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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빛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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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연재수 :
1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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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16,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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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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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그믐_마물 도룡

DUMMY

산길로 뛰어올라 바나를 따라잡았다. 숲속에 거대한 진흙 괴물이 보였다.

‘저것이··· 마물 도룡?’


아름드리나무만큼이나 커다란 괴물은 황톳빛이 아니었다. 거무튀튀한 색이 섞여 뒤죽박죽인 데다 여기저기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마물 조각이 진흙에 기생하여 몸을 이룬 것이다.


가온이 천력으로 빛의 창을 만들어 던졌다.

마물 도룡은 반죽을 주무르듯 꿈틀대더니 몸 한가운데 구멍을 만들었다. 빛의 창은 구멍을 지나가 버렸다.


마림은 어디 있나 둘러보았다. 그는 정신을 잃고 진흙 괴물 뒤에 쓰러져있었다.


“왕, 주인님, 혼을 삼키려 했어라. 맑고 순수한 혼이 필요하다고 했어라.”

“일단 저 괴물부터 처리하자. 너는 가온의 오른쪽을 맡아. 내가 왼쪽을 맡을게.”


“왈! 알겠어라!”

바나는 왕왕 짖더니 가온의 오른쪽으로 뛰었다. 땅에 내려설 때는 커다란 황금 해태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나도 진흙 괴물에게 뛰어가며 외쳤다.

“아움!”


얼음칼 아움이 내 손에 들어왔다. 서늘하고 딱딱한 느낌이 손바닥에 닿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가온이 한 번 더 빛의 창을 던졌으나 이번에는 도룡이 몸을 쿨렁이며 창을 쳐냈다.

날아갔던 창이 되돌아와 가온 옆으로 떨어졌다. 빛의 창에 닿자 수풀이 까맣게 그을렸다.


도룡이 꿈틀대니 사람처럼 몸통이 생기고 머리와 팔다리가 솟아 나왔다.


‘천계의 것이군.’

걸쭉한 소리가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방해하지 마라. 신제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천계의 것은 용서하지 않겠다.’

도룡의 진흙 몸에서 긴 팔이 솟아 나왔다. 그 팔은 숲을 훑으며 나와 바나에게 달려들었다.


바나가 펄쩍 뛰어올라 진흙 덩어리를 물어뜯었다.

덩어리가 풀숲 위에 떨어졌지만 꾸물대며 원래 자리를 찾아 달라붙었다.


나도 진흙을 쳐내려고 아움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얼음칼 아움이 도룡을 향해 허공으로 떠올랐다. 나도 매달린 채 붕 떠올랐다.


아움은 마물의 공격을 피해 이리저리 휘돌며 진흙을 쳐냈지만, 나는 손잡이에 대롱대롱 매달려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렸다.


“어! 어. 잠깐만!”

힘껏 소리쳤지만, 아움은 괴물을 상대하느라 잠시도 쉬지 않았다.


‘검술을 미리 배우는 건데···.’

사람이나 피천귀를 대적할 때는 내가 아움을 쓰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달라졌다.

아움이 내 손을 쓰는 것이다. 상대가 강하니 아움도 강하게 나섰다.


진흙 덩어리는 잘렸다가 스멀스멀 다시 붙었다.


“안 되겠어.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가온이 외쳤다.


“다른 방법?”

아움은 내가 쓰기에는 아직 무리였다. 높쌘과 소슬?


심지아가 알려준 주문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빨리 생각해. 빨리.’


마음이 다급하니 한 글자도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도룡이 크크크 웃음소리를 냈다. 덩어리가 쿨럭거리자 껍질에서 마른 알갱이가 떨어졌다.


‘넌 누구냐? 누군데 나의 기운을 담고 있지?’

도룡이 내게로 흐느적흐느적 다가왔다.


“조심해!”

가온이 소리쳤다.


나는 얼음칼을 꽉 잡고 마물 도룡을 노려보았다.

‘내가 마물의 기운을 담고 있다고?’


진흙 덩어리가 구부정하게 앞으로 숙였다.

거대한 덩어리가 스멀스멀 세 개로 나뉘었다. 세 덩어리가 나와 가온, 바나를 향해 다가왔다.


가온은 양손에 천력을 모으기 시작했고, 바나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크르릉거렸다.


내 앞으로도 덩어리 하나가 다가왔다.

‘넌 내 기운으로 목숨을 부지했구나. 어디 보자···.’


도룡이 내 기운을 읽으며 조금씩 가까워졌다.

‘중간자···?’


크륵크륵 거품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웃음소리 같았다.

‘그래···. 그때 살아남았구나. 중간자가 되어서. 내 기운을 가져갔어.’


나는 얼음칼을 움켜잡고 도룡을 노려보았다.

“마물 따위는 모른다. 날려버리겠어!”


‘크하하. 네가 나를?’

진흙 덩어리가 크르릉 크게 흔들렸다.


‘사람은 참 불쌍하구나. 자신이 어떤지도 모르고. 크크.’

