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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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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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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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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천계_해날품곡의 함정

DUMMY

다섯 명의 대차사와 상산대원들은 연곡호수를 따라 수백 개의 혼알방을 옮겼다.

대명천의 해담, 중천의 훼, 염라부의 두모, 낙원을 지키는 웅비와 이수가 함께 했다.


영천옥을 지키는 다림과 아투는 영천옥을 벗어날 수 없었고, 염라부에는 얀다가 남아 판결을 계속했다.


다훤은 가지고 나온 혼알방에 강력한 보호의 결계를 씌웠다.

모두 빈방이지만, 혼이 담긴 것처럼 보여야 했다. 반계나 수집가들이 의심하지 않도록.


마음숲에서 나올 때부터 수집가들이 뒤쫓아왔다. 모두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일부러 천천히 움직였다.


숨어있던 수집가들이 따라 나올 시간을 주고, 숲센장벽에 숨은 것들과 반계의 수집가와 피천귀까지 나올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연곡호수를 지나 황금들에 내려서자 들판은 회색과 검은색의 점으로 뒤덮여있었다. 얼룩덜룩한 깔판을 깔아놓은 듯 들판의 연둣빛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피천귀들이 황금들을 메우고 있었다.


기괴하고 비틀어진 것부터 사람을 닮은 것까지 모양도 빛깔도 다양했지만, 한데 섞여 있으니 저마다의 색은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앉은 듯 보였다.


그들은 수집가의 명령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 수집가의 기운이 황금들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해담은 놀란 척 소리쳤다.

“무슨 일인가? 우리 계획이 새어나갔나!”


그의 소리를 알아듣고 들판에서 키킥, 크으윽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수집가들이 소리쳤다.

“혼알방은 우리 것이다. 순순히 내놓으라!”


약속한 대로 운와가 해담의 옆으로 달려왔다.

“큰일입니다. 적들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다훤도 부산스럽게 소매를 흔들었다.

“결계를···. 혼알방의 결계를 더 두껍게 쳐야 하오!”


다훤이 당황한 척 혼알방으로 다가가자 그 옆을 지키던 한얼이 피식 웃었다.

“너무 과하십니다. 스승님.”


“하하, 그러냐? 그래도 이 정도는 해야 믿을 게 아니냐?”

“저기 모인 걸 보면 속임수가 통한 겁니다.”


“그래. 이런 것이 진짜 싸움이지.”

다훤은 혼알방에 결계를 한 겹 더 얹었다.


“이번에는 환시를 보지 않았으니 난 자유야. 예언가의 자유라니. 내 마음대로 싸울 수 있다 이거지. 하하하.”

다훤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결계를 더 두껍게 만들었다.


한얼이 지팡이 솔찬을 두 손으로 잡았다.

“황금들의 결계가 완성되면 저와 상산대감은 장벽으로 가겠습니다.”

“마음숲에서 일이 끝나면 하늘빛이 바뀔 것이다. 그 빛을 보는 즉시 돌아와라.”


그것이 미리 정한 신호였다.


예사달과 남은 상산대원들이 숨은 수집가를 소멸시키면 하늘을 청록빛으로 바꿀 것이다.

실패할 리 없겠지만, 만약 일이 잘못되면 하늘은 잿빛이 될 것이다.


황금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적을 소멸시키면 이곳의 하늘도 청록빛으로 물들 것이다.


한얼과 백하가 수집가들과 상대한 적 있기에 일찌감치 모든 준비를 끝냈다.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다훤은 자신의 제자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돌아오지 못하겠구나.’


예사달이 보았다던 환시, 그것이 지금이리라. 이번 전투가 제자의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그동안 해날품곡에 가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그도 알고 있었다. 예사달이나 자신이 본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는 한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네 힘을 보여줘라. 네가 얼마나 빠르고 강한지. 감히 반계에서 상대할 수 없음을 보여주어라.”


“예. 스승님.”

