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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아님 님의 서재입니다.

S.N.L (Save and L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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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아님
작품등록일 :
2018.11.17 15:37
최근연재일 :
2019.07.16 14:09
연재수 :
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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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90,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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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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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SNL - 32

DUMMY

-균열 발생 예측 시각: 04시간 29분 후


우로보로스의 카운트다운이 매우 높은 정확도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오차 없이 완벽하다고 할 순 없었다. 위상충돌만 해도 예정보다 6개월이나 이른 시간에 발생했다. 재영은 자신의 존재라는 변수가 우로보르스의 예측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기에 하루 종일 임전 태세였다.


-균열 발생 예측 시각: 01시간 52분 후


시간이 줄어들수록 초조함은 커졌다. 균열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위상충돌 초기의 균열 로는 재영에게 위협이 될 수 없었다. 관건은 김윤아가 대지의 정령술을 습득할 수 있느냐, 균열로 인한 피해를 얼마나 최소화할 수 있느냐, 였다. 단순히 괴물을 무찌르는 것보다 더 많은 조건을 달성해야하므로 부담도 훨씬 컸다.


-균열 발생 예측 시각: 00시간 04분 후


오후 7시를 막 넘긴 시각. 마을을 둘러싼 산 때문에 김윤아의 집은 일몰이 되기 전부터 어두워졌다. 조손은 저녁을 먹고 TV를 보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평화로운 가운데, 오직 재영만이 긴장하고 있었다.

카운트다운이 끝나는 순간 진동이 느껴졌다. 발생한 균열이 공간을 밀어내면서 일대의 땅과 공기를 진동시킨 것이다. 이상을 느낀 김윤아는 들고 있던 잔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겁에 질린 그녀는 깨진 잔을 치우기보다는 재영을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바, 방금 그게 뭐였죠?”

“최악의 상황이군요.”

“서, 설마······?”

“준비하세요. 균열의 위치가 가깝습니다. 이곳이 습격당할 가능성이 높아요.”

“말도 안 돼······. 하, 할머니! 할머니!”


사색이 된 김윤아는 방에서 뛰쳐나갔다. 박덕자를 붙잡은 그녀는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껴입히고 두려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 할머니, 갑작스럽더라도 놀라지 마요. 우리 지금 당장 피난 가야해요. 여기에 괴물들이 몰려올지도 몰라요. 알겠죠?”


음머어─


소도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는지 외양간에서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야, 이게 무슨 일이간디?”

“대답은 나중에 해드릴게요. 그러니까 지금 바로 나가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내 쪽으로······”

“이미 늦었어요.”


장도리를 양손에 들고 나타난 재영이 선고를 내리듯이 말했다. 기감을 집중하지 않아도 기척이 느껴질 만큼 적들이 가까웠다. 수는 다섯.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균열에서 나온 산왕의 기척이 여덟이었으니 나머지 셋은 흩어져서 다른 곳을 습격하려는 모양이었다.

얼뜨기 정화자인 김윤아는 그제야 집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괴물의 존재를 알아챘다. 놈들도 정화자의 기운을 느꼈는지 쉬이 공격해오지 않고 거리를 유지한 채 지켜보고 있었다.


“다, 당신도 정화자잖아요? 그렇죠? 우리 둘이면 막아낼 수 있을 지도 몰라요. 이 시골에 괴물이 나타나봐야 얼마나 대단한 놈이겠어요. 제 말 맞죠?”


김윤아는 울며 사정하다시피 말했다. ‘둘이면 막아낼 수 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말대로 할 수는 없었다.


“이 주변에 있는 놈들이 전부가 아닙니다. 일부가 흩어졌어요. 그 놈들을 놔두면 피해가 커질 겁니다.”

“그, 그럼 주변에 있는 놈들을 빨리 무찌르고 다른 사람들을 구하러 가면 되죠.”


재영이라고 그런 간단한 생각을 하지 못한 게 아니다. 문제는 산왕이 굉장히 약삭빠르다는 것이었다. 놈들은 닥치는 대로 공격하는 대신 멀리서 재영과 김윤아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각각의 전투력은 혼 울프와 동급이거나 그 미만이지만 그렇다고 상대하는 게 더 쉽지 않을 만큼 지능적이었다.


