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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아날빛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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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연재수 :
176 회
조회수 :
13,148
추천수 :
431
글자수 :
916,352

작성
23.09.03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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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그믐_시작된 미래

DUMMY

만풍산 전망대에 서니 파라다이스 빌라가 내려다보였다. 빌라는 차원의 문을 품고 있어 묘수의 차원도 겹쳐 보였다.


세상의 기둥만 한 신령수가 묘수의 차원을 지키는 문지기였다.

‘동명님도 저것과 비슷했는데···. 거기가 정말 존재계였을까.’


이른 새벽이라 전망대까지 올라온 사람이 없었다. 나는 지팡이 높쌘으로 보도블록을 또각또각 두드렸다.


온통 심지아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황망하게 가버리다니.

언제까지나 파라다이스 빌라의 용병으로 남을 줄 알았는데.


“사빈님, 저기가 차원의 문입니까?”

나토두가 말을 걸어 생각에서 깨어났다.


“응. 저기 신령수가 보이는 곳이 묘수의 차원, 바닷속이 해밀의 차원이래.”

“신기합니다. 다른 차원이라니. 그럼 빛나는 알의 차원에도 갈 수 있습니까?”


“아···, 휘모랑?”

그런 생각은 안 해봤는데···.

허락된 차원이라면 차원의 문을 통해 다닐 수 있겠구나. 문지기들만 가능하지만.


“어쩌면 가능할지 몰라. 그곳에도 차원의 문이 있다면. 수집가처럼 이상한 것이 넘어오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렇군요. 그런데, 지팡이는 왜 가져 오셨습니까?”

나토두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높쌘을 바라보았다.


특별히 이유는 없었다. 그저 심난해서라면 이유가 될까.


어젯밤 파라다이스 빌라는 완전히 초상집이었다.


심지아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갔다고 전하자 은서는 밤새 울었고, 가온도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하륜도 서운해하며 말이 없었다.


나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렇게 훌쩍 떠나다니.


도무지 잠이 안 와서 바람이라도 쐴까 일어났는데 지팡이가 눈에 띄었을 뿐이다.

유리공 소슬은 배낭에 넣은 채로 가온의 방 한구석에 내려놓았다.


‘높쌘과 소슬로 피천귀와 수집가를 잡는다···.’

지팡이를 쓰다듬으며 차원의 문을 바라보았다.


지금이라도 이걸 들고 마음숲으로 건너가?

‘이것만 있으면 도울 수 있어. 싸움을 안 해도 된다고.’


허리띠에 매달린 꽃수 열쇠를 두드렸다. 반응이 없었다.

‘열쇠가 여기로 보낸 건 여기에 할 일이 있다는 뜻인데···. 이번 그믐은 이걸 받으러 온 건가?’


지팡이를 무릎 위에 올렸다.

‘아니면 수명환이나···, 적어도 마고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데···.’


“사빈님, 무슨 생각하세요?”

“응? 아, 아니.”


나토두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그는 가끔 한쪽 눈썹을 움직이는데 골똘히 생각할 때 나오는 버릇 같았다.


“궁금한 게 있어요.”

“뭐가?”


“사빈님이 높쌘과 소슬로 싸운다면요···. 물은 어떻게 하죠?”

나토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구나. 수집가를 제압하려면 신성한 땅의 물이 필요한데, 들고 다닐 수 없잖아?’

나는 팔짱을 끼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천계에서는 뜰안샘 물이 딱 맞는데···.’


“사빈님, 지팡이가 물의 기운과 공명할 수 있나요?”

“물의 기운···?”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지팡이 높쌘을 뜰안샘과 공명시키는 것이다. 기운을 연결하면 높쌘의 빛 그물에 뜰안샘의 물이 같이 있게 된다.

물을 뿌리고 빛의 그물을 던지는 것과 같아지는 것이다.


예사당의 뜰안샘이라면 내가 잘 아는 곳이니 언제라도 소환이 가능하고, 공명도 가능했다.


“이야! 너 머리 좋다. 대단한데!”

나는 소년의 어깨를 토닥였다.


나토두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싱글거렸다.

“헤헤, 사빈님, 높쌘과 소슬도 숨에 넣고 다니실 건가요? 얼음칼 아움처럼요.”


“좋아! 그래야지.”

내 숨의 공간에 넣으면 들고 다닐 이유도 없고, 기다릴 필요도 없어. 바로 꺼내쓸 수 있다.


심지아는 상상계의 주술사이니 갖고 다녀야 하지만, 내게는 그 정도의 천력이 있다고.

나토두와 이야기하니 점점 기운이 돋았다.


지금은 높쌘과 소슬을 사용하는 방법도 주문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잘 쓰게 될 거다. 돌아가면 검술도 배울 거잖아?


