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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아님 님의 서재입니다.

S.N.L (Save and L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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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아님
작품등록일 :
2018.11.17 15:37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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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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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1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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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SNL - 39

DUMMY

울음을 터뜨린 김윤아를 보고 재영도 감격에 젖었다.

최악의 실패를 겪은 뒤 최적의 길을 찾아낸 것이다.


물론 희생이 없진 않았다. 박덕자가 애지중지하는 오동나무가 부러졌고, 김윤아의 얼굴에 지우지 못할 상처가 남았다.

하지만 김윤아는 난관을 스스로 극복해냈다. 그 결과 박덕자와 현숙이가 살아남았고 그들의 보금자리도 무사했다. 또한 처연하게 관을 짜던 전 회차와 달리, 김윤아는 저렇게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엄밀히 따지면 재영이 바란 것과 완전히 부합하는 결과물은 아니었다. 김윤아가 대지의 정령술을 습득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아직 불러오기가 1회 남아있었기에 올바른 길을 찾아냈다는 성취감만이 재영을 기쁘게 할 따름이었다.


김윤아는 정령술과는 완전히 다른 능력을 얻은 것 같았다. 김윤아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현숙이의 기운과 동화되고 있었다. 둘 사이에 어떤 링크가 생긴 게 확실했다.


궁금했지만 질문보다는 응급처치가 우선이었다. 발톱에 베인 상처와 발목의 골절상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발목은 금이 간 것뿐이었고, 자상도 재영이 혈도를 건들자 출혈이 금방 멈췄다. 정화자는 회복력이 일반인보다 좋기 때문에 관리만 잘하면 늦어도 보름 안에 완치될 부상이었다.

문제는 얼굴의 왼쪽부분을 거의 뒤덮다시피 한 화상이었다. 이마에서 눈썹, 광대뼈, 귀에 이르는 넓은 부위가 산대왕의 타액에 당해 녹아내렸다. 다행히 왼눈의 시력은 살아있었지만 눈꺼풀의 신경이 죽었다. 앞으로는 제대로 눈을 뜨기 힘들어 보였다.


‘내가 제대로 주의를 줬다면 이런 상처는 안 입었을 텐데······.’


후회하는 마음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김윤아가 재영에게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왜 네가 미안한 얼굴을 하고 있어? 네 덕분에 이 정도로 끝난 거야. 내가 싸우지 않고 도망쳤어도, 네가 작은 괴물들을 쫓는 사이 나랑 싸운 괴물이 우리 가족을 따라잡아 습격했을 거야. 괴물은 나랑 현숙이보다 훨씬 빨랐으니까. 그 상황에서 싸웠으면······ 글쎄? 못 이기지 않았을까? 아마 도망만 치다가 죽었을 거야.”


말 그대로였다. 실제로 김윤아의 말처럼 됐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재영의 자책감을 덜어내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김윤아의 미소가 재영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응급처치를 끝낸 뒤 재영은 김윤아의 능력에 대해 물었다.


“언니, 혹시 이번 싸움에서 새로운 능력을 얻었나요?”

“어? 그러고 보니 싸움이 끝난 직후에 우로보로스의 메시지가 왔었어. 그땐 정신이 없어서 잊고 있었어. 잠깐만 기다려봐. 지금 확인해볼게. 어······ ‘축하합니다. 정화자 김윤아는 특수능력 <일생의 동반자>를 습득하였습니다······’”


김윤아가 읊은 메시지의 내용을 종합하면, ‘일생의 동반자’는 그녀와 현숙이 사이에 강한 정신적, 육체적 연결이 생기는 능력이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뜻이 통하게 되고, 감정과 힘을 공유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강화하는 효과도 가지고 있었다.

얼핏 보면 짐승조련 능력인 테이밍과 비슷해 보이지만, 다양한 동물들을 다룰 수 있는 짐승조련과 달리 일생의 동반자는 오직 일 대 일로만 효과를 발휘한다. 또한 테이밍은 조련한 동물을 권속이나 동료 취급하는 반면 일생의 동반자는 양자가 보다 수평적이고 긴밀한 관계에 놓이게 된다.


대지의 정령술과는 털끝만큼도 관련이 없는 특수능력이지만, 생각해 보면 그리 놀라울 것도 없었다. 김윤아와 현숙이의 관계는 단순한 인간과 가축이 아닌, 강한 유대로 얽힌 동반자나 다름없었으니까.


한편, 김윤아의 무사함을 확인한 박덕자는 부러진 오동나무 앞에 가서 주저앉아 있었다. 김윤아는 재영의 부축을 받으며 조모에게 다가갔다.


