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아버지의 유언장
4화
“아아아아악! 이건!”
동문에 도착해 밤이 되길 기다리자 이윽고 정적을 깨는 괴성이 울렸다. 여급 제인이 말했던 그대로였다. 괴성의 근원지를 찾아가니 허름한 차림새의 노인이 종이를 펼친 채 바닥에 앉아 있었다. 후후후. 역시나 내가 예상했던 그자다. 바로 측량사 한슨! 측량사는 해상교역을 위해서는 필수로 필요한 인재였다.
그런데 한슨은 측량뿐 아니라 지도와 해도 제작까지 능하여 영입할수만 있다면 무조건 영입해야하는 인물이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곳에서 밤마다 괴성소리가 들리기에 와봤는데... 노인장이었군요. 무언가 괴로운 일이라도 있습니까? ”
“하아. 젊은이... 내가 이 세상의 비밀을 알아버렸네. 누구도 믿지 못할 사실이라 무척이나 괴롭구만.”
“그 비밀이란게 무엇인지 저도 알 수 있겠습니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말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면야 알려주는 게 안될 것도 없지. 사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둥글다네.”
“둥글다니요?”
“지금까지 우리들은 지구가 네모난 형태이고 세계의 끝이 있다고 믿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닐세. 사실은 네모가 아니라 둥근 구형이라네. 한 방향으로 쭉 직진하다보면 언젠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단 말이야!”
내게 열변을 토하는 한슨. 후후후.
사실 지구는 완전한 구는 아니라서 한방향으로 직진해도 정확히 그 자리로 돌아오는 건 아니지만 어차피 중요한건 아니니 넘어갔다.
“그렇군요.”
“그렇군요가 아닐세! 이건 엄청난 발견이란 말이야! 하지만...”
열변을 토하던 그는 다시 어깨를 축 늘여뜨렸다.
“너무도 엄청난 사실이라 아무도 믿지 않을걸세. 다른 이들에게 말하면 증명을 하라고 하고 비웃음만 살텐데...”
“그렇다면 노인장이 직접 증명을 하면 되지 않겠소?”
내 대답에 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무슨 뜻인가?”
“저는 라파엘 상단의 라파엘 시리우스라고 합니다.”
“라파엘 시리우스? 처음들어보는 이름인데...”
아직 내 명성이 낮아서 그는 나를 모르는 듯 했다. 나는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 막 상단을 꾸렸으니 노인장이 모르는 것도 당연하지요. 지금은 육로교역을 주로 하지만 제 목표는 언젠가 해상으로 나아가 전 세계를 무대로 돌아다닐 생각입니다.”
“그...그렇다면.”
“나와 함께 갑시다. 나와 함께 전세계를 다니며 노인장의 말처럼 지구가 둥근지를 증명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만 해준다면 이 한슨은 더 바랄 것이 없네.”
***
한슨을 영입하고 저택으로 가기전에 나는 한슨에게 말해두었다.
“출행은 열흘 뒤에 예정이지만 미리 짐을 챙겨서 내일 시리우스 남작가로 와주십시오.”
한슨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물었다.
“출행은 열흘 뒤라고 하지 않았나?”
“나는 한슨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배우고 싶습니다..”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곤 측량하는 법과 지도, 해도 제작 뿐이라네.”
“네. 그 지식들에 대해 배우고 싶습니다.”
한슨이 의아한 듯 물었다.
“측량을 배워서 지도나 해도를 제작할 능력을 갖출때까지는 시간이 꽤 오래걸릴텐데 굳이 배우겠는가?”
확실히 한슨의 말대로 측량사인 그가 있으니 지도나 해도제작은 그에게 맡기면 되었다.
하지만 정보가 제한된 이 세계는 말 그대로 정보가 돈이다.
무역왕에서는 어떤 지식이든 배워두면 쓸모가 있었기에 나는 그의 모든 지식을 배우고자 마음 먹었다.
“예.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무엇이든 배워두면 쓸데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 알겠네. 내일 시리우스 남작가 앞으로 가지.”
***
끼이이익.
한슨을 영입한 뒤 시리우스가 저택으로 돌아간 나는 조심스레 엄마 방문을 열었다.
아까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던 지크의 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세실리아는 눈을 감은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엄마 자요?”
“엄마 자!”
자고 있는데 대답은 누가 하고 있는건지. 하여간 귀여운 구석이 있는 우리 엄마다.
“그럼 나 혼자 혼잣말 해야겠네. 엄마가 왜 반대하는지 잘 알아요. 하지만 나는 상인이 될거에요. 누구보다도 위대한 상인이. 그렇게 되는게 바로 상인이었던 아버지의 뜻을 잇는게 아닐까요 엄마?”