“이 괴물들은 멍청하지 않습니다. 놈들은 우릴 지켜보고 있어요. 우리가 먼저 치고 나가면 자신들이 불리한 걸 알고 흩어질 겁니다. 그렇다고 우리 둘 모두 이곳을 지키고 있으면 놈들도 우릴 계속 지켜보겠죠.”


시간대가 좋지 않았다. 어둠속에 숨어든 산왕은 일반 군병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존재였다. 더욱이 일대를 완전히 차단한 다음 포위섬멸 할 정도의 병력이 도착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흩어진 놈들이 더 멀리 가기 전에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인근 마을들이 큰 피해를 입을 공산이 컸다.


“하지만······!”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은 저도 태산 같지만······ 죄송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두고 볼 수는 없어요. 저는 흩어진 괴물들을 잡으러 가겠습니다.”

“저, 저는······ 혼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빨리 끝나면 도우러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버티기만이라도 하세요.”


재영은 다급하게 붙잡는 김윤아를 뿌리치고 집밖으로 뛰쳐나갔다. 시시각각 멀어지는 세 마리의 산왕을 놓쳐서는 안됐다. 몸에 무리가 될 정도로 기감을 확장한 다음 흩어진 산왕 중 가남 가까운 놈을 목표로 달려갔다.

산왕은 확실히 지능적이었다. 놈들은 동료를 추격하러 가는 재영을 그냥 보내고 현재 위치를 고수했다. 정화자 둘을 한 번에 상대하기는 힘드니 나뉘어졌을 때 하나씩 공격하려는 속셈이었다.

이런 놈들을 상대로 김윤아를 혼자 놔두는 것은 꺼림칙하지만 그렇다고 시민들의 피해를 방관할 수는 없었다. 재영이 일말의 기대를 거는 부분은, 전생에서는 김윤아가 이를 홀로 극복했다는 사실이다. 최악의 비극만은 피하길 기원하며 재영은 추격을 서둘렀다.


“마고! 힘을 빌려줘!”


인적이 없는 산속이라 마고의 힘을 사용하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순식간에 온몸 가득 혼돈의 힘이 넘실거렸고 등허리에서는 두 쌍의 촉수가 자라났다. 이동에는 별 도움이 안 될 거라 생각했던 촉수지만, 산림이 울창한 곳에서는 예상치 못한 이점이 있었다. 등허리의 촉수로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한 방향전환을 가능케 한 것이다. 덕분에 장애물 때문에 속도를 줄일 필요 없이 빠른 이동이 가능했다. 나무와 바위를 휙휙 지나치자 재영은 머지않아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산왕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들개와 삵을 적절히 섞어놓은 신체구조 덕분에 산악지형에 유리한 산왕이지만, 그것은 동급의 적수를 상대할 때에나 유효한 말이었다. 산왕은 추격이 이렇게 빠를 거라고 생각지 못했는지 급격히 방향전환을 하며 재영을 따돌리려 했다. 하지만 재영이 작정하고 마고의 힘을 사용하는 이상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힘, 공격사거리, 이동속도, 무엇 하나 뒤지지 않으니 일방적인 술래잡기에 지나지 않았다.


첫 번째 목표물에 가까워지자 재영은 장도리를 힘껏 던졌다. 살기를 느꼈는지 산왕은 재빨리 몸을 틀어 장도리를 피했다. 그러나 장도리가 날아간 곳에는 땅에서 돋아난 촉수가 기다리고 있었고, 촉수는 장도리를 받아내 곧바로 다시 던졌다.

피했던 공격이 다시 돌아오자 산왕은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머리가 부서져 절명했다. 이렇듯 사각에서 들어오는 공격에는 제아무리 민첩한 산왕이라도 별 도리가 없었다.