한얼은 힘있게 대답했다.


잠시 후, 황금들은 거대한 결계로 뒤덮였다.

다훤과 대차사들이 만든 결계는 수집가와 피천귀들이 들어올 수는 있어도 나갈 수 없었다.


결계가 완성되자 한얼과 백하, 차미와 십여 명의 상산대원이 결계를 돌아 동쪽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황금들과 검은 장벽 사이의 돌산을 지켜야 했다.


돌산의 입구에서 세 곳으로 흩어졌다. 검은 장벽을 뚫고 나오는 피천귀를 막을 차례였다.


*


돌산이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은 아니었다.

반계에 장벽이 세워지면서 그 기운에 끌려 땅 아래 묻혀있던 바위가 솟아올랐다.


황금들에서 보면 뾰적한 바위기둥이 산을 이루지만, 검은 장벽으로 가까이 갈수록 바위산이 완만해졌다.


한얼과 백하는 남쪽 통로를 맡았다.

이곳 돌산에서 해날품곡은 꽤 멀었다. 계곡 너머의 불천수는 바위산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다.


한얼은 거리를 가늠해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오늘은 아니구나.’


멀리 황금들의 결계 속에서는 힘이 부딪치며 번쩍거렸다. 천계의 힘과 반계의 힘이 맞부딪쳤다.


들판은 거대한 전쟁터가 되었지만, 결계가 소리를 삼켜 돌산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백하는 자신도 모르게 얼음칼을 꽉 쥐었다. 몸이 근질근질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달려가 싸우고 싶었다.


‘대감, 소리가 들립니다.’

한얼의 전언이었다.


고요한 돌산에서는 자갈 구르는 소리도 날카롭게 들리니 함부로 소리 낼 수 없었다.

한얼이 손을 들어 소리가 나는 곳을 가리켰다.


치솟은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었다. 그 뒤편 바위 위로 수집가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한얼은 지팡이를 고쳐잡았다.

백하도 얼음칼에 기운을 모았지만, 수집가들은 황금들의 결계만 바라볼 뿐 무기를 꺼내지 않았다.


한얼과 백하는 바위 그늘에 몸을 숨기고 그들을 노려보았다.


한동안 말없이 서 있던 수집가들이 킬킬거렸다.

“대장 말이 맞네. 중앙황제는 싸울 수 없다더니.”


“말이라고. 돌보고 보살피는 존재? 그딴 건 필요 없어.”

대장이라 불리는 수집가는 팔짱을 끼고 맨 앞에 서 있었다.


“놈들이 눈엣가시였는데, 황천에서 해치워준다니 크큭.”

“우리 일을 덜어주는군요. 에헤헤.”


“그럼 감여지는 우리 것이 되나?”

수집가 하나가 키득거리자 대장이 그를 노려보았다.


“겨우 감여지? 이 세상이 우리 것이야. 북존과 남존의 신력도 바닥났잖아. 껍데기에 불과해.”

“맞습니다. 요즘은 혼을 찾으러 가지도 못합니다.”

“에? 인간세에도 못 간다고? 그런 혼은 마물이 삼킬 텐데?”


“크하하하!”

대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소리가 돌산에 카랑카랑 메아리쳤다.


“그 마물까지 우리가 조종한다!”

대장이 뒤에 서 있는 삼십여 마리의 수집가들을 돌아보았다.


“마눙이나 이루가 힘을 되찾기 전에 눌러놓는다!”

“와아!”

함성이 쏟아졌다.


“천군이 지칠 때까지 기다려라. 사사건건 반대하는 놈들을 치워줄 테니. 그다음에 움직인다.”

대장은 키득거리며 황금들을 바라보았다.

“내 위대한 뜻을 거스르다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백하의 얼굴에 핏발이 섰다. 팔과 손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수집가들끼리 싸운다더니 이 정도였나!’


