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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아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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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러아님
작품등록일 :
2018.11.17 15:37
최근연재일 :
2019.07.1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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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06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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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SNL - 46

DUMMY

“작작하고 이제 좀 쓰러져라!”


재영은 강상욱의 머리에 기를 불어넣으며 소리쳤다. 뇌의 일부를 일시적으로 셧다운 시켜서 상대를 기절시키거나 마비시키는 방법으로, 까딱하면 뇌를 튀겨버릴 수 있는 위험성이 있었다. 하지만 재영은 거리낌 없었다. 연쇄강력범죄자, 그것도 좀비처럼 계속 다시 일어나는 상대에게 일일이 사정을 봐줄 생각은 없었다.


물론 강상욱의 속사정을 알면 일말의 동정심은 생긴다.

윤슬이 준 정보에 의하면, 15년 가까이 경찰공무원으로 일한 강상욱은 근무 중 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그로인해 은퇴를 하고, 그 뒤로 몇 년 동안 술독에 빠져 지냈다.

거기까진 특별할 것 없는, 수많은 불운한 이야기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던 강상욱은 정화자로 각성하면서 불구였던 몸을 회복하고 사이코패스 범죄자로 화했다.


정의감에 불탔던 그가 어째서 이렇게 변모했는지는 알 수 없다. 사회에 배신감을 느꼈을 수도 있고, 평생 숨기고 있던 본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행동과 결과가 너무 명확해서 이유 따윈 중요하지 않을 정도였다. 이유가 뭐가 됐건 잔혹한 범죄자라는 점은 바뀌는 게 없기에 재영의 손속에 자비란 없었다.


처음엔 단순히 맷집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반적이라면 완벽히 무력화되었을 상황에서도 강상욱은 다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재영은 새로운 가능성을 떠올렸다. 이미 하반신 마비에서 회복된 예가 있다. 그리고 지금, 수차례 쓰러트려도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면 강상욱에게 재생 관련 능력이 있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몇 번의 공격을 추가로 가한 후에 재영은 가능성을 확신으로 바꿨다.


재생능력의 수준에 따라 무력화시키기 위해 어느 정도로 타격을 가해야 하는지는 천차만별이다. 그렇기에 재영은 적절한 선을 찾기 위해 힘을 조금씩 올리며 번거로운 작업을 해야만 했다. 결국 생각보다 훨씬 과격하게 다져놓고서야 강상욱은 저항을 멈췄다.


그럼에도 재영은 살짝 놀라는 중이었다. 꽤 심각한 부상을 입혔기에 이쯤 되면 신체의 운동기능이 대부분 멈출 거라 생각했는데, 강상욱은 아직도 정신을 잃지 않고 조금씩 꿈지럭거리고 있었다.

재생속도는 울버린 같은 SF영화의 초능력자들에 비하면 확연히 느리지만, 이 상태라면 삼십 분 안에 모든 신체기능을 복구할 것 같았다.


“이 지경이 돼서도 이런 회복력이라니. 징글징글하구만.”


재영은 강상욱의 머리에 주입하는 기의 양을 늘렸다. 어지간한 방법이 먹히지 않자 강경책을 실시한 것이다. 주입되는 기의 양과 함께 고통도 늘었는지 강상욱이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악!”


그제 서야 강상욱은 정신을 잃었다.


“후, 귀찮게 하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다사다난한 과정이었다. 정화자이니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이상할 건 없지만 그게 하필이면 재생능력이어서 일이 복잡해졌다. 차라리 공격 계통의 능력이었으면 훨씬 쉽게 처리했을 것이다.

가장 난처했을 때는 미행 도중 강상욱이 갑자기 눈치 챈 것 같은 행동을 했을 때였다. 이땐 산전수전 다 겪은 재영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재영이 판단했을 때, 강상욱의 실력으로 미행을 눈치 챌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재영은 자신이 판단을 잘못 내린 건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준급의 탐지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강상욱의 실력으로는 작정하고 은신한 재영을 결코 알아챌 수 없기 때문이다.


