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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아날빛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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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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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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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천_도우미 구하기

DUMMY

사빈과 예사달은 하늘을 가득 채운 별빛을 받으며 유유히 날아다녔다.


사빈은 고마의 반지 덕분에 마고와 비슷한 천력을 받았다.

처음에는 능력을 못 느꼈고, 다음에는 낯설어 제대로 쓸 수 없었다. 온전히 스며들 때까지 기다렸다.


지금은 처음부터 자신의 것인 듯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아움을 쓰는 검술은 아직 못 배웠지만, 생각으로 조종하는 방법을 찾았다.

높쌘과 소슬을 사용하는 주술도 틈틈이 수련했다. 아직 서툴지만, 곧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서로바다의 샘에 도착했지만, 비뢰수가 보이지 않았다.

온천을 만들 곳이라 터를 넓게 닦았는데, 물은 여전히 옹달샘이었다.


“사빈아, 비뢰수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아니?”

예사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지팡이로 땅을 톡톡 건드려 옹달샘을 조금 더 넓혔다. 물줄기가 조금씩 굵어졌다.


그가 사빈을 따라나선 이유는 하나였다.

사랑하는 제자가 어떻게 비뢰수를 도우미로 만드는지 보고 싶었다.


예사달도 처음에는 중천의 기운이 사빈을 해칠까 노심초사했지만, 이제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마고의 반지를 넘기고 쓰러졌을 때, 그가 본 사빈은 힘없는 중간자가 아니었다.

마백북존의 기운이 방패처럼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현원의 보호의 인과 마눙의 문양, 이루의 라온향까지 사빈을 감쌌다.

거기에 자신과 다훤의 기운이 담긴 구슬을 끼고 있지 않은가. 온사랑 팔찌는 반열 대천사가 천력을 모아놓은 것이기도 했다.


‘검은 꽃이 찾아야 할 조각이 더 있군요.’

그날, 사빈의 이마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한숨을 쉬었다.


예사달 자신을 포함한 모두의 기운이 함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중 하나라도 이어지지 않는다면 결코 해내지 못하리라.


중천의 어둠 속에서 예사달은 가만히 사빈을 바라보았다.

어디로 갈지 사방을 둘러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었다.


“할머니, 별빛바다에 가 봐요. 거기도 샘이 나오거든요. 고사목도 거기 모여 있을 거예요.”

“그러자꾸나. 네가 샘이 있다면 있는 거지.”


예사달은 사빈의 손을 잡고 훌쩍 날아올랐다.


*


맑음고원 별빛바다의 가장자리에도 작은 샘이 있었다.

중천에 왔을 때 사빈이 고사목들을 위해 찾아준 샘이었다.


그녀의 예상대로 서른한 그루의 고사목들이 샘을 둘러서 있었다. 나무 아래에서 비뢰수들이 배를 깔고 엎드려 코롱코롱 코를 곯았다.


송아지만 한데, 비쩍 마르고 윤기가 없어 안쓰러울 정도였다.


“저기 있어요!”

사빈이 비뢰수들 앞에 내려섰다.


바구니를 열어 과자와 사부랑차를 꺼냈다.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솔솔 올라왔다.


비뢰수들이 코를 킁킁거리며 눈을 떴다.

껌뻑거리며 냄새를 쫓던 비뢰수들이 사빈을 발견하고 벌떡 일어섰다.


“사빈님!”

비뢰수들은 뛰어와 머리를 들이댔다. 쓰다듬어달라는 뜻이었다.


“한얼님이 과자와 온유주 갖다 줬어요. 사빈님은 못 오신다고 했는데···.”

비뢰수 네 마리가 한꺼번에 크릉크릉 우왕우왕 거리자 샘물에 엷게 물결이 쳤다.


“아우, 시끄러워라. 우리도 인사 좀 하자.”

고사목들이 가지를 흔들며 뿌리로 걸어왔다.


고사목이 움직이자 예사달은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지금껏 죽은 나무로만 알고 있었다. 고사목이 사람을 알아보고 움직이는 건 처음이었다.


비뢰수의 말은 알아들었지만, 고사목의 소리는 그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사빈은 비뢰수에게 과자를 하나씩 먹여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 이제 중천에서 살 거야. 너희들 도움이 필요해서 왔어.”


“우리가 필요하세요?”

“혼들을 위해 찻집을 하려는데, 일손이 필요해.”


가장 작은 비뢰수가 앞발을 반짝 들었다.

“제가 할게요.”

“아니, 나, 내가 할 거야.”


사빈이 웃으며 주머니 하나를 더 풀었다.


씨앗이 가득 들어있었다. 마음숲과 숲센계곡, 대명천과 연곡호수에서 자라는 나무와 풀의 씨앗이었다.


“너희 모두의 도움이 필요해. 중천을 숲으로 만들 거야.”


숲으로 만든다는 소리에 고사목들이 일제히 가지를 흔들었다. 태풍이 부는 것처럼 바스락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고마워. 너희들에게도 이름을 줄게. 할 일도 알려주고.”

사빈은 비뢰수에 둘러싸여 샘가에 앉았다. 샘 주위로 고사목들도 모여들었다.