그리고 다른 한 가지도 깨달았다.

나는 아직 높쌘과 소슬로 누군가와 싸울 능력이 안 된다는 것.


*


이른 아침의 카페 미루안은 조용했다.

문을 열 시간이 아니라서 나와 나토두도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았다.


“새벽부터 어딜 다녀왔어?”

가온은 주방에서 샌드위치를 만들며 나를 흘끗거렸다.


그녀 옆에서 카페 주인이자 서방백천의 선위인 하륜이 토마토 주스를 만들었다. 기묘하면서도 익숙한 광경이었다.


“전망대에. 바람 좀 쐬러.”

“그믐 외출이잖아? 할 일이 있어서 온 거니까 많이 먹고 힘내.”


가온이 샌드위치 접시를 카운터에 올리자마자 나토두가 벌떡 일어나 접시를 날랐다.

인간세에 처음 왔는데도 눈치 빠르게 움직이다니, 확실히 영리하고 부지런한 천마였다.


“나토두라고? 남방홍천의 천마를 보다니 신기하네.”

가온이 애써 웃음 지었다.

그녀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가온과 하륜도 제대로 못 잔 것 같았다.


“지새늬를 위해 장례식도 할까?”

“그럴 거야. 빈소를 마련하느라 시간이 걸리겠지. 이따 저녁에 같이 가자. 낮에는 예약 손님이 있어서 달숲에 있어야 해.”


“은서님은 괜찮아?”

“제정신이 아니야. 눈이 퉁퉁 부었어. 제대로 뜨지도 못해. 심지아가 사념체일 때부터 친하게 지냈으니까.”


가온이 토마토 주스 네 잔을 들고 맞은편에 앉았다.

“짱짱 사장이 봐준다고 했으니 일찍 끝날 거야. 바우님도 오후에는 도착할 거고.”


“그렇게 갑자기 갈 줄 몰랐는데. 그때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아직도 실감 나지 않았다.


“맞아. 만나면 헤어질 때가 있다고 해도···.”

가온은 하륜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하륜이 앞치마를 걸친 채 테이블로 다가왔다.

“사빈님, 천계에 무슨 일이 생겼나요?”


“중앙황천에서요. 반계와 싸울 거예요. 연곡호수를 지나 황금들까지 나간다고 했어요,”

“무슨 일로?”


“자세한 내막은 몰라요. 바나를 통해 들은 것이 전부라서.”

나는 그동안의 소식을 짧게 이야기했다.


마음숲에서 혼알방이 사라졌고, 가시버시 축제에서 이상한 냄새와 기운을 느꼈다. 아무래도 수집가인 것 같다.


어젯밤에 들은 대로라면, 정도가 심한 수집가를 반계에서 흡수했고, 수집가들끼리도 시기와 갈등이 심하다.


마고가 없는 그믐에 공격하겠다는 경고장과 그것을 이용하여 반계를 친다는 계획까지.


“왜 싸우는지 모르겠어. 마눙님과 이루님이 가만히 있는 것이 더 이상해.”

나는 여태껏 마눙님과 이루님을 믿고 있었다.


아버지가 알려준 대로 피천귀의 폭주를 막고 있는 거라고, 천계와 인간세를 위해 사명을 맡았다고 여겼는데 그 믿음이 무너졌다.


“마음숲을 반계로 흡수하려는 걸까?”

“혼알방을 훔친 걸 알면서도 가만히 있는 건 그들을 이용하는 거지. 묵인했으면 동조한다는 뜻이고.”

가온이 씩씩거렸다.


하륜이 두 손을 맞잡았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 거예요. 여하튼, 수집가가 나서면서 피천귀가 들어갔군요.”


나와 가온은 무슨 말인가 하륜을 바라보았다.

나토두는 가만히 토마토 주스를 홀짝거렸다.


“수집가의 힘이 커지면 피천귀가 약해져요. 여기서도 피천귀들이 많이 흔들렸거든요. 반계의 영향을 받아서였군요.”


“심지아가 피천귀의 힘으로 수집가를 잡을 수 있다고 했어요. 저들끼리 싸우도록 하면 된다고요.”


가온이 손을 번쩍 들었다.

“좋은 생각이야. 네가 높쌘과 소슬의 주인이 되었다고?”


“받기는 했는데,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어. 주문도 모르겠고.”

“이제부터 사빈이 파라다이스의 용병인가?”


“그믐에 한 번 내려오는데?”

“무슨 걱정이야? 곧 마고가 아니게 되잖아?”


그런가? 그래서 높쌘과 소슬이 내게 온 걸까?

