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투자유치
그가 이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서명 하겠습니다.”
뭐, 그로선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서명하는 일만이 최선일 터였다. 나는 짝짝짝 박수를 친뒤에 그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탁월한 선택이야. 혹시나 나중에 법적문제로 비화되도 집행유예 정도거나 최악의 경우 잠깐 살다 나올정도니까 걱정 안해도 돼.”
“저 이미 집행유예 기간입니다만...”
아마 전 직장에서 비자금으로 인해 걸린게 아직 집행유예중인듯 했다.
“아 그랬어?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 오래 안살게 보석금은 넉넉히 준비할테니까.”
내가 이렇게 안심시키고는 펜을 건내자 그는 결국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이미 집행유예기간중인 그로서는 계약서 위조로 걸려도 가중처벌 될것이기에 어차피 처벌받을거라면 10%라는 이익금이라도 얻는 쪽이 자신에게 이득이 될거라는 결론을 내린거다.
그래도 자기 예상보다는 잘 풀렸다고 생각하는지 체이스의 표정이 약간은 풀렸다. 하지만 불쌍하게도 내 교역품이 뭔지를 알게되는 순간 까무러칠지도 모르겠다.
계약서를 쓰고 방을 나가는 체이스의 뒷모습은 마치 패잔병의 그것과 같았다. 내가 방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쟈넷이 방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쟈넷?"
"체이스씨 무척 슬퍼보이는데 비자금이 털린걸 눈치챘나봐요?"
뭐. 그것도 슬프고 그것보다 더 슬픈일도 생겼지. 쟈넷에게 대강의 계획을 이야기 해주자 쟈넷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했다.
"진짜 대단하네요. 라파엘 당신은. 그나저나 그런 법에 저촉될만한 투자를 러셀총독님이 할까요?"
"후후후. 안되는걸 되게 만드는게 바로 협상 아니겠어?"
***
나는 오늘 투자금유치를 위해 총독부에 왔다. 현재 내가 가진 현금자산은 1만골드 미만. 이 정도 돈으로는 제대로된 교역을 할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허허허. 라파엘군. 나보고 자네에게 투자를 하라고?”
“그렇습니다. 총독님.”
“하지만 자네가 이미 스피노쟈에 대한 상업점유율 5%를 제로스상단에 양도했다는 소문을 접했네. 유망 교역품목을 가지지 않은 이상 자네 라파엘상단의 발전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결정할수는 없네.”
러셀총독은 내가 스피노쟈의 상업점유율 5%를 제로스상단에 양도했다는 사실을 들어 투자에 선을 그었다. 확실히 이전에 만났을 때와는 온도차가 있었다.
하지만 말이다. 내게는 그를 설득할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후후후. 물론 그렇겠지요. 하지만 제가 교역할 교역품목을 알게되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제가 앞으로 교역할 교역품은...”
내가 그에게 내가 세운 전략을 설명해주자 그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흐음... 확실히 자네 설명대로라면 크나큰 이문이 예상되네만...
그런 짓을 하면 나중에 법적책임을 질수도 있다네.”
내 설명을 모두 들은 러셀은 큰 이문이 남을 투자임은 확신했지만 아무래도 법적책임때문에 고민하는 듯 했다.
나이를 먹으면 모험이 두려운 법이니 이해는 갔다. 하지만 토끼굴이 있다면 어떨까?
“후후후. 뒤탈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 교역품에 대한 거래는 차명으로 등록한 상단으로 할 생각이니까요. 그리고 러셀총독님은 법적책임과 무관하도록 차명으로 등록한 상단지분 20% 대신 그 상단에서 나온 이익금의 20%를 드린다는 계약서를 써드리지요.”
내 설명을 들은 러셀의 표정이 환해졌다.
상단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상단운영에 대한 책임도 질수 있는 리스크가 있는 반면 이익금의 20%만 받는다는 계약은 그런 책임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러셀은 나를 한차례 보더니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제로스 상단의 레이첼에게 한방 먹었다기에 라파엘 자네를 그저 운좋게 횡재를 한 애송이라고 판단을 내렸네만 아무래도 수정을 해야겠군. 라파엘 자네 정말 무서운 사람이구만.”
