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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작가 윤도경의 찻집

신도림역 7번출구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드라마

윤도경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5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8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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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5
추천수 :
21
글자수 :
373,950

작성
23.05.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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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만남-꼭 살아남으세요...

DUMMY

그와 동시에 태휘는 그 자세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정인의 손에는 주사기가 들려 있었고, 맹독을 주사한 듯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였다.


전형적인 청산염 중독의 증세였다.



<정인> “오빠, 사람이 구더기랑 다른 게 뭔지 알아?


생각? 말? 아니면 뼈? 직립보행?


아냐. 옷을 입느냐 마느냐야.


구더기도 자기들끼리 말을 하고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알아?


그러면서 사람들은 생각이 있고 말이 있어서 존귀하다느니 떠든다지?


그런 거 보면 참 우스워.


맞아. 옷 입은 구더기는 사람이고 옷 벗은 사람은 구더기인 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오빠도 침대에서는 윤정 씨랑 한 데 섞여 꼬물거리겠지. 구더기처럼.


그런 처지에 뭐는 귀하고 뭐는 천하다느니, 참 역겹다.


오빠의 옷을 벗기려고 내가 이제껏 상복을 입었어.


그렇다고 지금 입은 상복을 벗을 생각은 아직 없지만, 말은 해주는 거야.


저세상에서라도 알라고.


내가 왜 상복을 입겠다고 말했는지.”



정인은 이 한 마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그 장소를 빠져나갔다.



<정인> “정말 오래 기다렸어.”






지후는 태휘의 휴대전화를 다른 곳으로 가져가서 태워버렸다.



나중에 경찰 수사에서 태휘의 통화기록에 문자를 따라 포착된 전화번호, 즉 지후가 썼던 번호는 대포폰으로 확인되었고,


태휘가 사망한 곳은 아동 성매매의 장소로 밝혀졌다.



그러니 기막힌 특종이 탄생하는 것이었다.



태휘의 목덜미에 찍힌 주삿바늘 자국은 마약을 주사한 자국으로 둔갑하여,


이튿날 Q 신문 단독으로 “상습 마약 투약 의혹 도 모 씨, 아동 성매매 장소에서 사망”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물론 이 기사는 태휘의 부검결과가 나오기까지만 유효하겠지만, 지후는 개의치 않았다.






- 7 -




- 2000년 8월(김윤정의 생)




태휘의 사망 소식은 신문지상과 방송을 강타했다.


그간 잠잠한 듯 보였던 그와 X 매트에 대한 소식도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 싶을 정도로 잦아졌고,


사망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그가 소아성애자였다는 둥 성적으로 문란했다는 둥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추측성 보도가 주를 이루었다.



무엇보다도 사망한 ‘도 모 씨’가 태휘라는 것이 사람들 입소문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으며,


사람들은 그를 어디서 벼락이라도 맞았으면 싶은 사람, 짜증과 혈압을 동시에 상승시키는 사람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사건에 대한 관심은 태휘의 신변과 사생활에 대한 관음증적인 시선으로까지 번졌다.



그러니 기자들도 이들의 수요를 충족시켜야 했고,


그러므로 취재 경쟁, 특종 경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이는 더 자극적인 기사 양산경쟁으로 번져나갔다.



이 때문에 괴로운 이가 윤정이었다.



더욱이 그녀는 남편의 사망 소식을 어느 기자의 전화를 통해 알았다.



<윤정> “하이에나 떼들이 썩은 고기를 봤네. 세상에 나같이 기구한 년이 어디 또 있을까.”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며칠 뒤 그녀는 알 수 없는 이로부터 소포를 받았다.


분명 받는 사람의 이름에는 ‘김윤정’이란 이름이 주소와 함께 뚜렷하게 적혀 있었지만,


보내는 사람의 이름에는 주소와 이름처럼 보이는,


하지만 의미 없는 낱자들이 연속된 글귀가 있는 괴상한 소포였다.



<윤정> “누구지? 나한테 이런 걸 보낼 사람이 없는데?”



그녀는 조심스레 상자를 열어 보았다.


그러고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안에는 루비 목걸이와 에메랄드 귀걸이가 들어있었던 것이었다.


윤정은 직감했다.



<윤정> “채정인! 채정인 그년이 죽인 거 아냐?”



안에는 쪽지가 하나 딸려 있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 상복, 아주 오래 입었습니다. 머지않아 벗을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를 위해 눈물은 아껴 두세요.










그녀는 목걸이와 귀걸이를 손에 쥐어 보았다.


루비 목걸이와 에메랄드 귀걸이가 오른손 약지에 낀 사파이어 반지와 부딪히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윤정> “결국 그렇게 해 달라고 했던 루비와 에메랄드는


세상이 ‘아름답지 못한’ 죽음이라고 조롱하고 비난할 때 비로소 가지게 되는구나.


그것도 채정인을 통해.”



그녀는 기가 막혔다.



<윤정> “내가 추암 바다를 달라고 한 것이 그렇게 부담됐어?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하지 죽어서 주는 건 무슨 심사야, 인간아!”



윤정은 정인의 편지 속 말, 즉 상복을 입는다는 것과 상복을 벗는다는 것의 뜻을 짐작은 해도 정확히 알지는 못하였다.