뭐가 뭔지 모르겠다. 뭘 해야 하지? 그믐 외출인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마음숲을 나온 것도 잘못한 것 같고, 나오자마자 심지아는 사라지고, 지새늬는 실족사로 처리되었다.


‘빨리 돌아가야 하는데···.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입술을 자근자근 깨물며 테이블만 내려다보았다.


“사빈님.”

하륜이 낮은 소리로 나를 불렀다.


“예?”

“지금은 지금의 문제만 생각하세요. 사빈님이 온 건 여기서 풀어야 할 문제가 있어서예요. 마음숲은 상산대를 믿으세요.”


“아, 그래야죠. 예.”

알면서도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다른 생각에 빠져있으면 꼭 봐야 할 것을 놓쳐요. 눈앞에 있어도 보지 못해요.”

하륜의 말에 가온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그래. 우리는 차원의 문 때문에 움직일 수 없잖아? 천계가 걱정되어도 여기를 지켜야 하니. 너도 이유 없이 오지는 않았을 거야.”


맞는 말이야. 이러다가 할 일을 다 못하고 그믐이 끝나버리면 안 되지.


“알았어요. 내가 봐야 할 것을 똑바로 보기.”

나는 주먹을 꼭 쥐었다.


가온이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심지아가 마물을 조사한다고 했는데···?”


“마물?”

“응. 본 적은 없지만, 수집가들이 하는 얘기는 들었대.”


“뭐라고 했는데?”

“으음···.”

가온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두 손을 들었다.


“모르겠어. 하지만, 노트가 있다고 했어. 자기 팀원이 갖고 있다고.”

“유연한씨요?”

하륜이 피식 웃었다.


“맞아요. 유연한. 가끔 차 마시러 왔어. 작가 노트라면 아무도 의심 안 한다고 했어. 판타지 소설 아이디어로 여길 거라면서.”


“유연한?”

심지아가 부탁한 그 사람이다. 그에게도 인사를 전해달라고 했다.


“그 사람 지금 어디 있어?”

“그건···. 아, 은서님이 알 거야. 이귀들에게 안내해달라고 하면 돼.”


나토두가 들고 있던 주스 잔을 내려놓았다.

“인간세의 이귀라면 저도 볼 수 있어요.”


놀라서 나토두를 바라보았다. 뭐야? 인간세가 처음이 아니었어?


“우주를 떠돌 때 몇 번 들렀거든요. 이렇게 가까이에서는 처음이지만.”

나토두는 입가에 묻은 토마토를 닦았다. 벌써 샌드위치를 세 개나 먹어 치우다니.


가온이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어쩐지! 나토두, 너 기운도 좋고, 능력도 있어. 사빈아, 앞으로도 계속 데리고 다녀. 영감과 바람잡이가 없어도 날 수 있잖아?”


“그러네요. 다른 천마들과는 기운이 다르네요.”

하륜도 애정 어린 눈으로 나토두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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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그다음_각자의 목표 +2 23.09.15 58 3 10쪽
174 그다음_싸움 구경 23.09.15 58 3 12쪽
173 중천_소망단이라 이름하다 23.09.14 47 3 12쪽
172 중천_열린마을의 식구들 23.09.14 72 3 10쪽
171 중천_도우미 구하기 23.09.13 72 3 12쪽
170 중천_첫 번째 손님 23.09.13 55 3 12쪽
169 중천_임천사령 고마 사빈 +2 23.09.12 54 3 11쪽
168 천계_새로운 마고 23.09.12 53 3 12쪽
167 천계_암연층으로 +2 23.09.11 53 3 13쪽
166 천계_잃어버린 조각 23.09.11 77 3 12쪽
165 천계_오래된 사연 23.09.10 56 2 12쪽
164 천계_이안남존의 라온성 23.09.10 58 2 12쪽
163 천계_마고가 돌아오다 23.09.09 58 3 10쪽
162 천계_해날품곡의 함정 23.09.09 58 3 13쪽
161 천계_마음숲의 침입자 +2 23.09.08 68 3 11쪽
160 그믐_삼도천이 막히다 23.09.08 73 3 10쪽
159 그믐_다시 현재로 23.09.07 55 3 12쪽
158 그믐_도룡과의 혈투 23.09.07 54 3 12쪽
157 그믐_악마 미지의 정체 +2 23.09.06 55 3 12쪽
156 그믐_마물 도룡 23.09.06 50 3 12쪽
155 그믐_신례국 백슬곤아 +2 23.09.05 63 3 12쪽
154 그믐_백령성 지하보관실 23.09.05 54 3 11쪽
153 그믐_안개에 서린 무늬 +2 23.09.04 59 3 10쪽
152 그믐_마물의 단서 23.09.04 52 3 11쪽
» 그믐_시작된 미래 23.09.03 7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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