그는 한얼을 바라보았다. 한얼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미와 다른 상산대원들이 맡은 통로에서는 피천귀들의 고함과 비명이 쏟아졌다.

그들은 바위 굴곡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피천귀들을 차례로 소멸시켰다.


“결계를 지켜라!”

차미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돌산을 울렸다.


병풍바위 위에 서 있던 수집가들이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흥. 천인 놈들. 얄팍한 수를 쓰다니. 결계 안에 조용히 있을 것이지.”

대장이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귀사는 우리 것이다. 천군에게 우리 힘을 보여주자!”

대장이 바위 아래로 뛰어내렸다.


바위 아래로 내려선 수집가들을 한얼과 백하가 막아섰다.


한얼의 지팡이 솔찬이 또 하나의 무사처럼 그 옆에 버티고 섰다. 밧줄 다술에도 빛이 스며들었다.


백하가 천력을 끌어모았다.

“이야압!”


그의 기운을 따라 돌산의 통로는 얼음에 뒤덮였다. 서리와 얼음은 빠르게 바위산을 얼음벽으로 만들었다.


수집가들도 얼음기둥으로 만들 수 있지만, 그래서는 완전히 소멸시킬 수 없었다.


지금 그의 목표는 하나, 눈앞의 수집가들을 남김없이 소멸시키는 것이다.


*


황금들의 결계가 서서히 풀렸다.


많은 상산대원이 부상을 입었지만, 결계 안의 적들은 남김없이 소멸했다. 피천귀는 대기 속으로 녹아들었고, 수집가들의 시체가 들판에 널브러졌다.


기다렸다는 듯 마음숲의 하늘이 청록빛으로 바뀌었다.


“마음숲에서도!”

해담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다훤에게 눈짓했다.


다훤도 이중 삼중으로 펼친 결계를 풀고 하늘에 청록빛 구름을 만들었다.


“철수한다!”

해담이 소리치자 메아리처럼 상산대원들이 소리를 날랐다.


“돌아간다!”

“철수!”

그들의 소리가 돌산 입구를 지키던 상산대원들에게도 전해졌다.


“마음숲에서도 모두 처리했군요!”

상산대원 하나가 차미를 보고 활짝 웃었다.


차미 역시 웃음을 참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상산대원들에게 손짓했다.


“먼저 가시게. 대감을 모셔 가겠네.”

“서두르십시오. 반계에 남은 피천귀가 얼마인지 모릅니다.”


차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산을 뛰어넘어 남쪽으로 내달렸다.


*


남쪽 통로에 이르렀지만, 백하도 한얼도 보이지 않았다.

“대감! 상산대감!”


차미는 통로 안쪽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수집가들의 시체가 이십여 구 늘어져있었다.


병풍처럼 둘러선 바위에 얼음벽이 남아있었다.

얼음은 서서히 녹고 있었다. 빙천술의 주인이 이곳을 떠난지 한참 지났다는 뜻이다.


얼음벽에서부터 돌산의 바위를 타고 하얀 서리가 한 줄기 길게 이어졌다. 백하가 빙천술을 쓰면서 누군가를 쫓아간 것이다.


차미는 백하가 남긴 서리를 따라 날아올랐다. 서리는 멀리 해날품곡까지 이어졌다.


*


한얼과 백하는 도망치는 수집가 일당을 쫓았다.


바위산을 얼음벽으로 만들고 싸움을 시작했을 때, 십여 명의 수집가가 서둘러 도망쳤다.

한얼과 백하는 남은 수집가들을 처리하고, 서둘러 쫓아왔다.


수집가들의 대장은 도망치면서도 한얼을 힐끔거리며 멈추었다가 이쪽저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해날품곡의 벼랑 끝에 서자 걸음을 멈추었다.


대장이 돌아서며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를 쫓다니 어리석구나.”


대장이 손을 치켜들었다.

해날품곡 아래 숨어있던 몇십 명의 수집가들이 뛰어올랐다. 그들은 한얼을 향해 활을 당겼다.


