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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아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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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러아님
작품등록일 :
2018.11.1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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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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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1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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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SNL - 52

DUMMY

구출작전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윤슬은 후방에서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윤슬의 체질은 평범한 이들과 달라서 기를 쌓는 것(畜氣)이 사실상 불가능한 대신, 자신을 통로로 이용해 기의 흐름을 유도하는 것이 가능했다. 강력한 충격파에 직격하고도 큰 피해를 입지 않은 이유였다.

이러한 특이체질은 충격파로 인해 중태에 빠진 이들에게 도움이 됐다. 흔들린 체내의 기운을 외부로 배출시킴으로써, 내상 자체를 치료하지는 못해도 내상을 악화시키는 요인을 제거해 자가 치유가 활성화되도록 도울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한눈에도 어려보이는 윤슬이 미덥지 못해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윤슬의 손길이 닿은 정화자의 상태가 완화되는 것을 보고 사방에서 윤슬을 찾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사이비 기치료와 다를 게 없지만, 전문 의료인도 어쩌지 못한 정화자들의 증세를 실제로 호전시키고 있으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특이체질을 가지고 있다 해도 타인의 체내에 있는 기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속도는 더뎠다. 내상으로 사망한 정화자는 이미 10명 가까이 되었고, 사경을 헤매는 정화자도 20명이나 되었다. 윤슬이 한 사람의 정화자를 돌보는 동안 둘 셋의 정화자들이 목숨을 잃고 있었다.

윤슬이 생존한 정화자 전원에게 응급처치를 끝낼 무렵, 가장 먼저 처치를 받은 전대용이 의식을 되찾았다. 전대용은 깨어나자마자 윤슬을 찾았다. 머잖아 윤슬을 찾아낸 전대용은 안도감에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무사했구나! 정말, 정말 다행이야. 깨어나 보니 온통 아수라장이라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 깨어나셨군요! 저는 괜찮아요. 오빠야말로 좀 어때요? 내상이 워낙 심해서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단전이 엉망진창이야. 남아있는 내공도 거의 없군.”

“죄송해요. 상태가 악화되는 걸 막기 위해 제가 단전을 비웠어요.”

“오히려 그 덕분에 살았어. 그보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설명해줄 수 있니?”


기절해있었던 탓에 전대용은 정보가 부족했다.


“2차 위상충돌이에요.”

“2차 위상충돌? 제길, 그 재난이 또 발생할 줄이야······.”

“오빠도 혹시 우로보로스의 메시지를 받지 못했나요?”

“맞아. 정화자들이 갑자기 당혹해하더라고.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는 순간 내공이 역류해 정신을 잃었지.”


윤슬은 전대용이 정신을 잃은 뒤 있었던 일들을 간단히 설명했다. 정화자들의 무력화, 균열의 대규모 발생, 괴물들의 습격, 그리고 후퇴를 위해 홀로 고립된 최수영까지.

모든 상황을 전해들은 전대용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래서 최수영을 구하려고 신공석 혼자 길을 뚫고 있다는 거야?”

“뒤에서 군인들이 지원을 해주고 있긴 하지만······”

“얼마나 됐지?”

“5분도 안됐어요.”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전대용이 자신의 칼을 찾았다.


“칼은 왜······? 설마······”

“괴물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야.”

“안 돼요! 오빤 다쳤잖아요!”

“그건 신공석도 마찬가지야.”

“달라요!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내상이라고요!”


전대용은 자신의 뜻을 굽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윤슬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슬아, 잘 들어. 내가 여기서 죽치고 있어봤자 나아지는 건 없어. 이럴 땐 말이야,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야. 우린 제3자경단이야. 여태 그렇게 해왔잖니. 이번에도 그렇게 하는 거야.”


자경단에 거창한 대의명분 따위는 없다. ‘왜?’라고 스스로 묻는다면 ‘해야 하니까’ 그리고 ‘할 수 있으니까’라고 대답한다. 그것이 수천 년이나 이어져온 자경단의 유일한 원리였다.


윤슬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녀 스스로 자경단원이기에 자경단원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걸 알기에 말린 것이다. 이대로는 전대용이 목숨을 잃을 게 너무나도 확실하니까.

그러나 윤슬의 눈물도 전대용을 막지 못했다.


전대용은 결국 신공석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몸 상태가 말이 아니라는 건 본인도 인지하고 있는지 적극적으로 앞에 나서기보다는 신공석의 등을 지켜주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군인들의 엄호사격과 전대용의 지원에 힘입어 신공석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수영아!”


