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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빛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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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연재수 :
1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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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16,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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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5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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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그다음_싸움 구경

DUMMY

인간세의 텁텁한 공기가 숨 쉴 때마다 가슴에 가득 들어찼다.


우거진 숲속에서 사빈과 나토두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바나도 코를 킁킁거리며 바람의 냄새를 맡았다.


“신성한 땅이 아닌 것 같은데요?”

나토두가 넝쿨이 우거진 나뭇가지를 밀어냈다.


“분명 신성한 땅을 생각하고 인형을 잡았는데···.”


사빈이 반쪽짜리 아리 인형을 내려다보았다.

‘열쇠로 쓰기에는 천력이 부족한가?’


“사빈님, 신성한 땅이 어딘지 아십니까?”

“몰라. 이름만 들었어.”


“거기가 어떤지도 모르죠?”

나토두가 혀를 찼다.


“아!”

사빈이 인형을 들어 올렸다.

“내가 아는 곳이어야 되는구나. 어딘지 정도는 알아야 하는 거야.”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역시 마고의 꽃수 열쇠와는 달랐다.

“신성한 땅은 안 되겠다. 하지만, 파라다이스 빌라는 갈 수 있지.”


바나가 왈왈 소리쳤다.

“파라다이스라고라? 삽살이가 있는 거기 말이어라?”

왕왕 짖으며 껑충 뛰어올랐다.


“지금은 못 갑니다. 한빛돌 한쪽은 고아당에 있으니까요.”

나토두가 빠르게 말했다. 바나가 끼깅거리며 풀숲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래? 어쨌든 여기는 현재니까 영감도 부를 수 있고···.”

사빈은 나토두를 바라보았다.


“천마를 탈 수 있으니까 걱정 없어.”

“사람들 눈에 띄면 안 됩니다. 날개를 펴는 건 밤이 되어야 합니다.”


나토두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태양은 동쪽 하늘에 떠 있었다. 한낮도 되지 않았다.


바나가 귀를 쫑긋 세웠다.

“노랫소리가 들려라. 저기 어디여라.”


바나가 가리키는 곳에 커다란 수도원이 보였다.


산 중턱 넓은 터에 붉은 벽돌 건물이었다. 지은 지 오래된 건물로 높은 종탑과 십자가도 보였다.

그곳에서 노랫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기도 시간인가 보다.’

사빈은 수도원을 향해 수풀을 헤치며 내려갔다. 어디로든 길을 찾아야 했다.


길 아닌 곳을 헤치다 보니 이번에는 수도원이 보이지 않았다.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빈은 숨을 헉헉거리며 키 높은 나무를 살펴보았다.

“이 길이 아닌가?”


“사빈님, 차라리 바람잡이를 부르시지요.”

“이상해. 여기에는 영감이 없더라고. 산 아래에 있을 거야. 심심하다고 다들 사람 사는 동네에서 살거든.”


사빈은 치잇, 이빨 사이로 소리를 냈다.

‘마고든, 고마든 인간세는 중간자를 좋아하지 않아. 여전히 날 수가 없네.’


머리 위로 작은 앵무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몸통은 작지만 꼬리는 길었다. 앵무새는 푸드득 날아 건너편 나뭇가지에 내려앉았다.


“웬 앵무새?”

사빈은 앵무새를 바라보았다. 앵무새가 사빈을 향해 머리를 까딱거렸다.


“수도원에서 키우는 새인가 봐. 따라가 보자.”

“글쎄요. 과연 그럴지···.”

나토두는 웅얼거리면서도 뒤를 따랐다.


사빈이 가까이 가자 앵무새는 다른 나무로 옮겨갔다.

그녀는 새를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사빈을 이끌며 숲을 가로지르던 앵무새가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어라?”

새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는데, 바나가 사빈의 치맛자락을 잡아당겼다.


“주인님! 싸움이어라. 피천귀들이어라!”

“피천귀?”


