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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아님 님의 서재입니다.

S.N.L (Save and Load)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러아님
작품등록일 :
2018.11.17 15:37
최근연재일 :
2019.07.1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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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2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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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SNL - 49

DUMMY

평소의 재영이라면 보육원을 방치한 채 차로 수십 분이나 걸리는 성례시까지 가도 좋을지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지금까지 괴물들은 본능으로 움직였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교활한 면이 있었는데, 이기지 못할 상대라면 내빼는 데 망설임이 없다는 점이었다.

반면,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정화자만을 노린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길 수 없는 게 명확해진 시점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멀리 흩어져 민간인 피해를 늘리는 대신 한 곳으로 몰려들었다.

괴물이 성례시로 모이는 게 재영이 겪은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면, 정화자인 자신이 멀어지는 게 오히려 보육원을 지키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손세정과 강상욱의 처리였다.

손세정은 보탬은커녕 짐만 될 정도로 중상이었고, 강상욱은 회복능력으로 제 컨디션을 찾는다고 해도 아군이 될지 적이 될지 알 수 없는 인물이었다. 재영은 성례시로 가는 길에 있는 가까운 병원에 손세정을 맡겼고, 강상욱은 인적이 없는 널따란 논밭 한가운데에 떨어트렸다.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속도계는 시속 140km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실상 800cc경차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였다.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는 와중에 다른 차량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이미 가까운 대피소로 모두 대피하고 난 후였기 때문이다. 텅 빈 고속도로는 한적하다 못해 음산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30분 쯤 지나자 성례시 진입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왔다. 성례IC로 빠져나가자 도로를 통제하는 군 병력이 나타났다.


“성례시는 현재 출입통제지역입니다. 특별한 용무가 있지 않은 이상은······”


검문을 하던 군인은 재영의 복장을 보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재영은 괜한 오해를 사기 전에 거짓말을 했다.


“정전위 소속 정화자다. 본부에 변고가 생겨서 급하게 이동하는 중이니 길을 열어라.”

“죄송하지만 정화자임을 확인시켜 주실 수 있습니까?”


재영은 손바닥 위에 작은 불덩이를 소환해냈다. 그러자 군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절차 상 확인시켜달라고 한 것일 뿐, 군인은 재영이 정화자임을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게, 아비규환인 성례시에 들어가려는 사람은 정화자 아니면 미친놈 밖에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주제넘은 소리입니다만, 이 너머로의 안전은 저희가 책임져드릴 수 없습니다.”

“괜찮다. 그것보다 성례시의 현황을 알 수 있나?”

“정전위 본부 쪽으로 괴물들이 집결하고 있습니다. 도시 전역에서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지원하기 위해 지금 2개 보병연대가 정전위 본부로 향하는 길을 뚫는 중입니다. 하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정전위 본부 쪽과 연락은 되고 있나?”

“방금까진 됐는데 지금은 안 된다고 합니다.”

“알겠다. 통과하게 바리케이드를 치워라.”


검문을 시도한 군인이 손짓하자 나머지 군인들이 길을 막기 위해 설치해놓은 장애물을 치웠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비단 검문을 했던 군인뿐만 아니라, 검문소의 모든 군인들이 재영에게 공경의 시선을 보내왔다. 그들에게 재영은 타인을 위해 제 발로 사지에 걸어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제아무리 재영이라 하더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판국에 함부로 뛰어드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군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국가를 위하거나 전장 한복판에 고립된 시민들을 위한 헌신 때문은 아니었다. 실상, 거창한 대의 같은 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재영의 머릿속엔 윤슬을 구해야한다는 생각만 존재했다.


성례시 외곽을 지나자 연기 냄새가 진동을 했다. 도처에 발생한 화재로 도시 하늘은 검게 물들어있었다. 걸핏하면 총성도 들려왔다. 검문소 군인이 말했던 2개 연대가 도시를 확보하기 위해 분투하는 모양이었다.


시내로 접어들고 난 뒤부터는 버려진 차들로 인해 차량이동이 불가능했다. 재영은 차에서 내려 도보로 이동했다. 차보다 달리는 게 더 빠르기는 하나 내공의 소모 때문에 굳이 차를 고집했다. 그러나 성례시에 도착한 이후에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높은 건물을 찾아 옥상에 올라간 재영은 인근 지리를 훑었다. 오는 길에 네비게이션으로 정전위 본부의 대략적인 위치는 파악했지만, 초행길이기에 자세한 경로는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재영은 방향만 확인한 뒤 일단 뛰었다. 시간을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어차피 괴물들이 몰려가는 방향으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터였다.


달리는 와중에 불쾌한 기운이 느껴졌다. 공간이 비틀려 찢어지는 듯한 감각은 균열이 발생할 때의 현상이었다.