신공석의 외침이 닿자 최수영이 자신을 보호하던 구체를 해제시켰다. 구체를 폭발하듯 비산시켰기에 수많은 괴물이 구체파편에 나가떨어졌다. 최수영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신공석에게 합류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귀환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최수영이 신공석에게 합류하면서 둘에게 각각 분산됐던 공세가 한곳에 집중되고 말았다. 별관까지 불과 수십 미터의 거리는 수십 킬로미터보다 멀게 느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탄약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군인들의 엄호사격이 힘을 잃었다. 보유한 탄이 많지 않아서 조준사격을 해야 하는데, 일반인들이 대신 총을 쥐면서 탄낭비가 심해진 탓이었다. 그러면서 반대쪽 출입구를 담당하던 한주영도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신공석 일행은 최수영의 염력으로 길을 억지로 비집어 열며 별관에 합류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구출계획에 나섰던 이들이 모두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고, 복귀한 후에도 쉴 틈은 없었다.

전대용은 바로 한주영이 홀로 막고 있던 북쪽 출입구를 도우러 갔고, 신공석과 최수영은 본인들의 귀환루트인 남쪽 출입구를 맡았다.


이젠 힘에 부쳐도 밀려날 곳이 없었다. 최전선으로부터 고작 십여 미터 뒤에 비무장 민간인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병목구간인 출입구마저 뚫리면 별관 내부로 괴물들이 쏟아져 들어오게 된다. 좋든 싫든 사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윤슬은 1차 위상충돌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걸 느꼈다.

당시 윤슬은 줄곧 기절해있었던 탓에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사태가 종결된 후에 깨어난 그녀에게 지인들의 죽음이 전해졌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지금까지도 깊은 흉터로 남아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까.

그녀의 장기인 부적술은 실체를 가진 괴물에겐 큰 효과가 없었다. 또 다른 장기인 신내림조차도 제대로 된 준비 없이 타인에게 내려봤자 도움이 되기는 힘들었다.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군인들이 하나둘 목숨을 잃고, 정화자들과 전대용은 언제 지쳐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아보였다. 시민들은 방어선이 서서히 무너지고 괴물이 다가오자 공황상태에 빠졌다.


최후가 가까워진 것 같았다. 하지만 결코 여기서 끝나지 않으리라. 윤슬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윤슬이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목이 자연히 윤슬에게 모였다. 사투를 벌이던 최수영이 윤슬을 발견한 건 그보다 조금 늦게였다.


“앞으로 나오지 마! 위험하니 뒤에 숨어 있어!” 최수영이 소리쳤다.


최수영의 눈에 윤슬은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는 어린 여자애였다.

윤슬이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도울게요.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누구야? 정화자?”

“아뇨. 제3자경단입니다.”

“자경단? 전대용 씨와 같은······?”

“그래요. 그러니 사람들을 뒤로 물려주세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최수영이 윤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뒤늦게 윤슬을 발견한 전대용이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 채고 말리려 손을 뻗었지만 닿기엔 너무 멀었다.


윤슬이 엄지손가락에 피를 내어 이마 한가운데에 찍었다.

이마의 붉은 원은 제3의 눈, 영안을 의미했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또 다른 눈이자 혼의 통로였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외부로부터 닫힌 존재다. 영매는 일반인보다 조금 더 열린 존재이긴 하나, 여전히 닫힌 존재라는 건 다르지 않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아무런 대비 없이 외부의 기운에 노출되는 것은 우주복 없이 지구 밖으로 나가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열린 존재가 되기 위해 영매는 자신만의 영안을 단련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의지대로 눈을 여는 것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그 어떤 영매도 영안을 완전히 개안하지 않는다. 아무리 단련했다 할지라도 완전개안에 따르는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비유를 하자면 영매는 수도꼭지와 같았다. 수도꼭지 자체로는 아무런 힘도 없이, 펌프가 밀어내는 물을 방출할 뿐이다. 오직 물의 세기를 조절하는 것만이 가능하다.

완전개안의 위험은 수도꼭지를 끝까지 돌리는 것과 같았다. 한 번에 많은 물을 강한 수압으로 뿜어낼 수 있지만 물을 끄려면 수도꼭지를 한참이나 돌려야 한다, 자칫하면 물이 넘쳐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들거나 수도꼭지 자체가 파손될 수도 있었다.


위험을 동반하는 대신 완전개안은 부분개안과 차원이 다른 힘을 발휘한다. 부분개안은 약간의 신통력을 부리거가 타인에게 신내림을 내리는 것이 전부지만, 완전개안은 자신을 매개로 영령을 현계에 현현하는 것이 가능했다.

어떤 령이 현현되는지는 운에 달렸다. 간절한 기원으로 자신과 파장이 맞는 령을 호출할 뿐, 원하는 령을 마음대로 선택하는 것은 아니었다. 선한 모습으로 위장한 악한 령일 수도 있고, 악하지 않더라도 인간을 돕는 것에 관심이 없는 령일 수도 있다.

