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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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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최근연재일 :
2024.04.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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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49,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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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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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1

DUMMY

-선-



“이 새끼들을 전부 죽여버려야겠어.”


“제발 진정 좀 해 봐.

너는 한쪽 말만 듣고 판단하는 거잖아?

다른 쪽도 들어봐야지. 응?”


천의 소매를 잡고 극구 만류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

한쪽 말만 들어서는 안 되지.

내가 왜 이러는지···.”


천이 머리를 짚으며 의자에 힘없이 앉는다.


짐승의 정신이 나갔을 때부터 저런 상태다.


그 이후로 천답지 않게 다른 인간들의 부탁을 들어주고 전후 관계를 파악하지 않은 채 행동하여 곤란한 적이 두어 번 있었다.


아닌 척 했지만, 짐승의 정신이 나가버린 게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하는 모양이야.


그로 인해 생겨난 죄책감을 씻어버리기 위해 지금도 부탁을 받고 누군가를 죽이려고 했다.


짐승 하나가 뭐라고···.


단순히 랑이 보내준 짐승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걸까?


천은 짐승의 정신이 망가졌으니 우리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며 죽이는 걸 반대했고 나는 받아들일 수 없어 천의 의견을 거절했다.


불안정한 짐승을 곁에 두는 것만큼 위험한 건 없다고 했으나 천은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고집했다.


나는 하는 수없이 절충안으로 짐승을 밧줄로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조건으로 수용한다고 했고 천은 마지못해 내 의견에 따랐다.


고개를 돌려 짐승을 쳐다보니 온몸이 밧줄에 묶인 채 하늘을 쳐다보며 침을 흘리고 있다.


연신 나는 사람이라는 말을 반복한다.


작은 목소리지만 내 귀에는 똑똑히 들린다


닥치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저 말까지 계속 듣고 있으니 나까지 예민해진다.


누군가가 건드리기만 하면 폭발할 지경이지만 나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그땐 정말 돌이킬 수 없기에 가까스로 인내하며 속으로 삭이고 있다.


“마을에 들어가서 물품을 보충해야 해.

짐승을 어떡할 거야?”


“데리고 가야지.”


“안돼.

우리끼리면 몰라도 저기에 가면 무조건 사고 칠 거야.”


“내가 관리를 잘하겠소.”


“다른 인간들 눈을 어쩔건데?

저렇게 밧줄로 칭칭 감아놨는데 당연히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하겠어?

그리고 잠은?

너 짐승을 주막 안으로 들일 생각은 아니지?”


“내가 알아서 하겠소.”


속에서 짜증이 울컥하고 쏟아져 나온다.


“야!”


천은 아무 말 없이 공허한 눈 날 쳐다본다.


그 눈빛때문에 짜증이 더욱 치솟는다.


씨발, 그깟 짐승 하나가 뭐라고.


간신히 짜증을 억누르고 웃는 얼굴을 하며 천에게 다시 말을 건다.


“다른 인간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

우리야 같이 지냈으니까 내막을 알지만 다른 인간들은 모르잖아?

밧줄에 온몸이 묶이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짐승이 갑자기 자신의 마을을 돌아다니고, 자신의 주막에서 잠을 잔다면 좋아할까?”


내 말이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것인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어떡하는 게 좋겠소?”


“평소처럼 놔두고 가자.

그리고 내일 나와서 데리고 가면 되지.”


“알겠소.”


천이 짐승에게 다가간다.


여태껏 하늘만 보던 짐승이 천이 다가가자 눈을 맞춘다.


“너, 여기서 꼼짝하지 말고 있어라.”


“네! 알겠어요! 저는 말 잘 듣는 사람이니깐요!”


천이 짐승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밧줄을 풀려고 한다.


“잠깐! 뭐 하는 거야!?”


“두고 가려면 밧줄을 풀어줘야지.”


“미쳤어? 난동을 부리면 어떡하려고 그래?”


“그럼 하루 동안 묶어놓고 버려둬 놓자는 거요?”


“짐승은 하루 굶어도 안 죽어.

그러니까 풀지 마.”


“그래도 불편할 거 아니오?”


“지금까지 묶어놓고 뭐가 불편하다는 거야?”


“아니, 나는 이 밧줄을 풀고 갈 거요.”


반대하려다가 좋은 생각이나 잠자코 있었다.


밧줄이 풀린 상태에서 난동을 부리다 누군가한테 죽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잖아?


“네 마음대로 해!”


일부러 마음에 안 드는 척 하며 동의의 의사표시를 내비쳤다.


천이 밧줄을 풀어주자 짐승은 의외로 날뛰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


제발 날뛰어라.


그래서 죽어버려.



