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에피네프린으로 가다
사실 쟈넷에게는 자신있게 말해두긴 했지만 철제무기 교역을 독점한 레이첼에게 손해를 입힐 방법이 쉽사리 떠오르지는 않았다.
시간은 레이첼의 편이었다.
베이런 왕국과 게헨나의 전쟁이 기정사실이 된 이상 철제무기의 값은 오르면 올랐지 내려가진 않을테니까 말이다.
그것을 그대로 두면 레이첼은 철제무기 독점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손에 쥐게 되고 파산할래야 할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었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고민하던 나는 한가지 결론에 다다랐다. 철제무기가격이 오르는데 필요한 전제조건은 바로 전쟁.
이 전쟁이라는 판이 깔려야만 철제무기를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는 거다. 그렇다면 내가 할일은 하나. 전쟁이라는 판을 깨는거다!
이내 생각을 정리한 나는 동료들을 불러모아놓고 선언했다.
“이제 구텐베르크를 떠날거야.”
“그럼 다음 행선지는 어디입니까 상단주?”
“에피네프린!”
“에피네프린이라면... 게헨나 아닙니까?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전쟁이 일어나면 철제무기 교역을 독점한 레이첼의 위치는 범접할수 없게 돼. 그것을 막으려면 방법은 단 한가지. 이 전쟁을 막는거다.”
베이런 왕국과 게헨나의 전쟁에 도화선이 된건 다름아닌 그들 양국가의 상선이 해적들에게 공격을 받아서다. 이들은 자국 상선에 대한 해적행위를 상대국의 행위라고 판단했고 그때문에 서로 선전포고를 한 상태였다.
하지만 사실 해적의 정체는 이들 양국을 이간질시켜 전쟁을 벌이게 만드려는 제3세력의 수작이다. 나는 상선을 습격하는 해적이 상대국이 아닌 제3세력이 벌인 수작이라는 것을 밝혀낼 계획이었다. 그렇게 되면 전쟁을 벌일 이유가 사라진 베이런 왕국과 게헨나는 전쟁을 하지 않을 테고 철제무기교역 독점으로 큰 이문을 기대하는 레이첼은 그리 큰 재미를 보지 못하겠지.
동료들은 전쟁을 막고자 하는 내 계획에 의아해 하였다.
“이미 전쟁 직전인데 그게 가능한가요?”
“후후후. 만약 두 국가를 이간질 하는 제 3의 세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낸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에피네프린에 가려는 이유는 바로 베이런 왕국과 게헨나를 이간질하는 세력에 대한 증거를 찾기 위해서다. 이곳 베이런 왕국에서 그 증거를 찾기 위해 움직인다면 필히 레이첼이 훼방을 하려 할테니 말이다.
“예? 그럴리가요. 누가 그런 짓을. 해상교역을 하는 두 국가의 상선들을 모두 공격하려면 국가단위의 세력이.... 설마?”
“그래. 케빈. 내가 의심하는 건 당신 말대로 국가단위의 세력이지. 바로 베리타스제국!”
그렇다. 이번 베이런왕국과 게헨나의 상선을 공격하여 두 나라를 전쟁 직전으로 몰고간 세력은 바로 베리타스제국이었다.
베리타스 제국은 북해 일부와 지중해에 걸친 대제국으로 어마어마한 국력을 자랑했다.
무역왕의 스토리에서 베이런왕국과 게헨나를 전쟁을 벌이게 한 뒤에 베리타스 제국은 전쟁으로 인해 국력이 소모된 베이런 왕국과 게헨나를 병합하기 위해 전쟁을 선포한다. 훗날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베이런왕국과 게헨나의 전쟁에서 도화선이 된 상선에 대한 해적행위는 모두 베리타스 제국에서 기획했다는 사실이다.
이때부터 베리타스제국은 베이런왕국과 게헨나를 병합하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린 것이었다. 내 말을 듣던 케빈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베라티스 제국이라면 그정도의 국력이 있다고 하지만... 아무런 증거도 없지 않소?”
당연히 증거가 없는 지금으로서는 케빈은 내 말을 하나의 가정 정도로 생각하는 듯 했다. 하지만 무역왕의 스토리를 알고있는 나는 베이런왕국과 게헨나이 전쟁을 조장한 제 3세력이 있고 그 세력이 베리타스 제국이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물론 증거는 없어. 하지만 이제부터 찾으면 돼지. 두 국가간의 다툼에 베라티스 제국이 개입했다는 증거를 찾아 전쟁을 막는거다. ”
이런 내 설명에도 동료들은 쉽사리 납득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무언가 가정을 하려면 어떤 타당한 근거가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베리타스 제국이 양국의 전쟁에 배후에 있다는
내 주장은 근거없이 가정을 비약한 것이라 여길 수 있었다.
그럼에도 동료들은 에피네프린에 가고자 하는 내 결정에 따라주었다.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에피네프린에 가서 반드시 전쟁을 멈추기 위한 증거를 찾아낼 생각이었다.
물론 에피네프린으로 가는 여정에 모든 동료가 함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쟈넷은 이곳에서 할일이 있었다. 나는 쟈넷에게 지시를 내렸다.
“쟈넷. 당신은 이곳에 남아서 레이첼에게 계속 서신을 보내. 내용은 이전과 동일하게 내가 구텐베르크에 남아 있다는 내용으로.”
쟈넷의 임무는 레이첼이 내가 상업점유율을 얻지 못했다는 허무감에 아무것도 안한다고 믿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레이첼이 이번엔 내 계획을 훼방놓지 못할테니까.
