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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아님 님의 서재입니다.

S.N.L (Save and Load)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러아님
작품등록일 :
2018.11.17 15:37
최근연재일 :
2019.07.16 14:09
연재수 :
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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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90,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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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1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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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SNL - 38

DUMMY

“저기······ 빨리 끝나면 도와주러 와야 해!”


재영이 산왕을 쫓아 떠난 직후, 김윤아도 한 손에 낫을 들고 집 방향으로 뛰어갔다.

처음엔 왠지 자신이 있었다. 정화자가 된 본인의 힘을 믿은 것인지, 아니면 재영이 너무나 쉽게 산왕을 때려잡아서 만만해보였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이기진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시간을 끄는 것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홀로 어두운 산길을 달리는 동안 자신감은 점차 사라졌다.

집에 도착해 으르렁거리는 산대왕을 대면한 후에는 하마터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산대왕은 전체적으로 호랑이를 닮은 괴물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호랑이 가죽을 갈가리 조각낸 다음 다시 기워놓은 듯한 어지러운 무늬가 있다는 것과 마구잡이로 자라난 날카로운 이빨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있다는 것이었다.

입이 제대로 다물어지지 않는 치아 구조 때문에 입가에 침이 질질 흘렀고, 맹독성의 타액은 땅에 떨어지면서 치이익 연기를 피워 올렸다.


김윤아는 꿀꺽 침을 삼켰다. 두려움 이전에 후회가 밀려들었다.

고작 낫 한 자루 들고 저 괴물을 상대해야한다고? 다름 아닌 내가? 나는 왜 이 자리에 서있는 걸까. 나 주제에 왜 나선 걸까.

기세가 꺾이자 공포가 팽배했다.


‘이건 말도 안 돼. 바로 살해당해버릴 거야. 기회가 있을 때 잔말 않고 도망갔어야 했어······.’


조금이라도 재영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 제 발로 이 자리에 오게 만든 몇 분 전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지금이라도 도망칠까? 하지만······’


김윤아가 공격도 도망도 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산대왕은 김윤아의 주위를 빙빙 돌며 탐색전을 펼쳤다. 김윤아가 평범한 인간이 아닌 것을 눈치 챘는지 낮게 그르렁거릴 뿐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에 맞춰 김윤아도 제자리에서 돌며 산대왕에게 등을 내주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김윤아의 자세는 어정쩡하다 못해 초보티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탐색전은 오래가지 않았다.

김윤아가 크게 위협적인 적이 아니라는 판단이 서자 산대왕은 고양이가 동물 특유의 사냥자세를 취했다. 상반신을 한껏 낮춰 언제라도 튀어나갈 수 있는 자세였다.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던 김윤아가 바보같이 발을 헛디뎌 균형을 잃는 찰나, 산대왕이 몸을 날렸다.

막기는 불가능했다. 애초에 낫이라는 물건이 적의 공격을 막기에 용이한 구조도 아니었고, 체급차이가 워낙 심해 막더라도 뒤로 튕겨나갈 뿐이었다.

체급차이에 비해 김윤아가 가진 능력은 보잘 것 없었다. 호흡을 통해 체내에 쌓인 미량의 기로 일반인보다 빠르고 강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게 전부였다.


다행히 반사신경 만큼은 어지간한 일류 격투가를 상회했기에 김윤아는 땅바닥을 굴러 산대왕의 첫 번째 공격을 피해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산대왕의 공격범위 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산대왕이 연이어 발톱을 휘두르자 몸을 비틀고 낫으로 맞받아쳤음에도 김윤아는 옆구리에 작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쩍 벌어진 피부에서 피가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김윤아는 자기 몸에서 피가 이렇게나 많이 흐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22년을 평온하게 살았지만 줄곧 농사일을 해온 까닭에 다양한 부상을 입었었다. 뼈가 부러지거나 낫질을 하다가 손가락을 벤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겁이 날 정도로 많은 출혈은 처음이었다.


