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베너 잭킨스
37화.
“우리 상단에 들어오려면 그만한 능력은 있어야 돼. 아무래도 장교를 꿈으로 삼았으니 함대운용같은건 자신 있겠지? 이론정도는 배울 거아냐.”
내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그런 무서운건 잘 못해요.”
“그럼 회계라던가 장부정리같은건?”
회계나 장부정리는 상인의 소양중 기본이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이번에도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치켜들며 소리쳤다.
“그런 골치아픈건 싫다구요!”
그럼 때려쳐 이년아!
내가 화가 터질때쯤 그녀가 내게 물었다.
“골치아프지 않고 상인이 되는 길은 없을까요?”
날로 먹는걸 좋아하는구나... 기본적으로 상인은 머리가 좋아야 한다.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하니까.
하... 이 와꾸 안나오는 아가씨를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하하핫. 라파엘! 왜 이렇게 심각한거야?”
내 집무실에 들어온 사람은 한슨이었다.
“흐음. 복잡한 사정이 있답니다. 그나저나 오늘은 술을 안마신것 같네요. 어쩐 일이에요?”
왠일인지 오늘 한슨의 안색은 매일 보던 술에 달아오른 붉은 색이 아니었다.
“사실 오늘은 술을 안마셨어. 매일 마시니까 지겹기도 해서 말야.”
알브힘 체류가 길어지면서 한슨도 아무것도 안하는 일정에 지친듯 보였다.
“조금 지루하죠 한슨?”
“그렇긴 하지. 그래서 어차피 너는 당분간 알브힘에 있어야 할테니 그동안에 유적탐험이나 해볼까 해.”
“유적탐험이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래. 이 근방에 있는 베르데 유적이나 가보려고. 아직 베르데 유적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은 없지만 혹시 알아? 내가 대단한 발견을 해낼지 말이야.”
어차피 배너 젝킨스와의 협상이 언제 이루어 질지도 몰랐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한슨. 알브힘에 오래 있기는 했죠. 기분전환도 할 겸 다녀오세요.”
“하핫. 그래. 내가 유적에서 보물을 찾아낼거니까 기대하라구.”
갑자기 옆에 있던 엘리자베스가 소리쳤다.
“와아앗! 그럼 한슨 유적탐험에가는거에요? 재밌겠다! 저도 같이가요.”
그녀의 말에 나는 벙쪘다.
반드시 상인이 되겠다고 시험까지 받겠다더니 뜬금없이 유적에 가겠다고? 정말 종잡을수가 없는 년이다.
“아하핫. 유적탐험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지. 환영이야. 엘리자베스.”
“저기. 엘리자베스. 상인이 되고 싶다고 하면서 시험받는것도 불사한다고 하지 않았어?”
“헤헷. 그건 조금만 뒤로 미뤄주세요.유적탐험이 너무너무 재밌어 보이는걸요.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모르는데 이 기회를 놓질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하하핫. 혼자 가면 쓸쓸할 뻔 했는데 잘 되었네. 라파엘 허락해주라고.”
“그래. 그렇게 가고 싶어 하는데 못가게 할 필요는 없겠지. 다녀 오라고.”
그렇게 한슨과 엘리자베스는 베르데 유적을 향해 떠났다. 엘리자베스가 떠나고 나니 왠지 아픈 머리가 좀 가시는 느낌이 드는건 왜일까.
그렇게 한슨과 엘리자베스가 떠난 며칠 뒤, 라이올라에게서 연통이 왔다.
베너 젝킨스에 대한 접견일이 정해졌다는 것이다.무려 삼주일만의 일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베너 잭킨스에게 접견요청을 하여 승낙을 받은 나와 라이올라는 해당일이 되어 그의 집무실을 찾아갔다.
베너 잭킨스에게 어느정도 이권을 안겨준다면 그도 우리가 벌일 은행사업에 적극 협력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우리들의 예상은 그렇게 직접 베너 잭킨스를 접견하고 난 뒤에는 깨질 수밖에 없었다. 생각과는 다르게 그를 설득하는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베너 잭킨스는 정말 탐욕스럽다 못해 추하기까지한 늙은이였으니까. 하나라도 더 가지려는 듯 어떤 조건도 쉽사리 승낙하지 않았다. 그와의 협상은 난항 그 자체였다.
“내게 지분 10%를 넘긴다 이 말인가?”
베너 잭킨스의 물음에 라이올라가 답했다.
“그렇습니다. 재무대신님.”
“하지만... 제로스 상단은 국영상단인데 제로스 상단을 은행사업에서 배제한단 말인가? 문제는 또 있네. 자네들이 제출한 제안서를 봤네만... 자본금이 너무 적어. 그정도의 적은 자본금이라면 자칫 파산할 우려도 있네. 그러니 현금보유량이 많은 제로스 상단을 사업에 포함시키자는 말일세!”