쉐애액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사빈은 몸을 낮추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이십여 마리의 피천귀와 수집가들이 엉겨 붙어 서로를 잡아 뜯으며 고함쳤다.

피천귀는 여러 가지 기괴한 모습이었고, 수집가들은 사람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렇다 할 무기도 없었고, 어느 쪽이 월등히 힘이 센 것도 아니어서 때리고 두드리고 물어뜯으면서도 싸움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수집가도 반계에 있던 것과는 달랐다. 수집가가 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었다.


“사빈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토두는 싸움을 지켜보면서 그녀의 결정을 기다렸다.


“그러게. 어쩐다···.”

사빈은 안타까워 웅얼거렸다.


뒤쪽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다. 사빈은 놀라 숨을 멈추었다.


한 소년이 천천히 걸어왔다. 열서너 살쯤 되었을까.

머리카락은 짧고,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었다.


사빈이 놀라 바라보는데 소년은 대수롭지 않은 듯 싸움터를 바라보았다.


“아줌마, 여기서 뭐해요? 위험해요.”

“아···줌마?”

사빈은 낯선 호칭에 어리둥절했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너야말로! 싸움 난 거 안 보여?”


그녀의 말에 오히려 소년이 놀랐다.

“어? 아줌마, 저기 뭐가 있는지 보여요?”

“뭐?”


“오오, 아줌마도 귀신 보는구나. 보통은 미친 사람만 보거든요.”

“그럼 너도?”


소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산이 좀 그래요. 이름은 천수산인데, 천귀산으로 고쳐야 한다니까요. 귀신도 많고, 저런 사람도 많아요.”


“천···수산? 여기가 천수산이야?”

사빈의 몸이 얼어붙었다. 바나도 끼잉 신음을 냈다.


병원에서 들었던 환청이 웅웅 울렸다.

‘나를 지울 존재구나. 네가 깨닫기 전에 없애주마. 약하긴 해도, 이 정도면··· 나를 되찾겠군.’


사빈은 오싹한 느낌에 소름이 돋았다. 그것이 마물일 텐데···.

‘가만···. 마물이 날 부른 거야? 한빛돌이 일부러 보낸 거야?’


건너편 나뭇가지에 작은 앵무새가 앉아있었다.

찾을 때는 보이지 않더니, 지금은 사빈을 감시하는 것 같았다.


‘으흥···, 날 시험하려고?’

자신이 가진 힘을 생각하니 두려움이 사라졌다. 가슴속에 뜨거운 기운이 서서히 올라왔다.

‘그래.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훨씬···.’


“아줌마, 어느 쪽이 이길 것 같아요?”

소년은 태연하게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내가 소멸시킬 테니까.”

“에에?”

소년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여기 미친 사람 추가인가? 싶은 표정이었다.


“사빈님, 괜찮으십니까?”

나토두가 물었을 때 사빈은 이미 지팡이 높쌘을 꺼내 들었다.


“괜찮아. 지금 나는 마물을 상대할 만큼 천력이 가득해.”

“왕왕, 주인님, 그러면 이기는 편이 우리 편이어라.”

바나가 머리부터 꼬리까지 부르르 몸을 털었다.


사빈이 지팡이를 들고 일어서자 나토두는 소년의 팔을 잡아끌었다.

“위험하니까 저기 가서 구경하자.”


“저 아줌마, 뭐 하는 거예요?”

“사냥.”


사빈은 지팡이를 잡고 서서 의식을 집중했다. 허공으로 손을 뻗어 뜰안샘의 물을 불렀다.

“뜰안샘의 물은 부슬비가 되어라!”


가림산의 첫물, 뜰안샘물이 소환에 응해 그녀의 손으로 흘러왔다.

수집가들을 향해 흩뿌리니 비처럼 그들의 몸에 달라붙었다.


피천귀와 맞붙었던 수집가들이 비명을 질렀다.

“우왁! 몸이 녹는다!”