“칭찬 감사합니다. 그저 저도 나름대로 살 궁리를 해본 것이지요.”
“법적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야 좋네. 자네에게 투자하지. 이익금 1%당 투자금은 얼마인가?”
“5000골드 입니다.”
“꽤 큰 액수구만... 후후후. 하긴 그정도 자본금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지. 좋네.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하지. 단, 그 전에 자네에게 신용장 하나를 받고싶네.”
“신용장이라니요?”
내가 의아한듯 묻자 그가 말했다.
“만약 일이 잘못되어 철광석 매점으로 이익이 없다면 나는 이익금 20%는 받지 못한 채 투자금을 날리게 되겠지. 그러니 자네의 이름으로 신용장을 받겠네. 원금 10만골드와 최소이익 15만골드까지 해서 총 25만골드를 보장해주게.”
토끼는 살기 위해 굴을 여러개 판다고 했다. 이 러셀총독이 그짝이었다. 내게까지 신용장을 받으려 할 줄이야.
하지만 어차피 큰 이득이 예상되는 만큼 크게 리스크는 없을듯 하였고 만약 거절한다면 러셀총독이 투자를 하지 않을테니 결국 그의 요구대로 신용장을 써주었다. 그러자 러셀총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후후후. 그럼 당장 계약을 하도록 하지.”
“예. 총독님. 계약서에 서명할 친구를 데려오도록 하지요. 그리고 이 친구에게 교역품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하면 안된다는거 아시죠?”
“물론일세. 함구하도록 하지.”
역시나 러셀총독은 이쪽 동네에서 구를만큼 구른 인사라 그런지 말이 잘 통했다.
둘이 입을 맞춘 뒤 밖에서 대기하던 체이스를 들어오라고 하였다.
그에게 계약서를 내민 뒤 말했다.
“자. 체이스. 이제 여기에 서명만 하면 되는거야.”
계약서를 훑어보던 체이스가 물었다.
“교역품목이 어떤 것인지는 알아야 서명을 하지 않겠습니까?”
체이스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하자 러셀총독이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허허허. 이 친구 참. 유망한 종목이니까 걱정안해도 되네. 자네는 서명만 하고 돈을 버는거야.”
“그래. 그래. 체이스.”
나와 러셀총독이 둘러대자 더이상의 정보를 얻을 수 없던 체이스는 도리없이 계약서에 서명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으로 러셀총독에게서 십만골드라는 거금을 투자받는 투자유치 계약이 완료되었다.
***
러셀총독과의 투자계약을 마무리한 나는 지크를 시켜 상단인원들 전부 알브힘을 떠날 준비를 시켰다. 내가 할 투자는 시급을 다투는 일이었다. 자칫 제로스상단이 선점하게되면 정말 죽도밥도 안되는 일이었으니까.
출행 채비를 마칠때까지는 시간이 남아 둘째형에게 다녀왔다. 다행히 둘째형은 첫째형처럼 큰 문제는 없이 다니는 중이었다. 둘째형에게 1000골드와 엄마의 편지를 쥐어주고 다시 상단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출행채비를 마친 지크가 내게 물었다.
“도련님 목적지는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다음 목적지는 구텐베르크다.”
구텐베르크. 베이런 왕국 최북단에 있는 도시였다. 그리고... 바로 베이런왕국의 유일한 철광석 산지다.
“예. 도련님. 잡부들에게도 그렇게 말해두지요.”
“구텐베르크라면 유명한 철광석 산지 아였지 아마?”
옆에 있던 한슨이 말했다.
“맞아요. 한슨. 구텐베르크는 철광석이 유명하죠. 전 철광석을 매점할 생각이에요. 원재료인 철광석이 없다면 철제무기 공방은 놀수밖엔 없죠.”