“저 나무들에게 모두 이름을 주려고?”

예사달이 병풍처럼 둘러선 고사목을 둘러보았다. 서른한 그루나 되었다.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어요. 고사목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씩 떠오른 이름이 있거든요.”

그녀는 고사목에게 하나씩 이름을 주었다.


사빈은 단오와 새봄, 보름이라 이름 붙인 나무를 따로 불렀다. 그중에서도 작은 나무들이었다.

“너희는 열린마을의 텃밭과 약초밭을 맡아. 상생농장만큼 키워야 차를 많이 만들지.”


키 큰 나무들에게는 씨앗 주머니를 나눠주었다.

“너희들은 네 그루씩 짝을 지어 다니며 씨앗을 뿌려줘. 한 번에 싹이 트지는 않을 거야. 그래도 여러 번 나고 죽고, 또 나면 뿌리를 내리겠지.”


가까이 선 나무끼리 짝을 지어 씨앗 주머니를 받아 갔다.

“사빈님, 지금 출발할게요. 중천이 숲이 된다니 생각만 해도 기뻐요.”


“땅을 깨우는 중이니까 오래 안 걸릴 거야. 황무지에 싹이 돋으면 푸른 사막처럼 보이겠지? 그러다가 점점 풀이 자랄 거야.”


‘푸른··· 사막.’

예사달은 피식 웃음 지었다.


‘다훤이 보았다는 푸른 사막이 이거구나.’

그는 뿌듯한 마음으로 사빈을 지켜보았다.


“씨앗이 더 필요하면 아름누리로 와. 뜨락고원 아래 있어.”

사빈이 손을 흔들자 고사목들은 짝을 지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녀는 비뢰수에게도 이름을 지어주었다.


발이 빠르고 날쌘 지예와 무이는 중천을 다니며 위로가 필요한 혼을 찾아오는 일을 맡았다. 단돌은 크고 힘이 세기에 열린마을의 호위를 맡았다.


가장 작고 침착한 이랑이 찻집의 도우미가 되었다. 아름누리에서 사빈을 도와 차를 만들고 손님을 맞을 것이다.


“가자! 집을 지어줄게!”

사빈은 나무 세 그루와 네 마리의 비뢰수를 이끌고 아름누리를 향해 돌아섰다.


“할머니, 이제 가요.”

사빈이 예사달의 팔에 자신의 팔을 엇걸었다.


날아온 길을 걸어야 하지만, 예사달은 나는 것만큼이나 마음이 가벼웠다.


*


백하가 들어오자 찻집 아름누리가 더욱 밝아졌다.

그는 상산대의 일을 모두 마치고 어엿한 정혜부사 백하가 되었다.


“벌써 중천의 공기가 많이 달라졌소.”

“할머니가 반김길을 따라 결계를 덧대주셨거든요. 정혜부 보위들을 위해서요.”

사빈이 백하를 위해 차를 따랐다.


백하가 사빈의 손을 잡으려고 팔을 뻗었다. 손을 내미는데 바로 옆에서 타악! 둔탁한 소리가 났다.


예사달이 지팡이 머리로 탁자를 두드렸다.

“뭐하나? 자네? 손이 아픈가?”


“예사달님!”

백하가 눈을 부릅떴다.


예사달은 백하와 사빈 사이에 억지로 끼어 앉았다.

“에구, 이 늙은이를 따돌리다니. 자네가 아무리 애써도 사빈한테는 내가 제일일세.”


“그건 아니죠. 어.르.신.”

백하가 노려보며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었다. 예사달도 질세라 눈에 힘을 주었다.


사빈은 웃느라 소매로 입을 가렸다.

둘의 눈싸움을 보고 있으니 백하와 한얼이 으르렁거리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형제였다면 지금은 할머니와 손자였다.


한얼을 생각하자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마음숲에 다녀올게요. 얄리장터 열림날이거든요.”

사빈이 일어서자 백하와 예사달이 동시에 일어났다.


“내가 데셔다주겠소.”

“뭬야? 나도 가련다. 볼 일이 있어서.”


“예사달님, 몸도 불편하시니 여기서 쉬시죠. 결계도 잘 쳐놓으셨고.”

“자네가 그리 말하다니, 변해도 너무 변했네.”

예사달이 지팡이를 의지하고 끄응 허리를 폈다.


사빈이 손을 내둘렀다.

“그러지 말고, 두 분 다 같이 가요.”


*


마음숲에 들어서자마자 예사달은 해담 대차사를 보러 혜존각으로 갔고, 백하도 운와와 부루에게 이끌려 한요재로 가버렸다.


사빈은 홀가분하고 기쁜 마음으로 혼자 장터를 돌아보았다.


“사빈···님?”

맑고 여린 목소리가 들렸다.


너나들이의 천막을 둘러보던 사빈이 고개를 돌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이는 고샅공방의 요선이었다. 그녀의 옆에 지나실이 서 있고, 그 옆에 낯선 여인이 서 있었다.


“사빈 맞구나!”

요선이 달려와 사빈을 와락 끌어안았다.


“어찌 지냈어? 응?”

