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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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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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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8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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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_삼도천이 막히다

DUMMY

소품샵 ‘달숲의 작은 천사’는 요정 미지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요정 나빌라들은 모두 사라졌고, 그들을 지키던 선인 빛결도 유리공에 봉인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친구들이 다 사라졌어요?”

미지는 날개를 축 늘어뜨리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빛결님···, 빛결님이 이렇게 되다니···. 어어엉.”


누군가 슬퍼하면 마고는 가만히 있지 못한다. 그것이 사람이든 요정이든.

“그래도 미지가 살아남았으니 나빌라 요정도 살아남은 거야. 빛결님도 기뻐하실 거야.”


나는 미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생각해봐. 봉인의 주술로 백령성에 있지 않았다면, 너도 사람의 독기에 죽었을 거야.”


“그···.”

가온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 이건··· 계시야.”

그녀를 돌아보니 환희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사빈, 네 말이 맞아. 봉인된 요정이 또 있을지 몰라. 하나가 남았다면 어딘가 또 있을 거야. 희망이 있다고!”

가온은 춤을 추듯 벽 선반의 유리공을 가리켰다.


“그럼, 빛결님이 더 빨리 깨어날 수 있잖아?”

“빛결님이 깨어나시나요?”

미지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가온을 올려다보았다.


“당연하지. 지금은 씻김 중이라고. 요정의 기운이 있으면 더 빨리···.”

“저, 제가 있을게요!”

미지가 손을 번쩍 들었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미지는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 빛결님을 지킬 거예요.”


“좋아. 미지는 요정이니까 차원의 문에 머물러도 상관없어.”

가온이 미지의 손을 잡았다.


“저··· 하고 싶은 일이 또 있어요.”

미지는 단풍나무 꼭대기에 내려앉았다.


“깨어나지 않은 마물 조각도 많았어요. 그것들 다 없애고 싶어요. 악마가 되고 싶지 않아요. 너무, 너무 괴로워요.”


“나도 바라는 바이지만···.”

나는 한숨을 쉬었다.

“쉬운 일이 아니야. 그들이 인간세에서 힘을 잃을 일이 없거든.”


“아니야. 할 수도 있어.”

가온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손끝으로 물결을 만들었다.


“마물을 없애고 다니면서 다른 요정도 찾는 거지. 어때?”


“저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마물 사냥꾼이라면요.”

나토두는 진지했다.


“마물을 상대하려면 우선···. 인간세에서 자유롭게 다녀야 합니다.”

나토두가 말하자 가슴 속에 한 줄기 빛이 내비쳤다.

뭔가 있을 듯한데?


가온이 맞장구쳤다.

“숨은 조각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해. 형체가 없는 것도 있으니 느끼고 들을 수 있어야지.”


그녀는 가게 안을 서성였다.

“마물을 찾아낼 힘도 있어야 하고. 아니면 마물을 끌어들일 미끼를 갖고 다니던가.”


나도 보탤 말이 있었다.

“힘도 있어야 해. 마물과 싸울 힘, 소멸시킬 힘 말이야.”


도룡을 상대하던 높쌘과 소슬을 떠올렸다. 그런 식으로 하나씩 마물을 상대한다면?


“넌 아니야.”

가온이 대뜸 내 손을 쳤다.


“네가 폭주해서 도룡이 더 강해졌잖아? 복수심에 물든다면 인간세 사람이나 다름없어.”


할 말이 없었다. 사실이니까.

아직 아움도, 높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마고를 넘겨주고 중천으로 가기로 했으니까.


“참, 나 마고를 그만두면 중천으로 가기로 했어.”

“중천? 뜬금없이?”


가온이 이유를 물었지만, 설명은 나중에. 지금은 백슬곤아를 데리고 마음숲으로 돌아가는 일이 먼저니까.


나는 미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꼭 나타날 거야. 마물 사냥꾼이. 소망이 있으면 언젠가는!”


“내 말이. 하륜님이 늘 말씀하셨어. 문제가 생기면 해답이 따라온다고.”