수집가들이 뛰어오르자 피천귀들도 덩달아 뛰어올랐다.


사빈은 높쌘을 두 손으로 받쳐 잡았다.

“나의 빛은 너희를 붙잡는 그물이 되리라. 나의 숨은 너희를 소멸시키는 칼이 되리라.”


그녀의 빛이 지팡이로 스며들었다. 높쌘에서 한 줄기 빛이 솟아 나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빛 그물은 순식간에 피천귀를 잡아들였다.

그물이 오그라들자 피천귀들은 꽤애액 비명을 질렀다. 빛 그물은 비스듬한 공 모양이 되었다.


사빈은 유리공 소슬을 꺼내 들었다.

“존재를 버리고 너희가 시작된 허무로 돌아가라.”


그녀는 소슬을 높이 들고 외쳤다.

“삼켜라!”


그물에 싸였던 피천귀 덩어리는 순식간에 유리공으로 빨려 들어갔다.


수집가들은 몸이 녹는다고 날뛰다가 피천귀가 사라지자 그 자리에 멈추었다. 끼기긱 목을 돌려 사빈을 바라보았다.


뜰안샘의 물은 여전히 그들 머리 위로 내리고 있었다.

‘저들이 거래한 혼 조각만 삼키고, 나머지 혼은 남겨두겠어. 정신이 들면 집을 찾아가겠지.’


사빈이 지팡이를 움직이자 수집가들을 감싼 빛 그물이 조여들었다.


그녀는 소슬을 높이 띄워 올렸다.

“어둠으로 빚어진 영이여, 저들이 버린 혼은 너희 것이다. 계약으로 무너진 조각을 가져와라.”


혼의 일부만 가져와야 하기에 사빈은 어느 때보다 신중했다.


소슬에서 보이지 않는 기운이 뻗어 나왔다. 수십 개의 손이 길게 늘어지며 상대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보이지 않는 손이 제자리로 돌아갔을 때, 수집가들은 모두 땅에 쓰러져 잠든 다음이었다.


“잘 자고, 어두워지기 전에는 돌아가라. 추운 데서 자면 입 돌아가니까.”

사빈은 잠든 사람들을 보고 소리쳤다.


높쌘과 소슬을 숨의 공간으로 집어넣으려는데 앵무새가 푸드덕거렸다.


“마물 조각! 마물 조각!”

새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앵무새는 피천귀와 수집가들이 싸우던 한복판을 향해 소리쳤다.


젖은 땅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검푸른 기운이 스멀스멀 땅을 뚫고 올라왔다.


나토두가 한달음에 사빈에게 뛰어왔다.


“위험합니다!”

소년은 사빈을 가로막고 꾸물거리는 기운을 노려보았다.


“마물은 내가 먼저 공격한다. 기다리지 않아.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거든.”

사빈은 소슬을 허공에 띄우고 얼음칼을 소환했다.


“아움!”


병원에서 마물의 공격을 받을 때는 마고의 천력이 사라져가던 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루와 마눙의 힘까지 그녀를 지키고 있었다.


“아움! 마물을 끌어낼 테니 정수를 내게 가져와.”

아움은 몸을 까딱이고는 검푸른 기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크크, 네가 날 상대한다고?’

연기가 빠르게 치솟아 올랐다. 검은 연기가 순식간에 하늘을 덮었다.


“너야말로 조용히 사라질 것이지.”

사빈은 높쌘을 창검처럼 들고 검은 연기를 향해 겨누었다. 연기 속에 마물 조각의 정수가 또렷이 보였다.


“아움! 저기야!”

아움은 곧장 마물의 정수로 날아갔다.


검은 연기가 기운을 모을 틈도 없이 얼음칼 아움은 정수에 정확히 꽂혔다.


“크아아앙!”

연기가 뒤틀리며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모여들었다.


사빈은 소슬을 불렀다.