파장이 맞는다는 건 기본적으로 비슷한 성향을 가졌다는 의미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강하면서도 사악한 령이 영안을 통해 들어오면 영매는 마음대로 영안을 닫지도 못한 채 살아있는 꼭두각시가 될 수도 있었다.

지금 윤슬이 하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영안을 완전히 연 윤슬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령의 존재를 느꼈다.

강한 령과 약한 령, 선한 령과 악한 령, 하늘의 별만큼 수많은 령이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윤슬은 기다리고 기다렸다. 어떤 령이 접촉해올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윤슬의 바람을 담은 영적 파장이 퍼지면서 그녀와 뜻하는 바가 일치하는 령이 찾아오길 기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령이 윤슬의 영안으로 들어왔다.


순간 윤슬로부터 강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기운은 주변을 휘몰아치다가 윤슬의 주위로 모여 불투명한 형상을 이루었다. 마치 물로 이루어진 용(龍)같은 형상이 윤슬의 주변을 꿈틀거렸다.

영안에만 집중하기 위해 감았던 두 눈을 뜨자 지금까지 없었던 한기가 느껴졌다. 윤슬의 숨결은 차가운 안개로 변했고 발치에는 성에가 꼈다. 용이 꿈틀거릴 때마다 살을 에는 삭풍이 불었다.


“이, 이건?”

“으읏, 갑자기 추위가······.”


윤슬과 가까이에 있던 이들이 갑작스런 한기에 놀라 거리를 벌렸다.


─본좌의 휘는 법민(法敏)이라 한다. 연자는 어찌하여 금주(禁呪)를 열었는가? 본좌가 아닌 악귀가 신체(神體)에 깃들었다면 그대는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꼴을 면치 못했으리라.


령의 거대한 존재감 때문에 념이 전해질 때마다 골이 울렸다. 윤슬은 울렁거리는 속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답변했다.


‘외도의 마물들이 인세에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이 고통 받고 있으니 어찌 두고만 보겠습니까.’

─본좌가 그대와 이어진 것은 필연이로구나. 본좌는 겨레의 보존을 위해 사후의 영락을 포기한 바 있노라. 그러니 어찌 연자의 의기를 외면하겠는가.

‘공의 존대성명을 알고 싶습니다.’

─후인들은 본좌를 문무(文武)라 일컬으나 인세에서의 허명일 뿐. 그저 동쪽 바다의 거암룡(居巖龍)이라 칭하면 되느니라.

‘그렇다면 거암룡이시여, 마물들을 물리쳐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윤허하노라.


영적인 대화가 끝나자 윤슬의 주변을 맴돌던 거암룡이 괴물들 사이로 스치듯 파고들었다.

거암룡은 한주영을 공격하는 크림슨 빈폴을 휘감았다. 위기감을 느낀 크림슨 빈폴이 몽둥이로 거암룡을 후려쳤지만 말 그대로 칼로 물 베기였다.


─얼어라.


크림슨 빈폴은 한순간에 얼음기둥이 됐고, 소형 괴물은 거암룡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만으로 얼어 죽었다. 그러나 지금의 힘으로도 끝없이 밀려오는 괴물들을 몰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윤슬의 영안으로 막대한 수기(水氣)가 통과했다. 거암룡은 더욱 거대해져 매섭게 날뛰기 시작했다. 무차별적으로 한기를 내뿜는 것 같으면서도 피해를 입는 것은 오직 괴물뿐이고 사람들은 그저 추위를 느끼는 정도가 다였다.


거암룡이 시간을 버는 동안 윤슬의 응급처치 덕분에 몇몇 정화자가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 중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이 전선에 동참해 괴물과 맞서 싸웠다.


그러나 모든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거암룡은 괴물을 물리치는 데 충분한 힘을 가졌으나, 윤슬은 그 힘을 감당할 만큼 강하지 못했다. 거암룡이 워낙 강대한 탓에 윤슬에게 걸리는 부하도 컸다.

거암룡이 힘을 쓸 때마다 코피가 줄줄 흘렸고, 입에서 찝찌르한 피 맛이 느껴지기도 했다. 거암룡의 한기는 윤슬에게도 영향을 끼쳐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외부의 기운이 몸을 차게 하는 것이면 옷을 여미고 웅크리면 될 일이지만, 윤슬은 내부로부터 한기에 노출되는 중이었다. 전대용이 윤슬의 등에 손을 대고 얼마 안되는 내공으로 윤슬을 보호해주지 않았으면 진즉 얼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슬슬 한계였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거암룡이 괴물 수십 마리를 죽였지만 아직도 죽은 괴물보다 살아있는 괴물이 더 많았다.