“죄송해요, 할머니······. 제가 뒤로 숨는 바람에 나무가······.”


박덕자가 천천히 쓰러진 나무줄기를 쓰다듬었다. 독기는 이미 중화되어 피해를 주진 않았지만 끈끈한 점액질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러나 박덕자는 개의치 않았다.


“영감, 당신이 손녀딸을 지켰소? 잘 했구마잉······. 역시 우리 영감답소.”

“할머니······.”

“윤아야, 니가 미안할 게 무에 있겄냐? 내는 만족헌당께. 나무는 꺾였지만서두, 그게 뭔 대수겄냐. 우리 손녀딸이 이리 살어있는디.”


유일한 추억이 녹아내리고 꺾였지만 박덕자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장한 일을 했다는 듯이 쓰러진 오동나무를 어루만졌다.

그러나 슬픈 마음만은 어쩔 수 없었는지 주름이 자글자글한 눈가에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박덕자는 자신의 눈물이 스며든 흙은 한 움큼 집어 나무 밑동에 뿌렸다.


“잘 가시오, 영감······.”


그 순간 대기 중의 기의 흐름이 변했다. 다량의 기가 박덕자의 몸으로 스며들었고, 박덕자는 눈을 감아 그 기운들을 천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재영은 즉시 변화를 눈치 챘고, 김윤아는 그보다 조금 뒤에 깨달았다. 예기치 못한 현상에 김윤아가 박덕자의 손에 몸을 대려 하자 재영이 제지했다.


“잠깐 기다려보세요.”

“무슨 일인데? 할머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각성이요.”


평범한 각성이 아니었다.

박덕자에게서 풍겨오는 기운이 낯설지 않았다. 전 회차에서 대지의 정령과 계약을 맺었던 김윤아를 떠오르게 했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박덕자가 풍기는 기운의 정체는 분명히 정령의 향기였다.


각성에 이은 정령계약.

이런 현상이 동시에 가능한 사람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운과 재능을 가졌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전생과 전 회차에서는 이런 재능이 산간벽지에서 농사나 짓다가 이름 없이 스러졌던 것이다.


나무 밑동에 자그마한 싹이 텄다.

싹은 놀라운 속도로 자라나 동그랗게 말린 커다란 떡잎을 맺었다. 떡잎이 뚝 떨어지고 말려있던 잎을 헤치고 30cm정도의 난쟁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을 닮은 외양을 하고 있어서 마치 어린 남자아이를 작은 사이즈로 축소시켜놓은 것 같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피부가 나무껍질 같은 고동색이라는 점이었다.


“영감이오?”


정령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저 사별한 배우자의 형상을 뒤집어 쓴 것뿐이었다. 대신에 정령은 다박다박 걸어가 박덕자의 무릎을 살짝 두드렸다. 그만 슬퍼하라는 위로의 표현이었다.

정령의 바람과는 달리 박덕자는 더 많은 눈물을 흘렸다.

이젠 만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옛 추억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이렇게 위로까지 해주고 있다. 감정이 복받쳐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등골을 타고 번지는 전율을 느끼며 재영은 몸을 떨었다. 김윤아가 대지의 정령술을 습득하지 못하면서 사실상 다음 회차를 기약하던 차였다.

더 나은 결과를 위해서라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없던 일로 돌린다는 게 못내 안타까웠다. 김윤아의 미소, 박덕자의 눈물 하나하나가 결코 쉽게 사라져도 될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박덕자가 나무의 정령과 계약을 맺었다. 방법은 다르지만 나무의 정령 역시 대지의 정령처럼 지기를 한 곳에 모으는 능력이 있다. 또 다른 해결의 실마리가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모든 우연과 필연이 한 줄기로 모여 새로운 흐름을 이루어냈다.

재영은 그 흐름 한가운데서 김윤아와 박덕자의 감동에 못지않은 희열을 느꼈다.






사건이 일단락 된 후에도 재영은 균열의 뒷정리를 하기 위해 김윤아의 집에 며칠 더 머물렀다.

재영은 괴물의 시체를 모아 불에 태우고 망가진 울타리를 수리했다. 엉망이 된 밭을 정비하는 데 손을 거들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김윤아와 박덕자에게 기를 다루는 기본적인 방법을 가르쳤다. 그제야 김윤아는 산대왕과의 결전에서 감정에 기를 내맡긴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 짓이었는지 깨달았다.

각성을 하고 난 후에도 박덕자의 굽은 등과 침침한 시력은 똑같았지만 몸에 활력이 넘치는지 전에 없이 활동량이 늘어났다.