“으아아아아!”


김윤아는 두려움으로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김윤아의 비명을 위협으로 오해한 산대왕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포효했다.


“크러허엉!”


그러나 산대왕의 의도와는 다르게 공황상태였던 김윤아는 포효 덕에 정신을 차렸다. 두려움으로 눈앞이 캄캄해졌다가 포효로 코앞에 있는 적의 존재가 명확히 인식되자 긴장감과 집중력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비록 태어나서 싸움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김윤아지만 이대로 수세에 몰리기만 해서는 재영이 도착하기 전에 살해당하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필사의 각오로 전투에 임해도 살아남기 빠듯할 지경인데 시간만 끌려는 느슨한 각오로는 산대왕의 발톱에 간단히 찢어발길 터였다.


김윤아는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었다. 죽음에 대한 거부감이 적에 대한 증오로 치환되어 김윤아를 담금질했다.

기 활용법을 모르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격렬한 감정에 맞춰 체내에 축적된 기도 끓어올랐다. 제대로 된 정화자라면 절대로 기가 감정에 따라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격한 감정으로 기가 역류하면 사용자 본인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 사용법을 연마할 생각이 있었다면 우로보로스 시스템을 통해 얼마든지 알 수 있는 간단한 정보지만, 김윤아는 그동안 관심이 없었기에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김윤아는 원체 얌전한 성격이라 감정의 격류 속에서도 비교적 침착함을 유지했다. 거기다가 초심자의 행운마저 따라준 덕분에, 격해진 감정은 아무런 부작용 없이 정체되어있던 기를 원활히 흐르게 하는 효과를 일으켰다.

물론 당장만 그렇다는 것이고 감정이 더욱 격해졌을 때 어떤 부작용이 김윤아의 몸을 망칠지는 알 수 없었다.


-체내의 기가 활성화됩니다. 현재 활성도는 68%입니다.

주의하십시오. 제대로 통제되지 않은 기는 정화자 본인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묘하게 무기질적인 우로보로스의 메시지가 출력됐다. 김윤아가 우로보로스의 메시지를 접한 것은 이번이 고작 세 번째였다.

첫 번째는 막 각성했을 때였다. 늦은 밤 TV로 슬픈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몸에 흐르는 전율을 느꼈다. 그것이 김윤아의 각성이었다. 그 때 우로보로스가 각성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죽음의 위기를 통해 각성한 공석이 알았다면 빽 소리를 지르고 펄쩍 뛸 일이지만, 각성의 계기는 사람마다 제각각이었다. 김윤아처럼 시시한 계기로 각성한 정화자의 수는 의외로 적지 않았다. 대신 공석과 같은 이들이 강해지는 속도는 훨씬 빨랐다. 강함에 대한 욕구, 즉 마음가짐의 차이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각성한 이후 자신에게 발생한 변화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였다. 몇날며칠을 기숙사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자 우로보로스가 어엿한 정화자로서 행동할 것을 주문했다. 김윤아는 그 메시지를 못 본 척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망치듯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만큼이나 우로보로스를 두려워했던 김윤아지만 이 순간만큼은 우로보로스가 더없이 반가웠다. 누군가가 말을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없던 용기가 샘솟았다.

물론 우로보로스의 메시지가 음성과 문자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실상은 외부 신호가 뇌에 직접 작용하여 만들어낸 공감각적 환각의 일종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산대왕이 공격을 시도하려 뛰어오르자 김윤아는 또 땅바닥을 굴렀다. 그러나 이번 구르기는 회피용이 아니라 반격용이었다. 최대한 몸을 낮춘 채 산대왕의 배 아래로 파고들었을 때 김윤아의 낫이 휘둘러졌다.

아쉽게도 효과는 없었다. 두꺼운 털가죽과 근육의 벽에 가로막혀 제대로 피해를 입히지 못했고, 오히려 김윤아의 등에만 산대왕의 발톱자국이 생겼다.