‘아직도 새로운 균열이 열리고 있는 건가.’


균열이 열린 방향으로 기감을 확장하자 균열 인근에서 사람 기척이 감지됐다. 모두 일반인이었다. 무시하고 달리려는데 균열 방향에서 총성이 났다. 단발로 시작된 총성은 이어 요란한 연발음으로 바뀌었다. 전투가 시작된 모양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에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여과 없이 들려왔다.


‘군인들이 시민을 보호하고 있는 건가?’


교전이 벌어진 장소가 진행방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기에 재영은 개입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현장에 도착하니 괴물과 싸우고 있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수는 서른 정도였다. 그들 대부분은 군인이었고, 일부는 사복 차림의 젊은 남성들이었는데 총기를 들고 군인들과 함께 전투를 치르는 중이었다.

그들이 상대하는 괴물은 해파리를 닮은 헬리피쉬라는 괴물이었다. 허공을 뽈뽈 날아다니는 헬리피쉬는 해파리와 오징어를 섞어놓은 듯한 괴물로, 진행방향을 예상하기 힘든 비행방식과 보호색을 이용한 위장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위험등급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커다란 무리를 이루고 있는 헬리피쉬를 상대하기에는 전투인원이 너무 적었다. 헬리피쉬는 그들을 포위한 채 크게 원을 돌며 압박하고 있었다. 일점돌파를 하면 포위망에서 벗어날 수도 있지만 군인들은 그러지 않고 자리를 사수하며 맹렬하게 맞섰다. 그들이 우직하게 위치를 고수한 이유는 그들의 뒤에 스무 명 쯤 되는 민간인과 부상 입은 군인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저쪽으로 몰려온다! 뚫리면 안 돼! 더 쏟아 부어!”


치열한 교전 도중 병사 하나가 가까이 다가온 헬리피쉬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촉수에 낚여 헬리피쉬 무리 한 가운데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동료들이 헬리피쉬에게 사격을 가하며 끌려가지 않도록 잡아당겼지만 소용없었다.

헬리피쉬가 평상시에 몸속에 숨겨두는 사냥용 촉수의 길이는 50미터가 넘었고,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는 한데 뒤섞여 떠다니는 헬리피쉬 무리 중에서 어떤 놈이 촉수의 본체인지 찾아내기조차 쉽지 않았다.

끌려간 병사가 수십 마리 헬리피쉬에게 갈가리 찢기기 직전이었다.


부우웅, 묵직한 작두칼이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작두칼은 병사를 끌고 가던 헬리피쉬의 몸체를 두 쪽으로 가르고 지면에 깊게 박혔다. 곧이어 작두칼에 심어놓은 화염마법으로 불길이 치솟아 헬리피쉬의 사체를 휘감았다. 헬리피쉬 사체는 급격히 타오르며 커다란 화구를 자아냈다.

재영은 헬리피쉬들이 화염을 피해 흩어지는 틈을 타 끌려가던 병사를 낚아채 포위망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곤 구조해온 군인의 전투조끼에서 수류탄을 꺼내 헬리피쉬 무리 한 가운데로 까 넣었다.

안전핀 제거도 하지 않고 던진 수류탄이지만 곧바로 쏘아 보낸 화염마법이 수류탄을 맞추면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은 괴물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을 만큼 지근거리에서 발생했다. 게다가 수류탄의 효과라기엔 과도할 정도의 화염까지 일었다.

재영을 제외한 모두가 얼굴을 감싸 쥐며 비명을 지르는 순간, 그들 주위로 커다란 촉수 수십 개가 빼곡히 솟아올라 돔을 형성했다. 돔은 화염과 폭발을 완벽히 막아내고는 잠시 뒤 땅속으로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폭발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주변을 뒤덮은 그을음과 헬리피쉬의 살점뿐이었다.


와아아, 함성이 터져 나왔다. 주변에 다른 괴물이 더 있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당장 죽을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감격이 위기감보다 크게 작용했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흑······ 고마워요. 죽는 줄 알았어요.”


사람들이 재영을 둘러싸고 연신 감사를 표했다. 개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이까지 있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재영의 외관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인간이 아무리 특이해봤자 괴물에 비할 바는 아닌데다가, 목숨을 구해준 은인의 차림새나 따지고 있을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었다.


재영을 둘러싼 인파를 뚫고 현장지휘관이 나타났다. 그의 얼굴이 왠지 낯익어 재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전투복에 박힌 명찰을 보고서야 그가 누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바로 1차 위상충돌 당시 재영과 여러모로 얽혔던 인물, 장형섭이었다.

당시 장형섭은 괴물에 용감하게 맞서 싸운 군인 중 하나였고, 특정 시간대에서는 재영의 도움 덕분에 전쟁영웅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재영이 시간을 되돌리고 보육원과 신공석, 양쪽을 모두 구해내어 결과적으로 아무런 공적도 이루지 못한 인물이었다.