재영이 머무는 며칠 동안 박덕자는 거의 항상 정령을 소환해 데리고 다녔다. 전생에서 대부분의 정령술사들이 필요시에만 정령을 소환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단지 소환만 해놓는 것은 술자의 체력을 그다지 소비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정령술사들에겐 그마저도 할 이유가 없었다. 호기심 많은 정령들이 주변을 알짱거리며 귀찮게 굴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덕자는 마치 새로운 손주가 생긴 것 마냥 정령과 한시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재영은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각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박덕자의 정령계약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천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전 회차의 김윤아는 정령술을 얻기 위해 형상화 훈련을 하고 과격한 방법으로 교감을 시도했었다. 그런 준비과정을 거친 뒤에야 정령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박덕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녀에게 오동나무는 사별한 남편 그 자체였다. 오랜 세월 나무와 교감을 하고 마음속으로 형상을 그려온 것이다. 정령이 취한 형상이 젊었을 적 그녀의 남편인 것도 그러한 까닭이었다. 우연인 줄 알았던 것이 실제로는 필연이었던 것이다.


<영원의 동반자>

우로보로스 시스템이 박덕자의 정령술에 붙인 명칭이었다.




떠나기 전날 저녁, 재영은 쭉 묵혀뒀던 안건을 꺼냈다. 이 여정의 시발점, 하데스에 관한 이야기였다. 여정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는 박덕자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러나 재영은 최후의 최후까지 하데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중요한 주제를 자꾸 미룬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재영에겐 전 회차에서 김윤아에게 거절당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이번엔 김윤아가 아닌 박덕자가 정령술의 주체였지만, 그녀는 너무 연로했기에 김윤아가 극렬하게 반대하고 나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구하자 김윤아는 가만히 있었고 박덕자도 별 고민 없이 승낙했다. 확약까지 받아낸 후에 재영이 슬그머니 걱정했던 속마음을 털어놨다.


“솔직히······ 할머니를 위험한 곳으로 데려간다면서 언니가 반대할 줄 알았어요.”


김윤아가 빙글빙글 눈웃음쳤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랬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재영이는 믿어. 할머니가 위기에 빠졌을 때 지켜만 보고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물론 나도 따라갈 거야. 내가 다치는 한은 있더라도 할머니가 다치게 둘 수는 없지. 설마 못 따라가게 하진 않을 거지?”

“설마 그럴 리가요.”


다음 날 아침, 김윤아와 박덕자는 고속버스를 타고, 재영은 현숙이를 타고 상경했다. 현숙이를 데려가려면 도보로 갈 수밖에 없는데 김윤아와 박덕자는 서울까지 가는 길을 모르니 자연히 재영이 현숙이를 이끌게 된 것이다. 마음 같아선 김윤아도 재영, 현숙이와 함께 움직이고 싶었으나 박덕자를 홀로 보낼 수 없어서 지금처럼 둘씩 찢어져 행동하게 되었다.


현숙이를 타고 이동한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상경한 재영은 약속한 지점에서 조손을 다시 만났다.

약속지점은 잡초가 무성한 어느 공터로, 하데스를 유인할 장소로 재영이 미리 알아봐둔 곳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주말농장을 하던 곳이었는데 사업이 오래 못가 망한데다가 균열까지 열리기 시작하면서 이 외진 곳까지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데스 토벌 작전을 실행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준비가 끝나자 박덕자가 공터 한가운데에 호박씨를 하나 심었다. 이어서 박덕자를 졸졸 따라다니던 나무의 정령이 호박씨를 심은 곳에 작은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엄청난 속도로 호박넝쿨이 자라고 호박이 열리더니, 일대의 지기를 모두 빨아먹으며 집채만 한 크기로 커지기 시작했다. 호박의 지름이 5m에 이를 정도로 거대해졌을 때 발밑에서 미세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진동을 감지한 재영이 다른 둘에게 경고했다.


“옵니다! 뒤로 물러나세요!”


잠시 뒤 땅을 뚫고 거대한 하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알을 까고 토룡의 몸에서 나왔을 땐 겨우 팔뚝 굵기였을 녀석이 고작 열흘 만에 길이 30m에 달하는 거구로 성장해있었다. 외형은 몸체에 비해 유독 커다란 입을 가진 거머리 같지만, 외피가 암석재질로 이루어져있어 징그러움보다는 위압감을 주는 모습이었다.


멀찍이서 지켜보는 김윤아와 박덕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에 비해 정작 하데스를 마주한 재영은 활짝 웃고 있었다.

