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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아님 님의 서재입니다.

S.N.L (Save and L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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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아님
작품등록일 :
2018.11.1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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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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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SNL - 42

DUMMY

헬릭슬러그는 2~3미터 크기의 민달팽이형 괴물이다.

무척추동물인 까닭에 전신이 골격 없이 근육으로만 구성되어 있고, 근육량이 많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민달팽이처럼 전투력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심지어 굼뜨기까지 해서 각 개체의 위험등급은 최하인 E급을 벗어나지 못하고, 단일개체로는 성인 한 명 해치지 못할 정도로 약했다.

전투력이 형편없는 대신 헬릭슬러그는 불가사의할 정도의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다. 유연하고 탄력적인 신체와 전신에서 스며나오는 독특한 성분의 점액질이 대부분의 충격을 상쇄했고, 부상을 입어도 치유성분이 있는 점액 덕분에 빠르게 아물었다. 물론 단일 개체인 상태로는 그 방어력조차 영 아니지만, 최소 열에서 스물 정도의 개체가 서로의 몸을 꼬아 군집을 형성하면 그때는 완전히 다른 생물처럼 변했다.


군집이 형성될 경우 각각의 헬릭슬러그가 하나의 근섬유 역할을 하며 마치 거대한 근육덩어리처럼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게다가 각각의 체표면적을 합한 것보다 군집을 이뤘을 때의 체표면적이 더 작으므로, 군집을 형성하면 점액의 양과 질도 현격히 상승했다.

그쯤 되면 굼뜬 헬릭슬러그라 할지라도 점액질의 도움을 받아 얼음판 위를 미끄러지듯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되며, 특별한 공격능력이 있는 것이 아님에도 질량만으로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수백에서 수천 단위의 군집을 형성하면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헬릭슬러그에게 피해를 입히기조차 어려웠다.


헬릭슬러그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로는 재영의 전생에서 남미에 등장한 헬릭슬러그의 초거대 군체가 있었다. 최소 2만 개체가 응집한 것으로 추정된 군체가 아마존 인근에 등장했는데, 통상의 공격수단으로는 아무런 효과도 볼 수 없었다. 헬릭슬러그 군체는 재래식 병기는 물론 정화자들의 공격에도 꿋꿋이 버텨내며 수만 헥타르의 밀림을 황폐화시켰다.

결국 브라질 정부는 미국의 협력을 받아 핵공격을 실시해 헬릭슬러그의 거대 군체를 점액질 째로 삶아 죽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반도 넓이의 몇 배나 되는 밀림이 파괴되는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런 헬릭슬러그 군체가 지금 재영의 손에 처참히 다져지고 있었다. 강기를 듬뿍 머금은 슬레지해머 앞에서는 헬릭슬러그라 할지라도 손쉽게 분쇄됐다.

비록 100개체 미만의 군집에 불과하지만, 그 정도만 하더라도 위상충돌 발발 후 6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현재에는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였다.

군병력으로 상대하려면 최소 대전차화기를 이용해야 하고 정화자라면 강기급의 파괴력을 낼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시점에서 그런 실력자는 전 세계적으로도 소수에 불과했다.


해머로 쿵쿵 찍어대자 망치질 한 번에 서넛 이상의 헬릭슬러그가 터져나갔다. 급속도로 군집이 와해되기 시작하자 헬릭슬러그도 가만히 있지 않았지만 별 의미 있는 저항은 되지 못했다.

방어력과 중량을 이용해 경로 상의 물체를 무식하게 짓뭉개는 것이 가능할 뿐, 여전히 특별한 공격수단은 없기에 포식자를 만난 민달팽이처럼 헬릭슬러그는 무력하게 해체됐다.


슬레지해머의 일격으로 마침내 최후의 한 마리까지 곤죽이 됐다.

상대하기 어려운 적은 아니지만 헬릭슬러그의 특성상 재영은 체액과 점액질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덕분에 흑복은 물론 안에 받쳐 입은 스포츠용 언더웨어까지 축축하게 젖은 상태였다.