SNL을 사용하면서 재영에게 깃든 혼돈의 속성이 증가한 탓일까. 마고의 촉수를 조종하는 것이 전보다 훨씬 부드럽고 자연스러웠다. 이젠 마치 본인의 팔다리를 가누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재영은 사냥의 성취감을 만끽할 틈도 없이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다른 두 마리의 위치는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 마리는 거리상으로 가까웠고, 다른 한 마리는 비교적 멀었지만 옆 마을을 습격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전자부터 뒤쫓으면 소모시간을 단축해 김윤아를 더 빨리 도우러 갈 수 있었고, 후자부터 뒤쫓으면 동선 낭비로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옆 마을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타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사항이지만 한가롭게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마을 쪽에서 이미 소란이 시작되고 있었다. 마을의 개들이 산왕의 존재를 느끼고 짖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잠시 뒤에는 사람의 비명소리도 들려왔다.


재영의 발걸음은 마을로 향했다. 애송이이긴 하지만 김윤아는 명색이 정화자다. 그러므로 일반인만 있는 마을 쪽을 도우러 가야했다. 김윤아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그것이 재영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으아아악!”


산왕에게 다리를 물린 중년남성이 후라이팬을 휘두르고 있었다. D급에 불과한 산왕에겐 쇠붙이를 이용한 타격이 나름 유효할 수도 있지만, 그건 타격이 성공했을 때에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아무리 D급이어도 막무가내로 휘두른 후라이팬에 맞아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침착하게 산왕의 콧잔등을 때렸다면 물린 다리가 풀려났겠지만, 그저 산왕의 눈앞에서 붕붕 휘두를 뿐인 후라이팬은 되려 산왕의 성질을 돋웠다. 화가 난 산왕이 거칠게 고개를 흔들자 남성의 허벅지살이 뭉텅 뜯어졌다.


고통으로 정신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와중에도, 남성은 산왕으로부터 외국인 아내와 늦둥이 아들을 보호하려고 필사적이었다. 절반 넘는 동네사람들이 마을을 떠날 때 동참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이미 무력화된 남성은 산왕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산왕은 남성의 목덜미를 물어뜯어 죽인 뒤 모자에게 향했다.

외국인 여성은 모국어로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며 어린 아들을 자신의 몸으로 보호하려 했다. 그러나 산왕에게 인간의 모성애는 관심 밖이었다. 그저 조금이라도 더 피맛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 이 마을에서만 이미 4명의 사망자를 낸 산왕은 모자에게 달려들었다.


“꺄아아악!”


그 순간 산왕과 모자 사이에 커다란 물체가 끼어들었다. 달려오던 관성 때문에 산왕은 물체에 얼굴을 처박고 뒤로 나동그라졌다. 물체의 정체는 바람막이의 후드와 일회용 마스크로 정체를 숨긴 재영이었다. 사람들 모습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마고의 힘은 숨긴 상태였다.

어린아이가 보고 있는 까닭에 재영은 장도리를 이용한 잔혹한 공격 대신 주먹질과 발길질로 산왕을 자근자근 분쇄해나갔다. 산왕은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뒷다리가 분질러진 까닭에 별다른 저항도 못해보고 척추가 두 동강 나 사망했다.


“고, 고마워요.”


여성이 어눌한 한국어로 감사를 표했다. 아이도 아비의 죽음에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울음을 참으며 재영에게 고개를 숙였다.

재영은 인사를 제대로 받아주지도 않고 마지막 산왕을 처리하러 즉시 자리를 떴다. 김윤아의 집 방향에서 커다란 소란이 감지되어 마음이 급해진 탓이었다.


마지막 산왕은 기척을 감지하기 힘들 정도로 멀어져 있었다. 놈은 인근의 작은 마을을 습격하는 대신 인구가 많은 읍내로 향하는 중이었다.

읍내는 인근 마을에 비해 인구가 많은 반면, 상주 병력은 대도시에 비해 거의 없다시피 하기에 소형종 괴물이 난입했을 때 순식간에 피해가 커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재영은 바삐 움직였다. 산왕이 읍내에 도착하기 전에 처리해야 했다. 내공의 절반이상을 달리기에 쏟아 부은 뒤에야 재영은 가까스로 놈을 따라잡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체력분배를 고려하지 않은 연이은 전력질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산왕은 감히 재영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촉수로 일으켜 퇴로를 차단한 뒤 거리를 좁혀 발을 내지르자 마지막 산왕의 낯짝이 함몰됐다.