김윤아는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칼날로도 베기 힘든 산대왕의 가죽을 날이 무딘 낫으로 베려고 한 것이 잘못이었다. 낫이 베는 용도로 만들어진 것은 맞지만, 풀을 써는 것보다는 나무를 쪼갤 때의 감각으로 내리찍었어야 했다.


이후로도 김윤아는 간간히 반격을 시도했지만 싸움은 여전히 산대왕의 일방적인 공세였다. 그나마 김윤아가 계속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산대왕보다 리치가 길었기 때문이다. 산대왕이 앞발을 뻗은 길이는 낫을 든 김윤아의 팔 길이보다 조금 짧았다. 그 덕분에 힘과 민첩성에서 상대가 되지 않음에도 김윤아는 이만큼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수차례 공격을 피한 김윤아는 산대왕이 앞발로 공격할 때마다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발에 무게를 싣기 위해 두 뒷발로 일어서는 동작을 취하는 것이다. 네발짐승이 두 발로 일어섰을 땐 당연히 무게중심이 흔들리고 빠른 대처가 불가능해진다.

김윤아는 처음으로 승산을 가늠했다. 앞발 공격을 피할 가능성, 산대왕의 품속으로 안전하게 파고들 확률, 자신의 공격으로 산대왕이 입을 피해량 등을 빠르게 머리에서 계산했다. 변수가 너무 많은 방정식이지만 시도할만한 가치는 있다고 판단됐다.

재영이 언제쯤 도우러 올는지 알 수 없었고, 치명적인 부상은 없지만 출혈량이 많아 몸에 힘이 빠지고 있었다. 계속 도망만 다니다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목숨을 잃을 형국이었다.


‘해보는 수밖에 없어.’


침착하게 다음 공격을 기다린 김윤아는 산대왕이 앞발을 들어 올린 순간 기회를 잡았다.

산대왕은 이번에도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가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다시 네 발로 땅을 딛는 자세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 빈틈이 생겼다.

김윤아의 움직임은 꽤나 불안했지만 정화자의 초인적인 반사신경 덕에 산대왕의 빈틈에 무사히 뛰어들었다.


‘파고든다!’


김윤아는 앞발이 땅에 닿기 전에 산왕의 턱밑까지 파고들었다. 이대로 몸통을 지나 뒷다리 사이로 빠져나간 다음 가급적이면 항문 쪽을 공격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괴물이어도 항문까지 단단하진 못할 테니까.


산대왕의 가슴팍 바로 아래를 지나치는 찰나에 김윤아는 머리에 무언가 닿는 걸 느꼈다.

산대왕이 의도적으로 흘린 걸쭉한 독성타액이었다. 머리에 떨어진 산대왕의 타액이 김윤아의 얼굴로 주륵 흘러내렸다.


“아?”


치이익, 강력한 독성에 생살이 타들어갔다.


“끼아악!”


이마에서 왼쪽 귀와 광대뼈까지 얼굴의 1/3이 독성 타액에 뒤덮였다. 김윤아는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왼눈을 질끈 감고 공격을 이어나가려 했다. 그러나 이미 자세가 무너진 터라 김윤아의 낫질보다 산대왕의 뒷발차기 타이밍이 한발 빨랐다.


무지막지한 충격량에 김윤아는 힘없이 날아가 집 앞 오동나무에 부딪혔다.

산대왕이 발굽동물이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산대왕의 발바닥에 육구 대신 발굽이 있었다면 김윤아는 가슴이 주저앉아 즉사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산대왕이 이빨 사이로 타액을 쏘아보냈다.

뇌진탕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김윤아는 겨우 나무 뒤로 피하긴 했지만, 독성 타액을 맞은 오동나무가 순식간에 타들어가 김윤아를 향해 쓰러졌다. 뇌진탕의 후유증으로 몸을 피하는 게 늦어져 김윤아의 오른발이 나무에 깔리고 말았다.


산대왕이 다가왔다. 멀리서 타액을 뱉어 끝을 볼 수도 있지만 직접 피 맛을 볼 작정이었다.