철광석 매점. 이게 바로 레이첼에게 한방 먹이기 위해 내가 세운 비장의 전략이었다.
게헨나와의 전쟁으로 인해 전략물자의 교역이 금지되어 육로로는 철광석을 교역할 수없었다. 그리고 해상에서는 해적들이 판을 쳐서 해상교역 또한 사실상 막혀있는 상황. 베이런왕국의 유일한 철광석산지인 구텐베르크의 상업점유율을 내가 선점해놓으면 철제무기의 원료인 철광석을 내가 풀지 않는 이상 철제무기를 생산할수가 없게 되고 값이 올랐을 때 철광석을 비싼 값에 넘기면 큰 돈을 벌게 되는 것이다.
한슨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라파엘 아무리 화가 나도 그건 안돼네. 국가 전략물자를 매점하면 법적책임을 물수도 있단 말일세.”
한슨의 말마따나 지금같은 전시에 전략물자를 매점하는 행위는 자칫 위법행위로 간주되어 어마어마한 불이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었다.
“그건 걱정하지마세요. 이미 차명으로 상단을 개설해둔 상 태니까요. 차명으로 개설한 상단으로 철광석 매점을 할 생각이니까 법적책임을 내가 질 필요는 없지요.”
철광석 매점은 전 물량 체이스 상단의 이름으로 거래를 할 예정이니 모든 법적책임은 체이스 상단의 상단주 체이스가 지게 될 것이었다.
차명으로 상단을 개설했다는 말에 한슨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차명으로 상단을 개설했다고? 거기다 법적책임까지 다지면서? 도대체 어떤 바보가 그런 계약서에 서명을 한단 말인가?”
“저기 오네요.”
내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헐레벌떡 뛰어온 체이스가 있었다. 그가 울상이 된 얼굴로 내게 물었다.
“구, 구텐베르크로 출행을 하는게 설, 설마... 이번 교역품이 철광석인 겁니까?”
아무래도 지크에게서 상단의 행선지를 듣고 그도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짐작한듯 했다.
하지만 러셀총독에게 원금과 최소 이익금을 포함하여 25만골드를 보장한다는 추가계약을 맺었기에 그로서는 무조건 이번 거래로 이익을 얻기만을 빌어야 했다. 만약 총독과의 거래를 지키지 못할시에는 응분의 댓가를 치룰테니까.
쌀이 익어 밥이 되었으니 더 이상 그에게 내 목적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의 짐작을 확신으로 바꾸어 주었다.
“물론이야. 구텐베르크에서 철광석을 매점할 생각이야.”
내 말에 체이스가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전략물자인 철광석을 매점하다니요! 그, 그러면 저는 꼼짝없이 감옥에 가게 된단 말입니다! 집행유예라서 이번엔 풀려날 수도 없다구요.”
그의 걱정도 이해는 되었다. 잡힌다면 큰 죄를 면하기는 어렵지. 하지만 그건 잡힐때의 일이다.
“후후후. 정말 만에하나 일이 잘못되면 이 나라를 뜰 수 있게 내가 도와줄게. 나는 이전에도 말했어. 노게인 노페인. 리스크가 크면 클수록 그 보상은 더욱 더 달콤한 법이지. 잘 생각해봐. 당신도 언제까지 찌질하게 조금씩 해먹을 수는 없잖아. 크게 한탕하고 뜨는게 낫지. 어차피 베이런 왕국 출신도 아니니까 이 나라에 미련도 연고도 없잖아. 안 그래?”
어차피 체이스로선 잃을게 없는 상황이다. 거기에 거금까지 벌고 도망치게끔 해준다는 내 말이 무척이나 달콤하게 들렸을 거다. 잠시 망설이던 체이스는 이내 입술을 깨물며 내게 말했다.
“그, 그 약속 꼭 지켜주십시오.”
이번만큼은 체이스의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나는 이런 일로 거짓말을 하지 않아. 저번에도 말했잖아. 나는 계약서를 준수하는 준법시민이라고 말이야.”
이렇게 윈윈게임이 또 한번 성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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