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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작가 윤도경의 찻집

신도림역 7번출구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드라마

윤도경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5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843
추천수 :
21
글자수 :
373,950

작성
23.05.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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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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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만남-그 여자 누구야?

DUMMY

정인은 이 상황이, 마치 네모반듯하게 오려내기만 하면


어느 아침 삼류 막장 드라마의 한 컷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치 전형적인 불륜 드라마의 모습인 데다가


그 속에서 뜻하지 않게 오래도록 주연을 맡아왔다는 생각에, 지금 형편이 몸서리쳐지도록 싫었고,


그에 더하여 견딜 수 없는 모욕감을 느끼고 있었다.



<정인> ‘우아한 계절이 날 참으로 쑥스럽게 만드는구나. 끔찍하다.’



그녀는 속으로 읊조렸다.



‘가정의 달’이라는 5월은 가족에게 숨겨왔던 마음을 전한다는 의미에서 본디 ‘쑥스러운’ 달이긴 하지만,


‘불륜의 발견’과도 같은 이 5월은 그녀에게 또 다른 의미에서 쑥스러움을 안기고 있었다.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5월도 밤은 제법 쌀쌀했다.


보라매공원 벤치에 앉아 태휘를 기다리던 정인에게 먼발치서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태휘임을 직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인> “좋아 보이네.”



정인이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가로등의 역광을 받아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는 그가


실제로 좋은지 아닌지 그녀가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태휘> “이게, ······ 네가 입었다는, 그리고 앞으로 입겠다는 그 상복인가 보지?


전에 장례식 때 보았던?”



태휘는 정인의 검디검은 옷을 보며 말했다.


장례식장에서 나름 청초한 아름다움을 선사해 준다고 감탄했던 그 검정이


공원에서는 꽤나 사나운 그녀의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내 주는 것 같이 느껴졌다.



<정인> “같이 사는 것 맞네. 그랬겠지. 결혼했으니 같이 살았겠지. 같이 살았으니 아이도 생겼겠지.”


<태휘> “그렇게 말하지 마. 아까도 말했지만 윤정이 임신한 건 내 아이 아니야.”


<정인> “그럼?”


<태휘> “모르지. 어느 놈의 아이인지.”


<정인> “아니, 왜 같이 사느냐구.”


<태휘> “어쩌다 보니 살 집이 없어서 같이 사는 거야. 진짜 부부라면 혼인신고를 했겠지.


하지만 윤정이는 내 호적에 없어.”



<정인> “그럼 윤정 씨는 누군데? 오빠랑 무슨 관계인데?”


<태휘> “이종사촌동생이야.”


<정인> “그렇구나.”



태휘는 자신의 변명을 정인이 이해해 주는 듯 말을 하자


만나기 전까지 걱정스러웠던 마음을 조금은 해소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애태우던 마음을 내려놓고 안심을 해도 될 만큼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정인은 그 한정식집에서 윤정이 했던 말,


너희 둘이 불륜 아니냐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종사촌오빠와 ‘그의 여자’로 보이는 사람을 보고 불륜 아니냐고 물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둘의 관계는 뻔했다.



적어도 정인 자신에게는.






<태휘> “그나저나 정인아, 왜 아직 상복을 입고 있어?”


<정인> “아빠 돌아가신 게 꼭 윤정 씨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근데 아니라고 하니 내일이라도 찾아뵙고 사과드리고 다시 일하겠다고 말씀드릴까 봐.”



<태휘> “그러지 마. 이미 다른 분 구했어. 너만 초라해져.”



태휘는 위험한 순간마다 거짓말이 술술 나오는 자신이 제법 놀라웠다.


그리고 그것은 그것대로 정인의 눈에 고스란히 읽혀 들어갔다.


물론 그는, 자신의 말이 그녀를 아끼는 뜻에서 나온 것이라고 그녀가 읽어주기를 바랐다.