재영은 보다 조심스럽게 미행을 계속했다. 그러면서 강상욱이 자신의 미행을 눈치 챈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눈치 챈 것 같은 행동을 한 이유는 무얼까? 재영은 혹시 다른 미행자가 있나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재영의 기감으로도 수상한 인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없어서 재영은 강상욱이 원체 미친놈이다보니 그랬나보다 하고 넘어갔다. 정상인을 자처하는 재영이 또라이 범죄자의 심리를 완전히 파악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추측은 경찰의 추적 탓에 강박증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재영은 강상욱을 포박한 뒤 강상욱에게 납치된 남녀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마취 때문에 해롱거리는 와중에도 아직은 정신줄을 유지하고 있었다. 재갈만 물려있을 뿐 압박된 부위가 썩는 걸 스스로 볼 수 있도록 안대는 벗겨져있었기에 그들은 재영과 강상욱의 싸움을 지켜본 목격자이기도 했다.


그들은 사정없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발가벗은 상태에서 담요 한 장 가지고는 추위를 제대로 막기 힘들뿐더러, 딱 봐도 평범한 인간이 아닌 재영에게 두려움을 느낀 탓이었다.

재영이 강상욱을 제압한 걸 봤으므로 도와주러 온 사람이라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음에도,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터라 그들은 제대로 된 사리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재영의 독특한 차림새도 그들의 공포심에 한몫 했다.

재영은 마고의 환상으로 그들을 안심시키는 한편, 기억을 덧씌워 이번 사건이 정화자와 관계되어있다는 것을 은폐했다.

마지막으로 그들을 잠재운 뒤 포박과 낚싯줄을 풀고 옷을 입혔다. 깨어나면 낚싯줄 때문에 생긴 피멍을 제외하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끄으으윽······”


강상욱의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작 몇 분 만에 정신을 차린 것이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강상욱은 끔찍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는데, 전신에 복합골절을 당한 상태에서 밧줄로 몸을 꽁꽁 묶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벌써 정신을 차렸다고?’


재영은 한편으로는 감탄하면서 강상욱에게 다가갔다. 그는 황망한 시선으로 눈알을 굴리다가 재영을 본 뒤로는 분노를 담아 노려보기 시작했다.


“크으윽, 너는 누구냐!”

“못된 놈 잡으러 온 정의의 사도지.”


재영은 땅바닥에 비비고 있는 강상욱의 얼굴 앞에서 신발코를 까딱거리며 한껏 빈정거렸다.


“그런 놈이······ 경찰을 공격해?”

“경찰도 경찰 나름이지. 넌 범죄자잖아.”

“무슨 소리냐, 내가 범죄자라니······?”

“흐음, 이 상황에서 혐의를 부인한다고?”

“자, 잠깐, 그보다 방 형사는 어떻게 했나! 어째서 나 혼자만 있는 거지?”

“방 형사라니, 그게 누구?”

“나랑 같이 있던 젊은 형사 말이다!”


재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미행하면서 쭉 지켜본 바 강상욱은 줄곧 혼자였다. 윤슬이 준 자료파일에도 그런 인물은 없었다.


“무슨 헛소리야. 넌 계속 혼자였어.”

“크윽, 그럴 리가! 나를 미행했다면 알고 있을 거 아닌가!”

“그러니까 하는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는 혼자였단 말이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눈빛을 통해 서로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더 큰 혼란이 생겼다. 특히나 강상욱은 정신적 혼란이 육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호흡이 가빠지면서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묶여있는 까닭에 제자리에서 꿈틀거리는 것밖에 할 수 없긴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스스로의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을 것 같은 반응이었다.


“으, 으극, 어아······ 그으윽······!”


기괴한 소리를 내던 강상욱이 눈동자를 뒤집어 깠다.


“이건 또 뭔······”


흰자위를 드러낸 강상욱에게서 전혀 다른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꽁꽁 묶인 상태에서 그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라 똑바로 일어섰다. 그리고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진득한 기운이 그를 결박하는 밧줄을 녹여버렸다. 또한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속도로 재생하면서 어긋났던 팔다리가 제자리를 찾았다.