가온은 꼬르륵거리는 배를 움켜쥐고 바구니를 챙겼다.


“지금은 먹는 것이 먼저야. 나 며칠이나 굶은 줄 알아?”

그녀는 서둘러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미루안으로 가겠지. 하륜 선위가 벌써 요깃거리를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나토두는 거리를 내다보며 싱글거렸다.


“왜? 무슨 좋은 생각이 났어?”

“아니오. 신기해서요. 하나씩 매듭이 풀리는 기분입니다.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는데···.”


“무슨 매듭?”

나토두는 싱글거리며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내 마음은 이미 마물 사냥꾼에 가 있었다.

안 어울린다고 했지만, 꼭 내 일 같았다. 이것도 계시가 아닐까?


‘최대한 피천귀와 수집가의 기운을 많이 모으는 거야. 그들은 끊임없이 더 가지려 하니까 마물을 끌어들일 힘이 있어.’


*


다음 마고도 찾았고, 요정 미지도 머물 곳을 찾으니, 마음숲에 대한 걱정이 이어졌다.


반계와의 전투는 어떻게 되었을까. 혼알방은 무사할까?

차사님과 다른 천인들은···. 상산대감은 괜찮겠지?


마음은 급한데 백슬곤아의 혼은 잠든 채 일어나지 않았다. 손목의 어리화도 그대로였다. 분명히 다음 마고를 찾았는데···.


선대 마고 아란님이 내 손을 잡았을 때는 어리화 무늬가 꽃가루처럼 화사사 지워졌다.

‘천계에 들어가야 사라지는 건가?’


나는 꼼짝 않는 꽃수 열쇠를 톡톡 두드렸다.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가온과 하륜 선위에게 물어봤지만, 천계에서도 아무런 계시가 없단다. 파라다이스 빌라도 여느 때처럼 조용했다.


*


‘이제는 정말 떠나야 해.’

빌라 옥상에 서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차원의 문도 조용하고, 이른 새벽이라 거리도 고요했다.


바나와 나토두도 내 옆에 섰지만, 표정은 어두웠다.


잠든 백슬곤아의 혼을 소매 안에 흘려 넣었다. 꽃수 열쇠를 들고 천력을 불어넣어도 열쇠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거 왜 이러지?”

나는 나토두와 바나를 돌아보았다. 둘은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돌렸다.


“너희들, 뭐 알고 있지?”

윽박질러도 나토두와 바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뭔데? 왜 그러는데?”

“사실은···. 백하님이 길을 막았습니다. 너무 위험하다고···. 전투가 끝나면 다시 부를 겁니다.”


“왈왈, 한얼님도 부탁하셨어라. 끝나면 부를 거라.”

바나는 꼬리를 흔들었다.


‘삼도천이 막혀?’

마음숲은 예상보다 훨씬 더 위험하구나.


가온과 하륜이 옥상으로 올라왔다. 가온은 내 옆으로 훌쩍 뛰어왔다.

“벌써 가려고? 헝겊꽃이 조용하다며?”


“마음숲으로 가는 길을 막았대. 난 그것도 모르고···.”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솟아올랐다. 걱정과 배신감, 분노와 두려움이 뒤섞였다.


“하륜님, 저를 마음숲으로 보내주세요. 지금 당장 가야겠어요.”

길을 막았다면, 내 힘으로는 어림없었다. 여기서 나를 도와줄 이는 하륜 선위뿐이었다.


“길을 막았다면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하륜은 오히려 담담했다.


“사빈님이 다치는 것을 보고 싶지 않겠지요. 애써 막아놓은 것을 뚫으려고요?”


“마음숲은 마고가 있어야 힘을 얻어요. 다음 마고도 찾았으니 기울어진 축도 다시 설 거라고요.”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소리 질렀다.


나토두는 태연하게 뒤로 물러섰다.

“사빈님, 여기서 기다리시죠. 백하 대감이 부른다고 했으니 끝나면 부를 겁니다.”


“그러다 마음숲이 무너지면?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어.”

