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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작가 윤도경의 찻집

신도림역 7번출구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드라마

윤도경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5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852
추천수 :
21
글자수 :
373,950

작성
23.05.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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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도림의 바다-결혼한 놈을 아직도 바라보다니, 너 참 바보다!!

DUMMY

윤정은 이날 관계를 맺은 것으로 가정하고 임신했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태휘는 이날 관계가 없었음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임신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이날로부터 기산한 임신 2개월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는 의미가 되고 마는 것이었다.



<도림> ‘내가 미쳤지. 그랬으니 윤정이가 실제 임신이라면


그것은 자기 아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거잖아.


당연히 불륜을 의심했을 테고.’



문제는 왜 태휘가 실제 임신으로, 그리고 자기 아이를 임신한 것으로 믿어 줬는가였다.


도림은 이 일을 깊이 생각했지만 아무리 해도 풀리지는 않았다.



<도림> “그러니 남의 아기, 아니지, 없는 아기로 유산했다고 말했을 때 저 사람은 얼마나 같잖았을까.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리네.”



임신 스트레스를 풀겠다며 사람을 들이겠다는 것을 들어주면서도 얼마나 어이없어했을까를 생각하면


그녀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 11 -




- 1999년 4월(회귀한 신도림의 생)



4월은 도림이 임신을 핑계로 정인을 들인 달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이번 생에서는 그녀를 들이지 않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을 운명이 허락할지는 차치하고라도,


천반산의 그 목소리는 그녀가 도림으로서 고통스럽게 사는 이유가 전생의 업 때문이라고 했고,


그녀는 전생의 업을 풀기 위해 회귀를 선택하였기 때문에


정인과 ‘무관한’ 삶을 산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도림> ‘업을 해결하려면 어쩔 수 없어.


들여서 잘 대해 줘야 내생으로 돌아가서도 잘 살 수 있을 테니까.’



또 한 가지 정인은 윤정의 생에서 태휘를 살해한 것으로 강력하게 추정이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앞으로 그녀에게 벌어질 모든 일을 풀 실마리를 얻기 위해서라도


정인과는 모종의 관계를 설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정인은 X 매트의 플래카드 사건이 있은 뒤로 지후를 만나는 횟수가 이전보다 한층 잦아졌다.


굳이 그럴 이유는 없었지만, 태휘의 회사,


장차 그녀의 것이 될지도 모르는 회사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혹은 절박감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목걸이와 귀걸이의 힘은 컸다.



이날도 정인은 시내 어느 찻집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지후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지후가 캐비닛에서 사진을 꺼내고 싶은 유혹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였다.


마침 찻집 안으로 지후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녀는 손을 흔들었다.



<정인> “선배, 오랜만이에요. 혹시, 복직은 하셨나요?”


<지후> “얼마나 됐다고 오랜만이야. 싱겁긴.


복직은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속은 타지만 내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닌데 어쩔 수 없지.


넌 어떻게 지냈니?”



<정인> “옥탑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삐 지내고 있어요.”



정인은 웃었다.



<지후> “옥탑? 이사갔어? 왜?”



정인은 저간의 사정에 대해 지후에게 털어놓았다.



<정인> “그래서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죠. 아빠 병원비도 있고······.”


<지후> “그런 중요한 얘기를 지금 하는 거야? 그래서, 도 사장이 아버님을 만나기는 했니?”


<정인> “아뇨. 조만간 만나겠죠.”


<지후> “넌 도 사장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거고? 도 사장도 네 맘을 알아?”



정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말할 것은 아니지만, 보석을 두 개나 받았으니


‘갈대’(여자의 마음)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정인> “오빠도 제 마음을 알 거예요.”


<지후> “너 참 바보다.”



지후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그리고 뜻밖의 말에 정인은 눈을 반짝 떴다.



<정인> “무슨 뜻이에요? 왜 그래요?”


<지후> “도태휘 결혼했어 임마.”


<정인> “네? 무슨 말이에요? 왜요? 언제요?”


<지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벌써 여덟 달이나 됐어.”


<정인> “정말이에요?”



정인은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 계속 되묻기를 반복했다.



<지후> “그럼 내가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뜨신 밥 먹고 니한테 거짓말 하겠냐? 너만 도태휘한테 이용당한 거야.”


<정인> “거짓말! 거짓말 치지 마세요.


왜 도 사장님과 저 사이에 이간질을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선배가 그런다고 해도 저, 넘어가지 않아요.”



<지후> “이거 이거, 완전히 멍텅구리가 됐구만.


8개월이면 짧지도 않은 시간인데, 그동안 뭐 했니?


너는 그렇다 쳐도, 도태휘 그놈은 너한테 결혼했단 말 안 하디?


네가 이렇게 애간장을 태우는데 그놈이 결혼하자 소리는 하디? 안 하지?


너한테 마음을 접은 거야.


당연하지. 마누라가 있는데 애인이 다 뭐야.”



<정인> “그럼 무슨 증거라도 있나요? 제가 보고 믿을만한?”


<지후> “나 기자야. 내 말이 증거인 거야.”


<정인> ‘기잔데 Q 신문 기자였잖아요. 믿을 걸 믿어야지 원.’



정인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불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마침 어제도 태휘와 만나서 저녁을 먹었기 때문에


그녀는 지후의 말이 너무나 터무니없었다.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태휘와 함께 한 ‘저녁’을 신뢰하겠다는 의지였다.



<정인> “그러니까 선배 말 말고 다른 증거요.”


<지후> “못 믿겠으면 도태휘한테 물어봐. 당신 나 버리고 결혼했나요? 이렇게.”


<정인> “그러니까 증거요, 증거! 증거를 달란 말이에요!”