“허억, 허억······”


산왕을 모두 처리했지만 잠시 숨을 고를 여유도 없었다.

재영이 김윤아의 집에서 출발한 지 15분 이상 지나있었다. 장애물을 뛰어넘어 일직선으로 달린다고 가정해도 다시 돌아가려면 3분 이상 걸렸다. 말이 쉬워 3분이지, 사투를 벌이고 있을 김윤아에게는 몇 번이나 죽음의 위기를 맞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일분일초라도 아껴서 김윤아를 도우러 가야했다.




김윤아의 집에 가까워지자 뭉뚱그려 들렸던 요란한 소리기 확연히 구분되었다.

김윤아의 높은 고함소리, 산왕이 위협적으로 울부짖는 소리, 소의 낮은 울음소리, 돌담이 우지끈 무너지는 소리, 살가죽과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

들리는 소리만으로도 난전이 벌어지고 있음이 훤히 보였다. 목청의 크기만으로는 김윤아가 밀리지 않았지만 발악에 가까운 고함인지라 실제로는 궁지에 몰려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마침내 김윤아와 산왕들의 모습이 육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김윤아는 온몸이 피투성이인 상태로 양손에 각각 쇠스랑과 낫을 들고 있었다. 자루가 긴 쇠스랑으로 거리를 유지하고 가까이 접근하면 낫으로 견제하는 식으로 싸움을 이어온 모양이었다.


다섯이었던 산왕은 세 마리만 멀쩡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나머지 두 마리 중 하나는 완전히 숨이 끊어져있었고 다른 하나는 옆구리에 박힌 호미 때문에 곧 죽을 목숨이었다. 그럼에도 산왕은 전혀 겁먹은 기색이 아니었다. 산왕이 아직 3마리나 멀쩡한 데 비해 김윤아는 처참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김윤아는 붉은 곳보다 붉지 않은 곳을 찾는 게 더 힘들 정도로 전신이 피투성이였다. 어깨에 박힌 엄지손가락 크기의 허연 물체는 산왕의 송곳니였고, 큰 상처가 난 옆구리에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쉼 없이 산왕을 견제했을 양팔은 산왕의 발톱에 피부가 갈기갈기 찢어져있었다.

뿐만 아니라 김윤아의 뒤편에는 피 웅덩이 한 가운데에 박덕자가 누워있었는데, 목을 공격당해 이미 절명한 듯 보였다.


김윤아는 탈진하기 직전이었다. 20분 가까이 쉬지 않고 사투를 벌이는 일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엄청난 체력을 소모했다. 정화자로 각성했다고 해도 김윤아는 살면서 제대로 된 단련을 받아본 적 없는 평범한 농부에 불과했다.

산왕 세 마리는 그런 김윤아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낫을 든 팔이 후들거리다 못해 조금씩 아래로 쳐지자 기회를 엿보던 산왕들은 일제히 움직였다. 산왕 한 마리가 김윤아의 반격을 감수하고 몸을 낮춰 달려들었다. 김윤아는 하반신을 보호하기 위해 시선과 무기의 방향을 아래로 틀었다. 하지만 김윤아가 대응하려한 산왕의 공격은 위장공세였다.

진짜 공격은 등 뒤에서 들어왔다. 체력 부족으로 집중력이 떨어진 김윤아는 등 뒤에서 덮쳐오는 산왕의 존재를 깨닫고 뒤늦게 반격을 가하려 했으나 이미 산왕의 몸통이 코앞에 들이닥친 상황이었다. 김윤아는 산왕의 몸통박치기에 부딪혀 넘어졌고, 그 바람에 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놓치고 말았다.


“꺄아아악!”


명색이 정화자인만큼 손발도 위협적인 무기가 될 수 있지만, 넘어진 상태에서 양팔을 산왕 두 마리에게 물린 채로는 꼼짝할 수 없었다. 그나마 기가 몸을 보호한 덕에 산왕의 이빨이 팔을 아예 끊어버리는 것은 면했지만, 더 큰 문제는 남은 한 마리가 김윤아 위에 올라타 목을 물어뜯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제발······!’


