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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아님 님의 서재입니다.

S.N.L (Save and Load)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러아님
작품등록일 :
2018.11.17 15:37
최근연재일 :
2019.07.16 14:09
연재수 :
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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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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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90,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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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2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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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SNL - 54

DUMMY

소음과 먼지가 가라앉았다.

폐허가 된 별관에 스스로 서있을 수 있는 이는 한 명 뿐이었다. 재영이었다.

재영의 품에는 윤슬이 안겨있었는데 윤슬에게선 생체반응이 느껴지지 않았다. 기절해있던 탓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파편이 좌측 두정부를 강타해 즉사한 것이다.


갑작스런 재난에 재영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소환한 촉수와 호신강기로 최대한 몸을 보호했으나, 천장이 붕괴하면서 발생한 수 톤의 잔해에 크고 작은 부상들을 피할 수 없었다.

머리가 찢어져 얼굴이 피투성이가 됐고 등에는 끊어진 철근이 박혀있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왼다리도 골절상을 입은 상태였다. 혼란한 와중에 놓친 작두칼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젠장, 젠장, 젠장······!”


운 좋게 아직 숨이 붙어있는 일부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지긴 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즉사가 아닐 뿐 곧 숨을 거둘 정도의 중상이었다. 게다가 벌레들이 무너진 건물을 기어오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구난활동은 꿈도 꿀 수 없었으므로 그들은 산 채로 벌레들에게 뜯어 먹힐 운명이었다. 차라리 즉사하느니만 못한 처지였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 재난을 일으킨 당사자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머지않아 엄청난 존재감이 느껴졌다. 인간이 아닌, 괴물 특유의 이질적인 기운. 털이 곤두서며 피부가 저릿저릿해왔다. 정화자들의 훈련을 상정하고 지어진 별관을 한 번의 공격으로 무너트릴 정도로 강력한 놈이었다.


쿵, 쿵, 육중한 발소리와 함께 흉측한 생김새의 괴물이 도착했다.

싯누런 두꺼비의 몸통에 사람의 얼굴, 순록의 뿔을 가진 흉물스런 외모는 악마 그 자체라고 해도 무리가 없었다. 불룩 튀어나온 배는 비대한 내장 때문에 장기의 윤곽이 징그럽게 드러났고, 쉬지 않고 이어지는 소화활동 때문에 꾸룩꾸룩 소리가 수시로 울려 퍼졌다.


‘악마백(伯), 지린다르.’


악마공(公) 바로 아래에 위치한 악마백.

스스로를 백작이라 부르는 것은 아니고 인간들이 편의상 붙인 호칭이었다. 그만큼 강한 힘을 가진 괴물이라는 의미였고, 인간들에겐 말 그대로 악마와 다를 게 없었다. 비록 악마공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어지간한 정화자는 한순간에 핏물로 화할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다.


지린다르에 대해서는 재영도 전해들은 게 전부이고 실제로 조우한 건 처음이었다.

전생에서 악마백은 위상충돌 후 3~4년 뒤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역사가 뒤틀린 지금, 악마백은 위상충돌이 있고 나서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재영의 눈앞에 서있었다.

재영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찝찌름한 피 맛이 났다.


뒤뚱거리며 나타난 지린다르는 주변에 널린 시체를 바라보더니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꺼허허, 맛있는 게 죄다 여기에 있었구나.”


지구의 온갖 언어를 통역해주는 우로보로스도 괴물들의 언어를 통역하지 못했다. 전생에선 분명 그랬는데, 지금은 어째서인지 지린다르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었다. 평소라면 그 이유를 궁금해 했겠으나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을 분산할 여유가 없었다.


지린다르가 잔해 속에서 시신 하나를 찾아내 입에 집어넣었다. 시신은 무수히 돋아난 이빨에 짓이겨진 뒤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건장한 남성의 시신이건만 4미터 거구에 두꺼비처럼 커다란 입을 가진 지린다르에겐 한입거리에 불과했다.

탐식의 무리군주.

실로 그의 이명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지린다르는 재영과 재영의 품에 안긴 윤슬의 시신을 발견하고 입맛을 다셨다.


“우음, 신선하고 야들야들한 고기!”


지린다르가 진수성찬을 발견한 걸인처럼 침을 흘리며 달려들었다. 비대한 체형 때문에 둔하다고 생긱해 방심했다면 자칫 피하지 못했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재영은 아슬아슬하게 몸을 피했으나 품에 안은 윤슬의 시신까지 완벽하게 피해내진 못했다. 지린다르의 손톱에 걸린 윤슬의 오른팔이 부욱 뜯겨졌다.