‘아직, 아직이야······. 더 버틸 수 있어. 거암룡이시여······ 부탁드립니다!’


윤슬은 오히려 거암룡이 더 날뛰도록 부추겼다. 거대한 힘이 윤슬의 몸을 통과하면서, 몸속이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이 느껴졌다. 수도꼭지의 크기는 변함이 없는데 더 많은 물을 뽑아내려면 유속이 빨라져야한다. 그만큼 수도꼭지에 걸리는 부하도 커진다. 입과 코는 물론, 귀와 눈에서도 핏물이 흘렀고, 이젠 서있기도 벅찼다


마침내 거암룡이 본래의 형태를 완전히 드러냈다. 길이 수백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몸체가 하늘로 떠올라 몸을 틀었다. 거암룡의 몸체 주위로 검은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이윽고 천둥벼락과 함께 비와 우박이 내렸다.

거대한 우박은 괴물을 때려죽였고, 우박을 면했더라도 비를 맞은 괴물은 이어지는 삭풍에 얼어붙었다. 담장을 넘어 들어온 괴물의 반수가 그렇게 죽었다.


“마, 말도 안 돼.”


최수영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거암룡의 위력은 초인인 정화자가 보기에도 터무니없었다. 불이나 얼음을 다루는 정화자는 정전위에도 있지만 아직까지 그들의 능력으로는 이렇게 대규모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스스로 제3자경단이라고 밝히긴 했지만 새삼스레 윤슬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최수영이었다.

기상변화로 괴물들의 떼죽음을 일으킨 거암룡이 숨결을 내뿜었다. 극도의 한기가 응축된 거암룡의 숨결은 별관 출입구를 두터운 얼음벽으로 막아버렸다.


─안타깝게도 여기까지로구나, 본좌의 어린 후예여. 더 이상 힘을 썼다간 그대가 무사하지 못하리라.


거암룡이 기운이 사라졌다. 스스로 힘을 거두고 물러난 것이다.

너무 늦기 전에 사라져준 덕분에 윤슬은 마지막 남은 힘으로 영안을 닫을 수 있었다.

힘을 다한 윤슬은 휘청거리다가 쓰러졌다. 바로 옆에 붙어있던 전대용이 쓰러지는 윤슬을 받았다.

최수영까지 달려와 윤슬의 상태를 살폈다. 비록 오늘 처음 본 사이지만 함께 고생하며 위기를 넘긴 전우였다. 어중간한 관계의 지인보다 더 친밀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전대용에게 안긴 윤슬이 시커먼 피를 왈칵 게워냈다. 몸에서 막 뱉어낸 피 치고는 너무 차가웠다. 빈혈에 저체온증이 겹치면서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쿵, 쿵, 쿵, 괴물들이 출입구를 막은 얼음벽을 부수려고 두드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평범한 얼음이 아닌지라 쉽게 부서지진 않았지만 충분한 만큼의 시간을 벌지는 못했다.

마침내 입구가 뚫렸을 때 괴물들을 막아선 건 만신창이 상태의 정화자 아홉 명이었다.


“조금만······ 기다려. 올 거야······ 도와줄 사람이······.”


전대용과 최수영에게 보호를 받고 있는 윤슬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온갖 소음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그녀의 힘없는 목소리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우, 우린 이제 죽었어······!”

“아아악! 사, 살려줘!”


출입구 저지선이 무너지고 괴물들이 별관 내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별관 내부에 갇힌 수백 명의 사람들에겐 도망칠 곳이 없었다. 소형 괴물 몇 마리가 정화자들의 방어선을 뛰어넘어 민간인들이 모여 있는 곳에 착지했다. 탄이 다 떨어진 군인들이 착검을 해서 맞섰지만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준공식이 한창 진행 중일 때 장내 인원은 2,000명이 넘었다. 위상충돌이 시작되면서 1/3가량은 식장 밖으로 도망쳤고, 첫 균열과 함께 남은 인원은 절반으로 줄었다. 그 뒤로 계속해서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결국 살아남은 이는 백여 명도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희망을 포기했다,


그때 폭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별관 외부에서 괴물들의 괴성이 들려왔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마침내 군대가 도착했나? 사람들의 눈빛에 희망이 감돌았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별관 출입구에 모습을 드러낸 이는 단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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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SNL - 56 19.07.04 67 1 16쪽
56 SNL - 55 19.06.28 76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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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SNL - 53 19.06.16 99 1 14쪽
» SNL - 52 19.06.10 78 1 18쪽
52 SNL - 51 19.06.04 62 1 11쪽
51 SNL - 50 19.05.30 109 1 12쪽
50 SNL - 49 19.05.24 88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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