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대표선발전(3)
안녕하세요. 마왕의 바둑을 시작합니다. 공모전 참가합니다.
대국은 기력이 높은 쪽이 백을 잡는다는 원칙하에 돌가리기를 생략하고 준혁이 백, 기원대표들이 흑을 잡았다. 심판은 직원인 조지훈이 맡았다. 조지훈은 능숙하게 대국에 앞서 각 대국자에게 규칙에 대해 설명하였다.
“시간은 각 대국자 30분. 초읽기 30초 3회. 덤 6집 반입니다. 대국에 앞서 대국자들 인사.”
“잘 부탁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그렇게 다면기로 펼쳐지는 대국이 시작되었다. 준혁의 정면에 앉은 노인 김성필은 하얀 이를 드러내곤 씨익 웃었다.
‘아무리 기력차이가 나도 다면기는 일반 대국과는 다르지. 후후후. 꼬마야. 9만원이면 만용의 댓가로는 싸게 치르는 거란다.’
노인 김성필은 그들의 승리를 자신했다. 왜냐하면 일반 대국과 다면기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었다. 다면기를 두는 대국자는 수를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나머지 상대 대국자와의 대국시간이 여지없이 흘러가기 때문에 다면기에서 여러명을 상대할 때에는 각 상대에게 얼마만큼의 시간배분을 할것인지를 결정하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거기에서 포인트는 더 기력이 높은 사람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인데 이런 시간배분은 다면기를 여러번 둬봐야만 체득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볼때 그들의 상대가 학생이라는 점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자신했다. 학생이라면 기력이 높다고 해도 다면기를 둬본 경험이 적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들은 몰랐다. 그들의 상대인 준혁이 자신의 분신이자 모방우주를 구현할 수 있는 이능인 엑시스 오퍼레이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의 상대인 준혁은 실제로 다면기를 둬본 경험은 없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의 또다른 분신이자 현실을 모방하여 구현한 이능인 엑시스 오퍼레이터가 있었다. 준혁은 이 엑시스 오퍼레이터를 구동하여 그가 모방하여 구현한 상대들과 모방우주에서 수없이 많은 다면기를 시뮬레이션 했었다.
그렇기에 준혁은 다면기를 둘때에 어떤 점이 포인트인지 어떤 방식으로 두어야 하는지 완벽하게 꿰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물리적 제약으로 인해 다면기를 둘 수 있는 상대는 전,좌,우 삼면의 대상이 전부이지만 의식공간인 모방우주에는 그런 물리적인 제약이 없다. 그렇기에 다면기를 두는 대상을 세명, 네명이 아닌 한번에 열명 스무명으로도 설정하여 두었었다. 그렇기에 실제로는 다면기를 두어본적이 없어도 시뮬레이션상에서 수도 없이 두어왔던 것이다. 그때문에 시간배분에 대한 것은 준혁에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준혁은 이번 다면기에 가볍게 승리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노병은 죽지않는다는 말이 있다. 김성필. 그의 기력은 준혁에 비할바가 못되었지만 백발이 성성한 외모에 걸맞은 경험을 갖춘 백전노장이었다.
여지껏 대국을 두면서 그보다 기력이 높은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기력의 차이를 메꾸고 대국을 승리로 이끌만한 경험과 꼼수를 지닌 자였다.
‘후후후. 이 수를 당하면 골치 꽤나 썩을게다.’
탁.
여러가지 계산 끝에 김성필이 첫수를 착수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첫 착 수점은 천원. 준혁이 주로 두는 초수천원이었다. 다만 같은 초수천원이라도 차이는 있었다.
김성필이 둔 이 초수천원은 준혁처럼 자신만의 정체성의 문제라던지 그 이후 수의 진행에 대한 치밀한 계산이 있어서 두는 수는 아니었다. 그가 이곳에 둔 목적은 단 하나. 상대의 시간을 갉아먹기 위해서다. 대국자는 일반적이지 않은 수에 직면했을 때 수읽기를 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이렇게 초수천원이라는 일반적이지 않은 수를 던져놓으면 상대입장에서는 어떤 의미인지 고민해야 하고 또 그에 맞는 대응수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평소 초반전보다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물론 이 초수천원은 그에게도 일반적이지 않고 실리도 깎아먹는 전략적인 수이기에 그가 패배할 확률은 높아진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김성필에게 준혁이 시간을 쏟는 만큼 승리할 확률이 더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나머지 두 사람이 준혁을 이기면 그 둘에게서 만원씩 받기로 사전에 약속이 된 상황. 그렇기에 그가 지더라도 나머지 사람들이 준혁에게 승리한다면 그들 각자에게 떨어지는 돈은 2만원씩이기에 결과적으로는 이득이라는 계산이 숨어있는 것이었다.
전투에서는 져주지만 전쟁에서는 승리한다는 큰그림을 그린 전략이었다. 그리고 그런 전략은 의외로 먹혀들었는지 준혁은 다음 수를 착수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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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수천원인가.’
김성필의 첫 수인 초수천원에 준혁은 생각에 잠겼다. 상대의 돌이 다른 곳이 아닌 천원에 있기 때문이었다.
천원. 우주를 본따 만들었다고 하는 바둑판의 정중앙 자리다. 준혁의 기풍은 우주의 중심은 나라는 생각에서 파생하여 이 바둑의 정 중앙인 천원에서부터 세력을 확장시키는 것이 골자였다. 그런데 상대의 돌이 천원을 먼저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물론 다른 곳에 둘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바둑인가? 아니다. 그의 세계관은 자기 자신을 기준점인 우주의 중심으로 놓고 우주가 무한이 펼쳐져 있는 것. 내가 우주의 기준이기에 나 자신이 없다면 우주도 없다. 그렇기에 준혁의 기풍에서 바둑판의 정중앙인 천원의 의미는 그 대국 자체의 시작과 끝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고심하던 준혁의 머릿속에 문득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본디 우주의 중심은 나. 내가 우주의 기준이며 내가 있는 곳이 우주의 중심이다. 그런데 이 바둑판도 그와 같은 것이 아니었던가? 어째서 나는 천원만 바둑판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눈으로 살펴보면 19X19칸으로 구성된 바둑판의 중심은 의심의 여지도 없이 천원점이다. 하지만 바둑판의 원형은 본디 광대무변한 우주. 우주에는 경계가 없고 무한하다. 그렇기에 그 어느곳에 자신이 있어도 자신이 있는 곳을 기준으로 무한히 우주가 뻗어가기에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째서 자신은 바둑판에서 중심을 찾고있을까. 모든 곳이 중심일진데.
준혁은 자신이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리자 자연히 ‘바둑판의 중심은 천원이다.‘라는 관념이 파상되었다.
준혁은 문득 바둑판을 다시 보았다. 그의 앞에 보이는 건 더 이상 바둑판이 아니다. 하나의 펼쳐진 우주. 361개의 점 하나하나가 모두 우주의 중심이 아닌 곳이 없었다.
이제 대국에 걸림돌은 없었다.
준혁은 김성필의 초수천원에 좌하귀 소목으로 응수하였다. 육안으로 보면 좌하쪽으로 치우친 곳. 하지만 바둑판의 중심은 천원이라는 관념을 파상한 준혁에게는 그곳 자체가 바로 바둑판의 중심과 다름 아니었다.
그렇게 준혁은 자기자신을 옭아매던 관념 하나를 파상하고 한단계 성장을 하였다.
부족한 필력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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