한얼의 지팡이가 허공에서 빙빙 돌면서 거대한 방패를 만들었다. 화살은 휘도는 방패에 맞아 튕겨 나갔다.


대장은 태연하게 서서 크큭 코웃음을 쳤다.

“제 발로 다시 오다니.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그럼 죽여줘야지.”


절벽에 나란히 선 수집가들이 다시 활을 당겼다.


화살 사이로 대장이 지팡이를 향해 단도를 던졌다. 지팡이에 정확히 단도가 꽂혔다.

방패처럼 휘돌던 지팡이가 멈추었다.


수십 개의 화살이 한얼의 팔과 다리, 가슴과 배로 날아들었다.

한얼은 재빨리 밧줄을 휘둘러 화살을 쳐냈다.


“웃기는 소리!”

백하가 얼음칼로 화살을 걷어냈다.


“너를 위한 선물은 따로 있지.”

대장이 검은 장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검은 구름이 꾸물거리며 다가왔다.


백하는 검은 구름을 피해 뒤로 물러섰다. 천인이 반계의 장벽에 닿으면 가루도 남지 않고 사라져버린다.


당황하는 백하를 보자 대장의 눈이 가늘게 빛났다.


“마지막이다.”

대장이 손을 뻗었다.

독을 품은 불화살이 활시위에 얹어졌다.


한얼은 불화살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지팡이 솔찬은 단도가 꽂힌 채 비틀거렸다.


‘늘 궁금했다. 어떻게 죽게 될까. 이 삶을 언제 어디서 끝낼지. 그때가 지금이구나.’

한얼은 밧줄을 꽉 잡고 공기를 쳐냈다.


수십 개의 불화살이 한얼을 향해 쏟아졌다.


“한얼! 피해!”

백하도 검은 장벽을 피하며 얼음화살을 날렸다.


얼음화살은 몇 개의 불화살을 녹였지만, 기다렸다는 듯 검은 구름이 백하의 발과 다리를 삼켰다.

빠져나오려 몸부림쳤지만, 돌처럼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백하가 서서히 돌이 되는 사이, 화살 하나가 한얼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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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중천_소망단이라 이름하다 23.09.14 47 3 12쪽
172 중천_열린마을의 식구들 23.09.14 72 3 10쪽
171 중천_도우미 구하기 23.09.13 72 3 12쪽
170 중천_첫 번째 손님 23.09.13 55 3 12쪽
169 중천_임천사령 고마 사빈 +2 23.09.12 54 3 11쪽
168 천계_새로운 마고 23.09.12 53 3 12쪽
167 천계_암연층으로 +2 23.09.11 53 3 13쪽
166 천계_잃어버린 조각 23.09.11 77 3 12쪽
165 천계_오래된 사연 23.09.10 56 2 12쪽
164 천계_이안남존의 라온성 23.09.10 58 2 12쪽
163 천계_마고가 돌아오다 23.09.09 57 3 10쪽
» 천계_해날품곡의 함정 23.09.09 58 3 13쪽
161 천계_마음숲의 침입자 +2 23.09.08 68 3 11쪽
160 그믐_삼도천이 막히다 23.09.08 73 3 10쪽
159 그믐_다시 현재로 23.09.07 55 3 12쪽
158 그믐_도룡과의 혈투 23.09.07 54 3 12쪽
157 그믐_악마 미지의 정체 +2 23.09.06 55 3 12쪽
156 그믐_마물 도룡 23.09.06 50 3 12쪽
155 그믐_신례국 백슬곤아 +2 23.09.05 63 3 12쪽
154 그믐_백령성 지하보관실 23.09.05 54 3 11쪽
153 그믐_안개에 서린 무늬 +2 23.09.04 59 3 10쪽
152 그믐_마물의 단서 23.09.04 52 3 11쪽
151 그믐_시작된 미래 23.09.03 72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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