켰지만, 이런 마음숲은 처음이었다.

얼굴은 굳었고, 파리한 빛이 이마에 서렸다.


놀뫼마당을 지나 샛강을 따라가니 부루가 샛강을 살피고 있었다. 다른 상산대원들과 함께 휘나래를 살펴보고 있었다.


휘나래도 혼들과 마찬가지로 빠짐없이 잠이 들었다.


“목예님! 어디 가시우?”

“위화님이 걱정되어서. 옥지도 잠들었으니 도우미가 없잖아.”


“그렇구먼. 나도 가야겠네.”

부루는 상산대원들에게 고갯짓하고 목예를 따라나섰다.


“인간세로 나갈 혼들은 어찌 되나?”

“벌써 인간세에 내려갔구먼. 천사들이랑 기다리고 있제. 인도자는 여기 안 들어올 거여. 중천에 있거나, 영천옥에서 기다리거나.”


그들은 모로매 온천길로 접어들었다.


목예가 잠든 혼알방을 둘러보았다.

“이번에도 사빈이 늦게 와야 할 텐데. 그동안 그믐 외출이 계속 길어졌거든.”

“하모. 그래야 반계에서 움직일 거 아녀.”


“다훤님은 대차사님과 황금들로 가셨지?”

“그짝으로 대차사님들 다 모이셨구먼. 영천옥에서는 나올 수 없지만서두. 염라부도 한 분은 계셔야 하니 두모님만 나오셨구.”


부루는 누가 황금들로 갔는지 세어보았다. 상산대에서도 대원의 절반이 그곳으로 떠났다.


혼알방을 정화할 목적으로 꽤 많은 혼알방을 빼냈으니 마음숲에 숨어있던 수집가도 일부는 따라 나갔을 것이다.


“여튼, 다훤님이 계시면 천군만마여. 그분 천력이면 다들 무사히 돌아올 겨.”

“예사달님은? 그분도 함께 가셨어?”


“아녀. 예사달님은 마음숲에 계시제.”

부루는 목소리를 낮췄다.

“다름샘을 지키시제.”


“다름샘? 음···.”

목예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빈이 걱정하던 그곳이었다.


다름샘은 바래강과 가까운데, 지금은 마른 웅덩이로 한긋장벽의 구름에 덮여있다. 그 근처의 혼알방이 가장 많이 사라졌다고 했다.


배웅문에서도 가깝고, 수집가들이 숨기 쉬울 것이다. 어쩌면 그것 또한 속임수일 수도 있고.


남은 상산대원들 중 일부가 그곳에 모였다. 일부는 잠든 혼알방 사이를 돌며 이상한 기운을 찾았다.


마고가 그믐 외출로 나가고 이틀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어떠한 낌새도 나타나지 않았다.


모로매 호수가 보이자 목예의 걸음이 빨라졌다. 그들은 소상각을 향해 날아올랐다.


멀리 호수 가장자리의 물이 끓어올랐다.

수평선이 황톳빛으로 바뀌었다가 점점 짙은 갈색으로 변했다. 물빛과 함께 호수의 기운도 비틀어졌다.


“위화님이 위험해!”

목예는 바람보다 빨리 소상각으로 날아갔다.


위화는 이미 호숫가에 나와 있었다. 쪼그라든 어깨를 지팡이에 의지해 간신히 서 있었다.

아무도 없는 소상각에서 바람 소리만 휘이잉 울렸다.


“위화님!”

“왜 나와 계셔유?”

목예와 부루가 다가가자 위화가 수평선을 가리켰다.


새놀산과 가까운 수평선에서 호숫물이 부글거렸다.


끓는 듯 요동치는 물속에서 검은 점들이 솟아 나왔다. 피천귀들이었다. 그들 뒤에서 수집가들이 피천귀를 조종하고 있었다.


“저놈들을 그냥!”

부루가 뛰어오르려 하자 위화가 그의 소매를 잡았다.


“기다리게. 다 들어올 때까지.”

“에?”


“모로매의 물이 마음숲을 지킬 게야.”

위화는 부루의 소매를 잡고 놓지 않았다.


목예도 천력을 모으며 무수히 많은 검은 점을 지켜보았다.


적들이 호수 중앙까지 다가왔다. 그제야 위화는 부루의 소매를 놓았다.

“때가 되었구나.”


위화는 부루와 목예를 돌아보았다.

“수평선 끝의 물로 장벽을 세우게. 마음숲을 덮을 만큼 넓고 높게.”


“예!”

부루는 천력을 모아 호수의 왼편으로 손을 뻗었다. 목예도 호수의 오른편을 향해 손을 뻗었다.