그저 부친이 죽은 뒤로 태휘의 죽음을 예정하고 있었다는 것이며,


이제 태휘가 죽었으니 그를 위하여 좀 더 입다가 벗어버리겠다는 뜻으로,


그리고 곧 벗을 상복은 윤정 자신이 입게 될 것이며,


그때를 위하여 눈물을 아껴 두라는 조롱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주먹을 움켜쥐고 부르르 떨었다.



<윤정> “네깟게 어딜 감히!”



소포는 한때 불륜의 ‘상간녀’였던 정인의 조의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놀림감’에 대한 비아냥이 가득 담긴.



<윤정> “이 조롱과 비아냥이 죽은 사람만을 향한 것은 아니겠지.


내게 루비와 에메랄드로 조의를 보내 세련된 척을 하려는 거겠지만,


산 사람에겐 조의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윤정은 불쾌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마치 ‘결혼’이란 외피를 두르고 살긴 살았지만,


애초에 시작한 적도 없으며 사랑도 없는 결혼생활일 뿐이었다고 비웃음을 당하는 것만 같았다.


거기에 ‘아기’를 가지고 생쇼를 벌이는 모습을 얼마나 같잖게 봤을지를 생각하면


온몸에 구더기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오싹하고 소름이 끼쳤다.






한편 태휘가 사망한 지금, 그와 혼인신고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이제 법적으로 태휘와 혼인신고를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고,


그의 법적인 아내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註1)



윤정에게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와 무관하게 그러했다.



죽은 사람의 아내가 되고 말고는 그쯤, 한 톨만큼 신경 쓰기도 과분한 일이었다.


다만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그의 아기가 문제였다.


벌써 임신 4개월이나 되었다.



한해 전(1999년) ‘유산’ 쇼를 벌인 뒤로 그녀는 병록과 해월의 압박 아닌 압박을 꾸준히 받았으며,


마찬가지로 그들의 압박을 받은 태휘의 난처한 입장도 무시할 수가 없어서 아기를 가지려 꾸준히 노력했었다.


그때 그녀가 아기에게 미안했던 것은 어차피 가질 아이라면 조금 일찍 가져도 되겠지 하는, 체념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그가 곁을 떠날 줄은 조금도 예상치 못하였다.


그러니 위험해서 낙태도 하지 못하는 때에,


그녀는 뜻밖의 암초를 만난 거나 다르지 않았다.


지금 상황이 곤란한 것은 그녀에게나 장차 태어날 아기에게나 마찬가지였다.



1년 전에는 그에게 떠밀려 유산된 척 연기도 하였지마는,


지금은 하루가 멀다 하고 걸려오는 전화,


불붙은 전화통으로 인한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아기가 떨어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요절복통이었다.






태휘의 장례가 끝난 후, 차갑고 냉담하게 변한 시부모의 태도에서 그녀는 아기가 화근이 될 수 있음을 느꼈다.


어느 부모나 그렇겠지만 불의의 사고로 아들이 죽은 마당에


며느리는 ‘제 서방 잡아먹은 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단지 그것만이면 견디면 그만이었다.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단 하나라도 있어서 굳이 견뎌야 한다면.



문제는 왠지 모르게 그녀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윤정> ‘저분들이 왜 갑자기 냉기를 몰고 다니는지 모르겠네. 날 대할 때도 내 배만 보고 다니고. 어휴······.’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 죽지 마세요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길 빕니다.


부군께서 불의의 사고로 그렇게 되시고 슬픔에 잠겨 계실 줄로 압니다.

그런데 시부모님께서 위로는 못 해주실 망정 별 이유도 없이 얼굴을 싹 바꾸셨지요.

그분들이 지금 사모님께서 느끼시는 인생의 온도만큼 차갑고 냉담해지신 이유가 궁금하실 겁니다.

궁금하시기보단 어이없으실지도 모르겠네요.


아들이 죽어서? 그럴 수도 있지요.


하지만 따지고 보면 도태휘 사장님은 아동 성매매 업소에서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짓을 하다가 돌아가신 건데,

그 책임이 김윤정 사모님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분들이 없애려는 것은 뱃속의 아기, 그 아기입니다.


부디 처신, 잘 하시기 바랍니다. 꼭 살아남으세요.




- 2000년 8월. 아직 상복을 벗지 않은 채정인 드림.










정인의 편지였다.



내용은 시부모가 그녀에게 냉담해진 이유를 설명해 주는 ‘따뜻한’ 글이었지만,


정인이 그녀에게 이와 같은 편지를 보내 줄 이유는 없었다.



더욱이 ‘죽지 말라’는 참으로 ‘따뜻한’ 제목까지 더하면 이건 대놓고 죽으라고,


죽어 달라고 저주를 퍼붓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녀는 아직도 상복을 벗지 않았다는 부분에 주목했다.





=== 주석


註1. 배우자의 일방이 사망한 경우 혼인신고를 할 수 있게 길을 터 준 법으로 혼인신고특례법(1968년 12월 31일 제정)이 시행되고 있으나, 같은 법에 따르면 제1조에서 “전쟁 또는 사변에서 전투에 참가하거나 전투수행을 위한 공무에 종사함으로써 혼인신고를 당사자 쌍방이 하지 못하고 어느 일방이 사망한 경우의 특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소설에서는 어느 경우로 보나 윤정은 태휘와의 혼인신고를 할 수 없다. 작가가 과문한지는 몰라도, 전투나 전투수행을 위한 공무 이외의 사유로 사망당사자와 혼인신고를 할 수 있는 사유는 발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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