정인은 울 듯한 목소리로 소리를 쳤다.


마음이 떨려서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는 듯한 낯빛이었다.


아무리 태휘와의 저녁을 믿기로 했다고 해도 ‘삼언성호’(註1)(三言成虎) 또한 만고의 진리임을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Q 신문에서 일했던 사람인 바에야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지후는 예식장에 전화를 걸었다.



<지후> “OO 예식장이죠? 저 도태휘라고 하는데요, 네, 네, 작년 8월에 결혼한.


앨범 사진 몇 장 뽑을까 해서 전화드렸는데, 가능할까요?”



그리고 수화기를 정인의 귀에 들려주었다.










<예식> - 도태휘 씨라고 하셨죠? 어느 사진을 뽑으려고 하시는지 말씀하시면 저희가 뽑아 드리겠습니다.










정인은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얼굴은 넓고 황량한 들판에 눈 2개, 코 1개, 입 1개 도합 4개의 어두운 흉가가 들어선 듯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정인> “고마워요, 선배.”



그녀는 조용히 일어나 자리를 떴다.


지후가 어디로 갈 건지 목적지라도 있느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얼른 정인을 따라나섰다.


혹시라도 한강에서 기삿거리가 생기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한편 그 며칠 뒤 도림은 태휘에게 사람을 들이겠다고 말했고, 오늘은 마침 정인이 와서 일하기로 한 첫날이었다.



그날 10시 정인이 그녀의 집에 왔을 때 뭐부터 하면 되겠느냐고 묻는 그녀에게


도림은 그때처럼 점심부터 해서 먹자고 제의했다.


점심으로 김치찌개를 먹고 윤정 때처럼 커피를 마신 뒤에 도림은 정인을 방 안으로 들여 이것저것 물었다.



절대로 ‘업’을 쌓아서는 안 된다는 강박감이 있어서 정인과 관련한 모든 일은 항상 조심스러웠다.



<도림> “정인 씨, 결혼했어요?”


<정인> “그건 이미 아시듯이······.”



정인은 여전히 머뭇거렸다.



<도림> “안 했어요?”


<정인> “네. 아직 안 했습니다.”


<도림> “그럼 내가 정인 씨를 뭐라고 불러야 하나?


내내 ‘정인 씨’라고 이름을 부르기는 너무 거추장스럽잖아요?


그렇다고 ‘정인아’ 하기는 너무 예의가 아닌 것 같고.”



<정인> “편하신 대로 부르세요. 전 뭐든 괜찮습니다.”


<도림> “결혼 안 하신 정인 씨한텐 미안하지만······.”



윤정 때에는 여기서 ‘아줌마’라고 부르겠다고 했었다.


도림은 하마터면 또 ‘아줌마’라고 부르겠다고 말할 뻔 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도림> “거추장스러워도 어쩔 수 없지. ‘정인 씨’라고 부를게요.”


<정인> “그렇게 하세요. 전 상관없습니다.”



정인은 이번엔 입술을 깨물지 않았다.


도림은 그것을 유념해 봤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도림> “그리고······. 나이는 내가 두 살이 많죠? 말도 편하게 할게요. 괜찮죠?”



도림은 마음이 헛헛했다.


17세 소녀가 이런 말을 ‘해야’ 하다니.


하지만 이번에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따귀를 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럴 의지도 없었다.



<정인> “그럼요. 편하신 대로 하세요. 저도 그게 좋습니다.”



정인은 웃었다.


별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웃어주는 정인이 도림은 오히려 고맙기까지 했다.






이튿날 정인은 윤정의 때처럼 방 청소와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잠시 허리를 폈다.


아픈 허리를 웬만큼 추스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녀는 주방으로 나와 작은 주전자에 물을 넣고 끓였다.


차를 내갈 참이었다.



찬장에는 꽃차들이 많이 있었다.



그녀는 이번에도 구절초차를 선택했다.


찻잔에 찻숟가락으로 구절초차를 조금 떠냈다.


그러고는 그녀 몫의 찻잔에는 목련차를 떠냈다.



뜻밖에 꽃차가 많아 다소 당황하기는 했어도, 독특한 취향이려니 하고 넘겼다.



그리고 쟁반에 차를 담아 도림에게 내 갔다.



<정인> “이것 좀 드셔 보세요.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 일단 있는 것으로 타봤어요.”


<도림> “꽃차네?”


<정인> “네. 구절초차예요. 향이 좋죠?”


<도림> “구절초차라. 참 오랜만에 마셔보는군.”


<정인> “이 구절초가 여자한테 좋은 차라고 하더라고요.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혈액순환도 원활하게 해 줘서 특히 임신한 분들한테 좋은가 봐요.”



<도림> “그래? 이거 마시면 입덧도 좀 가라앉으려나?”


<정인> “거기까진 모르겠어요. 하지만 여자한테 얼마나 좋으면 꽃말도 ‘가을 여인’이겠어요?”



이 말을 듣고 윤정은 잠시 이맛살을 찌푸렸었다.


하지만 도림은 지금 정인이 아무런 감정 없이 하는 말인 줄을 알고 있었기에


이마에 괜한 주름은 잡지 않았다.





=== 주석


註1. ‘삼인성호’(三人成虎)는 세 사람이 우기면 없는 호랑이도 만든다는 말인데, 이를 비틀어 ‘삼언성호’(三言成虎)라고 한 것이다. 한 사람이 세 번 우기면 없는 호랑이도 만든다는 뜻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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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도림의 바다-이 사진, IMF랑 상관 없어! 23.05.28 12 0 11쪽
36 도림의 바다-IMF 플래카드로 인한 스트레스 23.05.27 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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