“물론이에요.”
쟈넷은 내 말에 혼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남은 동앗줄이 나뿐이란걸 그녀도 깨달았을테니 배신할 염려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굳이 한 사람을 남겨 감시역을 맡겼다.
“지크! 네가 여기 남아서 쟈넷을 감시해라.”
“예?! 하지만 도련님.”
감시역은 바로 지크다. 뭐 이유야 대충 예상했듯 지크녀석과 쟈넷이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그런 내 의도를 알아채지 못했는지 반문하는 지크에게 내가 윙크를 날리며 그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쟈넷은 너무 좋아하는 티 내는 남자는 싫어한데. 알아둬.”
이정도로 말했으니 쑥맥인 지크도 내 의도를 알아챘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지크가 내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래. 잘해보라고. 지크.
원래 나는 배신자에게 자비를 배푸는 성격은 아니지만 쟈넷의 경우는 원래 제로스 상단 소속이었으니 단순히 배신자로 분류하기는 애매했다. 더구나 지크녀석이 저렇게 죽고 못사는 판국에야 녀석을 위해서라도 이쯤에서 마무리 해줘야겠지.
그렇게 구텐베르크로를 떠나 게헨나로의 출행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할 일이 몇가지 있었다.
우선 짐마차는 1대를 제외하곤 모두 처분했다.
그리고 스피노쟈에서부터 알브힘, 구텐베르크에 이르기까지 고생을 했던 잡부들과도 계약종료를 하였다.
꽤나 오랜 상행을 했기에 지칠때로 지치기도 했고 당분간은 그들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케빈에게 일러 약속한 급료보다 두둑히 챙겨주니 잡부들은 기꺼운 표정으로 내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금화주머니를 챙겨갔다.
***
“정지! 신분증을 제시하고 짐마차를 열어보시오.”
베이런 왕국 국경수비대 위병들이 우리 짐마차를 불러세웠다.
국경에서 확인하는 건 별다른 건 없었다. 내 신분 확인과 전략물자의 반출여부였다. 지금 내가 가려는 게헨나왕국은 적국이었기에 전략물자의 반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나는 신분증인 상단인증서를 그에게 보인 뒤 짐마차를 열었다. 어차피 짐마차는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빈 상태로 나를 포함한 네명의 일행의 짐밖엔 없었다.
잠시 확인하던 위병이 통과신호를 보내고 드디어 베이런 왕국을 떠났다.
게헨나 국경수비대에서도 같은 절차를 거친뒤에야 게헨나의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게헨나의 국경을 지난 우리 일행은 간선을 따라 마차로 달렸다. 이 간선은 게헨나의 수도인 에피네프린까지 이어져 있었다.
우리는 일주일을 달려 에피네프린에 도착했다.
“후우. 이곳도 오랜만이구만.”
한슨이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한슨인 이곳에 와본적이 있는듯 했다.
확실히 눈에 보이는 건축물들만 봐도 베이런 왕국의 건물들과는 다른 건축양식으로 지어졌음을 알수 있었다. 그때문인지 이국적인 느낌이 물신 풍겼다.
“알브힘의 건축물과는 또 다른 느낌이네요.”
“그렇지? 베이런 왕국의 건물들은외관상 미관도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는 반면에 게헨나의 건물들은 무조건 실용성을 따지지.
건축물은 무조건 그 본연의 목적인 거주에 적합하도록 짓고 최대한 자재를 아끼는 방식으로 짓는다구.”
한슨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게헨나는 북방야만인들이 이주를 해와 세운 국가이다. 그들의 문화는 예로부터 실용적인가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둥글둥글한 곡선형태가 주를 이루는 베이런왕국의 건물과는 달리 에피네프린의 건물은 직선형태로 지어졌으며 건물의 미관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오직 거주라는 그 자체의 목적에 맞게끔 설계되었다.
한슨과 대화하던 나는 고개를 돌려보니 체이스는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얼굴 표정도 한결 좋아진게 고향인 게헨나에 왔기 때문인듯 했다.
“오랜만에 고향에 오니까 어때?”
내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체이스는 문득 내게 반문했다.
“그런데 제가 게헨나 출신이라고 말했던가요? 그러고 보니 저번에 도 제가 베이런 왕국 출신이 아닌걸 알고 계시던데...”
“일단 여관부터 찾자고.”
나는 대충 얼버무리며 화제를 전환했다. 원래 무역왕에서 플레이하면서 알았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우리 일행은 여관에 도착해 여장을 푼 뒤, 다음 날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우선 해적들의 정확한 정보를 모으기 위해서는 목격자의 증언을 확보할 생각이었다. 이들에게 들은 정보를 토대로 어떤 식으로 증거를 찾아낼지에 대한 밑그림을 그릴 생각이었다.
“케빈, 체이스 당신들은 해적들에게 공격당한 상단주들을 수소문해줘. 내 질문에 제대로 대답만 하면 1000골드를 준다고 해.”
“예. 상단주.”
내 지시에 따르기 위해 케빈과 체이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해적들에게 피해를 입은 상단주들을 데리고 왔다.
“상단주들을 데려왔습니다.”
내 앞에 초조한 표정으로 상단주들이 섰다. 숫자는 총 여덟명. 내가 원하는 바가 이렇듯 쉽게 되는 것을 보면 역시 돈이 최고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할수 있는건 아니지만 이렇듯 왠만한 일은 쉽게쉽게 처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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