말하자면 그녀를 소중히 여겨 더는 가사도우미와 같은 일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의 발로 같은 것으로 읽어주기를 바란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였다.



<정인> “궁금한 게 있는데, 내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상복을 입을 거라고 했다는 말은 윤정 씨한테 들은 모양인데,


내 이름은 윤정 씨가 얘기 안 했어?”



<태휘> “이름을 들었다면 진작에 네가 일하는 줄 알았을 거야.


윤정이는 ‘아줌마’라고만 말했거든.


넌 아줌마가 아니니까 우리 집에서 일하시는 분은 네가 아닌 줄로 알았지.”



태휘는 한참을 뜸 들이다가 가까스로 대답을 했다.



<정인> “난, 윤정씨의 남편이 최소한 내 이름 정도는 알 걸로 생각했어.


그게 예의잖아.


근데 몇 달이 다 지나도록 밑에 두고 일하는 사람의 이름도 비밀로 했다는 걸 믿으라고?


그 말은 윤정 씨가 정말 경우 없는 사람이라는 걸 나한테 자랑하는 거지? 그런 거지?


더군다나 자기 집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름도 모르는,


아니 관심 자체를 아예 두지 않는 오빠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야?”



<태휘> “정인아, 그건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당연히 이름을 말했겠지. 네 말대로 그게 예의니까.


윤정이가 그렇게 경우 없는 애도 아니고.


근데 사람 들이고도 말을 안 하니까, 난 무슨 사정이 있는 건가, 이렇게만 생각했던 것 뿐이야.


오해는 거두어 주었으면 좋겠다.”



<정인> “오해. ······ 그래, 오해구나.


윤정 씨가 처음부터 골탕 먹이려고 날 들이고도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건


그냥 내가 철딱서니가 없어서 오해를 하는 것일 뿐이로구나.


그래, 그렇다고 하자.”



둘 사이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두 사람 모두 거의 비슷한 생각에 다다랐지만,


이 다음으로 어떤 변명, 또는 어떤 해명이 이어지든


한 사람은 꼴이 우스워지고 다른 한 사람은 비참해질 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정인이 그 정적을 깨고 말을 이었다. 물론 화제를 바꾸어서.



<정인> “윤정 씨는 나한테 에메랄드 귀걸이가 있는 걸 아는 모양이던데,


그건 어떻게 알았을까?


오빤 내가 일하는 걸 몰랐다며?”



<태휘> “그럴 리가 없는데. 정말이야?”


<정인> “오늘 루비 목걸이, 에메랄드 귀걸이는 윤정 씨가 꼭 차고 왔으면 좋겠다고 부탁해서 한 거야.


그렇잖아. 윤정 씨 때문에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이 뭐가 이쁘다고 잔뜩 치장을 하겠냐구.”



<태휘> “글쎄. 그건 정말 모르겠는걸.


난 윤정이한테 너에 대해 말한 적 없으니까.


하지만 정인아, 윤정이 때문에 아버님 돌아가신 건 아니야.


마음속에 저주는 풀었으면 좋겠다.”



정인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의 진상이 어떻든 그가 자신의 앞에서 윤정의 역성은 들지는 않았으면 했다.



<정인> ‘부부끼리 서로 감싸주는 마음은 알겠는데, 제발 날 좀 그만 웃겼으면 좋겠어.


내가 웃으니까 마음이 좋아서 그러는 줄로 아는가 본데,


지금 윤정 씨한테만 향한 화살은 실은 오빠한테 가야 맞는 거잖아?’



정인은 가만히 태휘를 바라보았다.



<정인> “저주라고 했어? 윤정 씨가 나한테 저주받을 일을 하긴 한 모양이지?


아니면 그걸 오빠가 어떻게 알아?”



<태휘> “그러지 말자. 마음속에 저주든 뭐든, 그런 원망은 너만 갉아먹을 뿐이야.


