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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작가 윤도경의 찻집

신도림역 7번출구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드라마

윤도경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5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848
추천수 :
21
글자수 :
373,950

작성
23.05.21 20:00
조회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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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만남-왜 저를 뽑으셨습니까?

DUMMY

정인은 고마움의 표시로 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고 100만 원을 받아들고는 집 현관을 나서 병원으로 향했다.






그날 저녁 윤정은 태휘와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이 일에 대해 얘기했다.



<윤정> “우리 집 일 봐 주시는 아줌마 있잖아. 그 아줌마 아빠가 많이 편찮으신가 봐.”


<태휘> “그래?”



태휘는 별스럽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태휘> “아줌마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이 많은 사람이 병을 얻는 것이야 흔하디흔한 일인데 뭘.”


<윤정> “이제 곧 돌아가실지도 모른다고 하던데?”


<태휘> “때가 되면 어쩔 수 없지.”


<윤정>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던데, 안쓰러워서 혼났네.


그래서 내가 100만 원 주면서 당분간 아버님 옆에서 병간호나 하라고 보냈어.”



<태휘> “잘했어. 근데 100만 원씩이나 줬어?(註1)”



태휘는 자신의 동의 없이 윤정이 너무 큰 돈을 썼다는 것에 대해 심기가 다소 불편했다.



<태휘> “아무리 식구 같은 분 일이라고 해도 최소한 나랑 상의 정도는 할 수 있는 거잖아. 전화도 못 해?”


<윤정> “목소리가 왜 그래? 잘못하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태휘> “작은 돈이 아니니까 그러지.”


<윤정> “그래도 루비 목걸이랑 에메랄드 귀걸이보다는 작을 텐데?”


<태휘> “그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그거 못 사준 건 미안해. 대신 사파이어 반지는 해 줬잖아.”



태휘는 전혀 관계없는 두 가지를 엮는 윤정에게 100만 원 일까지 섞여서 짜증이 밀려왔지만,


일을 더 키우고 싶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 뒤로 열흘 남짓 지나고 윤정은 정인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에는 피곤기가 많이 묻어났고 울음을 참는 듯 가끔씩 굴절된 목소리가 들리긴 하였지만,


대체로 조용하고 차분한 말투였다.



<정인> - 네, 사모님. 아빠 돌아가셨습니다.


<윤정> “아니, 어쩌다가. 이거 정인 씨 안쓰러워서 어떡하지?”


<정인> - 절 위해 안쓰러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윤정> “장례는? 장례는 언제야? 꼭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작으나마 위로라도 해주고 싶어.”


<정인> - 위로. 사모님께서 절 위로해 주신다 하실 줄 알았더라면 장례를 좀 늦출 걸 그랬습니다.


<윤정> “무슨 말이야?”


<정인> - 아무 말도 아닙니다. 연락 못 드리고 장례 치른 것은 죄송합니다.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그러고 전화가 끊겼다.






- 3 -




이튿날 10시, 정인은 윤정의 집에 나타났다.


검은 원피스에 앞이 열리는 검은 재킷을 입고 포니테일 머리를 한 단정한 모습으로,


전형적인 상복을 입고 있었다.


목에 두른 루비 목걸이는, 굳이 윤정 앞에서 둘러야 할 이유는 없어 보였지만 굳이 또 걸고 왔으므로,


복잡미묘한 심경을 표출하는 데는 이보다 안성맞춤인 것이 없을 정도로 어색했다.



윤정은 오랜만에 만난 정인을 제법 반갑게,


그리고 아빠를 잃어 슬픔에 휩싸였을 그녀를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맞이했다.


하지만 루비 목걸이를 보고는 그만 눈빛이 반짝였다.


왜 에메랄드 귀걸이는 하지 않았는지 의아한 마음이 일었다.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상복에 루비는 어울리지 않았다.


더구나 추암 바닷가 여행 뒤에 갖고 싶었던 루비인 다음에야.



<윤정> “아직 상중인가 봐?”



윤정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는 장례가 끝난 뒤로도 누군가의 죽음을 애달파 하는 마음을 이해는 하지마는,


그것을 상복과 같은 것으로 외부로 표출하는 것은 잘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의아한 마음이 인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과시할’ 목적이 아니라면, 썩 어색한 모습이었다.



<정인> “마음속에서 아빠를 떠나보내기가 힘드네요.”