너무나 보고 싶었다. 땅속에 숨어있는 이 낯짝을 보고자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던가.


“하하, 프하하하!”


절로 터져 나오는 웃음과 함께 슬레지해머를 쥔 재영이 뛰어올랐다.


싸움은 화려하지도, 오래가지도 않았다. 그저 목표가 죽을 때까지 재영의 투박한 해머질이 계속될 뿐이었다. 단지 그 해머질이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만 빼면, 전투는 일견 지루해 보일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양상으로 흘러갔다.


채 5분이 지나기 전에 하데스는 목숨을 잃었다.

그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여정에 마침내 마침표가 찍혔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예요?”


재영이 이제 곧 헤어질 김윤아에게 물었다.

조용히 살길 바랐던 과거의 그녀라면 산골에 틀어박히겠지만, 지금의 김윤아는 달라졌다.

왠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지만 재영은 참을성 있게 김윤아의 대답을 기다렸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하지만 너처럼 혼자서는 못해. 나는 약하고 겁이 많으니까. 그러니 정전위에 등록할 거야. 동료들과 함께 사람들을 위해 싸우겠어.”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충분히 짐작하고 있던 대답이지만 그로부터 김윤아의 변화가 뚜렷이 느껴졌다. 재영의 눈매가 빙그레 반원을 그렸다.


“무운을 빌어요.”

“재영이 너도.”


재영이 손을 내밀었고 김윤아도 마주 내밀어 악수를 했다.


“언제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죄송해요······. 그건 힘들 것 같아요.”

“응? 어째서?”


마고의 눈이 소환됐다. 김윤아와 박덕자는 물론이고 인간이 아닌 현숙이도 마고의 환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재영은 그들의 기억에서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삭제했다.

환상의 능력으로는 가지고 있는 기억을 없애지 못한다. 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우겨넣는 것뿐이었다. 누군가와 무엇을 함께 하고 어떤 감정을 공유했는지에 대한 기억들은 고스란히 남는다. 다만 그 ‘누군가’를 특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림을 지워서 하얗게 만든 게 아니라 그림 위에 온갖 물감을 덧씌워 까맣게 만든 것에 가깝다.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 목소리가 어땠는지, 생김새가 어땠는지, 성격이 어땠는지, 모든 것이 뒤죽박죽으로 혼재되어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해 발설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킬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선한 의지만으로는 약속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게 재영의 지론이었다. 약속을 깰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실수라는 게 있다.

집단에 소속되면 개인으로선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 발생한다. 살면서 그런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봐왔기에,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재영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일을 마무리 지은 기쁨과 후련함, 그리고 아쉬움이 진하게 배어든 미소였다.


“당신들과의 만남은 잊지 못할 거예요.”


재영이 자리를 뜨자 서서히 환상도 걷혔다.






정신을 차린 김윤아는 혼란스러워 했지만 곧 어떻게 된 영문인지 깨달았다.

‘그’가 찾아왔을 때처럼 갑작스럽게 떠나간 것이다. 그는 본인에 대한 기억마저 꼼꼼하게 회수해갔다.

꽤나 정이 들었었다. 이젠 친구라고 생각했고 언젠간 은혜를 갚을 거라 다짐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갑자기 떠난 그에게 서운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이해하기로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미소는 씁쓸함으로 젖어있었다. 그 씁쓸함은 지금 김윤아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이렇게까지 한 그의 판단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젠 ‘그’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통해 느낀 것들은 가슴 속에 남아있었다.

김윤아는 자신이 가야할 길로 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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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SNL - 56 19.07.04 66 1 16쪽
56 SNL - 55 19.06.28 75 1 16쪽
55 SNL - 54 19.06.22 61 1 11쪽
54 SNL - 53 19.06.16 98 1 14쪽
53 SNL - 52 19.06.10 77 1 18쪽
52 SNL - 51 19.06.04 61 1 11쪽
51 SNL - 50 19.05.30 109 1 12쪽
50 SNL - 49 19.05.24 87 1 18쪽
49 SNL - 48 19.05.18 109 1 17쪽
48 SNL - 47 19.05.12 97 1 15쪽
47 SNL - 46 19.05.06 112 1 19쪽
46 SNL - 45 19.05.02 95 2 12쪽
45 SNL - 44 19.04.28 112 1 13쪽
44 SNL - 43 19.04.24 111 1 17쪽
43 SNL - 42 +1 19.04.20 125 3 18쪽
42 SNL - 41 19.03.04 147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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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SNL - 38 19.02.10 159 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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