“마음숲이 쉽게 사라질 리가요. 수리마루님이 계신데.”


“수리마루?”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두루뭉술한 예언이나 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이나 벌이는! 그게 무슨 수리마루야? 피천귀와 수집가는 왜 만들었냐고!”


“그건···, 사람이 만들었는데요.”

“그 사람을 바로 수리마루가 만들었잖아! 수리마루가 있다면 두들겨 패줄 거야. 숨이 넘어갈 만큼! 아주 흠씬!”


“사빈!”

가온이 내 팔을 잡아당겼다.


“사람도 천인처럼 생명의 씨가 조금씩 모양을 잡은 겁니다. 수리마루님은 생명의 씨앗만 만들었고요.”

나토두가 중얼거리자 가온이 쓰읍 소리를 내며 눈을 흘겼다.

그제야 나토두도 입을 다물었다.


“길이 막혔다며??”

“삼도천을 모두 막지는 못했을 거야. 중천을 통해 대명천으로 넘어가면 돼. 중천으로 가는 길에 틈이 있을 거야.”


“그럴 듯 하군요.”

하륜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빈, 하륜님이 보내주실 거야. 백하와 한얼의 마음도 알아줘야 한다는 거지. 하지만···.”

가온이 내 팔을 잡았다.


“우리가 보내줄 수 있는 건 너 하나뿐이야. 차사가 막은 길을 뚫어야 하니까.”


“저는 혼자 갈 수 있습니다.”

나토두가 말하자 바나가 소년의 바짓가랑이를 물었다.


“형님, 저는 어쩌라고라?”

“사빈님은 못 해도, 너는 태울 수 있어.”


“왕왕, 나도 갈 거여라.”

바나가 껑충거리며 뛰어올랐다.


나는 소매에서 백슬곤아의 혼을 꺼냈다.

이 여린 혼을 데려가는 건 너무 위험했다. 마음숲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는데.


“가온아, 백슬곤아를 부탁해. 마음숲이 무사한지 보고 올게.”

“그래. 너 올 때까지 천계와 마고에 대해 가르쳐줄게. 아주 자세하게.”

가온은 애써 웃음 지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마고의 안내서를 찾는 방법도 알려줘.”


가온이 내 어깨를 세게 내리쳤다.

“쓸데없는 소리! 몸조심해. 네 혼을 중천에서 보고 싶지 않아. 소멸하는 건 더더욱 안돼. 알지?”


“응.”

대답하면서도 마음은 어두웠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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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중천_도우미 구하기 23.09.13 71 3 12쪽
170 중천_첫 번째 손님 23.09.13 55 3 12쪽
169 중천_임천사령 고마 사빈 +2 23.09.12 54 3 11쪽
168 천계_새로운 마고 23.09.12 53 3 12쪽
167 천계_암연층으로 +2 23.09.11 53 3 13쪽
166 천계_잃어버린 조각 23.09.11 77 3 12쪽
165 천계_오래된 사연 23.09.10 56 2 12쪽
164 천계_이안남존의 라온성 23.09.10 58 2 12쪽
163 천계_마고가 돌아오다 23.09.09 57 3 10쪽
162 천계_해날품곡의 함정 23.09.09 57 3 13쪽
161 천계_마음숲의 침입자 +2 23.09.08 68 3 11쪽
» 그믐_삼도천이 막히다 23.09.08 73 3 10쪽
159 그믐_다시 현재로 23.09.07 55 3 12쪽
158 그믐_도룡과의 혈투 23.09.07 54 3 12쪽
157 그믐_악마 미지의 정체 +2 23.09.06 55 3 12쪽
156 그믐_마물 도룡 23.09.06 50 3 12쪽
155 그믐_신례국 백슬곤아 +2 23.09.05 63 3 12쪽
154 그믐_백령성 지하보관실 23.09.05 54 3 11쪽
153 그믐_안개에 서린 무늬 +2 23.09.04 59 3 10쪽
152 그믐_마물의 단서 23.09.04 52 3 11쪽
151 그믐_시작된 미래 23.09.03 72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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