달라진 점이 많아서 알아보는 게 늦었다. 얼굴에는 없던 흉터가 있었고, 애송이 같았던 예전에 비하면 확실히 베테랑 같은 날선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고작 반년이지만 그간 다양한 일을 겪었는지 중위였던 그가 지금은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대위 장형섭입니다. 덕분에 제 부하들과 시민들이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장형섭이 한도 끝도 없이 머리를 조아리려 하는 바람에 재영은 적당히 손사래를 쳤다.


“할 수 있는 걸 한 것뿐이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말하자 재영을 보는 군인들의 시선이 색다르게 변했다. 아까까진 감사의 시선이었으나 지금은 우러러보는 것에 가까웠다. 단순히 목숨을 구해준 것 외에도, 그 많던 괴물들을 순식간에 쓸어버린 재영의 전투력에 감명을 받은 것이다.


사실 대처방법만 알면 헬리피쉬는 상대하기 그리 어려운 괴물이 아니었다. 헬리피쉬는 공중에 부유하기 편하도록 체내에 다량의 혼합기체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게 가연성 물질이라 몸체에 흠집이 나서 물질이 외부로 유출되면 쉽게 불이 붙었다.

그나마 공기에 조금이라도 희석되면 불을 붙이기 어려워지지만, 재영은 화염마법을 사용해 희석될 틈을 주지 않고 바로 점화시켰다. 수류탄만으로는 생기지 않는 거대한 화구가 발생한 것은 그러한 연유에서였고, 그렇게 연쇄폭발을 일으킨 덕분에 헬리피쉬를 한 번에 몰살시킬 수 있었다.


만약 이러한 사전지식과 적당한 사격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일반인도 예광탄 몇 발로 헬리피쉬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모르는 군인들에겐 재영이 그저 대단하게만 느껴질 따름이었다.

물론 방금과 같은 근접교전이 발생하면 폭발에 아군까지 휘말리므로 교전 난이도는 올라간다. 헬리피쉬의 진짜 위험성은 독성 촉수가 아니라, 공중을 떠다니는 살아있는 폭탄이라는 점이었기 때문이다.


“전황은 어떻지? 오는 길에 검문소에서 2개 연대가 투입됐다고 들었다. 나머지는 다 어디 가고 당신들만 있나?”


2개 연대면 대략 3, 4천 명 규모다. 그 정도 인원이 투입된 것 치고는 주변이 너무 조용했다. 전선을 넓게 펼쳤다고 해도 이들만 따로 떨어져있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상급부대에서 퇴각로를 확보하란 명령이 내려와 저희가 속한 대대가 이 지역을 방어하고 있었습니다.”

“퇴각로를?”


재영이 반문하자 장형섭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렇습니다. 상급부대 지휘관들은 애초에 괴물과 싸워 이길 생각이 없습니다. 정부 요인들만 구해내 후퇴할 생각이죠.”

“작전에 불만이 많은 표정이군.”

“이만한 규모의 괴물을 상대로 퇴각로를 확보한다며 병력을 분산시키는 건 미친 짓입니다! 전 병력이 모여 화력을 집중해야 할 판에 중대, 소대 단위로 병력을 찢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건 사람과 사람의 전쟁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들을 그걸 모릅니다.”


장형섭이 열변을 토했다. 상급지휘관들에게 쌓인 게 많은 모습이었다.


“게다가 퇴각이라는 것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괴물들의 움직임이 평소와 다릅니다. 마치 정화자들을 노리고 있는 것처럼 한 곳에 몰리고 있습니다. 퇴각한다고 괴물이 우리를 얌전히 보내주겠습니까? 죽자 사자 쫓아올 겁니다. 그러면 많은 병력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개죽음을 당할 겁니다. 구출 후 도주작전이 아니라 처음부터 섬멸작전을 펼쳐야하는데도 현장을 모르는 자들이 탁상공론으로 작전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이미 퇴각로를 방어하던 병력 대다수가 괴물의 공격에 궤멸됐습니다. 괴물들의 주력에 당한 것도 아닙니다. 정화자들을 향해 몰려가는 일부의 괴물과 마주쳤을 뿐인데도 잘게 쪼개진 병력으로는 잘해야 시간을 끄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수백, 수천 발의 총알을 쏟아 부어야 괴물 한 마리를 잡을까 말까 한데 병력을 잘게 쪼개놨으니 제대로 된 저항이 될 리 만무하다.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선 기존의 전술에 많은 변화가 필요하지만 군대라는 보수적인 집단의 특성 상 단기간에 변하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전선에서 대처법을 체득한 일선 지휘관들만 답답하고 화가 날 따름이었다. 그런 심정을 대변하듯 장형섭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러면 저들과는 어떻게 합류한 거지?”