재영은 거리를 두고 그의 변화를 살폈다. 흐릿한 눈동자, 힘없이 처진 어깨, 비정상적으로 뻗치는 불길한 기운. 전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특징들이었다.


‘이매망량······!’


수년 전 명우를 말려들게 했던 최제환 사건 때 비슷한 기운을 느꼈다. 그리고 윤슬 호위 의뢰를 받을 때에도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었다. 바로 이매망량의 기운이었다.

재영은 강상욱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멍청한 자식! 명색이 정화자란 놈이 이매망량 따위에 홀리다니······.”


제3자경단이 처음에 강상욱의 범죄를 이매망량의 짓이라고 판단한 까닭이 있었다. 강상욱은 정화자이면서 이매망량에 정신을 사로잡혔던 것이다.

정화자는 일반인보다 정신력이 견고하기에 이매망량에 홀리는 일 따윈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강상욱은 하반신마비로 정신이 피폐했던 상황에서 정화자가 되었기에 정화자이면서 이매망량에 지배당하고 만 것이다.


두 번의 생을 겪고 수십 년을 살면서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 그만큼 재영에게도 당황스런 일이었다.

재영이 이매망량을 겪은 건 최제환 사건과 윤슬 경호의뢰를 포함해 총 네 번이지만, 그 중에 이매망량이 직접 사람 몸에 빙의해서 해를 끼친 건 한 번뿐이었다. 게다가 그땐 윤슬이 주도적으로 해결해서 재영이 한 일이 딱히 없었다. 결과적으로 재영은 이매망량에 대처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했다.

예지몽이라는 거짓말을 친 덕분에 윤슬에게 반강제로 영감을 깨우는 강의를 들으며 이매망량이 무엇인지 대충이나마 배우긴 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인간에 빙의한 이매망량에 대처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겉핥기로 배웠던 부적술도 사용할 일이 없다보니 거의 다 까먹은 상황이었다.

결국 재영은 최악의 경우 강상욱을 죽이는 경우까지 각오하고 이매망량의 앞에 섰다.


인간··· 그중에서도 가장 증오스러운···

“···미련한··· 하수인들···”


이매망량의 념(念)과 강상욱의 육성이 뒤섞여서 들려왔다.


“그렇게 인간을 증오하면서 인간의 몸에 기생하다니, 웃기는 족속이구나.”


빙의한 악령을 육신에서 떨어트리는 방법은 모르지만, 다행히 부담스러울 정도로 강력한 령은 아니었다. 전해지는 기운으로만 판별했을 때, 최제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기는 하나 현재 재영에게 큰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이매망량의 특징 중 하나가 빙의한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낸다는 것이었다. 평범한 인간일지라도 맨손으로 벽돌을 부술 수 있도록 만드는데 빙의체가 정화자라면······


‘귀찮아지겠군.’


내심 귀찮은 일을 떠맡긴 윤슬에게 투덜거리면서도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었다. 이런 적을 상대하는 게 자경단이었다면 많은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스테이크 한 번 얻어먹은 걸로는 수지가 맞지 않는 일이지만, 자경단의 피해가 줄어들면 재영의 장기적 계획에도 나쁠 게 없는 일이다.


‘뭐, 슬이 지갑이야 나중에라도 털어먹으면 되니까.’


재영은 적을 유인해 자리를 옮겼다. 까딱하면 납치된 두 남녀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 건물에 전투흔적이 남을 경우 처리가 귀찮아지기 때문이었다.


펜션단지 인근의 하천가.

재영의 기감이 닿는 범위 내에 인기척이 감지되지 않고 한바탕 날뛰어도 재물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곳이었다.

유인하던 재영이 멈추자 재영이 서있는 자리로 투사체가 날아왔다. 재영이 회피하면서 땅에 박힌 투사체는 잠시 뒤 보라색 기운으로 흩어지며 사라졌다. 이매망량이 불길한 기운을 엮어 실체화한 무기였다.