“마물의 정수는 내게로, 네가 삼킬 수 있는 기운은 너의 것이다.”


아움이 뽑아낸 정수는 지팡이 높쌘을 타고 사빈의 몸속으로 녹아들었다. 소슬도 재빨리 기운을 먹어 치웠다.


마물 조각이 사라지자 주위는 고요해졌다.


사빈은 무덤처럼 움푹 패인 구덩이를 바라보았다.

“마물 조각이 힘을 얻으려고 피천귀와 수집가를 불러들였어.”


“서로 싸우게 해서 기운을 얻었군요.”

나토두도 구덩이와 쓰러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주인님! 꼬맹이가 얼었어라!”

바나가 소리쳤다. 사빈은 숨어있는 소년을 돌아보았다.


소년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저, 저 아니에요. 전 아무것도 몰라요.”


사빈은 높쌘과 소슬, 아움을 숨결의 공간으로 돌려보냈다. 앵무새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소년을 향해 돌아섰다.

“이제 괜찮아. 여기서 싸우는 일은 없을 거야.”


“누, 누구세요?”

“나? 귀신 보는 아줌마.”

사빈이 웃음을 터뜨렸다.


“짜식, 쫄기는.”

나토두가 소년에게 다가갔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녀석··· 여기서 찾았던 거로군.’


“넌 누구야? 너도 귀신을 보잖아? 귀신이 아니라 피천귀지만.”

사빈이 소년을 불렀다.


소년의 얼굴에는 불안과 의심이 가득했다. 이름이든 뭐든 흘리고 싶지 않았다.


“후니후니···. 예. 후니후니라고 해요.”

“집이 어디야? 데려다줄게.”


“아뇨! 전혀요! 전혀! 그럴 필요 없어요. 저, 저는 이쪽 길로 가요.”

소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길을 달려 내려갔다.


“이 근처 사나 봐. 길을 잘 아네.”

사빈은 어깨를 으쓱 올렸다.


“가온에게 가자. 여기가 어딘지 알았으니 찾아갈 수 있어.”

성큼성큼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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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그다음_각자의 목표 +2 23.09.15 58 3 10쪽
» 그다음_싸움 구경 23.09.15 58 3 12쪽
173 중천_소망단이라 이름하다 23.09.14 47 3 12쪽
172 중천_열린마을의 식구들 23.09.14 72 3 10쪽
171 중천_도우미 구하기 23.09.13 72 3 12쪽
170 중천_첫 번째 손님 23.09.13 55 3 12쪽
169 중천_임천사령 고마 사빈 +2 23.09.12 54 3 11쪽
168 천계_새로운 마고 23.09.12 53 3 12쪽
167 천계_암연층으로 +2 23.09.11 53 3 13쪽
166 천계_잃어버린 조각 23.09.11 77 3 12쪽
165 천계_오래된 사연 23.09.10 56 2 12쪽
164 천계_이안남존의 라온성 23.09.10 58 2 12쪽
163 천계_마고가 돌아오다 23.09.09 57 3 10쪽
162 천계_해날품곡의 함정 23.09.09 58 3 13쪽
161 천계_마음숲의 침입자 +2 23.09.08 68 3 11쪽
160 그믐_삼도천이 막히다 23.09.08 73 3 10쪽
159 그믐_다시 현재로 23.09.07 55 3 12쪽
158 그믐_도룡과의 혈투 23.09.07 54 3 12쪽
157 그믐_악마 미지의 정체 +2 23.09.06 55 3 12쪽
156 그믐_마물 도룡 23.09.06 50 3 12쪽
155 그믐_신례국 백슬곤아 +2 23.09.05 63 3 12쪽
154 그믐_백령성 지하보관실 23.09.05 54 3 11쪽
153 그믐_안개에 서린 무늬 +2 23.09.04 59 3 10쪽
152 그믐_마물의 단서 23.09.04 52 3 11쪽
151 그믐_시작된 미래 23.09.03 72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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