호숫물이 장막을 이루며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물의 장벽은 호수를 덮고도 남을 만큼 넓어졌다.


“이대로는 소멸시킬 수 없어요.”

목예가 물의 장벽을 하늘 높이 올리며 위화를 바라보았다.


“이 결계로 마음숲을 덮게나. 다 덮을 때까지 멈추지 말아.”

위화는 희미하게 웃었다.


목예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저 눈빛, 저 웃음.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야.

“안돼···. 안 됩니다. 위화님!”


목예가 위화를 잡으려 하자 물의 장벽이 물컹 주저앉았다.


“이런!”

그녀는 다시 물의 장벽을 올리는데 모든 천력을 집중했다.


물의 장벽이 머리 위까지 다가오자 위화는 지팡이를 지지대 삼아 뛰어올랐다. 깃털처럼 가볍게 물의 장벽에 닿았다.


“공명!”

위화가 소리치자 몸에서 번쩍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의 몸은 순식간에 수많은 불꽃이 되어 물의 장벽에 스며들었다.


“위화님!”

목예가 울부짖었지만, 물의 장벽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다.


위화의 몸과 혼, 천력이 녹아든 물의 장벽이 결계가 되어 모로매 호수와 소상각의 대기를 가득 채웠다.


피천귀와 수집가들이 물의 결계에 닿자 소금이 녹듯 스르르 녹아내렸다.

호수에 떠 있던 피천귀와 수집가들은 녹아버렸지만, 그들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물의 결계로 마음숲을 모두 덮어야 했다.


“목예, 위화님 뜻을 헛되이 하지 말어.”

부루는 입술을 꼭 다물고 물의 장벽을 더 높이, 더 넓게 일으켰다.


목예도 수평선을 노려보며 장벽을 세웠으나 눈물이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장벽이 높고 넓게 퍼질수록 호숫물도 빠르게 줄어들었다.


*


마음숲의 대기가 달라졌다.

모로매 호수에서 시작한 물의 결계가 혼알판 위로, 샛강과 광장으로 퍼져나갔다.


공방 거리에 나와 있던 키움차사와 돌봄차사도 그 기운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위화님?”

요선이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물의 장벽에 천인의 기운이 빛처럼 녹아들어 반짝이는 물의 결계가 되었다. 빛나는 물이 바람을 타고 마음숲을 덮고 있었다.


“우리도 힘을 더해야지!”

석보가 자신의 천력을 끌어모아 물의 장벽에 천력을 밀어 넣었다.


“혼이 잠든 지금만 가능해.”


가슴이 먹먹해진 차사들은 물의 결계 속에 서서 자신들의 천력을 모두 끌어냈다. 지나실, 초연, 다담도 함께 했다.


물의 결계가 대기와 바람을 타고 상생농장에 닿으면 구추도 함께할 것이다.


넓어질수록 강력해진 결계에 혼알방에 숨어있던 다른 수집가들도, 귀물씨앗도 녹아버렸다.

차사들의 천력이 담긴 물의 결계는 스멀스멀 아롱재까지 가 닿았다.


아롱재에 서 있던 하얀 나무에 결계의 빛이 닿았다.

숨꼭지 옆에 붙어있던 붉은 구름 덩어리에도 빛이 닿았다.


나무와 구름은 물의 결계를 삼키며 꿈틀거렸다. 천인의 숨과 빛, 차사들의 강한 천력이 담긴 기운이었다.


비쩍 마른 하얀 나무는 목마름을 채우려는 듯 기둥과 가지를 흔들며 빛의 기운을 빨아들였다.

하얀 기둥에 생기가 돌았다. 가지마다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붉은 구름 덩어리는 빛의 기운을 받으려 천장을 따라 넓게 펼쳐졌다. 삼킬 수 있는 만큼 한가득 기운을 머금은 구름 덩어리가 점점 오그라들었다.


붉은 구슬 다섯 개가 그 자리에 남았다.


나무와 구슬에서도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꾸물거리며 흘러나왔다.

하얗고 붉은 기운이 물의 결계에 스며들었다.


물의 결계는 마음숲의 북서쪽에서부터 혼알방을 정화시키며 남동쪽으로 흘러갔다.


*


다름샘을 지키던 예사달과 상산대원들도 북쪽 하늘에서 밀려드는 기운을 알아보았다.


물비늘을 일렁이며 흐르듯 마음숲을 채우는 기운이 무엇인지 예사달은 한눈에 알아보았다.


“위화님?”