시리우스 남작가는 대대로 상인가문이었다. 이 남작이라는 작위도 사실 큰 부를 이뤘던 10대 선조때 사들인 작위였다. 아버지는 가업인 상인이 되어 손꼽히는 부자가 되고자 했다. 불운하게도 실패했지만 말이다.
나는 아버지가 못이룬 꿈을 이어받고자 했다. 내 두어깨 위에는 나 자신의 성공만이 아닌 부자가 되고자 했던 아버지의 열망도 함께하고 있었다.
잠자코 내 말을 듣고있던 엄마는 이내 채념한듯 말했다.
“그래. 상인이 되든지 말든지 네 마음 대로 해. 후우. 정말 이 시리우스가의 남자들 고집을 누가 말리겠니. 아버지나 자식이나 정말 피는 못속이겠구나.”
드디어 엄마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동안 마음 한켠에 있던 무거웠던 짐을 그제서야 내려놓는 기분이었다.
나는 세실리아를 와락 껴안았다.
“하하하. 엄마 고마워요.”
“이거 놔 징그럽게.”
“하핫.”
나를 떼어낸 엄마는 책상을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내게 건냈다. 그것은 동봉된 편지처럼 보였다.
“이게 뭐에요?”
엄마는 담담하게 말했다.
“네 아버지가 만약 상인이 되겠다는 아들이 있다면 그 아이에게 주라고 했던 유언장이야.”
“아버지의 유언장?”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침상에서 끙끙거리면서 곧 죽을 것 같던 아버지. 그런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자꾸 엘도라도에 가야만 한다는 둥의 헛소리를 했었다.
“그래. 그 무정한 사람이 남긴거.”
말을 하던 엄마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를 달래준 뒤, 내 방으로 돌아온 나는 아버지의 유언장부터 확인하였다. 동봉된 겉면을 떼어내자 그 안의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지도잖아?”
유언장 내부에는 양피지로 이루어진 지도 한장과 유언장만 달랑 있었다.
지도에는 어느 한 지점이 X자로 표시가 되어있었다.
지도만 봐서는 어째서 표시가 되어 있는지, 이 장소가 어떤 곳인지등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정보가 부족했다.
혹시 유언장에 다른 정보가 있을 듯 싶어 함께 들어있던 편지를 폈다.
“어디 한번.”
아버지의 유언장을 펴보니 한 구절의 글귀만 쓰여 있었다.
-엘도라도로 가거라!
엘도라도.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서도 그토록 가고자 열망하며 부르짖었던 단어. 지도까지 있는 걸 보면 이지도에 표시된 지명이 아닐까 싶었다.
엘도라도라는 명칭은 원래 세계에서는 남아메리카의 아마존 강변에 있다는 상상의 황금향이다. 다만 이곳 무역왕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는데 아마 비슷한 의미일 듯 싶었다.
“아버지가 그토록 원하던 꿈들을 이루지 못하고 가서 섭섭하지? 걱정마. 아버지. 나 라파엘이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뤄줄테니까.”
아버지가 못 다 이룬꿈.
하나는 거상이 되고자 했던 열망. 또 하나는 황금향인 엘도라도에 가고자 했던 열망.
나는 결심했다. 아버지가 못 다이룬 꿈을 이어받아 대신 이루어주기로. 이유는 하나로 족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니까.
**
시간은 흘러 출행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며칠 전부터 시리우스 남작가는 방문객들로 북적거렸다. 광장에 붙여놓은 모집인원 공고 때문이었다.
아직 내 명성이 낮기 때문에 모집인원 공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잡부에 불과했지만 개중에는 동료로 영입할만한 자들도 더러 있었다. 나는 찾아온 이들중에 선별한 세명을 동료로 영입했다.
“케빈이라 합니다. 예전에는 용병을 했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상단주.”
“체이스라고 합니다. 은행에서 근무했었습니다.”
“쟈넷이라고 해요. 기사학교를 졸업한 재원이죠. 나같은 재원을 이런 비용으로 영입한 당신은 운이 좋다구요.”
이번에 영입한 세명의 동료중 요주의 인물은 단연코 체이스다. 후후후.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이 체이스라는 친구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안다. 북해에서 활동하다보면 가끔 만나는 친구였는데 주로 비자금을 조성하다가 쫓겨나기 일쑤인 친구였다.
그럼에도 뽑은 것은 그만큼 인물이 없다는 뜻이다. 뭐, 반골기질이 다분하더라도 잘만 조련하면 그것을 좋은 방향으로 쓸 수 있다.
당연히 그럴 자신이 있으니 뽑은것이고 말이다.
어쨌든 이들이 합류하여 상단운영에는 한층 탄력을 받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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