정인이 대답했다.


누군가를 잃고 실의에 빠진 사람 치고는 대본에 쓰기라도 한 듯 대답은 빨랐다.



<윤정> “오늘은 정인 씨 방에서 쉬어. 그래도 돼.”


<정인> “아뇨, 사모님. 저 오늘부터 이 일 그만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그 말씀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윤정> “나한테 서운한 거라도 있어? 왜 그래?


그러잖아도 정인 씨, 아버님 돌아가셨을 때도, 장례 치를 때도 말도 안 하고 서운한데


이러면 나도 섭섭해.”



<정인> “돈 주고 부리시는 사람이 돈 안 받고 일 안 하겠다는데


사모님께서 서운하실 일이 있으실까요?”



<윤정> “물론 그럴 일이야 없지. 돈 관계로만 보면.


근데 이런 식은 아니잖아.


어제 전화 때까지만 해도 난 정인 씨가 마음을 추슬렀겠거니,


그래서 나한테 아버님 돌아가신 얘기도 하는 것이겠거니 생각했어.


당연히 오늘부터 일도 다시 할 줄로 믿었었고.”



<정인> “며칠 전 아빠가 위독하시다고 말씀드리던 날 제게 병원에 가 보라고 말씀하실 때까지는 그랬습니다.


고맙더군요. 저 같은 것한테도 세심하게 마음을 써 주시는구나,


그런 분 밑에서 일을 하는구나, 아빠는 위중하셔도 나는 참 복 받은 여자구나.


근데 지금은 그러기가 쉽지 않네요.”



<윤정>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얘기네?


그러면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로 이런다는 건데, 정인 씨,


아무리 돈이 오가는 사이로 만났지만 이래도 된다고 생각해?”



<정인> “사모님께서는 저를 왜 뽑으셨습니까?


단순히 임신하셨기 때문에요? 아뇨. 처음 제게 말씀하셨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라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뺨을 치는 저질 취미가 있으신 줄은 몰랐지만, 참았습니다.


지금은 왜 붙들어 두려고 하십니까?


지난 열흘간은 스트레스를 누구의 따귀를 쳐서 푸셨습니까?


들어두고 싶군요.


저를 왜 뽑으셨습니까?”



<윤정> “왜 뽑냐니? 정인 씨가 하고 싶다고 해서 일할 기회를 준 거잖아.


다시 말해 줄까? 일할 ‘기회를 준’ 거라고. 설마 그게 이러는 이유야?


그럼 처음 뺨을 맞았을 때 그만두지 않고?”



<정인> “그러려고 했죠. 그땐 이 옷을 입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으니까.


그런데 이 옷을 입을 생각은 안 했어도 입을 옷이 없는 줄을 몸이 알더군요.


이미 알고 있었단 말입니다.”



정인은 그녀가 입은 상복의 열린 재킷을 잡아 흔들며 말했다.



<윤정> “목걸이가 꽤 고급져 보이는군.”


<정인> “사모님께서는 그런 제게 입을 옷이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우쳐 주셨더랬죠.”


<윤정> “그 옷은 산 거야?”



윤정은 정인의 상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인> “그런 걸 왜 물으시죠?”


<윤정> “며칠 입지도 못할 것 같은데 꽤나 비싸 보여서.”


<정인> “아뇨, 이 옷은 오래 입을 겁니다. 아주 오래.”


<윤정> “정인 씨 뜻은 알겠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아주 확고한 것 같네.


왜 그런 생각에 이르게 됐는지는 정말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아예 남남이 되지는 말자고.


장례 못 간 것도 미안한데, 다음 주 일요일날 시간 비워 놔. 같이 식사라도 하게.”



<정인> “그런 일로 시간을 비우기까지 해야 합니까?”


<윤정> “우리 신랑도 같이 먹고 싶어서.


언제든 만나게 해주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어.


그렇다고 한 번도 못 만나고 그만뒀다 하면 나도 얼굴 들기 힘들어.


그건 좀 배려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정인> “그러죠.”



정인은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인사를 하고 나가려 하였다.



<윤정> “아, 잠깐. 다음번 올 때는 귀걸이도 같이 하고 왔으면 좋겠네.


기왕이면 보석이 박힌 걸로.”



정인은 움찔, 하였다.