김윤아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얼굴의 부상 때문에 왼쪽 눈은 제대로 뜰 수도 없고, 오른발은 나무에 깔려 움직임마저 봉쇄당했다. 상체 힘만으로는 쓰러진 오동나무를 들어 올릴 수 없었고, 유일한 무기인 낫도 놓쳐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떨어져있었다.


산대왕이 가르릉거리며 김윤아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언제라도 잡아먹을 수 있는 먹이를 앞에 두고 장난을 치는 것이다. 산대왕이 사람이었으면 틀림없이 비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으리라.

갑자기 산대왕의 귀가 쫑긋거렸다. 어떤 소리가 산대왕의 예민한 청각에 걸려들었다.

곧 김윤아의 귀에도 소리가 들렸다. 육중한 발굽소리였다.


두두두─ 늙은 암소가 이쪽으로 뿔을 겨눈 채 달려오고 있었다.

산대왕의 눈이 호기심으로 번들거렸다. 산대왕 입장에서는 먹잇감이 스스로 아가리 안에 들어오는 꼴이었다.

뜻밖의 등장에 놀란 김윤아가 소리를 질렀다.


“현숙아!”


산왕을 일격에 날려버렸던 박치기가 산대왕에게 작렬했다. 산왕처럼 뒤로 튕겨져 날아가진 않았지만 옆구리를 들이받힌 산대왕은 대단히 고통스러워했다. 충분한 가속도를 받은 500kg의 충격량이 뿔끝에 모아졌으니 옆구리에 커다란 구멍이 나지 않은 게 오히려 용할 정도였다.

그러나 산대왕도 쉽게 당해주지만은 않고 발톱으로 현숙이의 등가죽에 큰 상처를 냈다. 이어서 이빨로 목을 물어뜯으려 했지만 현숙이가 오히려 뿔을 들이미는 바람에 산대왕은 목덜미에 침 몇 방울만 흘리고 거리를 벌려야했다. 강력한 독성을 가진 타액이지만 겨우 몇 방울로 두터운 털가죽을 녹일 정도는 아니었다.


산대왕이 물러서서 탐색전을 벌이는 동안 현숙이는 김윤아에게 다가갔다. 혼자의 힘으로는 무리지만 둘이 동시에 힘을 쓰자 오동나무가 들어졌다. 발을 빼낸 김윤아는 쓰러지듯 현숙이에게 몸을 기댔다.


“나, 날 도와주러 온 거야?”


김윤아는 현숙이의 펄떡이는 심장소리를 느꼈다. 그 힘찬 맥동에 두려움이 씻겨나가고 마음이 진정됐다.

김윤아는 현숙이의 콧잔등에 손을 올렸다. 닿는 순간 정전기 같은 찌릿함이 느껴졌다. 말초신경을 기분 좋게 자극하는 감각이었다. 두려움이 빠져나간 자리에 투지가 차올랐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낫을 주워든 김윤아는 현숙이의 등에 올라탔다. 나무에 깔리면서 발목이 부러졌지만 김윤아는 계속 싸울 작정이었다.

현숙이를 마지막으로 탄 게 9살 때였다. 자그마치 13년 만이다. 그러나 줄곧 타고 다녔던 것처럼 일체감이 느껴졌다.


김윤아의 기가 현숙이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정작 기를 보내주는 김윤아 본인은 인식하지 못했지만, 효과를 보는 현숙이에겐 빠르게 변화가 나타났다. 등에 난 발톱상처가 아물기 시작했고 굳센 네 다리에는 더욱 강건한 힘이 맴돌았다.


“가자!”


발굽이 대지를 박찼고, 흙먼지 다지는 소리가 두두두, 위협적으로 울려 퍼졌다.

산대왕도 지지 않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윽고 현숙이의 뿔과 산대왕의 이빨이 상대방의 치명상을 노리며 충돌했다.


