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천원이가(2)
안녕하세요. 마왕의 바둑을 시작합니다. 공모전 참가합니다.
지연의 눈이 습기로 가득찼다. 7년 전 사건 이후로 처음으로 보는 엄마였다. 그녀가 자신의 엄마인 김유선에게로 다가갔다. 하지만 지연의 엄마 김유선은 자신의 딸을 품을만한 마음의 공간이 없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더 이상 설득해봐야 소용 없겠네요. 다음에 다시 오지요.”
김유선은 이준후에게 통보하듯 말한뒤, 딸인 지연을 무시한 채 문을 향해 갔다. 그녀에게 그녀의 딸은 안중에도 없었다. 다만 문쪽에는 그녀의 흥미를 끌만한 존재가 있었다. 바로 준혁이었다.
보고를 받은 바로는 기억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둑을 배우는 속도가 상상이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바둑뿐만 아니라 다른 두뇌스포츠에 대한 재능도 굉장히 뛰어나다고 했었다.
‘이녀석이 바로 강준혁이라는 녀석이군.’
잠시 서서 준혁을 바라보는 그녀. 그녀는 마치 마트에서 고기를 고르듯 냉정한 눈빛으로 준혁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고는 그녀는 다시 발걸음을 떼어 문을 나섰다.
그리고 그때.
와락.
지연이 나가려는 김유선을 안으며 말했다.
“엄마... 가지마.”
오랜만에 느껴보는 엄마의 체온. 이지연은 엄마의 품에 조금이라도 더 안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마음일 뿐. 김유선은 7년만에 보는 자신의 딸이 그녀를 안고 있었음에도 냉랭한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를 안고 있는 딸의 팔을 걷어내 떼어버렸다.
“네 할아버지를 설득하기 전에는 내게 딸은 없어.”
이말을 남기고 김유선은 사라졌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갔다. 지연은 7년전 단란했던 그녀의 가족을 떠올리며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그런 손녀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기성 이진후가 지연을 품에 안으며 다독였다.
“괜찮다. 이것아. 그만 울거라.”
그렇게 두 노손이 서로를 위로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말했다.
“아무래도 나중에 와야겠군.”
지연을 따라 들어온 준혁이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오늘은 방문할 분위기가 아닌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성 이진후는 그런 준혁에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다. 잠깐만 기다리거라.”
약속이란 생명이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이진후의 가치관이었다. 상대가 나이가 어리고 적고는 관계없었다. 한번 한 약속은 지키고야 마는게 바로 이진후였으니까. 일단 준혁을 대기시킨 그는 손녀인 지연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그녀가 어느정도 진정된 듯 하자 그는 준혁을 팔각정으로 안내했다. 팔각정으로 가는 중에 이진후가 준혁에게 말했다.
“못난 모습을 보였구나.”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해해주니 고맙구나.”
팔각정에는 바둑판과 바둑알이 준비되어 있다. 이준후는 이곳 팔각정을 좋아했다. 월광지의 정경을 보며 바둑을 둘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두 사람. 드디어 이준후가 그토록 고대하던 예비손녀사위와의 대국이 성사되었다.
“몇점을 놓을테냐.”
이진후가 물었다. 그는 준혁의 성향을 알아볼 요량으로 지도대국을 둘 생각이었다. 그는 바둑이 인간의 마음을 펼쳐놓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사람이 바둑을 두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심리라던가 삶을 들여다 볼수가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준혁이 대답했다.
“호선으로 두겠다.”
“뭣. 하하하하.”
이진후가 호탕하게 웃었다. 준혁의 패기에 감탄했기 때문이다.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감히 바둑 일인자라고 하는 자신에게 호선으로 두자고 할줄은 말이다.
호선은 다른 말로 맞바둑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대등한 사람끼리 두는 바둑이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준혁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녀석의 눈빛이 보인다. 어린듯 보이는 외관과 달리 그 눈빛에는 무엇이 담겨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눈은 그 사람의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이진후는 궁금했다. 이 조그만 녀석의 마음에는 무엇이 담겨있을까 하고 말이다.
“좋다. 호선으로 두도록 하자. 돌가리기는 할 필요없이 네가 두고 싶은 돌을 고르거라.”
“흑을 잡도록 하지.”
그렇게 흑백이 결정되었다.
이윽고 첫수. 준혁은 천원에 두었다.
‘우주의 중심은 나다.’
‘네놈의 바둑을 보자.’
그렇게 그들의 대국이 시작되었다.
준혁은 느낄 수 있었다. 돌에 의해 전해지는 압박감. 그는 엑시스 오퍼레이터를 가동했다. 그리고 이진후의 수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엑시스 오퍼레이터는 이지연, 설가연, 성준만, 김학수 등등 그가 상대했던 모든 이들의 데이터를 총 망라하여 취합한 끝에 이진후의 수에 대해 대응하기 위한 수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대결이 아닌 지도. 굳이 이기려고 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 자신도 이자리에서 엑시스 오퍼레이터를 사용하는 것이 왠지 내키지 않았다. 준혁이 둘차례. 이진후는 준혁의 소목점에 한칸 높은 걸침으로 준혁의 응수타진을 물어본 상태였다.
준혁은 가동했던 엑시스 오퍼레이터를 중지했다. 이지연의 데이터도 설가연의 데이터도 김학수의 데이터도 모든 데이터가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럼에도 그는 돌을 집어올렸다.
‘이 대국은 나의 바둑을 두겠다.’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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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허. 허허허허허허.”
깊은 밤 팔각정에 홀로 남은 이진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미 상대인 준혁은 수담을 마치고 돌아갔다. 하지만 남아있는 이진후는 여전히 팔각정에 남아 있었다. 그런 그의 시선은 준혁과의 대국이 벌어졌던 전장인 바둑판에 고정하고 있었다.
바둑은 당연히 이진후의 승리였다. 그것도 엄청난 대승. 이진후는 준혁의 대마를 모조리 잡아들여 승리를 따낸 것이다. 하지만 이진후에게 그런 승리는 상관없었다. 어차피 바둑이야 그가 이기는 것이 기정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준혁과의 대국에서 준혁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통째로 하나인가...”
그렇다 통째로 하나. 그것이 바로 이진후가 느낀 준혁의 성향이었다. 모 아니면 도. 모두 살거나 모두 죽는다.
모두 사는 것과 모두 죽는것은 극과 극이다. 하지만 극과 극은 통한다. 모두 살고 모두 죽는 것. 결국 모두 통째로 하나라는 큰 틀에서는 같은 의미였다.
분명 오늘 준혁과 둔 바둑으로 판단하기에 준혁의 기력은 이런 통째로 하나라는 기풍을 살리기에는 약했다. 하지만 이진후는 생각했다. 만약 이 바둑이 완성이 된다면 꽤나 무서운 바둑이 될것이라고 말이다.
부족한 필력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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