“잘 지내요. 벌써 찻집도 열었는걸요. 손님은 세 명뿐이었지만.”


지나실은 손수건으로 눈두덩을 닦았다.

“뭐야. 같은 황천에서 연락도 없고.”


“지나실님은 더 세련되어지셨네요?”

“나야 세련의 첨단을 걸으니까.”

지나실은 옆에 선 여인을 흘끗 보더니 사빈에게 다가와 전언을 보냈다.


“온봄이 좋기는 한데, 진짜 혼이라 옷이나 물건은 못 보더라고. 아효, 이젠 내 상상력만 믿어야 해. 호호.”

서운한 건지, 자기 자랑인지 모를 말을 하고나서 지나실이 기침을 해댔다.


“온봄이라고요? 새로운 마고?”

사빈은 낯선 여인을 바라보았다.

‘백슬곤아가 새 이름을 받고 모습도 달라졌구나.’


자세히 보고 있으니 예전 모습도 남아있고, 혼빛도 그대로였다. 마고의 기운 때문에 혼빛이 바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온봄이 사빈에게 다가왔다.

“사빈님, 저 좀 도와주세요. 문제가 생겼어요.”


요선이 치마를 부여잡고 돌아섰다.

“이럴 때가 아니지. 사빈아, 먹을 것 좀 싸놓을 테니 떠나기 전에 들러라. 잊지 말고!”


날아오르던 요선이 돌아보았다.

“예사달님도 함께 지낸다고 했지? 그럼 더 가져가야지. 아무렴!”


대답할 사이도 없이 그녀는 날아가버렸다.

그 뒤를 따라 지나실도 날아올랐다.

“그래, 거기 부족한 것이 많을 테니 나도 옷이랑 천 좀 싸놓을게. 이따 보자.”


사빈이 손을 들었지만, 두 키움차사가 저만치 멀어진 다음이었다.


온봄이 사빈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사빈님, 아직 수명환을 못 건넸어요. 어쩌죠?”


“나도 그랬어. 그믐 열 번 정도 지났나? 그때 겨우 찾았어. 요즘은 받을 만한 사람도 줄었고.”


“누구를 시험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온봄은 울상이 되었다.


“우선은 그냥 잘 둘러봐. 눈에 익어야 보이지.”

사빈은 온봄의 손을 토닥였다.


“고난과 위기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 사람이 그리 흔한가. 사나흘 안에 시험까지 봐야 하잖아?”


사빈과 온봄은 나란히 장터를 걸었다.


“그래도 찾아낼 거야. 마고의 반지도, 수명환도 주인을 찾고 싶어 하니까. 바림창고의 유물도 주인을 돕고 싶어 하고.”


“제가 정말 잘 해낼 수 있을까요?”

온봄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빈은 멈추어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행이야. 이렇게 알려줄 수 있어서.’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믐 아홉 번을 채우기 전에 새로운 마고를 찾았고, 자신의 수명도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마음숲이 위험에 빠질 일도 없을 것이다.


틀어진 축도 제자리로 돌아섰고, 온봄에게 설명할 기회도 생겼다.

지금은 마고였을 때와는 달리 언제라도 나올 수 있다. 이렇게 장터도 구경하고.


사빈이 온봄의 손을 잡고 활짝 웃었다.

“그럼. 당연하지. 어리화가 선택한 마고인걸.”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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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그다음_싸움 구경 23.09.15 57 3 12쪽
173 중천_소망단이라 이름하다 23.09.14 47 3 12쪽
172 중천_열린마을의 식구들 23.09.14 72 3 10쪽
» 중천_도우미 구하기 23.09.13 72 3 12쪽
170 중천_첫 번째 손님 23.09.13 55 3 12쪽
169 중천_임천사령 고마 사빈 +2 23.09.12 54 3 11쪽
168 천계_새로운 마고 23.09.12 53 3 12쪽
167 천계_암연층으로 +2 23.09.11 53 3 13쪽
166 천계_잃어버린 조각 23.09.11 77 3 12쪽
165 천계_오래된 사연 23.09.10 56 2 12쪽
164 천계_이안남존의 라온성 23.09.10 58 2 12쪽
163 천계_마고가 돌아오다 23.09.09 57 3 10쪽
162 천계_해날품곡의 함정 23.09.09 57 3 13쪽
161 천계_마음숲의 침입자 +2 23.09.08 68 3 11쪽
160 그믐_삼도천이 막히다 23.09.08 73 3 10쪽
159 그믐_다시 현재로 23.09.07 55 3 12쪽
158 그믐_도룡과의 혈투 23.09.07 54 3 12쪽
157 그믐_악마 미지의 정체 +2 23.09.06 55 3 12쪽
156 그믐_마물 도룡 23.09.06 50 3 12쪽
155 그믐_신례국 백슬곤아 +2 23.09.05 63 3 12쪽
154 그믐_백령성 지하보관실 23.09.05 54 3 11쪽
153 그믐_안개에 서린 무늬 +2 23.09.04 59 3 10쪽
152 그믐_마물의 단서 23.09.04 52 3 11쪽
151 그믐_시작된 미래 23.09.03 72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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