이런 몰골로 보육원에 돌아갈 수는 없기에 재영은 인근 초등학교로 향했다. 분교 수준의 이 작은 초등학교는 야외 수돗가가 있는데다가 바로 옆에 야산이 위치해서 접근하기 용이한 곳이었다. 주말이라 학교는 한산했다. 예전엔 수업이 없는 날에 아이들이 학교운동장에서 뛰놀기도 했지만 위상충돌 후에는 그마저도 없었다.


재영은 배낭에 휴대하고 다니는 고무호스로 탈의도 하지 않은 몸에 물을 뿌렸다.


“으······ 제기랄.”


10월 중순에 가까워지면서 차가운 수돗물을 끼얹는 건 꽤나 고역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공과 마법을 이용해 몸과 옷가지를 빠르게 건조시킬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은연중에 활동하는 재영 덕에 보육원 인근은 균열이 발생하지 않기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국내에서 균열이 한 번도 발생하지 않은 지역을 케이블 방송에서 다룬 적이 있는데 그 중 한 곳으로 소개된 것이다.

실제로는 위상충돌 후 반 년 간 균열이 다섯 번이나 열렸다. 하지만 발생지점에서 대기하고 있던 재영에게 곧바로 처리된 까닭에 어느 하나도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다. 우로보로스에 저장된 전생의 정보와 불러오기를 이용한 덕분이었다.

역사의 뒤틀림 때문에 전생의 정보가 완벽하지는 않았다. 적게는 수십 분에서 많게는 일주일까지 오차가 생겼고, 전에는 없었던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재영은 고유능력인 SNL 덕분에 이러한 오차를 무마하고 해당지역을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었다.


위상충돌 후 지금까진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균열은 매일같이 열리고 있지만 군대와 정전위의 적절한 대처로 사상자는 갈수록 줄어들었고, 큰 피해를 유발할만한 대형균열은 전 세계적으로 달에 한 번 발생할까 말까 한 정도였다.


위기가 끝난 건 아니지만, 위기를 침착하게 극복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인류는 오히려 자신감을 얻고 있었다.

단순비교를 했을 때에도 균열로 인한 사상자는 인류가 겪은 두 번의 세계대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약 6년 동안 벌어진 2차 세계대전에서 칠천만 명 이상이 죽거나 다쳤는데, 지난 반 년 간 균열로 인한 사상자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삼백만 명이 되지 않았다. 괴물과 인간의 싸움으로 인한 사상자는 같은 기간 인간과 인간의 싸움으로 발생한 사상자의 절반도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통계는 사회 곳곳에서 인용되었는데, 적이 미지의 존재이기 때문에 두려움이 가중됐을 뿐 인류가 했던 짓에 비하면 별 거 아니라는 주장의 뒷받침으로 자주 써먹혔다. 무력한 피해자가 되느니 유능한 가해자가 되겠다는 의미와 다를 게 없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두려움을 걷어내고 자신감과 투지를 일으키는데 효과적이어서 짧은 시간 내에 널리 퍼져나갔다.


재영의 전생에서도 위상충돌 후 2년차까지는 현재 추세와 비슷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균열에서 나오는 괴물의 급이 급격히 뛰어올라 인류의 생존을 위협했다. 그마저도 극복하나 싶었지만 결국엔 대마령의 등장으로 멸망을 피하지 못했다.


‘이번엔 다를 거야.’


달라야만 한다. 재영은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 두 번째 삶을 사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 시간을 되돌려 타인의 삶과 죽음을 좌지우지하는 것이니까.




보육원에 도착하니 몇몇 동생들이 TV를 보고 있었다. 시청 중인 프로그램은 뉴스였다. 당연히 정치나 경제 쪽을 보는 건 아니었고, 동생들이 보는 건 정화자 관련 보도만 모아놓은 신설 코너였다.