///



짐을 정리해도 시간이 제법 많이 남아 주막 밖으로 나와 거리를 둘러본다.


천은 방 안에 있고 나만 나온 상태다.


그놈을 죽여버려야겠어.


요행에 맡기기보다 직접 처리하는 게 깔끔해.


내가 직접 가서 할까?


아니야.


그건 조금 찝찝하니까 누군가한테 맡겨야겠어.


죄책감?


짐승을 죽이는데 죄책감을 왜 느껴?


그건 당연한 거야.


더군다나 사람한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짐승을 죽이는 건데.


용병 조합을 찾아서 맡기면 별 탈 없겠지.


그전에··· 천이 정말 짐승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지 확실히 알아봐야겠어.


발걸음을 돌려 천에게 향한다.


문을 열고 다짜고짜 천의 맞은편에 앉아버린다.


“할 말 있소?”


“너, 짐승한테 죄책감 느끼는 거야?”


“그게 무슨 소리요?”


“너도 알잖아.

짐승이 저렇게 되고 나서 네가 이상해졌다는 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지 모르겠지만 나는 평소와 다를 게 없소.”


거짓말.


“그래그래, 알았어.

그럼 짐승한테 죄책감을 느끼는 게 아니란 말이지?”


“그렇소.”


좋아.


“짐승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자리에서 일어나 조합으로 향하려는데 문뜩 천이 내게 말했다.


나는 대답 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봤지만 천은 따라오지 않는다.


눈치를 어느 정도 챘겠지.


그런데도 안 말리는 걸 보니 묵인한다는 거고.


어느새 조합 앞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간다.


의뢰를 기다리는 혹은 휴식을 취하는 용병들이 저마다 모여 왁자지껄 떠들고 있다.


접수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내게 말을 건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나요?”


“의뢰하려고 하는데요.”


“잘 오셨어요! 우리는 최고의 용병만을 소개해 드린답니다.

어떤 의뢰를 하실 건가요?”


“어··· 살인이요.”


“어머! 여기 있는 용병들은 전부 살인에 이골이 났거든요!

잘됐어요! 누구를 죽이면 되죠?”


뭐라고?


그게 할 말이야?


이상하게 명랑한 접수원의 행동에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 짐승 한 마리인데···.”


여기서 더 진행하면 다시는 못 돌아가.


“짐승 한 마리는 간식거리도 안 되죠!

언제 죽이면 될까요!?

지금 당장 죽일까요?”


이 사람 왜 이렇게 다 떠벌리는 거야?


접수원으로서는 최악이네.


“아! 일단 접수증부터···.”


“아니요. 다음에 다시 올게요.”


“네? 손님 무슨 불편하신 점이라도···.”


그걸 말이라고 해?


네가 촉새같이 주둥이를 놀려서 여기 있는 모든 인간들이 알아버렸잖아.


나는 접수원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조합을 나갔다.


더럽게 안 풀리네.


그냥 놔둘까?


“혹시 다른 조합으로 가실 예정입니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남자 사람 하나가 날 보고 있었다.


“뭐라고요?”


“저 접수원이 좀 그렇습니다.

입을 한시라도 가만히 못 두죠.

바꾸라고 항의해도 도통 들어먹지 않으니 원···.”


“저한테 할 말이 있으신가요?”


“아, 내 정신 좀 봐.

의도한 건 아니지만 짐승 하나를 죽여달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요?”


“누군가에게 그 의뢰를 맡기고 싶다면 저한테 맡기시는 게 어떻습니까?

수수료도 안 들고 비밀도 지키고 일거양득 아닙니까? 하하.

이 마을 근처에 있다면 3시간 내로 쓱싹해버리고 오겠습니다.

아, 물론 대금은 후불로 받겠습니다.”


끌리는 제안이긴 한데···.


내가 의심스러운 눈을 거둬들이지 않자 손사래를 치며 자신을 변호한다.


“이상한 마음을 품고 있는 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짐승을 죽이는 건 탈이 적고 쉽거든요.

제가 며칠째 의뢰를 못 받아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서요.”


어떡하지?


맡겨버려?


“아, 아니에요.

갑자기 필요가 없어졌거든요.

죄송하지만 그럴 필요 없습니다.”


남자에게 인사를 해버리고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난다.


미친년!


그냥 수락하면 될 걸 왜 도망가는 거야!?


그 짐승이 불쌍해!?


우리 자리를 뺏으려는 짐승이 그렇게 불쌍해!?


병신새끼!


머저리새끼!


그렇게 물러서 네가 생각한 앞으로의 일은 어떻게 추진할 거며 어떻게 감당할래!?


상념 속에 빠진 채 걷다 보니 어느새 주막에 도착했다.