이매망량 주변에 보라색 투사체 여러 개가 맺히고 연이어 재영에게 쏘아졌다. 투사체는 무형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주제에 제대로 된 질량까지 가진 터라 받아치기가 쉽진 않았다. 회피만으로 대응하기에는 수가 너무 많아 재영은 투사체를 손등으로 쳐냈다. 계속된 투사공격에 재영이 손등이 빨갛게 붓기 시작했다. 내공으로 보호하고는 있지만 충격이 계속 중첩된 탓이었다.

아직 위기감을 느낄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약간의 아쉬움은 남았다.


‘장도리라도 챙겨올 걸 그랬나.’


마고의 힘을 끌어내면 훨씬 수월하겠지만 마고가 가진 특유의 기운에는 사용자인 재영 본인마저도 기분 나쁠 정도로 꺼려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매망량의 기운이 불길하다지만 마고에 비하면 아이들 장난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마고와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하면 상호신뢰가 두터워지고 링크도 강화되었지만, 그런 방면에서 발전한 것에 비하면 혐오감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계속 시간이 끌리자 재영은 결국 마고의 힘을 끌어내기로 생각을 바꿨다.


“마고!”


호출과 동시에 신경계처럼 전신에 퍼져있는 링크를 통해 마고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번 상대는 저것인가. 평범한 인간은 아니로군. 아무튼 빨리 끝내도록 하지. 마침 재밌는 걸 발견한 참이니.

“재밌는 거?”

─아직은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싶진 않군.

“아무튼 좋아, 지금은 눈앞의 적에게 집중하자고.”


재영은 투사체를 흘려내기 위한 방어동작을 멈추고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일순간 하천가에 수십 개의 촉수가 자라났다. 소환된 촉수는 재영이 주로 불러내던 매끈한 촉수 대신 손톱 같은 재질로 겉면이 경화된 촉수였다.


2미터 가까이 자라난 촉수들이 엄폐물이 되면서 투사체를 일일이 피하거나 막을 필요가 없어졌다. 손에 여유가 생긴 재영은 주변에 널린 자갈에 내공을 담아 던졌다. 투척에 자신이 있는 건 아니지만 거리가 멀지 않아서 자갈은 던지는 족족 빙의된 강상욱의 육체에 틀어박혔다.


제아무리 정화자라도 무방비하게 맞으면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질 정도의 힘이 돌팔매질에 담겨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이매망량에 빙의된 재생능력자였다.

찢어진 피부와 어긋난 뼈는 극한까지 끌어올려진 재생능력으로 순식간에 치유됐다. 실시간으로 환부에서 살이 꿈틀거리며 돋아나는 모습은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다.


부상을 모두 재생시켜서 결과적으로 큰 타격을 입진 않았지만 이매망량에게 있어서 본인의 공격은 모두 촉수에 가로막히는데 재영의 공격은 허용하는 건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이매망량은 근접해서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는 재영이 의도한 바였다. 재영이 지닌 능력들은 원거리 교전보다는 근거리 교전에 적합했다. 되도 않는 돌팔매질은 근접전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매망량은 강상욱이 지닌 박투능력을 십분 활용하면서 간간히 보라색 기운을 불꽃처럼 쏘아내기도 했다. 각각의 공격은 제법 위협적이었지만 재영은 촉수 엄폐물을 적극 이용해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재영도 방어와 회피에 집중하느라 유효한 타격은 입히지 못한 채 싸움은 지지부진한 상태로 접어들었다.


교전상황이 고착되자 둘은 한동안 단조로운 공방만 주고받으며 상대방의 속셈을 가늠했다.

적의 의도를 어느 정도 파악했다 싶은 순간이 오자 상황이 급변했다. 먼저 공격에 변화를 준 쪽은 재영이었다. 폐건물에서 강상욱을 한 방에 녹다운시켰던 것처럼 막대한 기운이 재영의 양손에 맺혔다. 기의 극단적인 압축과 정련으로 만들어낸 강기였다.

이전의 싸움에서는 생포가 목적이었기에 마치 회심의 한수인 것처럼 일시적으로 사용했지만 죽여도 어쩔 수 없다고 마음먹은 지금에서야 거리낄 필요가 없었다.