정화자에 대한 관심은 남녀노소를 불문했지만, 특히 초등학생, 중학생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많은 아이들이 정화자 관련 뉴스를 웬만한 만화나 게임보다 더 좋아했고, 유명한 정화자는 아이들에게 있어서 기존의 운동선수나 연예인, 프로게이머를 뛰어넘는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재영이 샤워를 하고 나온 뒤에도 동생들은 여전히 TV에 빠져있었다. 마침 신공석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기에 재영도 관심을 갖고 동생들 뒤에서 시청을 같이 했다.


‘전생의 나보다 더 잘하고 있을까?’


박수찬이라는 교관이 있기에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겠지만, 직접 부딪혀야 체득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깨우치는 게 늦을 수도 있었다. 둘 중 어느 것이 공석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지만 아직까지는 긍정적인 면이 더 큰 듯했다.

보도에 의하면 공석은 최근에 있었던 용인에서의 교전에서 큰 활약을 한 모양이었다. 용인대전이라 이름 붙은 전투에서 다수의 괴물을 도륙해 피해를 줄이는 데 공헌했다는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재영도 전생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비록 시기는 6개월여의 오차가 있지만 균열발생장소나 전투의 내용은 재영이 겪었던 것과 상당히 흡사했다.

전생의 재영이 용인대전에서 누구보다 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등장한 괴물 중에 괴끼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재영은 자칫하면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는 경험을 분노와 복수심으로 극복하고, 부정의 감정들을 오롯이 적에게 쏟아낸 덕에 평소보다 눈앞의 적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아마 지금의 공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공석이 금방 유명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정화자 중 한 명인 까닭이었다. 아무래도 목숨이 걸린 일을 하다 보니 정전위에 등록된 정화자라 할지라도 작전에 그렇게 자주 투입되기는 힘들었다.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회복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석을 포함한 일부 정화자들은 적극적으로 괴물퇴치에 임하면서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실적을 쌓았다. 재영은 전생의 기억을 통해 그들 대부분을 알고 있었다.


‘복수심으로 움직이는 자들.’


바로 괴물에게 소중한 것을 빼앗긴 이들이었다. 도리어 정전위에서 만류할 정도로 그들은 쉴 틈 없이 작전에 참여해 괴물사냥에 힘을 쏟았다. 살아남기 위해 적을 죽이는 여타 정화자와 달리, 적의 섬멸이 삶의 목적이 된 것처럼 몸을 혹사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공적인 일에 사사로운 감정이 끼어든 셈이지만, 아직까지는 복수심이 남들보다 더 빠르게 강해지는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당장은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지만 언제까지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들 중엔 복수에 눈이 멀어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모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강한 녀석도 결국엔 살아남지 못했지.’


재영은 과거를 회상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재영 역시 동료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로운 삶을 살았었기 때문이다.


정화자 중에는 공석 외에도 유명한 인물이 많았다.

박수찬은 노련한 솜씨와 준수한 외모로 위상충돌 직후부터 유명했는데, 최근에는 현재 다양한 활약을 하고 있는 1기 정화자들의 교관역할을 했다는 게 알려져 ‘위대한 스승’이라는 별칭까지 생겼다.

토룡 토벌 때 박수찬에게 기습질문을 받아 당황해 했던 최수영도 지금에 와서는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해졌다. 활약상은 평범하지만 뛰어난 외모와 정전위 정화자 중 최초로 특수능력을 얻은 것이 유명세의 비결이었다. 그녀의 특수능력은 비교적 흔한 염력이지만 최초라는 타이틀과 특수능력 자체가 드문 시기적 특성 덕에 금세 이름을 알렸다.


비교적 최근에 정전위에 파견된 전대용도 빠르게 유명세를 탔는데, 실력보다는 그의 스타일 때문에 더 회자되었다. 전대용은 귀에 여러 개의 피어싱을 하고 머리를 회색으로 염색한데다가 정전위에서 지급하는 복장이 아닌 사복을 입고 다녔다. 생김새는 영락없는 양아치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성실하고 자기희생적인 면이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팬 층이 늘어났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김윤아였다.