재영은 시민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감격의 여운이 가시자 시민들은 헬리피쉬가 타면서 낸 역한 냄새에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비단 시민들뿐 아니라 군인들 중에서도 비위가 약한 이들은 구역질의 대열에 동참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악취가 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헛구역질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이 느끼는 구역감의 상당부분은 재영이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촉수를 소환하면서 풍긴 마고의 기운 때문이었다. 그러나 워낙 빠르게 촉수를 역소환한 탓에 모두들 냄새가 원인인 줄 착각하면서 애먼 헬리피쉬만 욕하고 있었다. 이들 중 그 누구도 자신들을 폭발로부터 지켜준 방벽이 역겨움의 원인일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이 총성을 듣고 모여들더군요. 그래서 가까운 대피소를 향해 이동 중이었습니다.”

“퇴각로 확보는 포기한 건가? 임무인데도?”

“어차피 실패한 작전입니다. 부하들을 개죽음으로 몰아넣느니, 민간인들과 함께 대피소에 숨어있는 게 낫습니다.”


실패한 작전에 미련을 두지 않고 졸장이라 욕먹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원래 이런 성격이었을까, 아니면 반 년 만에 이렇게 성장한 것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재영은 그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고칠 수밖에 없었다. 유능하진 않지만 성실할 뿐인 이미지에서 나름 경험 있는 야전지휘관의 모습으로의 변화였다.


“가까운 대피소는 여기서 얼마나 되지?”

“거의 다 왔습니다. 몇 백 미터만 가면 됩니다.”


재영이 눈을 감고 기감을 넓혔다. 근방에서 아직도 많은 괴물의 기척이 느껴졌다. 다행히 괴물들에겐 정전위 본부로 가는 게 우선사항인지 이쪽으로 몰려들지 않았다.


“거리는 멀지 않지만 가는 길에 괴물이 많다. 당신들만으로 돌파할 수 있나?”

“아마 힘들 겁니다. 정화자께서 저희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재영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도울 것인가, 무시하고 정전위 본부로 향할 것인가.

윤슬을 구하는 게 최우선사항이지만 이들을 버릴 순 없었다. 설령 이들을 버리고 윤슬을 구하더라도 윤슬이 이 사실을 알면 비난할 것이다.


‘그 애는 그런 성격이니까.’


사실을 숨기거나 거짓말할 수도 있지만, 서로의 속사정을 아는 친구 앞에서만큼은 떳떳하고 싶었다. 그리고 잠시 머리를 굴리니 둘을 동시에 해결할 방법이 떠올랐다.


“이곳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움직이면 된다. 내가 괴물들의 주의를 끌어 대피소까지 가는 길을 열겠다.”


괴물들의 주의를 끈 채 정전위 본부 쪽으로 달리면 그만이었다. 재영은 가던 길을 가는 것이고 이들은 대피소까지 안전하게 나아갈 수 있다. 계획을 설명하자 장형섭이 괜찮겠냐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저희가 도울 일은 없겠습니까? 아직 계속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재영은 고개를 저었다. 열의는 인정하지만 이들의 전투력으로는 앞으로의 전투에 도움이 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의 속도로는 재영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점이 큰 문제였다. 그들과 발을 맞추려면 오히려 재영까지 느려져서 짐만 될 공산이 컸다.


“혼자 가는 게 빠르다. 그런데 정전위 본부가 어느 쪽인지 알고 있나?”

“이곳에서 북북서 방향으로 8km정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이곳에 투입되기 전에 지리를 숙지했기 때문에 확실합니다.”

“고맙다. 덕분에 길을 잃지 않을 수 있겠군. 그럼 이만 가보겠다. 내가 떠난 뒤에 이곳에 너무 오래 대기해도 좋지 않을 것이다. 멀리 있던 괴물들이 와서 빈자리를 메울 테니까. 적당한 타이밍을 봐서 움직여라.”

“은인께서 원하시는 바를 이루길 빌겠습니다.”

“그쪽도.”


재영은 크게 도약해 장형섭으로부터 멀어졌다.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후에는 일부러 요란한 기파를 발출했다. 주변의 괴물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였다. 잠시 뒤 괴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재영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대피소에서 먼 곳으로 유인했다. 기감을 펼쳐 확인하자 장형섭 일행과 대피소 사이에 괴물들이 비워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장형섭 정도의 인물이라면 바보같이 타이밍을 놓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재영은 이제 장형섭에게 신경을 끄고 정전위 본부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거의 다 왔어.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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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SNL - 53 19.06.16 99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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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SNL - 51 19.06.04 62 1 11쪽
51 SNL - 50 19.05.30 10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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