난 그걸 염려했던 것 뿐이고.”



태휘는 정인이 오해하는 거라고,


그녀가 아는 것이 그대로 다 진실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일이 더 커질 것 같아 그만두었다.






한편 정인과 헤어지고 윤정이 입원한 병원으로 가는 태휘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아무리 그의 아이가 아니라지만 걱정은 걱정이었다.


윤정과 태아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겼다면 큰 낭패이기 때문이었다.



병실로 들어서기 전에 그는 간호사실에서 들러 이것저것 물었다.


그러다 전혀 생각지 못한 대답을 듣고 다소 놀라긴 하였지만,


그는 이내 평정을 되찾고는, 그녀가 입원한 병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태휘> “미안해. 나도 모르게 그만.”



그는 임신한 아내를 밀쳐 바닥에서 구르게 한 데 대해 사과를 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일단은 달래고 봐야 했다.


윤정은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고 그를 똑바로 보지 않으려 했다.



<태휘> “몸은 어때? 괜찮아?”


<윤정> “빨리도 나타난다. 신랑이란 인간이 조강지처를 버리고 딴 여자를 따라가?”


<태휘> “그러지 마. 나도 그러고 싶었던 건 아니야.”


<윤정> “그러면 어떻게 하고 싶었던 건데? 그 여자 누구야?


누군데 겁대가리도 없이 남의 여자 앞에서 그 남편을 오빠라고 불러?


자기가 그 여자 오빠야?”



<태휘> “L 식품 채동섭 회장님 딸이야.


지난 97년 회사가 IMF 맞으면서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그때 채동섭 회장님은 병을 얻으셨어.


그리고 며칠 전 돌아가셨지.


난 설마 정인이가 여기서 이러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정인이랑은 그냥 오빠, 동생 하면서 지내던 사이야.”



<윤정> “웃기시네.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고? 재벌 딸이 왜 내 밑에서 도우미를 할까?”



물론 윤정은 정인을 ‘재벌 딸’이라고 그 지위를 ‘격상’하였지만,


사실 L 식품은 그룹이 아니었고 그저 조금 잘 나갔던 중견기업일 뿐이었다.


다만 태휘가 더 난처하도록 상황을 몰기 위해 ‘재벌 딸’이라고 말한 것이었다.



<태휘> “믿기지 않더라도 사실이야.”


<윤정> “그럼 그 여자(정인)는 자기 보고 왜 도망가는데?”


<태휘> “날 보고 도망간 게 아니잖아. 내가 네 남편이란 것을 알고서 도망간 거잖아.


도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사달을 만들어?”



<윤정> “그건 내가 묻고 싶어지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도망을 쳤는지.


우리 사이엔 아무 일도 없었어.”



<태휘> “그럼 당분간 상복을 입겠다는 말은 뭐야?


무슨 일이 있었으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 아니야?”



<윤정> “지금까지 그 여자 만나고 온 거 아냐? 안 물어봤어?


그건 내가 알고 싶은 거야. 도대체 왜 그러는지.”



<태휘> “그만두자. 쉬어. 별 탈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야.”



태휘는 그 자리를 떠서 병실 밖으로 나왔다. 하늘은 어두컴컴했다.



지금은 일단 임시로 봉합이 됐더라도, 윤정과 정인이 서로의 존재를 안 이상 앞으로가 문제였다.



<태휘> ‘차라리 간호사한테 들은 거 말하고 이놈의 여편네 족쳐버릴까?


어차피 내 아이도 아닌 바에야 불륜은 이 여자가 한 건데 내가 쩔쩔맬 이유가 어디 있어?’



속에서 부아가 치미니 마음 가는 대로 화는 냈어도, 그의 생각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한 것이었다.


혹시 그가 사건의 ‘진상’에 대해 물어올지도 모르니 윤정이 거짓말을 부탁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까지 생각한 것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간호사들의 말을 그대로 진실이라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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