4개월 전, 시골에서 소 한 마리를 끌고 상경한 김윤아는 정전위에 등록하면서 처음으로 존재를 알렸다.

처음에는 대중뿐만 아니라 동료 정화자들도 낫을 들고 소를 탄 김윤아의 모습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조선시대 농사꾼이 시간여행 한 거냐는 비아냥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활약상을 본 뒤에는 아무도 비웃지 못했다. 김윤아의 낫질에 수많은 괴물의 목이 따였고, 현숙이라고 알려진 암소가 지나간 자리에는 괴물들의 다져진 시체밖에 남지 않았다.

한 번 긍정적인 인상을 심고나자 그 뒤에는 여론이 알아서 김윤아를 비호했다. 흉측한 상처가 얼굴 한쪽을 뒤덮고 있지만 아무도 그 사실로 김윤아를 조롱하지 않았다. 까무잡잡하고 주근깨 많은 시골처녀 이미지와 백전노장 같은 흉터의 갭이 오히려 멋지다는 평까지 있었다.


“언니, 언니는 정화자 중에 누가 제일 센 거 같아?”


TV를 보던 정아가 물었다.

강함의 기준이라는 게 참 묘해서 섣불리 누가 제일 강하다고 단언하긴 힘들었다. 하지만 정아의 물음이 힘의 복잡한 상하관계를 묻는 것은 아닐 터였다. 어린아이들이 생각할만한 단순한 질문을 굳이 어렵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었다.

재영이 답하려는 찰나, 같이 TV를 보고 있던 승호 먼저 입을 열었다.


“당연히 한주영이지. 박수찬이랑 신공석이 유명하긴 해도 그건 TV에 많이 나와서 그런 거고, 진짜로 강한 사람은 한주영이야. 어떤 기자가 정전위 사람들한테 물어봤는데 아무도 부정하지 않았대.”


중학교 1학년인 승호는 보육원에서 가장 정화자에 관심이 많았다. 정의의 히어로나 초능력 같은 것들에 한창 불타오를 나이이긴 하지만 승호의 경우엔 그런 경향이 더 강했다.


승호가 언급한 한주영은 재영도 아는 이름이었다. 그는 확실히 한때 대한민국 최강이라 불렸던 정화자였다. 그러나 한주영은 복수심이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몬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개인사라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유독 심한 증오에 휩싸여있던 그는 무리하게 괴물을 죽이려다가 적 한복판에 고립되어 잔혹한 죽음을 맞았다.

최강의 칭호를 단 남자의 죽음에 대중은 안타까움과 놀라움을 넘어 커다란 충격을 받았지만, 당시 재영과 동료들은 그러한 결말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한주영의 평소 행동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무모했기 때문이다. 그의 돌발행동에 동료가 위험에 처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렇기에 동료 정화자 중에서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이는 있을지언정 슬퍼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오빠한테 물어본 거 아니거든? 언니한테 물어본 거거든?”

“누구한테 묻든 그게 사실인 걸?”

“유치하게 그런 걸로 싸우지 마, 바보들아.”


같이 TV를 보고 있던 강재가 시끄럽게 꺅꺅대는 둘에게 핀잔을 날렸다. 강재는 승호와 똑같은 중1 남자아이지만 승호와 정반대로 정화자에 대해서는 무덤덤한 편이었다. 정화자 관련 보도를 보는 것도 한 대 뿐인 TV가 정아와 승호에게 점령당해 어쩔 수 없이 보는 것뿐이었다.


“언니! 오빠들이 나만 갖고 뭐라 그래. 히이잉······.”

“어허! 누가 우리 정아를 괴롭혀? 혼 좀 나볼텨?”

“치잇, 치사하다, 황정아! 맨날 누나한테 이르기나 하고!”

“너네 TV 안 보는 거면 내가 보고 싶은 거 봐도 돼?”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지껄이다보니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정아의 방패막이가 된 재영에게 승호가 힘싸움을 걸어왔고 재영은 한손으로 가볍게 승호를 압도했다. 힘으로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까불거리는 승호에게 재영이 헤드락을 걸었다. 승호는 헤드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버둥거리다가 땅바닥을 쳐 항복의사를 표했다.

