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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작가 윤도경의 찻집

신도림역 7번출구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드라마

윤도경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5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841
추천수 :
21
글자수 :
373,950

작성
23.05.20 10:00
조회
8
추천
1
글자
10쪽

바다-구절초차, 그리고 첫 번째 맞은 따귀

DUMMY

처음엔 뜻밖에 꽃차가 많아 다소 당황하기는 했어도, 독특한 취향이려니 하고 넘겼다.



그리고 국화꽃 비슷한 꽃이 그려진 앤틱 사각 쟁반에 차를 담아


윤정이 쉬는 방 문 앞에서 노크를 했다.



<정인> “사모님, 차 좀 내왔습니다.”


<윤정> “으, 응. 들어와.”



윤정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얼른 오른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속이 더부룩해서 곤란하다는 티를 내려고 애썼다.


한번은 괜히 구토가 나는 척 ‘오버’하다가 진짜 신물이 나올 뻔 한 위기상황을 맞이하고는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정인> “몸이 많이 불편하세요?”


<윤정> “조금.”


<정인> “이것 좀 드셔 보세요.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 일단 있는 것으로 타봤어요.”


<윤정> “꽃차네?”


<정인> “구절초차예요. 향이 좋죠?”


<윤정> “구절초차라. 참 오랜만에 마셔보는군.”


<정인> “이 구절초가 여자한테 좋은 차라고 하더라고요.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혈액순환도 원활하게 해줘서 특히 임신한 분들한테 좋은가 봐요.”



<윤정> “이거 마시면 입덧도 좀 가라앉으려나?”


<정인> “거기까진 모르죠. 하지만 여자한테 얼마나 좋으면 꽃말도 ‘가을 여인’이겠어요?”



이 말을 듣고 윤정은 잠시 이맛살을 찌푸렸다.



<윤정> “아줌마는 구절초차는 아닌 것 같은데, 뭐야?”


<정인> “저는 목련차예요.”


<윤정> “목련은 꽃말이 어떻게 돼?”


<정인> “목련까지는 잘 모르겠네요.(註1)


그런 걸 외고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제가 보기엔 꽃차가 이리도 많은 것을 보면, 사모님께서는 아실 것도 같은데요?”



정인은 입을 가리고 슬쩍 웃음을 지어 보였다.



<윤정> “구절초는, 우리 신랑이 나한테 해주기로 한 목걸이가 있었는데 여태 안 해 주는 거야.


벌써 1년도 더 됐지 아마?


그래서 그거 받을 때까지 잊지 말자고 사 둔 건데,


근데 오랜만에 마셔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렇게 향이 좋을 줄은 몰랐어.”



<정인> “그런 사연이 있으셨군요?”



정인은 시큰둥하게 받아넘기려 하였다.



<윤정> “아줌마는 목걸이 같은 거 없어? 굳이 목걸이가 아니라도 다른 악세사리 같은 거 안 해?”


<정인> “저는 그런 거 안 해요. 아니 못 하죠. 아시겠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조였잖아요.”



윤정은 의아했다.


그녀가 직접 본 목걸이와 귀걸이가 있는데, 왜 그것을 부인할까.


뭔가 꺼림칙한 의혹이 일었다.



<윤정> “그래, 그렇구만. 그래도 몸에 뜨뜻한 게 들어가니까 좀 풀리는 것 같네. 한결 나아졌어.”


<정인> “입에 맞으시니 다행이에요. 참, 청소는 일단 마쳤어요. 이따 점심때 되면······. 식사는 뭐로 하시고 싶으세요?”


<윤정> “오늘은 죽으로 먹고 싶은데? 매콤한 죽이었으면 좋겠어. 될까?”


<정인> “죽이 드시고 싶으신 건가요, 아니면 매콤한 게 드시고 싶으신 건가요?”



정인은 머뭇거리다 되물었다.



<윤정> “왜 그런 걸 묻지?”


<정인> “매콤한 죽으로 노력은 해 보겠지만, 저도 자신이 없어서······.


혹시 다른 걸 내 드려야 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서요.”



<윤정> “아줌마가 못 한다면 매운맛은 내가 낼지도 모르겠네.”



윤정은 오른손을 얼굴 높이까지 들어 응시했다.


그리고 손바닥을 이리저리 돌려 보며 말하였다.



<정인> ‘날 치겠다고? 뱃속에 구절초가 들어가더니 진짜 가을 여자가 되었구나!’



정인은 바닥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아까까지의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려 애써봐야 소용이 없을 줄을 깨달았다.


어차피 무슨 구실을 대서라도 그녀를 치겠다는 의지임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죽을 끓이기는 어떻게 하는지는 대충은 알고 있어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기에, 정인은 잠시 당황하였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것, 일부러라도 마음을 담담하게 먹으려 애썼다.



<정인> “노력해 볼게요.”



그녀는 빈 찻잔을 쟁반에 담아 방을 나갔다.



<정인> ‘마음먹기로 안 되는 것이 눈물인가 보다.’



눈가에 서러움이 맺혔다.






정인은 냄비에 물을 얹고 멸치 육수를 냈다.


어차피 죽을 끓일 것이기 때문에 물은 센 불로 팔팔 끓였다.


웬만큼 우러나자 그녀는 멸치를 건져내고 김치와 각종 양념을 넣고 밥을 넣은 뒤 걸쭉해지도록 불을 올렸다.


밥이 퍼진 뒤에는 간을 하고 작은 불에 냄비를 달구었다.


맛을 보니 처음 해 본 솜씨치고는 썩 괜찮았다.



<정인> ‘어차피 이래도 맞고 저래도 맞을 거라면 때리는 손에서 힘은 좀 뺄 수 있겠지.’