음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천인의 기운으로 중간자가 된 줄 아느냐? 내가 없었다면 넌 아무것도 아니다. 이미 죽은 목숨이지.’

도룡이 나무 뒤에 멈춰 섰다. 가만히 내 기운을 훑기 시작했다.


‘그래. 천인이 있긴 있었구나. 누군가가 혼 조각을 나눠줬고. 흐흥. 또 다른 기운도 받았구나. 뭔지 몰라도 그것도 꽤 힘이 좋구나.’

도룡은 쓰읍 소리를 냈다.


‘내 기운을 찾아야겠다. 좋은 기운을 모두 내 것으로 삼아야지.’

진흙 덩어리가 다시 움직였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화가 치밀었다.

“네가 요마전쟁을 일으켰구나!”


‘요마? 그래, 그렇게 부르나? 사람이 붙인 이름이니 뭐라든 상관없다.’

도룡의 몸이 순식간에 넓게 퍼졌다. 얇고 넓은 막이 되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소중한 이들이 다 죽었겠지. 피를 흘리며 신음하며···, 고통 속에서 죽어갔겠지.’

마물의 얇은 진흙 막이 출렁거렸다.


요마전쟁에서 죽어가던 마을 사람들이 떠오르자 숨이 가빠졌다. 몸이 뜨거워졌다.

나는 진흙 막을 노려보았다.


잡목림 건너, 가온이 소리쳤다.

“사빈, 넘어가지 마! 일부러 그러는 거야! 화나게 하려고. 네 분노를 빨아들이려는 거야!”


그러나 가온은 곧 진흙 덩어리의 공격을 받고 저만치 굴러갔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또 다른 빛의 창을 만들었다.


‘맞아. 화를 내면 마물의 힘이 더 커질 뿐이야.’

나는 가슴 가득 숨을 들이마셨다.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지만, 애써 털어버렸다.


‘오, 그래. 네 어머니도 거기서 죽었구나. 저런 쯧쯧.’

도룡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봐, 날 이대로 두면 되겠어? 네 어머니를 죽이고, 사람들을 죽이고 마을과 들판을 피로 물들였는데? 평온하던 너의 인생을 망쳤는데?’

크르릉 진흙막이 떨리며 기괴한 웃음소리가 울렸다.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팔다리도 부르르 떨렸다.

“가만두지 않겠어!”


나는 아움을 움켜쥐고 도룡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하하하!’

도룡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찢을 듯 날카롭게 귀를 때렸다.


‘그래, 이거야. 이 맛이지. 좋구나. 이런 순수한 분노.’

진흙막이 두꺼워졌다. 두께만큼이나 괴이한 기운이 강해졌다.


막이 꾸물거리고 출렁거리니 길고 날카로운 가시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것들은 곧장 내게로 달려들었다.


아움을 휘둘렀지만, 화살촉 같은 가시가 살을 찢고 지나갔다. 몇 개는 허벅지와 팔에 박혔다. 온몸이 찢어질 듯 아팠다.


피가 흐르고 통증이 느껴지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물에 조종당하다니! 난 마림을 구하기 위해 왔어.’


아움을 마음대로 쓸 수 없으니 높쌘을 부르자.

소망을 가진 사람이 없으니 마고의 술법을 쓸 수 없지만, 포박술 정도는 할 수 있어.


“높쌘!”

내가 부르자 숨결을 타고 허공에서 지팡이가 튀어나왔다. 심지아의 주술이 담긴 지팡이는 자신이 할 일을 알고 있었다.


마물 도룡이 진흙 장막을 넓게 펼치며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그것은 곧장 내게로 덤벼들었다.


얼음칼 아움이 쉬이잉 바람 소리를 냈다. 높쌘의 기운이 아움의 기운과 이어지면서 투명한 막을 만들었다.


도룡이 뛰어들자 투명한 막이 그를 받아내며 불룩해졌다.


아움과 높쌘이 옆으로 비켜섰다가 곧추서자 투명한 막이 앞으로 튕겨 나갔다.

진흙 덩어리 도룡이 던져졌고, 그가 내뿜었던 괴이한 기운이 그대로 도룡에게 돌아갔다.


‘꽤애액!’

비명이 들렸다.

자신의 기운에 공격당하자 진흙 덩어리가 와르르 부스러졌다. 순식간에 마른 가루가 되었다.


“소슬!”

나는 놓치지 않고 유리공을 불렀다. 주문을 모르지만, 내 마음은 간절했다.

“삼켜라!”


소슬은 바램을 알아차렸다. 수십 개의 손이 줄기처럼 빠져나와 마물의 기운을 빨아들였다.


가온과 바나를 상대하던 진흙 덩어리가 저만치 물러났다.

‘이런, 방심했구나.’


도룡은 쓰러진 마림을 끌어올렸다.

‘흥! 마림의 혼을 삼키면 너 따위는 한 번에 보낼 수 있어.’


다음 순간, 도룡도, 마림도 보이지 않았다.