재영과 윤슬 모두를 얻으려다가 그 중 일부만 손에 넣은 지린다르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윤슬의 오른팔을 씹어 먹은 뒤에는 아쉬움이 싹 사라졌다. 바뀐 표정은 환희에 가까웠다.


“꺼흣! 극상의 미식!”


지린다르의 탄성에 재영의 얼굴이 전에 없을 정도로 사납게 일그러졌다.


“감히······! 네까짓 게 감히!”


재영이 분노했다.

친우의 시신을 먹고 감탄을 내뱉는 괴물.

역겨워서 견딜 수 없었다.

현재 컨디션으로 지린다르와 싸우는 건 자살행위였다. 그러나 목표를 모두 실패한 지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불러오기로 지워질 현재라면, 지금만큼은 이 분노를 있는 그대로 표출하고 싶었다.


재영은 윤슬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그녀를 알게 된 지 벌써 3년이 넘었다. 처음엔 경계의 대상이었지만 보육원 가족들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공유하며 오랜 시간 함께하다보니 어느 샌가 정이 들고 말았다.

처음 이곳 성례시로 발걸음을 향했을 땐, 인류의 승리라는 전략적 목표를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윤슬이 죽은 지금, 재영은 깨달았다. 그런 거창한 목표는 부차적인 것이었고, 그냥 윤슬을 구하고 싶었다는 것을.

언제부터일까. 마음의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야한다고 생각했던 그녀를 친구로 인정하게 된 것은.


짧은 상념을 털어낸 재영은 지린다르에게 달려들었다. 지린다르가 선공을 취할 경우 가까이에 있는 윤슬의 시신이 휘말릴 수 있기에 먼저 치고나간 것이다.

지린다르에 대한 혐오감과 분노는 강기를 두른 권격으로 화했다. 그러나 맹렬한 기세처럼 보인 것은 사실 내공이 집중되지 못하고 흐트러지면서 발생한 공기의 파동이었다. 집중되지 못한 힘으로는 지린다르에게 피해를 주지 못하고, 재영의 주먹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지린다르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으드득

지린다르가 손에 힘을 주자 잡힌 오른손에서 고통이 밀려왔다.

재영은 붙잡힌 손을 빼내고자 등허리에 네 개의 촉수팔을 소환해 날카롭게 내질렀다. 덕분에 손을 빼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촉수팔 하나가 지린다르에 의해 뜯겨나갔다. 가까스로 빼낸 손도 무사하지 못했다. 손과 팔뚝의 뼈가 모두 박살나 운동능력을 잃은 것과 함께 엄청난 통증까지 전해져왔다.


“큿······!”

“꺼흐흣, 조그만 녀석이 제법 재롱을 부리는구나!”


재영을 손쉽게 물리치자 신이 난 지린다르가 말 그대로 솥뚜껑만한 손바닥을 휘두르며 압박해왔다.

촉수팔 하나가 골절된 다리를 대신해 움직임에 도움을 주고는 있지만 여전히 회피나 방어가 쉽지 않았다. 지면에 촉수를 소한해 지린다르의 신경을 분산시키려 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고, 계속 밀리는 상황을 뒤집을 묘수가 떠오르지 않은 채 재영은 하염없이 수세에 몰렸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나마 위안이라면, 정상적인 컨디션일 경우 그래도 자웅을 겨뤄볼만하다는 걸 깨달은 게 다였다.


속절없이 밀리던 중, 재영은 지린다르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시선의 방향은 재영의 어깨 너머, 바로 윤슬의 시신이 있는 곳이었다. 지린다르가 노리고 있는 것은 눈앞의 재영이 아니라 ‘맛있는 고기’였다.


“크아앗!”


재영이 한 줄기 기합성을 토했다. 끓어오르는 감정으로 괴력을 발휘해 거구를 튕겨냈지만 지린다르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번쩍 벌린 지린다르의 입에서 두꺼비 같은 혓바닥이 뻗어나갔다. 예상치 못한 혓바닥에 재영의 반응이 늦은 사이, 혓바닥은 윤슬에게 향했다. 어떻게든 윤슬을 차지하고 말겠다는 집념마저 엿보이는 기습이었다.

재영은 촉수를 뻗어 막으려했으나 혓바닥은 촉수보다 훨씬 빨랐다. 결국 윤슬의 시신은 혓바닥에 휘감겨 지린다르에게 끌려갔다.

최고의 컨디션이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적에게 함부로 덤빈 대가로 윤슬의 시신을 빼앗기고 만 것이다.