단 수십 초면 재영이 도착해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김윤아에겐 그 몇 초의 여유조차 없었다. 산왕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김윤아의 목을 파고들기 일보직전이었다.


음머어어─


무너져있던 외양간이 들썩이더니 그 아래에서 늙은 암소가 몸을 일으켰다. 등에는 나무파편이 박혀있고, 산왕의 발톱에 찢어진 아랫배에선 내장이 흘러나와 있었다. 영락없는 산송장 몰골이지만 일시적으로 죽음을 딛고 일어선 암소의 위세는 예사롭지 않았다.

두두두, 암소는 대지를 진동시키며 김윤아를 물어뜯으려는 산왕에게 달려들었다. 암소의 맹렬한 기세에 팔을 물고 있던 산왕 두 마리는 몸을 피했으나, 목을 물어뜯으려던 산왕은 피하지 않다가 소뿔에 정면으로 받혔다. 늙고 부상당한 암소지만 육중한 체중은 그 자체만으로 대단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들이받힌 산왕은 붕 떠서 수 미터를 날아가 김윤아의 집에 처박혔다.


산왕이 비록 이계의 괴물이지만 비교적 소형종인데다가 체중은 250kg에 불과했다. 이는 어지간한 맹수의 평균체중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다 자란 암소의 체중이 500kg을 넘는 것에 비하면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작정하고 맞대결을 하면 날쌘 산왕이 손쉽게 이기겠지만, 그게 정면으로 들이받혀도 무사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들이받힌 산왕은 제 발로 집에서 걸어 나오긴 했지만 치명상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남은 두 마리는 곧장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암소에게 달려들었다. 암소는 기세를 잃지 않고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이미 큰 부상을 입고 있던 까닭에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산왕에게 목을 물어 뜯겨 죽음을 맞이했다.


산왕들이 신나게 암소를 해체하는 동안, 재영은 무사히 김윤아에게 도착할 수 있었다. 재영이 김윤아를 부축하려는 찰나, 김윤아의 몸에서 예기치 않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깊은 지하에서 흙이 썩는 듯한 음습한 기운이었다. 재영은 전생에서 이러한 기운을 몇 번 겪어본 적 있었다.

그것은 극도로 분노한 대지정령의 기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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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SNL - 57 19.07.10 44 1 14쪽
57 SNL - 56 19.07.04 66 1 16쪽
56 SNL - 55 19.06.28 75 1 16쪽
55 SNL - 54 19.06.22 61 1 11쪽
54 SNL - 53 19.06.16 98 1 14쪽
53 SNL - 52 19.06.10 77 1 18쪽
52 SNL - 51 19.06.04 61 1 11쪽
51 SNL - 50 19.05.30 109 1 12쪽
50 SNL - 49 19.05.24 87 1 18쪽
49 SNL - 48 19.05.18 109 1 17쪽
48 SNL - 47 19.05.12 97 1 15쪽
47 SNL - 46 19.05.06 112 1 19쪽
46 SNL - 45 19.05.02 95 2 12쪽
45 SNL - 44 19.04.28 112 1 13쪽
44 SNL - 43 19.04.24 111 1 17쪽
43 SNL - 42 +1 19.04.20 125 3 18쪽
42 SNL - 41 19.03.04 147 2 15쪽
41 SNL - 40 19.02.24 167 3 18쪽
40 SNL - 39 19.02.16 188 3 17쪽
39 SNL - 38 19.02.10 158 3 17쪽
38 SNL - 37 19.02.06 173 3 14쪽
37 SNL - 36 19.01.30 160 5 11쪽
36 SNL - 35 19.01.24 169 4 15쪽
35 SNL - 34 19.01.22 192 2 17쪽
34 SNL - 33 19.01.18 191 3 14쪽
» SNL - 32 19.01.16 215 4 17쪽
32 SNL - 31 19.01.14 236 5 16쪽
31 SNL - 30 19.01.12 239 5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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