말은 파산을 걱정 하여 제로스 상단을 은행사업에 포함시키고자 하지만 그의 진정한 속내를 나는 안다.
이유는 바로 그가 제로스 상단에 지분이 있는 유력가중 한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제로스 상단을 이 은행사업에 포함시키면 저절로 그의 지분이 더 늘어나 영향력이 높아지는 거다.
물론 이 베너 잭킨스의 요구는 절대 들어줄수 없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레이첼 은행사업으 방해하기 위해 그년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몰랐다.
베너 잭킨스의 요구대로 제로스 상단이 은행사업에 한 발을 걸친다고 해도 그들은 고리대금업이 주 수입원이니까 말이다.
“크흠!”
나는 한차례 헛기침을 한 뒤 고전하고 있는 라이올라를 바라봤다. 나와 라이올라가 베너 잭킨스와 대답을 하기 전에 미리 한 약속이었다. 우선 그와 안면이 있는 라이올라가 협상을 해보고 잘 안되는 듯 하면 내가 해보겠다고 말이다.
내 헛기침 소리를 들었는지 라이올라도 나를 바라봤다. 우리 둘의 시선에서 마주쳤다.
이제 바톤터치다. 이제부터 라이올라 대신 내가 협상의 전면에 나서는 순간이었다.
“하핫. 재무대신님의 우려도 이해는 갑니다. 그래서 저는 라이올라님과는 다른 조건을 제시해볼까 합니다.”
“크흠. 말해보게.”
“재무대신님께 15%의 지분을 약속하지요. 단, 조건이 있습니다.”
“지분을 올려준다고 해도 무리한 조건은 들어줄 수 없네!”
“무리한 조건은 아닙니다. 우선 제로스 상단의 개입은 배제해주십시오. 고리대금업을 주 수입원으로 삼는 제로스 상단이 은행사업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고리대금업이 불법은 아니라지만 한 국가를 대표하는 국영상단이 앞장서서 시민들을 돈의 노예로 만드는 일은 정말 꼴불견이긴 했다.
그런 그들이 자신들의 사업이 큰 타격을 받을게 뻔한 은행사업을 용납할까? 분명 내부에서 손을 쓸 것이 뻔했다.
그렇기에 제로스 상단의 배제는 무조건적인 과제였다.
그로선 나쁠것이 없는 제안이었다.
제로스 상단을 끼워넣는 것 보다 그의 지분이 더 높아졌으니까.
내 말을 경청하던 베너 잭킨스가 말했다.
“내 지분을 15%로 해준다면 제로스 상단을 배제 하는 일은 승낙하겠네. 그렇다고 해도 은행의 자본금이 적어 파산의 위험이 있을 수 있네. 그 부분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모든 논의는 백지부터 시작해야 할걸세.”
탐욕스럽긴 해도 재무대신이라는 직함이 타이틀뿐인건 아닌 모양이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우리의 자본금 자체는 은행업을 하기엔 빈약했다.
그는 그 부분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의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태클을 걸어대는 자본금 부족. 이 자본금 부족을 설득하는건 충분히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본금이 더 있다면 어떻습니까?”
그러자 베너 잭킨스의 표정이 밝아지며 물었다.
“더 출자할 여력이 되는가?
“그것은 아닙니다만...”
“나를 놀리는건가?”
성질 급한 베너 잭킨스가 곧바로 나를 추궁하였다.
물론 이 베이런 왕국의 재무를 좌지우지하는 그 앞에서 입을 함부로 놀릴 내가 아니었다. 방도가 있었다.
“더 이상 출자할 자금은 없지만 자본금 부족을 해결할 방법은 있습니다.”
“자본금 부족을 해결할 방도? 그게 무엇인가?”
나는 우선 그에게 서류를 한장 내밀었다.
“일단 이것을 보시지요. 그 뒤에 설명드리겠습니다.”
내가 넘겨준 서류를 읽어본 베너 잭킨스가 말했다.
“라파엘 자네. 게헨나에서도 은행사업을 하는건가? 축하할 일이네만 그것이 자본금을 늘리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나?”
“있지요. 왜냐하면 게헨나의 설립할 은행에서도 지폐를 발행할 생각입니다. 저는 그 양국의 은행에서 발행을 지폐를 서로 교환하여 보관하며 유사시에 그 가액만큼의 금을 차관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협정을 하고자 합니다. 즉, 상호통화협정을 맺는 것이지요.”
자본금 부족에 대한 내 대비책. 그것은 바로 상호통화협정. 일명 통화스와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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