이매망량도 전략을 바꿨다. 일부러 몇 번 얻어맞으면서 재생능력의 한계를 시험한 그는 힘과 속도에서 재영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방어를 버린 채 공격에 모든 것을 걸었다.

기본적인 스펙 차이 때문에 한 번 씩 주고받을 경우 이매망량이 입는 피해가 10이면 재영이 입는 피해는 3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매망량으로 인해 강화된 재생능력은 피해를 모두 상쇄시켰다. 재영이 방어에도 많은 신경을 쓰느라 온전히 공격에만 힘을 쏟지 못한 결과였다.


재영은 조금씩 뒷걸음질 치며 촉수 밭 한가운데로 밀려났다. 얼핏 보면 이매망량의 일방적인 공세에 피해가 누적돼 수세로 몰리는 모습이었으나, 사실은 유인책이었다.

적절한 위치까지 물러났다고 생각한 재영은 이매망량이 그러하던 것처럼 모든 방어를 풀고 공격일변도의 일격을 가했다.


서로의 몸통에 치명적일 일격이 터졌다.

이매망량은 가슴팍이 무너지고 심장과 폐, 척추 등 주요장기가 모조리 박살났음에도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강화된 재생능력은 뇌의 일부나 심장마저 회복시킬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나 미소는 곧바로 일그러졌다. 제대로 꽂혔을 거라 생각한 그의 공격은 효과가 없었다. 단단하고 반투명한 장막에 가로막혀 데미지가 분산된 탓이었다.


금색의 장막은 재영의 방어마법이었다.

재영은 선천적으로 마법에 적합하지 않아서 이매망량의 공격을 완전히 막아낼 강력한 방어마법을 구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단점을 포기하고 장점을 극대화시킨 결과 마법속사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방금 사용된 방어마법 역시 마법속사의 결과물이었다.

얼핏 하나의 마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일순간에 4연속 발동된 방어마법이었다. 질로 안 되므로 양으로 때운 것이다. 덕분에 직접적인 파괴력은 방어마법에 상당부분 상쇄됐고 잔여 충격은 몸으로 받아내도 크게 부담되지 않는 정도였다.


계획이 성공한 뒤 재영은 뒤로 몸을 날렸다. 자신은 피해가 없고 이매망량만 피해를 입은 상황이었다. 연이은 공격을 가해서 피해를 누적시킬 수 있는데도 후퇴를 한 것이다.

호기를 포기하는 재영의 행동에 이매망량이 의아함을 품는 순간, 주변의 무수한 촉수들이 갑자기 커다랗게 자라났다. 이매망량은 촉수를 단순히 엄폐물이라고만 생각했으나 각각의 촉수는 재영의 수족이나 마찬가지였다.

촉수들은 이내 무너지듯이 쓰러지며 이매망량을 덮쳤다. 이매망량은 황급히 피하려 했으나 끊어진 척추신경의 회복이 아직 완전치 않아 피할 수 없었다.


자욱한 흙먼지가 일었다. 바람이 흙먼지를 날려버리자 촉수가 쌓이면서 만들어진 작은 언덕이 드러났다. 이매망량은 무수한 촉수에 깔려 머리만 내놓은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재영의 능력으로는 강상욱의 육체를 손상시킬 수는 있으나 계속되는 회복은 어쩌지 못했다. 하여 막대한 질량을 이용해 강상욱의 육체를 물리적으로 봉인시켰다. 육체가 제 기능을 찾으려면 부러지고 함몰된 뼈와 근육이 제자리를 찾아야하는데 사방에서 옥죔으로써 회복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재영은 애초에 강상욱을 죽일 생각이 별로 없었다.

단지 조금 더 귀찮아지는 걸 감수할 필요가 있을 뿐, 둘 사이에는 우격다짐으로 생포를 강제할 수 있는 실력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이매망량이 재생능력만 믿고 저돌적으로 행동한 덕에 재영의 계획은 생각보다 쉽게 먹혀들었다.


재영은 꼼작도 못하고 괴성만 지르는 이매망량을 내려다보며 핸드폰을 꺼냈다.

수신인은 윤슬이었다. 이매망량을 상대로는 퇴마사가 필요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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