그때였다. 화장실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정인은 얼른 화장실로 달려가 노크를 했다.



<정인> “사모님 괜찮으세요?”


<윤정> “들어와서 나 좀 일으켜 세워 줘.”



화장실 안에서 들려오는 윤정의 목소리가 몹시 날카로웠다.


정인이 문을 열었을 때 윤정은 바닥에 넘어져 있었고,


청소한 뒤의 바닥에 남겨진 물에 그녀의 옷 여기저기가 젖어 있었다.


그리고 얼굴은 짜증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인은 머릿속으로 걱정 한 다발이 홱 지나갔다.


그것은 윤정에게 따귀를 호되게 맞을까 봐서가 아니라


그녀의 몸속 아기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만약 문제가 생겼다면 그것은 ‘따귀’로 끝나지 않고 법정으로 비화할 수도 있는 문제였으니까.



정인은 양말째로 황급히 들어가 윤정을 일으켜 세웠다.


눈앞에서 사람이 넘어졌으니 신발을 찾으러 갈 경황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희한하게도 그녀의 양말은 젖지 않았다.



<정인> ‘어라? 물이 다 말랐다?’



생각해 보면 바닥에 뿌린 물이 마를 만큼의 시간은 지났으니 양말이 젖지 않은 것은 그렇다 하겠지만,


그 경우에 윤정의 옷을 적신 물은 설명이 되지 않았다.



<정인> “어쩌다 넘어지셨나요?”


<윤정> “놔! 청소를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아이구 허리야.


애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이 일을 도대체 어떻게 할 거냐구!”



<정인> “죄송합니다. 한다고 했는데······.”



정인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울먹였다.


그것은 무엇이 됐든 다가올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윤정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갈 때까지 정인은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화장실에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분명 그녀는 화장실에서 누군가가 넘어지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정인> ‘그렇게 넘어질 거면 비명 소리만 아니라 쿵 소리도 났어야지. 왜 안 났지? 왜 안 났어?’



윤정이 넘어졌던 바닥에 발을 올려 보았지만 바닥은 미끄럽지도 않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서러움이 북받쳤다.



그때였다. 그녀는 아차 싶었다.


가스 불 위에 죽 냄비를 올려놓은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황급히 주방으로 뛰어가니, 이미 냄비에 물은 한 톨도 남지 않은 상태로 죽은 거의 ‘고두밥’이 되어있었음은 물론,


‘허기진’ 불은 이제 냄비를 태우고 있었다.


불을 끄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황망해 있는데


그 광경을 하필이면 윤정에게 들키고 말았다.



<윤정> “그게······. 죽이야?”



확실히 어이없어하는 목소리였다.



<정인> “죄송합니다. 다시 할게요.”



윤정은 숟가락을 들어 한술 뜨고는,



<윤정> “앗, 뜨거!”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윤정> “도대체 냄비를 얼마나 달군 거야! 완전히 숯덩이잖아! 불났으면 어쩔 뻔 했느냐구!”


<정인> “죄송합니다.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아까 화장실에서······.”



그때 정인은 눈에서 번쩍 하고 빛나는 불빛을 보았다.


그리고 몸이 중심을 잃고 휘청였다. 생전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뺨을 맞은 것이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아무리 가사도우미라지만, 이런 일로 뺨을 맞는다는 것은 분명 부당한 처우인데,


‘한 대 5만 원’이란 말을 듣고는 오히려 당연하게까지 생각하는 자신이 정인은 허허로웠다.



<윤정> “관둬! 난 말이야 변명하는 사람이 제일 싫어!”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정인은 또다시 번쩍 하는 불빛을 보고 말았다.


어찌나 세게 맞았던지 이번에는 맞은 반대 방향으로 몸이 쓰러지고 말았다.



<정인> “죄송합니다. 변명하려는 건 아니고, 죽은 다시 끓여내겠습니다.”



정인은 또 맞을까 싶어 얼른 일어나 말하였다.


그러면서도 눈은 감히 윤정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자존심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돈이고 나발이고.



<윤정> “그럴 것 없어! 꼴 보기 싫으니까 당장 나가!”



윤정은 정인에게 짜증을 퍼부었다.


정인은 뭐라 말은 못 하고 우물쭈물하더니 겨우 모기소리만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정인> “왜 그러시는지요? 시장하실 텐데, 점심 드셔야지요.”


<윤정> “내 배는 한번 고프면 그만이야.


그보다 아줌마 면상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더 열 받아서 폭발해 버릴 것 같아!


그러니까, 나가. 당장!”



정인은 하는 수 없이 자기 방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서러웠다.



다시금 윤정을 봐야 하는데 그 얼굴을 어떻게 볼까 싶어 망설이다가 거실로 나왔더니,


윤정이 씩 웃는 것이었다.



<윤정> “자, 맷값이야. 받아가.”



윤정은 만 원짜리 열 장을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집어 들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건네주려 하였다.



큰돈이었다. 맷값이란다. 자존심이 상했다. 받아야 하나.



<정인> “마음은 고맙습니다만, 다음에, 다음에 받아갈게요.”



그녀는 웃고 있는 윤정의 곁을 비껴서 현관문을 열고 황황히 사라졌다.


도대체 무엇이 고마운지 모를 일이었다.





=== 주석


註1. 목련의 꽃말은 ‘고귀함’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19 dr******..
    작성일
    23.05.20 14:58
    No. 1

    정말로 많은 걸 배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1 윤도경
    작성일
    23.05.20 15:59
    No. 2

    배우지 마시고 그냥 소일거리로 읽으세요.
    누굴 가르칠 입장도 아니고
    누굴 가르치려고 쓴 글도 아닙니다.
    그러고 싶은 생각도 없고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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