*


눈을 뜨니 슬아가 내 상처에 약을 바르고 있었다. 그 옆에서 가온이 초조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정신이 들어?”

“응.”

“그런 비열한 방법을 쓰다니. 역시 마물이야.”

“여기는···.”

“슬아의 집.”


나는 백슬곤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혼빛이 아름답고 맑아 보는 나도 마음이 상쾌해졌다. 이렇게 다치지만 않았어도 더 기뻤을 텐데.


“천사님들이시죠?”

슬아가 나와 가온을 돌아보았다. 우리를 알고 있나?


“저 여섯 살 때 오셨잖아요? 천사님들이 마른 우물에서 물이 나오게 해주셨죠?”

“그걸··· 기억하고 있어?”


“그럼요. 마을을 살려주신 수호천사님인데···. 그때 모습이랑 똑같아요.”

“저런, 그거 우리 비밀인데?”

가온이 눈을 찡긋거렸다.


“가끔 생각났거든요. 뵙고 싶었어요. 다시 만나서 기뻐요.”

“우리가 인연은 인연인가 보다.”

가온이 생글거리며 슬아의 팔을 두드렸다.


나는 가온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나 여기 어떻게 왔어?”

“나토두가 데리러 왔더라.”

“작은 악마는 어쩌고?”


가온이 턱짓으로 별채를 가리켰다.

“대롱대롱 매달려있지.”


“진짜 악마예요?”

슬아가 놀라서 물었다.


“그냥 별명이 그렇다는 거야. 좀도둑이라 그냥 두면 도망갈까 봐.”

가온은 별일 아니라며 싱긋 웃었다.


“바나는?”

“밥 먹고 있어. 그 애는 어디 내놔도 굶어 죽지 않을 거야.”

“넌 안 다쳤어? 괜찮아?”

“나야 멀쩡하지. 그런데···.”


가온이 말을 끊었다. 슬아를 곁눈질하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슬아가 나가면 얘기하겠다는 뜻이다.


슬아는 피 묻은 천을 대야에 담고 일어났다.

“식사 준비할게요. 절대로 움직이지 마세요.”


발소리가 멀어지자 가온은 내게 가까이 다가앉았다.

“마물이 마림을 삼켰다고 말 못 했어. 어쨌든 찾아야 해.”


“응. 그 마물, 꼭 소멸시키겠어.”

주먹을 쥐니, 가시에 찔린 상처가 욱신거렸다. 얼굴을 찡그리자 가온이 내 이마에 손을 얹었다.


“가만히 있어. 조금 있다가 천력으로 치료해줄 테니까.”

“진짜 마물이 있을 줄은 몰랐어.”


“만만치 않아. 천력이 통하지 않더라고.”

가온은 이불을 가지런히 덮어주었다.


졸음이 밀려와 눈을 감았다.

‘어떻게 해야 마물을 소멸시키지···.’


꿈결처럼 눈앞에 예슬이 보였다. 반계의 대나무숲과 움막도 보였다.


‘마물은 정령이나 영혼을 악마로 만든대요. 사람의 욕망이 클수록 마물도 힘이 강해지고요. 겉으로는 귀사님과 비슷하대요.’

‘백 마리가 넘는대요. 썩은 나무에 깃들거나, 흙탕물 속에 있어서 아무도 못 찾는대요.’


아움과 높쌘이 만든 투명한 막이 떠올랐다. 다음에도 그 방법이 통할까?

어떻게 마림을 구해내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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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중천_첫 번째 손님 23.09.13 55 3 12쪽
169 중천_임천사령 고마 사빈 +2 23.09.12 54 3 11쪽
168 천계_새로운 마고 23.09.12 53 3 12쪽
167 천계_암연층으로 +2 23.09.11 53 3 13쪽
166 천계_잃어버린 조각 23.09.11 77 3 12쪽
165 천계_오래된 사연 23.09.10 56 2 12쪽
164 천계_이안남존의 라온성 23.09.10 58 2 12쪽
163 천계_마고가 돌아오다 23.09.09 58 3 10쪽
162 천계_해날품곡의 함정 23.09.09 58 3 13쪽
161 천계_마음숲의 침입자 +2 23.09.08 68 3 11쪽
160 그믐_삼도천이 막히다 23.09.08 73 3 10쪽
159 그믐_다시 현재로 23.09.07 55 3 12쪽
158 그믐_도룡과의 혈투 23.09.07 54 3 12쪽
157 그믐_악마 미지의 정체 +2 23.09.06 55 3 12쪽
» 그믐_마물 도룡 23.09.06 51 3 12쪽
155 그믐_신례국 백슬곤아 +2 23.09.05 63 3 12쪽
154 그믐_백령성 지하보관실 23.09.05 54 3 11쪽
153 그믐_안개에 서린 무늬 +2 23.09.04 59 3 10쪽
152 그믐_마물의 단서 23.09.04 52 3 11쪽
151 그믐_시작된 미래 23.09.03 7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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