방 안으로 들어가니 천이 누운 채 날 맞이한다.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 거요?”


“그냥 뭐··· 이리저리 둘러봤지.

그나저나, 밥은 먹었어?”


“안 먹었소. 당신은?”


“내려가서 같이 먹자.”


1층으로 내려가 먹을만한 걸 시키고 기다리면서 주변을 한번 돌아본다.


점심때건만 비교적 한산하다.


주인은 이 한산함이 하루 이틀이 아닌 걸 반증하듯 자리에 앉아 파리만 잡고 있다.


여기가 맛이 없나?


방은 깨끗했는데 말이야.


마침 음식이 나와 한 숟갈 떠먹어본다.


괜찮은데?


뭐, 다른 인간 없으면 나는 좋지.


신경끄자.


묵묵히 밥을 먹고 있는데 딸랑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누군지 봤는데 조그마한 곰이다.


꾀죄죄한 행색을 보니 디쿤이 없는 곰처럼 보인다.


“이게 또 왔네!?

저리 안 나가!?”


“저, 저기 밥 좀 주시면 안 될까요!?

버리는거라도··· 제발 부탁드립니다!”


역시나 디쿤이 없는 곰이었고 밥을 동냥하러 온 모양이다.


동냥하러 왔는데 왜 저렇게 기운찬거야?


신경끄고 다시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천이 관심을 기울인다.


“밥이나 먹어.

신경 쓰지 말고.”


“어린 곰은 디쿤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지.

짐승보다도.”


“왜? 네가 거둬들이게?”


“거둬들이진 않아도 밥 한 끼는 줄 수 있소.”


얘가 진짜···.


천이 주인에게 손짓한다.


주인은 그런 천을 보고 한걸음에 다가온다.


“더 필요하신 게 있으세요?”


“저 곰이 원하는 걸 하나 내주시오.

돈은 내가 내겠소.”


“아, 알겠습니다.”


주인이 곰에게 돌아가 상황을 설명한다.


곰이 이쪽을 한번 쳐다보곤 주인에게 자신이 원하는걸 말했고 주인은 주방안으로 들어간다.


곰이 이쪽으로 걸어와 우리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고맙습니다, 사람님.

고맙습니다.”


“몇 살이지?”


“저는 12살이에요.”


18년··· 힘들어 보이네.


“디쿤은 없나?”


“네···.”


“괜찮으면 우리와 함께 식사하지.”


“좋아요!

혼자 먹기 적적했는데!”


곰이 낑낑대며 의자에 앉는다.


뭐가 즐거운 것인지 연신 짧은 다리를 휘저으며 붕붕거린다.


주인이 음식을 가지고 나와 곰앞에 둔다.


배가 많이 고팠던건지 음식이 나오자마자 게눈 감추듯 해치운다.


“더 시켜줄까?”


“네! 더 주세요!”


나도 모르게 제안했고 곰은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저기요, 이거 하나 더 주세요.”


“이것 참! 제 소개를 하지 않았네요!”


곰이 의자에서 뛰어내려 우리에게 배꼽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얍얍입니다.”


“그래 얍얍아.

나는 선이라고 하고 쟤는 천이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반갑습니다. 선님, 천님.”


다시 한번 배꼽 인사를 한다.


“헛! 벌써!”


다시 음식이 나왔고 얍얍이 의자로 뛰어올라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천과 나는 그런 모습을 멀뚱히 쳐다만 봤다.


침체되어있는 분위기가 어린 곰 특유의 성격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환기가 된 듯하다.


“아- 잘 먹었다.

고맙습니다.

천님, 선님.”


또다시 의자에서 뛰어내려 배꼽 인사를 한다.


“그래, 알았으니까 인사는 그만해.”


“네! 알겠습니다!”


얍얍이 의자에 앉아 멀뚱멀뚱한다.


“얍얍, 잘 데는 있어?”


“배도 채웠겠다.

이제 찾아봐야죠!

날이 어두워지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찾는데 어려움은 없을 거예요!”


적당한 곳을 찾아 노숙하려는 속셈이구나.


“괜찮으면 우리랑 같이 있을래?”


말을 하며 천을 쓱 봤지만,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네? 괜찮습니다!

밥까지 얻어먹었는데 더 폐를 끼칠 수 없어요!”


“괜찮아. 우리 둘뿐이고 방도 넓어서 너 하나쯤은 와도 상관없어.

그렇지?”


“그래. 보아하니 밖에서 잘 예정으로 보이는데 우리와 함께 자고 내일 가거라.”


“폐 끼치면 안 되는데···.”


“괜찮다니까.

오늘 우리랑 같이 따뜻한 데서 자자.”


“네! 그럼 염치 불고하고 신세 지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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