그러나 재영은 포기하는 대신 지린다르의 입으로 회수되는 혓바닥을 쫓아 앞으로 달려 나갔다. 비록 시신이 입으로 빨려가는 것을 막지는 못했지만 입이 닫히기 전에 아직 멀쩡한 왼손을 입속에 집어넣을 수는 있었다.

그런 행동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 지린다르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순간, 재영의 입에서 마법시동어가 튀어나왔다.


“라 루바다 소벡!”


평소엔 속사를 극대화하기 위해 수인을 맺거나 시동어를 사용하지 않는 재영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단지 그렇게 해서 얻는 이득이 크지 않아서 잘 쓰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시동어를 외쳐서라도 마법의 화력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 그 결과, 전에 없이 강력한 화염마법이 재영의 왼손에서 뿜어졌다.


입 안에서 터진 화끈한 열기에 지린다르가 입을 벌렸다.

재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촉수팔을 목구멍에 쑤셔 넣었다. 그리곤 식도로 넘어가는 윤슬의 시신을 끄집어내 재빨리 물러났다. 그러자 지린다르도 당해주지만은 않고 윤슬을 되찾기 위해 달려들었다.


재영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걸 직감했다. 반쯤 눈이 뒤집어진 지린다르는 끈질기게 재영을 추격할 테고, 현재 컨디션으로는 끝내 지린다르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터였다.

최후의 선택을 해야 했다.

그리하여 재영의 선택은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 화염마법을 시전하는 것이었다.


“라 루바다 소벡.”


재영의 손끝에 피어오른 마법의 불꽃은 가벼운 터치와 함께 윤슬의 시신에 옮겨 붙었다. 삽시간에 커진 불길이 윤슬을 집어삼켰고, 시신은 한순간에 재가 되어 흩날렸다.

불러오기로 현재를 무로 되돌린다고 해도 윤슬을 지린다르에게 내어주거나 이곳에 남겨두고 싶진 않았다. 하여, 차라리 자신의 손으로 화장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꺼흐윽! 아까운 고기가······!”


지린다르는 입속을 데인 것보다 윤슬을 잃은 것에 더 크게 분노했다. 그러나 그 분노마저도 재영의 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안구의 혈관이 터져 피눈물을 흘리면서, 재영은 지린다르를 매섭게 노려봤다.


“너는······ 너는 내가 반드시 죽인다.”


계획은 실패했고 상황을 타파할 방도를 찾을 수 없다. 설상가상 큰 부상까지 입었다. 지린다르의 입에 집어넣었던 왼손이 톱날 같은 이빨에 갈기갈기 찢기면서 양손이 모두 망가졌고 골절된 다리와 늑골로 인해 움직일 때마다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이제 남은 수는 불러오기뿐이었다.




-<고유능력: 불명(No name)>이 활성화됩니다. 잔여 횟수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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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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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SNL - 58 19.07.16 41 1 14쪽
58 SNL - 57 19.07.10 44 1 14쪽
57 SNL - 56 19.07.04 66 1 16쪽
56 SNL - 55 19.06.28 76 1 16쪽
» SNL - 54 19.06.22 62 1 11쪽
54 SNL - 53 19.06.16 99 1 14쪽
53 SNL - 52 19.06.10 77 1 18쪽
52 SNL - 51 19.06.04 62 1 11쪽
51 SNL - 50 19.05.30 109 1 12쪽
50 SNL - 49 19.05.24 87 1 18쪽
49 SNL - 48 19.05.18 110 1 17쪽
48 SNL - 47 19.05.12 97 1 15쪽
47 SNL - 46 19.05.06 113 1 19쪽
46 SNL - 45 19.05.02 95 2 12쪽
45 SNL - 44 19.04.28 112 1 13쪽
44 SNL - 43 19.04.24 111 1 17쪽
43 SNL - 42 +1 19.04.20 126 3 18쪽
42 SNL - 41 19.03.04 147 2 15쪽
41 SNL - 40 19.02.24 167 3 18쪽
40 SNL - 39 19.02.16 189 3 17쪽
39 SNL - 38 19.02.10 159 3 17쪽
38 SNL - 37 19.02.06 173 3 14쪽
37 SNL - 36 19.01.30 160 5 11쪽
36 SNL - 35 19.01.24 170 4 15쪽
35 SNL - 34 19.01.22 193 2 17쪽
34 SNL - 33 19.01.18 192 3 14쪽
33 SNL - 32 19.01.16 215 4 17쪽
32 SNL - 31 19.01.14 236 5 16쪽
31 SNL - 30 19.01.12 239 5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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