예사달은 해담과 비슷한 모습의 무사였다. 그는 가까이 있는 상산대원을 불렀다.


“저 결계가 마음숲을 모두 덮도록 둘러보게. 혹시 틈이 있으면 결계를 넓히게.”

“예. 알겠습니다.”

상산대원들이 결계를 따라 흩어졌다.


몇몇 대원들은 물의 결계가 더 빨리 마음숲을 덮을 수 있도록 천력을 밀어넣었다.

물의 결계는 남쪽 끝 한긋장벽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예사달은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결계 속은 깊은 바다처럼 어둡고 고요했다.


그는 물결을 따라 흩어지는 빛조각을 집어 들었다.

“위화님, 제가 무결의 고리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숨이 끊어진 천인을 무결의 고리로 보내는 건 중앙황제만이 할 수 있지만, 위화의 숨은 아직 결계 속에 머물러 있었다.


다른 천인은 할 수 없지만, 예사달은 중앙황제의 눈이기에 가능했다.


예사달은 빛을 그러모으며 물의 결계가 마음숲을 다 덮을 때까지 기다렸다. 물결을 타고 그의 천력도 결계에 녹아들었다.


마음숲은 거대한 바다가 되었다.

젖지 않으나 물이 흐르고, 있어서는 안 될 모든 것들은 남김없이 녹아버렸다.


“이런 생각을 하시다니···. 위화님다우시네요.”

예사달은 씁쓸한 마음으로 손안에 가득 빛 가루를 모았다.


마음숲의 모든 차사들이 같은 마음으로 결계를 만들었다.


“싸울 생각만 했는데···,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예사달은 결계에 떠 있는 빛 가루에 주문을 걸었다.


“천인 위화에게서 비롯된 모든 것은 다시 하나로!”

그의 주문을 신호로 결계 안에 흩어진 빛들이 빠르게 모여들었다.


모여드는 빛을 지켜보던 예사달은 낯선 향기를 맡았다.

물의 결계를 따라 흐르는 향기는 중앙황천에서는 맡을 수 없는 향기였다.


어떤 향기인지 알아차렸다. 얼마 전 사빈이 갖고 있던 향낭에서 나오던 향기였다.

“라온향···.”


‘반계의 기운이 더해져서 결계가 완성되었구나. 이제는 수집가도, 피천귀도 못 들어오겠군.’

예사달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모르는 사이 수많은 우연이 이어지고 있었다.


흩어진 빛 가루가 모두 모였다. 결계 속에 서서히 위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예사달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고맙네.”

“제가 고맙습니다. 마음숲은 안전합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무결의 고리에 들 수 있다니. 생각지도 못한 축복이야.”


위화는 예사달의 손등을 토닥였다.

바닷속 같은 허공에 빛의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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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그다음_각자의 목표 +2 23.09.15 59 3 10쪽
174 그다음_싸움 구경 23.09.15 58 3 12쪽
173 중천_소망단이라 이름하다 23.09.14 47 3 12쪽
172 중천_열린마을의 식구들 23.09.14 73 3 10쪽
171 중천_도우미 구하기 23.09.13 72 3 12쪽
170 중천_첫 번째 손님 23.09.13 56 3 12쪽
169 중천_임천사령 고마 사빈 +2 23.09.12 55 3 11쪽
168 천계_새로운 마고 23.09.12 54 3 12쪽
167 천계_암연층으로 +2 23.09.11 54 3 13쪽
166 천계_잃어버린 조각 23.09.11 78 3 12쪽
165 천계_오래된 사연 23.09.10 57 2 12쪽
164 천계_이안남존의 라온성 23.09.10 59 2 12쪽
163 천계_마고가 돌아오다 23.09.09 58 3 10쪽
162 천계_해날품곡의 함정 23.09.09 58 3 13쪽
» 천계_마음숲의 침입자 +2 23.09.08 69 3 11쪽
160 그믐_삼도천이 막히다 23.09.08 73 3 10쪽
159 그믐_다시 현재로 23.09.07 56 3 12쪽
158 그믐_도룡과의 혈투 23.09.07 55 3 12쪽
157 그믐_악마 미지의 정체 +2 23.09.06 56 3 12쪽
156 그믐_마물 도룡 23.09.06 51 3 12쪽
155 그믐_신례국 백슬곤아 +2 23.09.05 64 3 12쪽
154 그믐_백령성 지하보관실 23.09.05 55 3 11쪽
153 그믐_안개에 서린 무늬 +2 23.09.04 59 3 10쪽
152 그믐_마물의 단서 23.09.04 53 3 11쪽
151 그믐_시작된 미래 23.09.03 7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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