윤정 앞에서 단 한 번도 귀걸이 - 에메랄드 귀걸이를 찬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귀걸이 없는 여자가 몇이나 될까 하겠지만,


에메랄드 귀걸이를 한 여자는 주위에서 쉽게 보지 못하였다.



물론 다이아몬드나 진주 등 다른 보석으로 된 귀걸이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정인은 오늘 자신의 루비 목걸이를 윤정이 보았기 때문에


‘귀걸이’는 ‘당연히’ 에메랄드 귀걸이를 말하는 거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또 그녀가 가진 보석 귀걸이는 에메랄드 귀걸이였기 때문에,


혹시 언제 어디선가 보고서 말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고,


그랬기에 ‘보석 귀걸이’는 당연히 ‘에메랄드 귀걸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이었다.



그녀는 윤정을 돌아보더니 이내 뒤돌아서 현관을 빠져나갔다.






그날 저녁 윤정은 태휘와 차를 마시며 정인의 일을 이야기했다.



<윤정> “우리 아줌마 있잖아. 오늘 그만뒀어.”


<태휘> “아니 왜? 난 얼굴도 못 봤는데 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윤정> “며칠 전에 아버님 돌아가셨다고 했잖아?


실은 어제 장례 끝났다고 오늘 집에 오겠다고 말하길래


난 오늘부터 다시 일한다고 할 줄 알았는데, 그만두겠다고 하더라고.


아버님 돌아가신 충격이 큰가 봐.”



<태휘> “그게 이유야?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그만두게 뒀어?”


<윤정> “나도 마음 돌려보려고 애썼지. 근데 안 되더라고.”


<태휘> “좀더 살펴주지 그랬어. 마음고생이 심했을 텐데. 어쨌거나 이제 새 아주머니 모셔 와야 되겠네?”


<윤정> “아니, 괜찮아. 입덧이 없어지니까 견딜만해. 그러고 나니까 차라리 잘 된 것 같기도 하고.”



태휘는 이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윤정> “참, 다음 주 일요일에 아줌마랑 저녁 같이 하기로 했어.


그래도 몇 달간이나마 내 수발을 들어 준 사람인데,


그런 자리는 한 번쯤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


자기도 시간 비워 놔. 그래 줄 거지?”



<태휘> “응? 뭐라고 했어?”



태휘는 놀란 듯 되물었다.



<윤정>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다음 주 일요일날 아줌마랑 같이 저녁 먹자고.”


<태휘> “그래야지. 계실 때 한번 뵀어야 하는데, 내가 다 죄송하네.”


<윤정> “근데 그 아줌마, 좀 희한한 게 있더라고.


장례도 끝났다면서 시꺼머죽죽한 옷을 입고 나타난 거야.


좀 재수 없었어.”



<태휘> “이유가 있었겠지.”


<윤정> “이유가 있으니까 입었겠지만, 그렇게 어깃장을 놓을 필요는 없잖아?”


<태휘> “아주머니가 좀 꼬인 분이야?”


<윤정> “그거야 모르지.


근데 그 옷을 아주 오래 입을 이유가 생겼다고 했으니까


어쩌면 저녁 먹는 자리에 그 옷 입고 나올지도 몰라.”



태휘는 가사도우미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부친 병간호를 위해 배려해 준 사람들에게 부고도 하지 않고 장례를 치러 버리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꼭 뭔가 뒤틀린 사람처럼 ‘마지막 만남’에 상복을 입고 나타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뿐 아니라 ‘좀 재수 없었다’고 말하는 아내가 그런 가사도우미와 꼭 한번 만나 저녁을 같이 먹자고 말하는 것이며


그걸 위해 시간까지 비워놓으라고 하는 것까지 상례에서 벗어나는 것이어서 마음이 영 개운치 않았다.





=== 주석


註1. 1999년 100만 원은 국립대학교 한 학기 등록금에 약간 못 미치는 큰 돈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19 dr******..
    작성일
    23.05.21 20:41
    No. 1

    정말로 잘 쓴 글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1 윤도경
    작성일
    23.05.22 01:46
    No. 2

    감사합니다.
    그런데 글 읽으시는 것을 보니 중간 중간 건너 뛰시는 것 같은데,
    실은 이 글은 띄엄띄엄 읽어서는 제 맛을 다 볼 수가 없어요.
    괜찮으시다면 안 읽으신 꼭지도 읽어 주시면 어떨까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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