인간을 태운 소와 호랑이의 정면 싸움에서 승자는 소였다.

산대왕은 현숙이의 목을 물어뜯기 전에 앞발로 김윤아를 견제했지만 발톱은 낫질에 모조리 막혔다. 오히려 무시무시한 기세를 머금은 낫이 산대왕의 눈을 노리고 역습을 시도했다. 얼굴을 망가뜨린 것에 대한 김윤아의 복수였다.


산대왕은 황급히 대가리를 틀어 낫질을 피했다. 거기까진 좋았으나 그 바람에 현숙이의 목을 물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고, 현숙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산대왕의 가슴에 뿔을 박아 넣었다. 이어서 두꺼운 목 근육으로 고개를 치켜들자 산대왕의 몸이 허공에 붕 떠올랐다.


길짐승이 발이 땅에서 떨어지면 무방비해지는 것은 필연이었다. 산대왕은 독성 타액으로 어떻게든 반격하려 했지만 김윤아가 한발 더 빨랐다. 김윤아의 낫이 산대왕의 이빨을 박살내고 입 안에 박혔다.


크허어엉─


땅바닥에 떨어진 산대왕이 고통의 울음을 토해냈다. 그러나 한가롭게 아픔을 달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이야아아!”


김윤아의 기세등등한 함성과 함께 현숙이가 다시 돌진해온 것이다.

산대왕으로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정면 힘 싸움으로는 현숙이가 산대왕을 찍어 눌렀고, 빈틈을 노리는 자잘한 공격은 김윤아의 낫질에 모조리 가로막혔다. 따로따로였으면 한입거리밖에 되지 않는데 한꺼번에 덤벼드니 손쓸 방법이 없었다.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산대왕은 도주를 감행했다. 부상 입은 몸이지만 이동속도만큼은 소나 인간의 뜀박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산대왕이 달리는 방향 저 멀리에서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노인을 등에 업은 젊은 여성이었다.


산대왕은 패배의 분노를 풀고자 그들에게 달려갔다. 호기롭게 발톱을 세워 산산조각 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간 산대왕은 뒤늦게 젊은 여성에게서 풍겨오는 죽음의 냄새를 감지했다.

코가 막힐 정도로 짙은 산왕의 피 냄새와 끈적하게 피어오르는 혼돈의 기운. 산대왕은 겁먹고 방향을 틀었지만 젊은 여성의 발길질이 더 빨랐다.


그녀의 발길질은 걷어찬다기보다 산대왕을 뒤로 밀어낸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가볍게 힘을 준 모양새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산대왕은 현숙이의 뿔에 당했을 때처럼 공중에 떠올라 왔던 방향으로 밀쳐져 날아갔다.


십여 미터를 날아간 산대왕은 땅바닥에 충돌한 후에도 몇 바퀴 구른 뒤에야 멈출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산대왕의 눈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단단한 소발굽이었다.

높게 들어올려진 발굽이 떨어져 내렸다.

산대왕의 머리통이 부서졌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다.


“할머니! 재영아!”


두 사람을 발견한 김윤아가 소리 질렀다. 승리에 대한 기쁨보다 무사한 모습으로 나타난 두 사람의 모습이 김윤아에겐 더 감격적이었다. 현숙이의 등에서 내린 김윤아는 절뚝거리며 걸어가 그들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어흑, 으으, 흐아아앙!”


하루 저녁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모두 극복해냈다.

살아남았다는 기쁨이 울음으로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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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SNL - 55 19.06.28 75 1 16쪽
55 SNL - 54 19.06.22 61 1 11쪽
54 SNL - 53 19.06.16 98 1 14쪽
53 SNL - 52 19.06.10 77 1 18쪽
52 SNL - 51 19.06.04 61 1 11쪽
51 SNL - 50 19.05.30 109 1 12쪽
50 SNL - 49 19.05.24 87 1 18쪽
49 SNL - 48 19.05.18 109 1 17쪽
48 SNL - 47 19.05.12 97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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