그 와중에 강재는 TV리모콘을 손에 넣고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아주 난장판이구만.”


방에서 공부하던 명우가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혀를 차고 다시 들어갔다.

명우가 나왔을 땐 재영과 승호가 한창 팔씨름을 벌이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수백 번이나 재영에게 팔씨름을 도전한 승호지만, 당연하게도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이기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승호는 계속 도전해왔고 재영은 번번이 승호의 도전을 꺾었다. 비등비등한 것처럼 연기를 한 적은 있어도 져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재영의 편이었던 정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승호를 응원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약자가 이기길 바라는 게 사람마음인데다가, 동생들에게 재영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최종보스 같은 존재였기에 무심코 승호를 응원하게 된 것이다.


“제길, 또 졌어!”

“하하! 승부의 세계는 냉혹한 법이란다, 승호야. 이 누님을 이기려면 백년은 이른 것 같구나.”

“아직 성장 중이라 그래! 내가 다 큰 다음에 붙으면 이길 수 있어!”

“명우형도 재영누나를 힘으로 못 이기는데 네가 어떻게 이겨? 그리고 네가 재영누나보다 커질 것 같지도 않은데······.”


TV를 보던 강재가 딴죽을 걸었다. 그러자 승호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그, 그건 모르는 거지! 혹시 알아? 내가 누나보다 훨씬 커질지!”


키와 골격은 유전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에 친부모를 본 적 없는 보육원 아이들은 자신이 미래에 어느 정도로 자랄지 조금도 짐작할 수 없었다.

승호의 성장기가 끝나면 재영보다 더 클 수도 있긴 하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아보였다. 재영은 어지간한 성인남성보다 큰 반면, 승호는 또래 중에서 작은 편이었다. 승호가 재영보다 커지려면 남은 성장기 동안 매년 6~8cm씩 자라야 했다. 물론 그렇게 자라서 재영보다 커진다고 해도 팔씨름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부우우웅─

재영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핸드폰 액정에 뜬 알람은 윤슬에게서 메시지가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잠깐 볼 수 있을까?]


문자만 봐도 진지하게 할 말이 있다는 게 보였다.

놀고 싶어서 보낸 메시지였으면 ‘영화 볼래?’라든지 ‘맛있는 거 먹고 싶다’라는 식으로 썼을 것이다.


‘무슨 얘길 하려고 이러지?’


윤슬이 이런 식으로 만나자고 할 때에는 대부분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하거나 귀찮은 일을 의뢰하는 경우였으므로 재영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무시할 수도 없었다. 하찮은 일을 가지고 윤슬이 만나자고 하진 않을 테니까.

재영은 윤슬의 메시지에 답장하며 외출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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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SNL - 56 19.07.04 66 1 16쪽
56 SNL - 55 19.06.28 75 1 16쪽
55 SNL - 54 19.06.22 61 1 11쪽
54 SNL - 53 19.06.16 99 1 14쪽
53 SNL - 52 19.06.10 77 1 18쪽
52 SNL - 51 19.06.04 61 1 11쪽
51 SNL - 50 19.05.30 109 1 12쪽
50 SNL - 49 19.05.24 87 1 18쪽
49 SNL - 48 19.05.18 110 1 17쪽
48 SNL - 47 19.05.12 97 1 15쪽
47 SNL - 46 19.05.06 112 1 19쪽
46 SNL - 45 19.05.02 95 2 12쪽
45 SNL - 44 19.04.28 112 1 13쪽
44 SNL - 43 19.04.24 111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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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SNL - 34 19.01.22 193 2 17쪽
34 SNL - 33 19.01.18 192 3 14쪽
33 SNL - 32 19.01.16 215 4 17쪽
32 SNL - 31 19.01.14 236 5 16쪽
31 SNL - 30 19.01.12 239 5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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